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 살이
달은 차오르고 다시 기울고
꽉 차 있던 보름달이 점점 작아지자 레인보우 게더링의 원도 점점 작아졌다.
처음에는 사람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숨결까지 느껴지던 그 거대한 원이,
하루가 다르게 성글어졌다.
누군가는 먼저 길을 떠났고, 누군가는 텐트를 접으며 마지막 차를 나누었다.
밤마다 울리던 드럼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모닥불 주변의 빈자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달이 기울 듯 우리의 원도 기울었다.
매일 밤 모닥불을 티브이 삼아 불멍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Rainbow Gathering에 참여해 온 형제자매들이
모닥불 앞에 서서 삶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나는 그렇게 기다려졌다.
낮에는 각자의 일을 하고, 숲을 거닐고, 함께 음식을 만들다가도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불 주위로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사막에서 보낸 겨울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국경을 넘으며 배운 신뢰에 대해 말했고, 또 누군가는 공동체가 무너졌던 순간의 아픔을 꺼내놓았고 공동체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했던 이야기들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으로 통과해 온 말들이라 묵직했고, 따뜻했다.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이 그저 불꽃의 리듬에 맞춰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불은 타닥 소리를 내며 장단을 맞췄다.
누군가 조용히 장작을 얹으면 불꽃은 다시 살아나
또 다른 목소리를 비추었다.
그 시간에는 핸드폰도, 기록도, 증명도 없었다.
그저 사람의 목소리와 서로의 눈빛,
그리고 타오르는 불.
나는 그 밤마다 느꼈다.
지혜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함께 부딪히고, 흔들리고,
그래도 떠나지 않고 남아본 사람의 몸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닥불은 텔레비전이 아니었지만
그 어떤 화면보다 생생했다.
그 불빛 아래에서 전해지던 이야기들은 지금도 내 안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다.
원은 작아졌지만 남아 있는 이들은 더 또렷해졌다. 겹겹이 둘러싸여 있던 큰 원이 흩어지고 나니 마치 안개가 걷힌 자리처럼 서로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분명 있었지만 그 공백은 쓸쓸함이라기보다 고요함에 가까웠다.
남은 사람들은 이곳에 조금 더 머물 이유가 있는 이들이었다.
끝을 지켜보는 사람들. 타오른 자리의 재를 정리하는 사람들. 마지막 장작을 나누어 패는 사람들.
말수는 줄었지만 눈빛은 깊어졌다.
큰 축제가 지나간 뒤의 작은 모임처럼, 우리는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달은 얇아졌고 원의 지름도 줄었지만
그 안의 온도는 오히려 더 따뜻했다.
남아 있는 이들은 떠날 줄 아는 사람들이면서도 끝까지 함께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연에게 잠시 빌려 쓴 게더링 공간을 잘 사용했으니 이제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약속이었다.
장작이 타올랐던 자리는 흙으로 덮고, 텐트가 서 있던 자리는 다시 숨 쉬게 하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함께 웃으며 노래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던 숲을 처음처럼 고요하게 돌려놓는 일.
누군가는 재를 흙으로 덮고, 누군가는 작은 쓰레기 하나까지 다시 확인했다.
밧줄을 풀고, 말뚝을 뽑고, 눌렸던 풀잎을 손으로 살짝 세워 주었다.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이들과 남아 있고자 선택한 이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달은 다시 작아지고 사람도 줄었지만 우리의 의식은 점점 깊어져갔다.
우리는 더 많이 말하지 않았고 더 많이 움직였다. 허리를 숙여 작은 쓰레기를 줍고, 땅을 고르고,
불씨가 완전히 식었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했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는 이곳에 대한 존중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었다.
축제는 노래로 시작했지만 책임으로 끝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이 함께 똥구덩이를 덮었다.
불을 지피는 일만큼이나 배설을 책임지는 일도
이 공동체의 일부였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예의를 갖춘 인사라는 걸 배우며
우리는 이곳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더욱더 조심스럽고 정성껏 숲을 돌보며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떠날 준비를 했다.
흔적 없이 떠난다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존중하고 지나갔다는 뜻이니까.
서서히 숲이 원래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나도 이제 이곳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만 했다. 숲에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게 겁이 났지만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마무리 의식을 치른 레인보우 전사들과 함께 떠나는 여정에 나는 오히려 신이 났다.
숲은 거의 제 모습을 되찾았고 남은 사람들의 눈빛은 더 깊어져 있었다.
끝을 책임진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든든했다.
나무가 빼곡한 숲을 뒤로하고 사람들과 차들이 가득한 도시로 향했다.
