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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기 2주년

결혼 인연법

by 쉘위



20년은 산거 같은 결혼 2주년이다. 아마도 전생에 인연으로 해결되지 못한 숙제를 풀기 위해 이 생에 만난거겠지. 마이산에 와서 살라는 내면의 메세지를 듣고 마이산에 와서 살지 않았으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인연. 내가 가장 건강하고 풍요로웠던 시기에 기적같이 찾아온 아이.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결혼 생활. 그치만 이제는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결혼 생활은 서로의 카르마를 해결하는 업의 정화 작용이라는 것을.


나는 결혼 전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말도 안되게 정말 그랬다. 나는 시골에 혼자 살아도 심심할 틈이 없이 혼자 잘 놀았지만 맛있는거 만들어 먹을 때는 같이 먹을 친구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밥 먹을 때는 지금의 남편을 불렀다. 그냥 내가 먹는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얹어서 먹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그 당시 나는 남편에게 이성으로 딱히 끌림은 없었는데 그냥 같이 있으면 편했다. 무던하고 순한 기질에 고양이처럼 조심스러움이 있어서 불편한게 많은 시골집에 예민한 내 기질에 거슬리는게 크게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밥 한톨 남기지 않고 깔끔하고 조용하게 밥을 먹는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남한테 밥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는 요리는 못하지만 내가 하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어주니 같이 밥을 먹는 횟수가 점차 늘어났다.하루 이틀, 한달 두달. 그러다 1년이 흘렀다.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나는 열흘간의 침묵 명상을하러 떠났다. 매일 붙어 지내다 보니 보고 싶기도 전에 나타나던 사람이라 내 마음을 들여다 볼 겨를이 없었다. 떨어져 지내고 보니 생각나고 보고 싶은 마음과 지난 일년 동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올라왔다. 열흘 간의 명상 코스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의 에너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햇빛이 가득한 마당에는 해바라기 꽃이 만개를 했고 압력 밥솥이 칙칙 거리며 옥수수 찌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고 있었다.툇마루에는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는 작은 카드와 꽃다발이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남편은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포도를 씻다 말고 나와서 같이 집에 놀러온 친구들 앞에서 당황 한 듯 아닌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참 웃기게 나는 그날 이 남자와 평생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에게 별이가 왔다.


그리고 오늘 꽃을 사들고 어색하게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에서 그날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라는게 하나도 없었던 그 시절. 작은 것만 줘도 행복해 하고 기뻐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바라는게 많아져서 스스로 힘들게 하고 있는건지.

임신과 출산 육아로 몸이 지치고 약해지니 마음도 자꾸 약해진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널뛰기를 하던 감정들, 끝이 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와 살림으로 지쳐가는 체력, 집에 쳐박혀 내가 이런일이나 할려고 결혼 했나 가끔 아니 자주 찾아오는 우울감, 그러다 보니 자꾸 남편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바라는게 커진다. 내가 마음이 가장 풍요롭고 건강할 때 만났던 사람, 그리고 가장 마음이 가난하고 여유없고 몸과 마음 영혼 모두 탈탈 털린 듯 한 지금의 나. 같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변했다. 상황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 변하고 싶으면서도 변하고 싶지 않고, 변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변하는 것. 2년 사이에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로 내 삶은 그 전과는 너무나 달라졌다. 어떻게 삶이 이렇게 흘러갔지 싶다가도, 그래서 그렇게 흘러갔구나 싶다가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자 싶다가도. 복잡한 생각과 마음도 풀어져서 가벼워지기를 바라면서도 하루 하루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보려고 애를 쓴다.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어떤 날은 우리가 인연으로 이어진게 둘 중에 하나가 갚아야 될 영적 채무가 남아서 이어졌다고 이해가 되면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빚 갚는다고 생각하고 잘 해주자라는 마음이 생긴다. 근데 이 마음들이 대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인연법에 따라 결혼은 세가지의 형태를 띤다고 하는데 하나는 태어날 아이의 영혼이 원하는 결혼,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 성적 욕구로 인한 결혼. 이 세가지 중 우리는 어떤 인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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