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고 돌아. Nowhere, Now here.
| 숨이 쉬어지다.
한국에서 여러 번 열흘간의 침묵 명상 코스에 참여했지만, 그때마다 몸의 통증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과거의 생각에 쉽게 사로잡혔고, 집중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일은 마치 작은 고행처럼 느껴지곤 했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쑤시고,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그런데 호주에서의 코스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종이 울리기 전까지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것 같은 날들이 여러 번 있었다. 어떤 날은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숨은 깊고 고르게 이어졌고, 몸 안의 긴장도 느슨해졌다.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과거에는 후회와 아쉬움이 꼬리를 물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이어지며 생각의 늪에 빠지기 일쑤였지만, 이번에는 호흡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필요 없을 만큼, 몸이 스스로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애써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고, 붙잡지 않아도 되었고, 밀어내지 않아도 되었다.
숨이 저절로 깊어지자, 그 공간에는 단지 그날 모인 사람들의 마음만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오랜 시간 동안 센터를 위해 묵묵히 봉사해온 사람들, 말없이 부엌을 지키고 조용히 마당을 쓸며 수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 마음을 닦아온 이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축적된 어떤 결이 있었다. 아마 특별한 기운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반복된 안정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고요해지고, 또 한 사람이 고요해지고, 그 고요가 사라지지 않은 채 공간에 스며들어 남는 것.수천 번의 호흡, 수천 시간의 침묵, 수많은 다짐과 내려놓음이 보이지 않는 층을 이루며, 그 자리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던 것일까. 몸이 먼저 긴장을 풀고, 마음이 먼저 낮아졌던 이유는, 나 혼자의 수행이 깊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깊어진 장(場) 위에 잠시 올라앉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흐름 안에서 그저 한 사람의 호흡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나를 가볍게 했다.
숨 막히던 시절
문득 학창 시절의 집 안 풍경이 떠올랐다. 아빠의 목소리, 감정이 조절되지 않은 채 집 안을 가득 메우던 공기,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던 시간들. 집은 쉬는 공간이 아니라, 항상 긴장하고 얕은 숨을 내뱉으며 살아야 하는 공간이었다. 단 한 번도 완전히 몸을 내려놓고 편안하다고 느껴본 적 없는 어린 시절.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숨은 얕았으며, 마음은 바깥의 기류를 먼저 살폈다. 아빠가 불쑥 방문을 열 때마다 공부하는 척하며 긴장했고, 성적표를 들고 들어가던 날 현관 앞에서 얼어붙어 서 있었다. 집안의 물건들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던 아빠의 모습, 옆에서 울며 말리던 엄마의 모습까지 스쳐 지나갔다.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잔잔하던 마음은 일렁이며 흙탕물처럼 변했다. 그 기억 속 어린 나이가 문득 가엾게 느껴졌다. 편안함을 모르고, 두려움 속에서도 두렵지 않은 척 버텨야 했던 시간들.
그때의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막혀 있던 이유가, 지금 겪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갑상선 기능 저하, 만성 비염과 같은 작고 큰 고통의 원인이었음을 순식간에 이해하게 되었다.
가짜 자아,가짜 평화
겉으로는 잘 지내는 가족처럼 살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자기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그래서였을까. 호주 명상센터에서 처음으로 깊게 숨이 내려앉았던 순간은, 단순한 수행 체험이 아니라, 어쩌면 생애 처음 경험한 ‘안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가벼웠던 이유, 숨이 저절로 깊어졌던 이유, 시간이 사라졌던 이유는,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내 안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빠를 내 안에서 증오했다. 내 부모이기에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기 힘들었다. 오랜 시간 나 자신과 싸우며 아빠와도 갈등이 좁혀지지 않았다. 잘 지내려 하면 잠시 가짜 평화가 찾아왔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전쟁은 반복되었다.
부모를 거대한 존재로 바라보며 모든 말이 다 옳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머리가 커질수록 이해되지 않는 것이 투성이었고, 이해를 받아야만 수긍할 수 있는 나는 그럴 때마다 반발했다. 아빠는 더 큰 소리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윽박질렀다.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 없었고, 공감받거나 이해받은 적도 없었다. 내 의견은 무시되었고, 내 존재도 무시되었다. 개성이 뚜렷한 아이였지만, 부모는 평범하기를 강요했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 부모가 원하는 딸이 되기를 원했다. K-장녀로서 기대와 욕심은 컸고, 아빠는 통제적인 성향으로 착한 딸이 되길 원했다. 나는 점점 반발심이 커져갔다.
아빠의 입버릇 같은 말, “세상은 원래 그래.” 어린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지만, 왜 싫은지 설명할 힘도, 반박할 힘도 없었다. 그저 답답하고 숨이 막혔을 뿐이었다.
내가 대들면 아빠는 늘 말하곤 했다.
“내 집에서 나가.”
