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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May 08. 2024

때로는 침묵

마음이 요동 칠 때는 차라리 침묵을. 


아이들과 매주마다 한 주간의 있었던 일들을 나눈다.

몸과 마음, 내 감정상태, 수면상태,  요즘 나의 관심사, 자주 보는 유튜브, 최근에 웃었던 일 등등.

머릿속의 생각과 마음 속에 감정들을 꺼집어서 객관화 해보는 작업.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이미지 화 해서 적어보면 한눈에 아이들의 상태를 볼 수 있다. 교사인 입장에서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고 알아가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지만 각각의 상처와 아픔과 고민으로 대안 학교를 선택한 아이들은 자신의 힘듦을 알아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소리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경계하며 연필 한 자루도 스스로 쥐고 글씨를 쓰는 게 어려운 아이도 있고 외로움과 두려움과 무기력과 싸우며 자신을 드러내며 이해받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교실 안은 표현하는 아이와 표현하지 않는 아이.

보이지 않는 경계와 벽 하나가 생겼다.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아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때로는 그 거침이 당황스럽고 불쾌하기도 하다. 부정적인 생각들과 부정적인 언어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면 내 마음에도 파장이 일어난다. 질문을 던져도 아무 말이 없는 아이, 교사가 들어와도 계속 엎드려 자는 아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아이. 낄낄 거리며 노닥 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요동치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내 마음을 마구 휘젓는다.  가슴이 뜨거워지며 내 몸에서 화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 '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말들과 생각들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 아이들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두르며 여기까지 와야 되나'.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걸까. 그냥 시간 때우고나 갈까.'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둔다고 할까.'

'아 하기 싫다.. 그냥 나가버릴까...'

.

.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감정과 마음은 요동쳤다.


잠시동안 내 마음을 바라보며 흙탕물이 되어버린 내 마음의 불순물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밖으로 마구 뛰쳐나가려고 했던 감정과 생각과 말들을 삼켜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나를 좀 봐줘하는 대신 나 자신이 내 마음을 조금 더 깊고 천천히 바라보았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 마음들을 고요히 바라보며 호흡에 집중했다.

5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자신들의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는 게 보인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엎드려 있던 아이는 몸을 바로 세우기 시작했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아이는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낄낄거리며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던 아이들은 말을 멈췄다.


잠시동안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휘몰아치던 마음이 침묵 속에서 이내 잔잔해졌다.



내 마음속에서 감정들과 생각들이 정화되기를 기다렸다.

첫마디를 잘 내뱉고 싶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아이들은 그 사이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를 참지 못하고

또다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 거린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진다.

그렇게 여러 차례를 반복하는 동안

아무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천천히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불만족스럽고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들이 전해졌다.


하지만 오늘은 말보다 침묵이 필요했다.

말을 내뱉는 순간 주어 담기 힘들고

의도하지 않는 말이 툭 튀어나와서 실수를 하거나

상처를 남기거나 후회를 할까 봐 염려되는 마음이 먼저 올라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깨어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침묵 속에서 전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상대의 말에 반응하고 자극하며

오고 가는 말을 사이에서 덜 반응하고

덜 자극을 주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내면의 평화와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침묵을.


침묵이 두려워 쏟아내는 말이

본질을 흐릴 때가 많으니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감정도 생각도 마음도.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흘러가고 지나간다.


말은 씨를 뿌리지만

침묵은 거둘 때가 더 많다.


때로는 침묵이 강력한 소통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결국 우리는 나와 너와 우리가 잘 통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니까.


가까워지고 싶어도 때로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말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평온해질 수 있다.

생각이 사라질정도로 침묵할 수 있다면

고요함 속에서 기적처럼 마음이 밝아지고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시끄러운 세상과 시끄러운 생각과 시끄러운 말들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침묵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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