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쉘위 Jun 20. 2024

선생님, 저 망한거 같아요.

괜찮은 학교 생존법



새로 입학한 학생 한 명이 수업을 마치고 나서

대뜸 "선생님 여기서도 망한 거 같아요. 적응 못하겠어요."


오늘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유난히도 밝은 척을 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앉아있던

한 여학생이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던졌다.


어떤 선생님은 못 들은 척 무시하고,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기다리고 있었고 바로 옆에 있던 선생님은

" 네 약점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마. 감정을 너무 드러낼수록 네가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약점으로 잡을 거야 "


속으로 예상치도 못한 다른 선생님의 답변에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나 같으면 그냥 단순한 위로를 던지는 말을 했을 텐데 핵심을 찌르는 말로 아이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화법과 반응이 놀라웠고 내가 배워야 될 부분이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아이가 연이어서 징징거리면서 힘들다고 하자


" 여기 있는 애들 다 잘 지내는 거 같아 보이지? 쟤네들 친해 보이는 거 같지?

쟤네들 저렇게 같이 어울리고 다닌 지 며칠 안됐어. 다들 적응하는 시간 가져서 지금 적응한 것처럼 보이는 거야."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무심한 듯 담담하게 하지만 따듯한 느낌은 전해졌다.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어서 쭈뼛거리고 있는 그 학생에게 나는 같이 밥  먹자는 말을 건네고 앞자리에 앉았다.


" 나도 여전히 적응 중이야. 난 여기 온 지 두 달째인데 아직도 적응이 안 돼. 네가 힘든 마음 충분히 이해되니까 같이 버텨보자. 서로 알아가다 보면 견뎌내 질 거야."


깨작깨작 밥을 먹는 아이는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한다.

"네...."





오늘도  수업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수업 시간 도중에 말도 없이 나간 아이와 말도 없이 수업 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계속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는 아이, 수업 시간에 욕설이 오고 가고 있는 상황에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눌러가며 규칙을 정하자고 했다. 규칙이 딱히 없는 학교에서 규칙을 정한다고 따라올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규칙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규칙을 만들고 지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 것이 내가 너희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법이니 존중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반발심을 예상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 차라리 모든 선생님이 선생님 처럼 우리를 잡아주면 좋겠어요. 엄격하게 지킬 것은 지키고 안 지킬 시에는 처벌도 하고.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처벌하고 그런게 저희는 화가나는거에요. 우리도 선생님들이 우리를 포기하는 것 원하지 않아요. 무시하고 투명인간 취급 하는 것도 싫어요. 저도 여기 앉아 있고 싶지 않고 밖에 나가서 자고 싶은데 수업 시간 이니까 들어와서 앉아서 버티는거에요. 그런게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거구요. 선생님들 마다 의견이 다른 것도 헷갈리고 혼란스러워요. 선생님들이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구요."


평소에 조용하던 한 학생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네가 지금 느끼는 불만과 감정을 이해해. 선생님들도 가끔은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어. 하지만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모두 일관되게 행동하고 여러분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 앞으로는 수업 시간에 대한 규칙을 더 명확하게 정하고, 모두가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다른 선생님들과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서 너희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네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너희 들이 손을 놓지 않는다면 나 또한 너희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항상 도와주고 싶어. 우리 모두 함께 더 나은 교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자."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열어보인 것 같다.

교사와 학생이 아닌 인간대 인간의 대화같은 느낌이었다.

불편한 감정을 마주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객관화 해보는 작업은 감정을 해체하고 그들이 왜 발생했는지를 이해하며, 그것들이 현재 상황에서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직은 감정을 나누고 표현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문제를 해결 해 나가는게 서툰 아이들이지만 어른이 된다고 해서도 저절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연습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



우리에게 대안 교육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다. 나에게도 이런 날들이 있었더라면 지금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짙게 남았던 날. 어른 인척, 교사인 척, 내가 다 안다는 척을 하지 않는 것. 그것부터가 서로를 성장시키고 나아지게 하는 배움터가 아닐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