아빠 말을 듣지 않으면 용돈을 주지 않거나, 사준 선물을 도로 빼앗아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나는 점점 더 치열하게 버티며 살아야 했다. 용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새벽에는 몰래 우유 배달을 하고, 전단지를 돌리는 알바까지 하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나는 늘 마음속으로 가출을 꿈꾸었지만, 실제로는 두려움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고,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집을 떠나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성인이 되면 반드시 집을 벗어나 가장 멀리 떠나겠다는 꿈을 마음속에 새겼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알바를 하며 모아둔 돈으로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출발 일주일 전, 마치 통보하듯 아빠에게 내 결심을 전했고, 그렇게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집만 떠나면 행복하고, 돌아오면 아팠던 그 시절의 나와 달리, 집이 아닌 곳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내가 여기 있었다.
나는 자유를 쫓아 떠났지만, 어쩌면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자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간절히 바랐던 것은,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 다시 말해 마음의 평화였던 것 같다.
침묵 명상이 끝나자 눈물이 솟구쳤다. 누가 건드린 것도, 특별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침묵이 끝났을 뿐인데,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졌다. 열흘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시간보다, 살아오면서 참아온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억울해도 참았고, 화가 나도 눌렀고, 슬퍼도 웃었으며, 부당해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아빠의 “세상은 원래 그래.”라는 말처럼, 나도 모르게 체념을 학습했다.
하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말 대신 감각이 커졌다. 심장 박동이 들리고, 호흡이 들리고, 미세한 긴장이 느껴졌다. 생각으로는 자유를 외쳤지만, 몸은 늘 긴장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교감신경은 켜져 있었고, 집에서도 단 한번도 내 영혼이 쉬어본 적이 없었다.
침묵은 그 긴장을 잠시 내려놓게 했고, 안전함을 느낀 순간, 몸은 오래 저장해두었던 감정을 꺼냈다.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해제였다.
열흘의 침묵보다 삼십 년의 억압이 더 무거웠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사실은 내 안에 굳어 있던 ‘참아야 한다’는 신념을 깨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 그렇지 않다. 나는 원래 무덤덤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오래 참아온 사람일 뿐이었다.
다 떠나간 자리에 홀로 앉아, 세상 잃은 아이처럼 한참을 꺽꺽 울었다. 그 자리에서 예전의 나를 흘려보냈다. 더 이상 감정을 숨기거나 가면을 쓰며 가식적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안의 얽혀 있던 감정과 생각들이 서서히 풀리면서, 몸과 마음이 하나로 정렬되었다.
단순히 편안해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내 깊은 중심에 진실이 자리 잡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었다.
숨이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마음이 조용해지면서, 내 존재 자체가 명료해졌다.
그 명료함 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원래는 가까이 오기만 해도 긴장하거나 방어하던 사람들과 사건들이, 어느 순간 나를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이었다. 말없이 마주한 시선, 작은 몸짓, 우연히 마주친 순간들—모두가 내 안에서 이미 준비된 듯, 내 쪽으로 끌려오는 힘을 느꼈다.
마치 내 진실한 호흡과 마음의 리듬이 공간에 흔적을 남기고, 그것이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 세상과 공명하는 느낌이었다. 거짓이나 억지, 꾸며진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가 드러날수록 사람들과 상황, 기회가 내 앞에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내가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세상과 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지는 듯했다.
그 힘은 은밀하지만 단단했다. 강제로 만들거나 바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진실한 자신으로 서 있을 뿐인데, 이미 충분히 충분히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마음의 평화와 몸의 정렬이 이끌어낸 자연스러운 공명, 그 속에서 나는 알았다.
진실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세상과 연결되고,
삶이 나를 향해 열리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라는 것을.
|레인보우게더링 초대장
크리슈나 요가 빌리지에서 우프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가정집에 머물며 지내던 시간은 충분히 따뜻했지만, 어느 순간 조금 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 보고 싶어졌다. 더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그렇게 찾던 중에 그곳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는 혈기 왕성한 젊은 여행자들이 모여 있었다. 인종도, 언어도, 살아온 방식도 제각각이었지만, 묘하게 하나의 흐름 안에 놓여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텐트를 치고 숲 가장자리에 뿌리내린 친구들, 봉고차나 오래된 버스를 각자의 취향에 맞게 개조해 작은 집처럼 꾸며 살아가는 친구들. 최소한의 공간 안에서 최소한을 소비하며, 그러나 결코 왜소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 시간 여행자로 살아온 그들은 소비보다는 생산을, 축적보다는 창조를 선택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망치와 톱을 들고 나무를 다듬고, 흙을 고르고, 천을 꿰매며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어내는 모습은 마치 연금술사 같았다.
그러나 그곳의 모든 이가 자유로워 보였던 것은 아니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익숙해진 삶을 버티듯 이어가는 친구들도 있었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각자가 풀어야 할 인생의 숙제는 서로 달라 보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몫의 질문을 안고 이 여행길에 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무리를 지어 다니는 친구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다음 행선지를 이야기하며 분주했다. 웃음과 농담이 끊이지 않았고, 활기와 소음이 뒤섞여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그들 사이에서 적당히 사교적인 말을 건네며 자연스럽게 스며들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무렵의 나는 점점 그런 마음이 옅어지고 있었다. 남들과 잘 지내는 것보다, 내 자신과 잘 지내고 싶어졌다. 말을 더 하려고 하기 보다 덜 하면서 불필요한 말을 적게 하며 사는게 조금 진실에 가깝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섞이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그 고요한 자리를 지키고 싶어졌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친구가 있었다. 첫인상부터 묘하게 마음이 갔다. 말이 거의 없고 조용했지만 존재감이 흐리지 않았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도, 늘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고 있는 듯한 사람. 그는 자주 누군가를 돕고 있었고,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과장된 친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다정함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아침, 땀을 흘리며 삽질을 하고 모종을 심고 있을 때였다. 흙을 뒤집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그가 조용히 다가왔다.