숲을 지나 흙길이 아스팔트로 바뀌는 지점에서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 있었고, 우리가 머물렀던 시간은 이미 바람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찻길로 나와 여러 번의 히치하이킹을 하며 배낭을 내려놓고 엄지를 들었다. 딱히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지만 공항 가까이로 가서 며칠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숲의 리듬에서 곧장 도시의 심장부로 뛰어들기보다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다.
히치하이킹으로 운 좋게 트럭을 얻어 타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한참을 달렸다.
창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와 낮게 깔린 구름,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디서 왔는지, 왜 여행 중인지,
숲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장단을 맞추며 웃고, 질문에 답하고, 다시 질문을 던지며 나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힘에 부쳤다.
조용히 창밖을 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태워준 그 마음이 고마워서 괜히 더 밝게, 더 크게 웃으며
평소보다 텐션을 높여 떠들어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배에서 신호가 왔다.
허기.
숲에서는 단순한 음식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상하게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구체적인 메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따뜻한 국물, 짭짤한 감자튀김, 스테이크, 갓 구운 빵 냄새.
‘도시에 도착하면 뭘 먹지?’
혼자 상상하며 괜히 설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공한 근처 시내에 숙소를 잡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며칠을 보내다 가겠다는 생각에 나는 꽤 들떠 있었다.
따뜻한 음식, 깨끗한 침대,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들.
숲의 시간과는 또 다른 방식의 휴식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운타운에 도착하자마자 어딘가에서 익숙한 리듬이 들려왔다.
드럼의 박자, 기타 스트로크, 그리고 여러 사람이 겹쳐 부르는 노래.
심장이 먼저 알아챘다.
‘이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환한 간판들 사이,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한복판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숲에서 얼마 전에 떠난 레인보우 친구들이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그들의 원은 또 만들어져 있었다.
모닥불 대신 거리의 가로등 아래에서, 숲의 흙 대신 아스팔트 위에서, 그들은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웃었다.
숲은 끝난 줄 알았는데 그들은 이미 도시 한복판에서 또 다른 원을 그리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다시 한번 그 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근사하고 세련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도시 사람들의 멀끔한 행색과는 다르게,
더러워진 맨발에 엉켜 있는 머리카락, 흙이 묻어 있는 옷과 해진 배낭을 들고 그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는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정갈하게 놓인 접시들이 보였고, 유리창 이쪽에는 기타 케이스 위에 놓인 동전과 맨발로 리듬을 타는 친구들이 있었다.
형제들의 발에는 아직 숲의 먼지가 묻어 있었고, 손톱 사이에는 흙이 남아 있었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그 모든 것은 더 이상 감춰야 할 것이 아니었다. 도시의 불빛은 유리창과 간판 위에서 번쩍였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저녁을 즐기고 있었지만, 가로등 아래 모인 우리의 작은 원도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혼자 며칠을 보낼 생각을 하며 조금은 들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형제, 자매들을 마주하니 그 계획은 순식간에 의미를 잃어버렸다.
“헤이!”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두 팔을 벌렸다.
그 순간, 배고픔도 잊었다.
따뜻한 음식보다 먼저 채워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그 원 안에 털썩 앉았다.
기타 소리에 맞춰 허밍을 하고, 후렴에서는 목청껏 함께 불렀다.
웃음이 터지고, 박수가 이어지고, 누군가는 리듬에 맞춰 발을 굴렀다.
도시는 여전히 분주하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우리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둥글게 머물러 있었다.
숲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아스팔트 위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혼자 보내려던 마지막 며칠은 결국 또 함께가 되었다.
돌고 돌아 나는 다시 그 원 안에 있었다.
노랫소리와 악기 소리가 점점 커지자 거리의 공기마저 리듬을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느려지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는 이도 있었고,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잠시 멈춰 선 부모도 있었다.
후렴이 반복될수록 목소리는 더 겹쳐졌고 박수 소리는 점점 두터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기타 케이스 안에 반짝이는 동전들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짤그랑. 짤그랑.
그 소리는
숲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던 소리와는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비슷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누군가는 지폐를 접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미소만 남기고 떠났다.
동전과 지폐가 케이스 안에 쌓여갈수록 내 안에서는 묘한 기쁨이 함께 커져갔다.
도시에 도착하면 맛있는 걸 먹어야지, 숙소도 좀 편한 곳으로 잡아야지,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며
괜히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짤그랑 소리가 날 때마다 이 도시가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작은 증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래를 이끄는 친구들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동전이 떨어져도 고개를 숙여 확인하지 않았고, 지폐가 접혀 들어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눈을 감고 노래를 이어갔고, 박자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호흡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기타 케이스는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기뻤던 건 돈 때문이 아니라 ‘도시가 우리를 인정해 주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걸.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노래가 필요해서, 지금 이 순간을 나누고 싶어서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게 했던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기타를 치며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한 여자가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우리 쪽에 쏠려 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몇 개의 동전만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때였다.
