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아이들을 만난 지 두 달이 흘렀다.
여전히 아이들의 출석과 입학은 들락날락하고 아이들의 마음도 울퉁불퉁하고 내 머릿속과 마음도 오락가락 하지만 나름의 질서와 균형을 잡아가기 위해 교실 안팎으로 여러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새로운 친구들이 입학을 했고 지난주에 엎드려 있던 친구는 반갑게 인사를 했고 항상 조용하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친구는 내가 들어와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엎드려 있었다. 지난주에 혼이 났던 친구는 결석을 했고 몇몇 친구는 지각을 했고 한 친구는 자퇴를 했다.
들어오고 나가는 게 자유로운 괜찮은 학교.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도 교사들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고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보는 행위에 대해서도 각각 관점들이 다르다.
서로 다른 교사들과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모여 있는 이곳에서
유연한 규칙과 규율들은 때로는 혼란스럽고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매일매일 끊어질 듯 말듯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아이들과 알 수 없는 밀땅과 조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 끊어질지, 언제 줄 위에서 내려올지, 아님 스스로 이 줄을 잘라버릴지 모르지만 매일 오늘 하루는 마음을 다하자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수업을 시작하자 한 아이가 대뜸
"선생님 저 꿈이 바뀌었어요."
" 뭘로?"
" 저 이제 건축 디자이너 말고 가축 의사 하려고요"
" 왜?"
" 이게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이래요"
" 넌 돈 잘 버는 일이면 뭐든 할 거야?"
"네"
" 돈 잘 벌어서 뭐 하고 싶은데?"
" 담배 살려고요."
" 담배를 얼마나 사고 싶은데?"
" 하루 4갑이요."
" 4갑이면 2만 원 정도만 벌면 되는 거 아니야?
하루종일 담배 펴도 4갑 밖에 못 피잖아. 근데 돈 많이 벌어서 뭐 하게?"
아이는 잠시 동안 말이 없다.
그러더니 시시껄렁한 대화가 더 하고 싶었는지 또 입을 뗀다.
"선생님, 싱가포르는 성매매가 합법이래요. 그래서 저 싱가포르 가서 성매매 사업 하게요."
이번에는 나뿐만 아니라 교실 안에 있는 아이들 전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주변 아이들은 한 마디씩 자신의 생각들을 던졌다.
" 왜 선생님 제 말 무시해요."
" 난 아무 말하지 않았어."
" 제 말 좀 끝까지 들어보세요"
" 그래, 그럼 1분 시간 줄게.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해봐."
아이는 자기 변론을 하기 시작한다.
20초 동안 괴변을 늘어놓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 40초 남았어."
" 제 할 말 다 했는데요."
그럼 우리가 네 이야기 1분 동안 집중해서 경청했으니까
이제 너는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잘 들어봐.
평소에 교실에서 거의 자신의 의견을 친구들 앞에서 말하지 않던 아이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현실적인 생각을 말했다.
네가 영어도 못하는데 싱가포르에 가서 어떻게 성매매 하고자 하는 여자들을 구하고 사업 시작이 가능하겠냐.
그런 사업은 다 조폭들이 연결되어 있을 거다. 쉽게 시작하기도 어렵겠지만 너는 그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
성매매 사업을 한다던 이야기를 듣고 제일 흥분하던 한 여자 아이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오히려 시큰둥하게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야지. 난 네 꿈 응원해. 하고 싶으면 해 봐. 네가 감방을 가던 죽던 네 알바 아니니까.
지난해 입학을 했다가 다시 재 입학을 하고 진로와 꿈이 바뀐 한 아이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에게 타이르듯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작년까지만 해도 너랑 같은 생각을 했었어.
나도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고민했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그리고 카지노에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래서 그 일을 알아봤어.
근데 3교대를 해야 되고, 담배를 많이 피우는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나를 헤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경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어.
올해 고3이 된 아이는 1년 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많이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이의 마지막 한 마디에 내가 오늘 이 수업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인생에 정답은 없어.
너네들 각자가 너희들 만의 답을 찾아가는 거야.
하지만 문제를 풀 때 편법을 쓰거나 요행을 바라지는 마.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때, 시간이 지나도 너희들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을 거야.
모두가 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각자가 답을 찾아가기를 바라."
괜찮은 학교는 중 고등학교 통합과정으로 아이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아이들이 처한 환경도 다양하고
처한 환경에 따라 자신들의 한계를 정하고 그 틀 안에서 생각을 하고 자신들을 규정짓는다. 대부분이 자신과 가까이서 관계 맺는 사람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가까운 사람들의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받아들인다.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인격적 소양들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어린 시절 부모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받은 교육이 도적적 판단과 예의범절의 기초를 형성할 것이다. 부모의 행동이나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모델이 된다. 부모가 어떤 가치를 갖고 행동하고 살아가는지가 아이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부모의 부모, 조 부모 때부터 무의식 깊이 박혀버린 가치관은 경험에 의해 더 확고히 단단해진다. 그 깊고 깊은 뿌리는 쉽사리 끊어내기 힘든 나와의 고리이다. 내 의식과 상관없이 사고하게 되고 행동하고 결정하게 되는 뇌의 메커니즘은 무의식에 자리 잡힌 감정이나 생각이나 욕망이나 기억들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고 반성적 사고가 없거나 건강한 자의식이 없다면 아이들 또한 건강한 자의식이 형성되기 쉽지 않다. 그렇게 무의식이 대물림되고 대물림되면서 아픔과 상처와 고통도 대물림된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속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거나 돈과 시간에 쫓겨 살다 보면 이 무의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난 후에 고착화된 생각들이 바뀌기란 더 쉽지 않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각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견들을 많이 나눠보고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는 연습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가고 다양한 부류, 다양한 계층, 다양한 문화, 다양한 전통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생각이 부딪히고 관념이 무너지고 가치를 다시 재 정립하고 자신들만의 정의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매일 우리는 우리 안에 깊게 감추어진 보물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언젠가는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기준과 이야기와 역사를 쓸 수 있기를.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은 자신만 알 것이다.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나 한 가지 옳은 길은 없다. 각자의 삶은 그들만의 독특한 여정이며, 그 여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는 개인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있다. 누군가에게는 옳다고 여겨지는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은 주변의 평가나 외부의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깊은 신념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내린 선택과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자기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와 깊은 내면의 탐구를 통해 얻어지며, 때로는 시련과 실패를 겪으며 성장하고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 확신하는 것은 주변의 평가나 비교와는 무관하게 내면에서 온 소망과 믿음에 기반하며, 이는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괜찮은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내가 하는 이 일이 나의 인생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소망처럼.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끊임없는 내면의 탐구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의 입 밖으로 나오는 한 마디 한마디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기록해 나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