“뭐 도와줄 거 있어?”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에는 힘을 과시하지 않는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있어 긴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고작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서 전해지는 따뜻하고 섬세한 에너지를 느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곁에 있으면 마음이 낮게 가라앉는 안정감 같은 것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의 다음 일정을 물었다. 나는 위빠사나 명상 센터로 갈 예정이라고 했고, 그는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이어갈 계획이라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다음 달에 10일간의 침묵 명상 코스를 신청해 두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Rainbow Gathering에 갈 생각이라고 했다.
“그게 뭐야?” 내가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듯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짧게 말했다.
“사람들이 숲에 모여서… 그냥 함께 사는 거야.”
나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냥? 그게 다야?”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돈 없이. 서로 나누면서. 누구도 주인이 아니고, 누구도 손님이 아닌 곳.”
그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과장도, 설득도 없었다. 그저 다시 흙을 고르고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 돈 없이 주인도 손님도 없이.'
그 말은 마치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정확한 언어를 찾지 못했던 어떤 감각을 건드리는 듯했다. 나는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러나 분명히 흔들린 채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도 한동안, 그가 무심히 던진 말은 내 안에서 조용히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짧은 대화가 훗날 내 삶의 방향을 조금 비틀어 놓을 씨앗이 되리라는 것을.
“You should come. You will enjoy.”
그가 덧붙이듯 말했다.
순간, 마음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볍게 두드려진 문처럼 안쪽에서 작은 울림이 번졌다.
“어디서 하는데? 어떻게 가?”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기대하며 물었다. 그는 지명을 말해주었지만,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지도 위의 점 하나처럼 막연했고, 현실감 없이 먼 곳처럼 느껴졌다. 그는 필요한 만큼만 설명하고는, 이미 할 말을 다 한 사람처럼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더 설득하지도, 더 붙잡지도 않았다.
삽질을 계속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서성였다. 일을 하고 있어 더 묻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끝나고 다시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어떻게 가는지, 언제 출발하는지, 나도 갈 수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그를 다시는 마주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그를 찾고 있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고개를 들 때마다, 밭에서 물을 주며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저녁 모임 자리에서 사람들 사이를 훑어볼 때마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짧고 강렬한 인상만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의 부재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또렷했다.
그리고 나 역시 다시 길을 떠났다. 위빠사나 명상 센터로, 또 다른 장소로, 또 다른 만남 속으로. 이동하는 몸과 달리, 그의 말은 내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그 만남은 누군가를 오래 곁에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남기기보다, 방향을 남기는 만남.
레인보우 게더링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무지개 같았다. 붙잡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나를 향해 무언가를 건네고 간 존재.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한 번 본 사람의 시야를 바꾸어 놓는 색의 띠처럼.
그의 말은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You should come.”
처음에는 어떤 장소에 대한 초대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의미로 번져갔다. 그것은 어쩌면 특정한 숲이나 모임이 아니라,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향한 초대였는지도 모른다.
조금 덜 설명하고, 조금 덜 증명하고,
조금 더 믿고, 조금 더 흘러가 보는 삶.
“You should come.”
그 말은 점점 바깥의 어딘가가 아니라,
내 안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말은 장소에 대한 초대가 아니라,
조금 더 자유로운 나 자신을 향한 초대였던 것 같다.
Magic day
나는 위빠사나 명상 센터에서 봉사를 하며, 매일 나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새벽 네 시에 눈을 뜨면 밤 열 시가 되어서야 하루가 끝났고, 그 사이의 시간은 쉴 틈 없이 흘러갔다. 몸은 계속 움직였고, 아무리 긴박하고 다급한 순간이라도 얼굴에는 침착함을 얹어야 했다. 상냥하고 차분한 영어로 말해야 했고, 감정은 늘 한 발 물러서 있어야 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였고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숙련된 장기 봉사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차분하고 침착하며 고요한 에너지가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를 원했다.
머리가 멈춰버린 날이면 영어로 적힌 레시피를 한참 들여다보고도 단 한 줄이 들어오지 않았다. 말은 자꾸 더듬어졌고, 상대의 문장은 귀에 닿기도 전에 흩어졌다. 센터에서 생활이 두달이 가까워지자 간절하게 쉬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고 싶을 때까지 깊이 잠들고 뒹굴 뒹굴 하며 보내는 시간이 그리워졌다.
봉사를 마치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들고 바다로 가서 모래밭 위에 누워 하루 종일 햇빛을 쬐며, 아무 생각 없이 파도 소리만 듣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간절해졌다.
' 아 쉬고 싶다.'
