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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Aug 13. 2021

비내리던 어느 여름날에

삶에 생명을 불어넣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 집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창문 너머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다 문득 별이랑 툇마루에 앉아 비내리는 소리를 같이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지, 추운지 비가 내리는 지 말든지, 사방이 막힌 집안에 있으면 아이는 바깥 사정을 알지 못한다. 신발을 손에 들고 나가자고 떼를 쓰고 나는 지금은 너무 뜨거워, 지금은 비가 너무 비가 많이 내리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달래보지만 아이에게는 미래는 없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이제 막 혼자 걷는데 자신감이 붙은 별이는 아침부터 계속 내 손을 잡고 나가자고 현관문 앞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더 간절하게 하게 된다. 그러다 아이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처럼 나도 지금 이 순간, 당장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 부랴 짐을 챙겨 배낭을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비오는 날 버스를 타고 어디든 가기만 해도 여행이 되니까.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그림이 되었다.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버스는 세차게 흔들거렸지만 한별이는 신이 났고 물에 닿아 더 찐해진 초록색 나무 사이로 지나가며 푸른 논이 양옆으로 펼쳐진 풍경은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웠다. 이 순간, 누군가 내 옆에 앉아있다면 사랑에 빠질만큼.


버스에서 내려 한별이를 안고 우산을 쓰고 한참을 걸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타닥 타닥 빗소리를 들으며 심장을 맞대며 얼굴을 마주보고 걷는데 마음이 이뻐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면 참 이쁘겠다 싶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오늘 내가 행복하라고 이곳으로 이끌었구나, 문득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목적지가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문득 생각나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예전에 살던 마을의 내가 살던 집뒷집 할머니가 문득 보고 싶었다. 아흔이 훌쩍 넘으신 나이에 내가 2년 전에 살 때도 여기 저기 안아픈 곳이 없다며 푸념 하셨는데 잘 지내시고 계신지 궁금해서 찾아갔다. 가는 길 내내 설레기도 하고 혹시나 안계실까 걱정되는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뵜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반겨주셨다.


마당에 앉아 한시간정도 앉아서 놀고 있는데 내가 키우던 고양이가 우리를향해 달려왔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집안에서 왕자님 처럼 살다가 야생에서 버틴다고 몸에 근육도 제법 붙고 몸짓도 커져 있었다. 할머니도 메타도 일년만에 만났는데 다들 잘 버티면서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웠다. 정말로. 혼자 시골에 내려와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같이 신혼(?) 생활을 하며 별이가 우리에게 왔던 추억의 그집도 새로운 주인을 만나 그 주인의 취향대로 변해있었지만 그래도 별이에게 들려줄 많은 이야기가 있는 그 곳에서 나는 한참동안  그 집 앞에서 별이에게 행복했던 이야기를 해줬다.


아무 이야기가 없는 날도 있지만 많은 이야기가 있는 날도 있고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는 인생도 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가 기억되는 인생도 있다. 하루동안 많은 이야기를 별이와 나누며 삶을 서서화하고 나의 삶을 누군가 나누며 이야기를  뱉어내는 순간, 스스로의 삶에 생명이 불어넣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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