우리 노래가 잠시 쉬는 틈에
형제 중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기타 케이스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방금까지 노래하며 모은 동전과 지폐를
망설임 없이 그녀의 기타 케이스 안에 쏟아 넣었다.
짤그랑—
조금 전까지 내 마음을 들뜨게 하던 소리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울림으로 퍼졌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마치 그 돈이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는 케이스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다시 원 안으로 몸을 기울였다.
기쁨의 방향이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조용히 무너졌다가
다시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친구들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던 이유.
우리가 모으고 있었던 건 돈이 아니라 흐름이었구나.
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
숲에서 배운 나눔은 도시 한복판에서도
조용히 실천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조금 전까지 품고 있던 계산적인 기쁨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연주가 끝난 뒤 우리는 악기를 정리하고 거리의 소음 속으로 천천히 흩어질 줄 알았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가서 저녁을 먹을까 고민하던 순간 몇몇 친구들이 근처 식당 야외 테이블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위에 놓여 있던 와인 병과 빵 바구니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집어 들고 왔다.
사람들이 자리를 뜨고 난 뒤였다.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접시 위에는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거의 손대지 않은 빵을 챙겼고, 누군가는 반쯤 남은 와인을 병째로 들고 왔다.
접시 가장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던 감자와 샐러드, 치즈와 과일, 고기까지도 휴지로 대충 정리한 뒤
자신들의 접시에 옮겨 담았다. 그들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 버리기 위해 남겨둔 것을 조용히 다시 생명 쪽으로 돌려놓는 의식처럼.
나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이 장면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지는 않은지.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한 형제가 가로등 그림자 쪽에 쪼그려 앉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게 아닌가.
뚜껑이 덜컹 열리는 소리와 함께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도시의 환한 불빛 아래에서 그 장면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도시의 규칙과 체면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 손으로는 뚜껑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안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환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손에는 아직 포장도 뜯기지 않은 샌드위치 하나와
멀쩡해 보이는 과일 몇 개가 들려 있었다.
“이거 정말 괜찮아.”
그가 말하며 원 쪽으로 걸어왔다.
그 표정에는 부끄러움도, 몰래 했다는 긴장도 없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순수한 기쁨만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복잡했지만 동시에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더니 정말 순식간에 다시 나타났다.
각자의 손에는 무언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누군가는 와인 병을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은 빵을 안고 왔다.
과일과 치즈가 담긴 용기, 거의 손대지 않은 샐러드, 그리고 한 형제의 손에는
약간 시들었지만 여전히 향이 남아 있는 근사한 꽃다발까지 들려 있었다.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가서 다시 원을 만들었다. 원 안에는 음식이 가득 채워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와인이 돌고, 빵이 찢어지고, 누군가는 꽃을 가운데에 세워두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서 ‘저녁 식사’라는 이름으로 놓여 있다가,
이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버릴 뻔한 음식들이
지금은 구출되어 우리 원 한가운데서 전혀 다른 의미로 빛나고 있었다.
접시의 장식이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
버려질 운명이었던 것들이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와 웃음과 노래 속에서 나눠지는 장면을 보며
나는 묘한 울림을 느꼈다.
이건 단순히 공짜 음식을 먹는 일이 아니었다.
이건 ‘쓸모없음’이라고 판단된 것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일이었고, ‘끝’이라고 정해진 것에
다른 결말을 주는 일이었다.
가로등 아래에서 그 음식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환대가 되었고
우리는 그 환대 안에서 도시 한복판에 또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다.
꽃은 조금 시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더 진짜 같았다.
버려질 뻔한 것들이 다시 한번 사람들 사이에 놓이고 웃음과 노래와 함께 소비되는 순간, 그것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선물이 되었다.
당연히 나는 도시에서 잘 곳과 먹을 것을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자, 숲과 도시에서의 삶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들은 일부러 소비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었다.
그저 불필요하게 소비되고, 낭비될 뻔한 것들을 버리지 않고 잘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다. 도시를 다시 둘러보니 너무나도 많은 것이 허공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마트에서는 유통기한이 몇 분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버려지고 있었다. 먹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 그저 ‘버려진 것’이 된 순간이었다.