호주에 와서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쉼이 필요했다. 그때 문득, 레인보우 게더링이 다시 떠올랐다. 숲속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모여 사는 사람들, 불을 피우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지내는 장면이 팍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심장이 쿵쾅 거렸다.
어떻게든 그곳에 갈 방법이 없을까, 머릿속으로 여러 길을 그려보았다.
누군가 불쑥 나타나 나를 데려가 주면 좋겠다고, 반쯤은 농담처럼 상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헉.”
.
.
.
짧은 숨이 튀어나왔다.
나에게 레인보우 게더링 초대장을 건냈던 그가 열흘간의 침묵 수행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서로 다른 여행길에 올라서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그를 우연히 여기서 만나다니! 그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방실방실, 반가움과 놀라움과 기쁨이 한꺼번에 올라와 얼굴에 그대로 번졌다.
짧은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도 그는 다시 말했다. 레인보우 게더링에 같이 가자고.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열흘 후에 꼭 다시 보자.”
그 말이 그렇게 무거운 약속이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수련생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그는 열흘간의 깊은 수행 속으로 들어갔다. 남녀는 철저히 분리되었고, 우리는 서로 말을 할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 머물고 있었다.
코스마다 중도 포기자가 있었다. 말없이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러가지 이유들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 그가 포기하고 떠난다면,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연락처도 없었고, 길 위를 사는 그를 다시 찾는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에게도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바랐다. 그가 끝까지 이겨내기를.
하지만 집착하지 않으려 애썼다. 흐름에 맡기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명상홀이었다. 하루 세 번, 전체 수련생과 봉사자가 함께 앉는 그 공간에서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존재의 안도를 느꼈다.
‘잘 버티고 있구나.’
‘나도 여기 있어.’
말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안부를 건내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걱정하던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았다.
몸은 점점 지쳐갔고, 마음은 날카로워졌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호주 남자,
빈둥거리며 큰 소리로 웃으며 시끄러운 스리랑카 여자,
자기 일을 미루고 게으름 피우며 부탁만 하는 인도 아저씨,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면서 주방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우크라이나 여자.
다양한 국적에 다양한 봉사자로 구성 되어 있는 특별함이 어느 순간 전부 거슬리기 시작했다. 폭발 직전의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고 점점 봉사의 즐거움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같이 의지하며 봉사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고, 경험이 부족한 새로운 봉사자들이 들어오자, 모든 것이 처음으로 되돌아간 듯 다시 시작되었다. 익숙했던 호흡은 흐트러졌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던 눈빛 대신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이미 여러번 지나왔다고 생각했던 혼란과 시행착오가 다시 찾아왔고, 겨우 자리 잡았다고 믿었던 마음도 함께 리셋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부러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당장이라도 터뜨리고 싶었지만, 그것을 억지로 아래로 눌러 담듯 가라앉히려 애썼다. 내가 내뱉는 말과 손끝의 몸짓에 여전히 사랑이 담겨 있는지, 혹시 날 선 기운이 스며들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몇 번이고 점검했다.
쉽지 않았다. 정말로 쉽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올라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소리라도 한 번 꽥 지르고 돌아오고 싶을 만큼, 가슴은 단단한 돌로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숨은 쉬고 있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거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여기 있어야 하나.’
‘이런 마음으로 봉사하는 게 무슨 의미지.’
‘나도 못 돕는 내가 남을 돕는다고.’
나는 떠날 이유를 셀 수 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조금 더 머물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에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금은 여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하루를 붙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은 여전히 주방에 서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담장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봉사에 쏟아지던 집중은 조금씩 흐려졌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다른 장면을 상상했다. 숲길, 바다, 낯선 길 위의 풍경들. 손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에 있으면서도, 이미 떠나 있는 사람처럼.
지금 이곳에 마음이 머무는 힘이 무너져 버린 것이였다.
그런데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내가 한 말 앞에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흘 후에 꼭 다시 만나자고 해놓고, 내가 먼저 도망쳐버린다면? 언젠가 그를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분명 변명부터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변명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물론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면 떠나는 게 맞았겠지만, 그보다 더 컸던 것은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버텼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버티고 싶어졌다. 레인보우 게더링도, 그리고 그도 궁금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알수 없는 그 무언가를 경험하고 싶어졌다.
너무 힘든 날이면 지도 법사님과 봉사자들에게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고, 하루 종일 말없이 침묵 속에 머물렀다. 일부러라도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마음이 나를 앞질러 폭주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쌓인 찌꺼기를 하나씩 쓸어내리듯, 계속해서 호흡으로 돌아왔다. 숨을 조금 더 깊게 들이마시고, 조금 더 길게 내쉬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전에, 그 흐름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붙잡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줄이 바로 호흡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었다.
생각을 이기려 하기보다, 생각을 쫓아가지 않는 법.
그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 위에 머무는 법.
여러 차례 코스 봉사를 하며 만났던 경험 많은 봉사자들의 모습도 자주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을 해치지 않으면서 봉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감정이 요동칠 때는 잠시 물러나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배웠다. 봉사는 나를 소모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태도 위에서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시간을 지나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스승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를 괴롭히는 생각을 내려놓고 숨에만 집중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고요가 찾아오면 작은 영감이 떠오르고, 가슴 어딘가에서 다시 따뜻함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잠잠해지자 불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내가 붙잡고 있던 일을 슬며시 놓아보니, 주방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각자의 몫을 배우며 해내고 있었고, 나는 혼자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빈자리를 기꺼이 채워준 이들에게 감사함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미 떠난 이전 봉사자들과 자꾸만 비교하는 내 마음,
“그때는 이렇게 척척 맞았는데” 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던 습관,
‘내가 해야만 한다’는 집착과
‘이제는 떠나고 싶다’는 갈망.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이 마음들이, 사실은 가장 큰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새로 온 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이미 떠난 이들의 능숙함과 호흡을 기준 삼아 재고 있던 나.
남들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머무는 마음과 미래로 달려가려는 마음 사이에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한 내가
스스로를 조금씩 소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친 나를 어르고 달래며 버틴 열흘의 봉사는 이전보다 훨씬 짜고, 훨씬 달았다. 혀끝에 남는 맛처럼 감정도 오래 맴돌았다. 힘들었기에 더 또렷했고, 도망치지 않았기에 더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닳고, 또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코스 봉사가 끝나는 날, 분주하던 공간에 잠시 내려앉은 고요 속에서 문득 알게 되었다.
단 한 번도 같은 날은 없었다.
단 한 번도 같은 봉사는 없었다.
비슷해 보이던 하루도, 익숙해 보이던 관계도, 같은 얼굴로 반복되는 감정조차도 모두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고정된 것은 없다는 것.
힘듦도, 분노도, 관계도,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
그 진리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닫게 하기 위해, 나는 이 시간 속을 지나온 것만 같았다.
생각으로는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지만, 실제로 붙잡고 있던 것을 놓아보고, 버티고 싶지 않은 순간을 통과해보고, 떠나고 싶은 마음과 머물러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려본 뒤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내 피부와 숨과 심장으로 새기게 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열흘은 무언가 극적인 사건이 있어서 특별했던 날이 아니었다. 대신, 변해가는 모든 것 한가운데에서 도망치지 않고 앉아 있었던 나를 발견한 날이었다.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고 그저 견디며 바라보는 힘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체감한 날.
그래서 그날은 단순한 Magic Day가 아니었다.
나에게 magic patience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조용하지만 분명히 빛나던 특별한 기적같은 날들이였다.
고요 위에서 내린 선택
드디어 열흘이 지났다. 침묵이 해제되고 마음의 고통도 해방된 듯 가벼워졌다.
잘 버텨준 나 자신이 대견하고, 무엇보다도 고마웠다.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나를, 이제는 조금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해준 그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시간을 통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아무 계획이 없었다.
침묵이 해제되고 퇴소하는 아침, 오랜만에 웃음과 말소리가 식당을 채웠다.
많은 친구들이 다가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
자기 집에 머물러도 된다며 초대하는 친구들,
근처 산에 하이킹을 가자고 손을 내미는 친구들,
서핑을 하러 바다로 가자며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들.
모두 매력적인 제안이었고, 그들의 호의는 따뜻했지만, 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직 완전히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방 청소를 마치고 오전 명상을 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급하게 선택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난 열흘이 때로는 지옥처럼 답답했지만, 동시에 깊고 고요한 시간이었기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이 평화로운 공기를 조금 더 가슴에 저장해두고 싶었다. 때가 되었을 때, 차분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또한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은 마지막 날 아침 식사가 끝나면 짐을 재빨리 싸고 떠난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열흘 내내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면,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한 채 먼저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장면을 미리 그려두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떠난다면,
실망하지 말자.
아쉬워하지 말자.
그 또한 그의 길일 뿐이라고, 미리 알게 되어 고맙다고 생각하자.
그가 먼저 다가온다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수고했어.”
“잘 이겨낸 네가 자랑스러워.”
그리고 다시 한번 제안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오케이” 하자.
언제나 인생은 내가 세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겪어왔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큰 그림만 그려두고,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장면들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기대와 실망, 만남과 이별, 성공과 어긋남까지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그때의 나를 상상해본다. 그래야 막상 그 순간이 왔을 때 감정에 휩쓸려 휘청이지 않고, 선택해야 할 자리에서 조금은 더 단단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그리고 어설픈 삽질 속에서 몸으로 배워왔다.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명상을 마치고, 방을 청소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짐 정리까지 모두 끝냈을 때—
그가 기적처럼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Hey.”
그리고는 내 티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Nice T-shirt.”
그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체 게바라(Che Guevara)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를 알아보고 건넨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풀어졌다. 아주 사소한 말이었지만, 열흘간의 침묵 뒤에 듣는 첫 문장으로는 충분히 다정했다.
그는 내가 이쯤 되면 정리가 끝났을 것 같아서 기다렸다고 했다. 친구들과 인사는 다 했는지도 물었다. 놀라울 만큼 섬세했다. 그의 말투와 눈빛, 그리고 나와의 거리까지도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레인보우 게더링 같이 갈래?”
“응.”
사실은 그가 다시 한 번 물어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도 스쳤다.
잠깐 본 남자를 믿고,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곳으로,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외진 장소로 가는 것이 괜찮은 걸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돌아오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면.