그들은 오늘 밤 버스킹으로 모인 기타 케이스 안의 돈만으로도 충분히 한 끼 정도의 식사는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아진 동전과 지폐를 옆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인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고, 버려질 뻔한 음식을 구하러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충분함보다 필요한 곳에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듯, 그들의 행동에는 계산이나 욕심이 없었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숲에서 배운 나눔과 순환이 도시 한복판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를 넘어서, 쓰임과 가치, 그리고 인간 사이의 연결이 이 작은 행동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가 모은 음식들을 한데 모아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앉았다.
짧게 기도를 올리고, 손을 맞대며 다 같이 옴(ॐ) 진동을 내고, 천천히, 오래도록 식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와인 한 잔에 몸이 살짝 알딸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숲에서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별들은 도시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도 우리가 만든 원 안의 빛과 소리, 웃음과 나눔이
그 어떤 별보다 반짝이는 듯 느껴졌다.
음식과 와인, 그리고 나눔의 기쁨이 도시의 회색 위로 조용히 퍼져 나갔다.
나는 숲에서 배운 시간과 공간, 순환과 연결의 감각이 도시 한복판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날 밤, 도시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깨끗한 침대 시트 위에서 눕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대신 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여정을 조금 더 오래 즐기고 싶어졌다. 그 작은 원 안에서 나눴던 웃음과 노래, 음식과 와인, 그리고 온기까지 모두 마음속에 담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편안함과 안락함보다 함께한 순간의 생생한 체험과 연결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다음날 혼자 맞이하는 아침보다 이들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이 기다려졌다. 어떤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일어나는 일들은 마치 무지개처럼 순간순간 색을 바꾸며 펼쳐졌다.
예상치 못한 만남, 뜻밖의 웃음, 버려질 뻔한 음식이 다시 생명을 얻는 순간,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서 피어난 작은 축제.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어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빛을 만들었다. 나는 그 무지개의 색 속에서 숲과 도시, 사람과 사람, 과거와 지금이 함께 흐르는 신비로운 순간을 느꼈다. 그날의 모든 일들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그저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의 흐름에 나를 다시 한번 맡겨 보고 싶어졌다.
나를 맡기고 믿을수록, 우주는 더 좋은 장면을 슬며시 펼쳐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세상은 사랑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너 자신을 믿어봐.'
'그리고 맡겨봐.'
나를 지켜주는 천사들이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그날 밤, 나는 숙소를 구하는 대신 친구의 봉고차에 몸을 구겨 넣고 잠이 들었다.
도시를 떠나 깜깜한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블루마운틴이었다.
새벽에 눈을 떠 봉고차 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아침은 경이로웠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내가 이곳에 서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 어느 숙소보다 멋진 자리에서 맞이하는 아침.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숨.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고,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나를 환히 비추던 그 아침,
나는 눈부신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한참을 서 있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내가 세운 계획보다 더 정교한 계획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주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랫동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호주에서의 이 여정이 단순한 여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당신의 뜻 안에서 내가 가장 나답게,
그리고 가장 잘 쓰일 수 있기를.
태양은 점점 더 높이 떠올랐고 나는 그 빛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니 친구들은 이미 모닥불 옆에서 커피를 끓이며
아침 식사를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 마트 앞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린 셀러리와 당근, 토마토를 정성스레 썰어
따뜻한 야채수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어제 먹다 남은 빵과 치즈, 그리고 근처 친구들이 농가에서 일을 돕고 받은 유기농 달걀까지 더해져 넉넉하고 푸짐한 아침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작은 봉고차 안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식기들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고, 숲에 흩어져 있던 나무들로 작은 모닥불을 피우자 그곳은 금세 근사한 주방이 되었다.
버려졌던 음식이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쳐 다시 살아나 기도와 함께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생명의 순환 앞에서 감사와 놀라움이 동시에 밀려왔고,
그 따뜻함은 배를 넘어 내 영혼 깊은 곳까지 조용히, 오래도록 데워주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살고 싶은지 점점 더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더 단순하게,
더 가볍게.
더 적게 소유하고, 더 깊이 누리며.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온전히 존재하는 삶.
버려진 것에서도 풍요를 발견할 수 있는 눈,
계획하지 않아도 흐름을 신뢰할 수 있는 마음,
어디에 있든 나 자신으로 충분한 상태.
나는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하루의 아침을 경이로움으로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원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내가 가진 전 재산을
기꺼이 나에게 잠자리를 내어주고 먹을 것을 나누어 준 친구에게 건넸다.
그 돈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하찮은 액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무언가를 잃는 사람이 아니라
비로소 순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받기만 했던 시간이 흐름이 되어 다시 흘러가는 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텅 빈 통장이 아니라 가벼워진 마음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알고 있었다.
비워야 다시 채워진다는 것을.
다시 0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