그래서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서두르지 않고, 그의 말과 행동, 눈빛과 태도를 가만히 관찰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강하게 끌렸다.
신뢰가 갔다.
믿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믿어도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내 직관을 믿고 싶었다.
고정된 계획도 없었고, 확실한 미래도 없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불안도 있었지만, 그 위에 더 넓은 고요가 깔려 있었다.
나는 그 고요 위에서 선택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여행을 떠났다.
I SEE YOU
열 시간이 훌쩍 넘는 긴 여정이었다. 비좁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앉아, 도로 위로 길게 이어지는 풍경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나누었다. 창밖으로는 황량한 들판과 낮게 깔린 하늘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고, 차 안에는 우리 셋의 숨과 말소리가 교차하며 묘한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의미 없는 수다로 공백을 채우지도 않았고, 억지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고, 말은 필요할 때만 조용히 놓였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4년째 ‘길 위의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제도권 학교를 벗어나 세상과 사람, 실패와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라고. 학창 시절에는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많은 나쁜 습관과 문제를 안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하나씩 끊어내기 위해 자신과 싸우는 중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사랑, 우정, 가족, 죽음.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는 주제들이었지만 그는 과장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스스로를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은 채 그저 있는 그대로 내어놓았다. 투명하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명상센터에서 그와 같은 방을 썼던 프랑스 친구 케니도 함께 길에 올랐다. 열흘간 눌려 있던 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처럼 그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혼자 흥분했다가, 혼자 화를 냈다가, 다시 방어하듯 웃어넘겼다.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오히려 진짜 속마음은 단단히 잠가둔 채였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렸고, 멀미까지 올라왔다. 몸은 점점 예민해졌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가 조용히 케니에게 말했다.
“잠깐만 조용히 가면 안 될까? 머리가 좀 아파서.”
내가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의 한마디에 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 케니도 더 말하지 않고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결국 몇 시간 만에 잠이 들었다.
케니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감정을 표현하는게 서툴고 거칠었지만 따뜻함도 동시에 느껴졌다.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스케이트보드를 꺼내 아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자신이 가진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서툴고 투박했지만, 나누려는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레인보우 게더링에 도착한 후 케니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숲은 넓었고, 사람들은 자유로웠으며, 누구도 누구를 붙잡지 않았다.
그는 4일 동안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지냈냐고 묻자, 동굴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그저 앉아 있고, 누워 있고, 생각하고, 비워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고 눈빛은 살아있었다.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나무를 모아 불을 지피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동굴에서 자기 자신과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온 사람처럼.
게더링으로 향하던 길에 그는 도시로 방향을 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를 잠깐 보고 가도 될까?”
“그럼, 물론이지.”
잘 정돈되고 깨끗한 집이었다.
그의 모습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단정함.
그래서 오히려 이해가 됐다.
왜 그가 길 위를 선택했는지.
그는 자유를 원했고,
그의 엄마는 그를 붙잡고 싶어 했다.
거렁뱅이처럼 여행하는 아들이 못마땅한 듯,
하나하나 챙기고 간섭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엄마와 어린 동생들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사랑해.”
다 큰 남자가 엄마와 나누는 포옹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그 따뜻함 아래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그가 애써 균형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를 위해 바나나 쉐이크를 직접 만들어 건넸고,
아무 준비 없이 떠나는 나를 위해 여분의 침낭까지 챙겨 나왔다.
그 세심함에 다시 한 번 마음이 놓였다.
차로 돌아오는 길, 케니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 둘이랑,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안 무서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니, 별로.”
이상하게도 겁이 나지 않았다.
걱정도 크게 들지 않았다.
‘난 느껴지거든.
너희 둘이 좋은 사람이라는 게.’
그건 근거 있는 확신이라기보다는
몸이 먼저 알아차린 감각에 가까웠다.
고정된 계획도, 확실한 미래도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세상에는 “원래 그런 사람”도 없고 “원래 안전한 길”도 없지만,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뢰가 우리를 다음 장면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다.
| WELCOME HOME
아스팔트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됐다. 내비게이션은 이미 몇 킬로 전부터 신호를 잃었다.
가로등도, 표지판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차는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핸드폰 배터리는 얼마 남지 않았고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친구는 날이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된다며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사방에서 나뭇가지들이 차를 긁어댔다. 바닥의 돌맹이들은 튀어 오르며 차체를 두드렸다.
빽빽한 숲은 금세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산짐승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여기가 맞나.’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은 꺼내고 싶지 않았다. 이 여행이 틀렸다는 증거를 내가 먼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친구를 믿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이 선택을 믿고 싶었다.
한참을 달리다 친구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저기 봐.”
나무 가지에 묶인 낡은 천 조각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다.”
표지판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천 한 장.
누군가는 그걸 보고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쓰레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안다. 저건 신호라는 걸.
“저거야.”
그 말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밀려왔다. 근거는 없지만, 이상하게 틀리지 않았다는 느낌.
레인보우로 가는 길에는 안내판이 없다. 대신 힌트가 있다. 나무에 묶인 천 조각, 돌 위에 올려진 작은 무지개 스티커, 누군가 일부러 꺾어둔 듯한 나뭇가지.
마치 비밀 조직의 암호를 해독하듯 우리는 표식들을 따라갔다. 지도 대신 감각을, 정보 대신 신뢰를 안고.
확신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이쪽일 것 같아”라는 직감이 우리를 밀어주었다.
길을 찾는 게 아니라, 길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정말 믿을 수 있겠니?
보이지 않아도 갈 수 있겠니?
표지판이 없어도 선택할 수 있겠니?
좁은 길을 한참 헤치고 나아가자 갑자기 숲이 열렸다. 숨이 트이듯 시야가 넓어졌다.
넓은 공터가 나왔다. 화려하게 칠해진 봉고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듯한 여행자들이 모닥불 주위에 앉아 채소를 다듬고 차를 끓이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숲을 가볍게 울렸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말 한마디 묻지 않고, 이름도 묻지 않고, 그냥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우리를 꽉 안았다.
“Welcome Home.”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
집이 아닌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처음 듣는 환영 인사.
그렇게 따뜻한 포옹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길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표지판 없이도 도착할 수 있다는 증명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 숲길을 달려온 게 아니라,
‘세상은 원래 그래’라는 말을 벗어나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함으로 부터 결별
친구는 오늘 밤 필요한 짐만 챙겨 가자고 했다.
막상 숲에 도착하니 무엇이 필요한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미 숲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져 있었고, 텐트를 치기엔 무리일 것 같다며 침낭만 가져가자고 했다.
숲에서는 전기도, 화학제품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핸드폰 배터리는 이미 간당간당한 상태였고, 충전할 방법도 없었다. 그동안 핸드폰을 카메라처럼 사용해왔기에 아쉬움이 컸지만, 친구는 게더링에서는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엄격하고 단호한 말투 앞에서 왜인지 묻지 못했다. 질문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가 현실을 마주하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를 챙기고 있는 어린 친구 앞에서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필요한 것만. 친구는 나에게 침낭 하나, 물병 하나, 손전등 대신 작은 헤드랜턴을 건내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차 안에 두고 가는 물건들이 갑자기 나를 지켜주던 안전장치처럼 느껴졌다. 여분의 옷, 세면도구, 보조 배터리, 카메라 역할을 하던 핸드폰.
손에 쥐고 있던 익숙한 세계를 하나씩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문명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이곳에서는 금지였다.
핸드폰 배터리는 빨간 불로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은 퍼센트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마치 그 숫자가 나의 안전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사진도 찍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눈앞에 펼쳐질 장면을 기록할 수 없다는 것.
증명할 수 없다는 것.
나중에 보여줄 수도, 자랑할 수도, 꺼내볼 수도 없다는 것.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경험하려는 게 아니라 ‘남기려’ 하고 있었다는 걸.
엄격한 친구의 말투 앞에서 규칙의 이유를 묻지 못했다. 왜 존재하는지, 누가 정했는지,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함은 있었지만, 확인하려는 마음보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컸다.
환상 속의 게더링은 자유롭고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숲은 차갑고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충전할 수 없는 배터리,
촬영할 수 없는 순간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두려움.
그런데도 친구는 침착했다.
이미 이 세계의 규칙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한 발, 한 발.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핸드폰 화면은 점점 의미를 잃었다.
결국 배터리가 꺼졌다. 화면이 까맣게 식어버렸다.
그 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미세하게 가벼워졌다.
연결이 끊겼다.
바깥 세계와 이어져 있던 마지막 실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이제 남은 건 어둠과, 내 숨소리와, 발밑의 흙 냄새뿐이었다.
기록할 수 없는 밤.
증명할 수 없는 경험.
설명할 수 없는 세계.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여기는 ‘보여주기 위한 삶’이 작동하지 않는 곳이라는 걸.
그리고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려고 살아왔다는 걸.
친구는 맨발로 거칠고 깜깜한 숲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 친구의 등이 이상하게도 단단해 보였다.
나는 그 등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발밑에서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가 너무 또렷해서 내 안의 생각 소리가 잠시 멈췄다.
어둠 속에서 시야는 좁아졌지만
감각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차가운 공기,
흙 냄새,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
깜깜한 숲길을 잔뜩 긴장한 채로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서 커다란 불빛이 일렁였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어둠에 적응한 눈이 만들어낸 환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낮게, 깊게, 땅을 통과해 몸으로 전해지는 소리였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발바닥과 갈비뼈로 느껴지는 진동.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숲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 불빛이 있는 방향만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둥— 둥— 둥—
일정하지도, 완벽하게 맞춰지지도 않은 박자.
그런데 이상하게 심장 박동과 겹쳐졌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소리는 “이쪽이야”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길이 보였다.
불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모닥불이라고 부르기엔 거대한, 살아 있는 존재 같았다.
불꽃은 밤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있었고
사람들의 실루엣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북을 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을 잡고 천천히 몸을 흔들고 있었다.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 웃음과 북소리, 그리고 나무 타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멀리서 잠시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숲은 낯설고 두려웠는데 지금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장소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이 불빛은 이렇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에 가까웠다.
불 앞에서는 나체로 춤을 추는 여인들이 있었고, 동물 가죽으로 몸의 일부만 가린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 주변에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북과 플루트, 기타와 이름 모를 타악기들이 뒤섞여 울려 퍼졌다.
마치 오래전 문명 이전의 축제가 눈앞에 펼쳐진 듯했다.
불빛은 몸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춤추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옷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 건 그들의 거리낌 없는 표정이었다. 부끄러움도 과시도 아닌, 그저 몸이 리듬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
누군가는 눈을 감고 돌았고, 누군가는 웃으며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 모습은 야하거나 자극적이라기보다, 낯설고도 원초적이었다.
나는 한 발 물러선 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축제 같기도 하고, 의식 같기도 한 공간.
문명에서 배운 ‘단정함’과는 다른 규칙이 작동하는 세계.
불은 더 크게 타올랐고, 북소리는 심장 박동처럼 둥둥 울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전혀 다른 시간대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KISS THE EARTH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처럼 그들을 바라보다가, 타오르는 불 옆에 조용히 몸을 눕혔다.
오랜 시간 차 안에서 구겨져 있던 몸을 대지 위에 펼쳤다. 딱딱할 줄 알았던 땅은 의외로 따뜻했다. 낮 동안 머금은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도시에서는 본 적 없는 밀도였다. 손톱만 한 달이 그 사이에 걸려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인공 조명 하나 없는 하늘은 깊고 투명했다.
불빛은 한쪽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달빛은 다른 쪽을 희미하게 감쌌다. 두 개의 빛 사이에 내가 누워 있었다.
조금 전까지 북소리와 웃음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멀어지듯 흐릿해졌다. 몸은 여전히 그들 곁에 있었지만, 마음은 어딘가 떠 있는 느낌이었다.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은 외로움과는 조금 달랐다. 낯설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편안했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자리.
나는 흙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차 안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냄새였다.
인공적인 향 대신 나무와 풀, 연기의 향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늘 어딘가에 속하려고 애쓰느라
이렇게 그냥 누워 있는 법을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달은 조용히 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숨을 쉬고 있었다.
처음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다.
내 시선은 자꾸만 함께 온 친구를 따라갔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듯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다시 타오르는 모닥불로, 그리고 그 위의 하늘로 옮겨가고 있었다.
불은 쉬지 않고 타올랐고, 하늘은 묵묵히 열려 있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었다.
오늘 밤은 텐트도, 매트도 없이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무언가를 깔고 나를 분리시키지 않고, 그대로.
처음으로 아무것도 깔지 않은 대지 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등을 대자 흙의 단단함이 곧장 전해졌다.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체온이 섞이며 경계가 흐려졌다.
몸이 땅에 닿아 있는지, 땅이 나를 받치고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면 흙 냄새와 연기 냄새가 함께 들어왔다.
내 몸도 그 냄새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늘 바닥 위에 또 다른 바닥을 깔고 살아왔다는 것.
안전과 위생과 구분을 위해,
나와 자연 사이에 얇은 막을 한 겹씩 덧대어왔다는 것.
그 밤, 나는 그 막을 잠시 내려놓았다.
지구와 내 몸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고.
대지에 얼굴을 가까이 묻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존재에게
뒤늦게 안부를 묻듯.
지구 엄마와 깊은 키스를 나누며 잠든 밤이었다.
그건 낭만이라기보다 안도에 가까웠다.
불은 밤새도록 타올랐다.
한때 둥둥 울리던 북소리는 어느새 잦아들었고, 모닥불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웃음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 불 타는 소리만 남았다.
나는 그날 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깨를 맞댄 채 누워 있었다.
이름도 제대로 묻지 못한 사이였지만, 서로의 체온이 이불처럼 느껴졌다.
낯선 사람의 팔이 내 팔에 닿아 있었고, 누군가의 숨결이 가까이에서 고르게 오르내렸다.
이상하게도 경계심은 들지 않았다.
그저 따뜻했다.
모닥불의 열기와 사람들의 체온 사이에서 나는 깊이 잠들었다.
눈을 뜨자 하늘은 이미 옅은 푸른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른 새벽의 숲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밤새 머금었던 열기가 빠져나간 자리로 서늘함이 스며들었다.
숨을 들이마시자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몸을 조금 더 웅크리자 옆에 누워 있던 누군가가 무의식적으로 더 가까이 붙었다.
불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채, 붉은 재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 대신 잔잔한 온기만 남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밤새 아무것도 깔지 않고 누워 있었는데도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딱딱할 거라 예상했던 땅은, 오히려 나를 단단히 붙잡아 준 느낌이었다.
명상센터에서 매일 이른 아침,
주방에 늦지 않으려고 알람 소리에 맞춰 벌떡 일어나던 날들과는 전혀 다른 시작이었다.
종소리나 알람이 나를 깨우는 대신,공기의 온도와 빛의 변화가 천천히 몸을 깨웠다.
긴장으로 하루를 여는 아침이 아니라,숨으로 하루가 열리는 아침.
그저 새벽의 숲과, 천천히 깨어나는 사람들과, 아직 따뜻한 재의 숨결.
나는 조용히 앉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멍하니 불씨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말이 오가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
하나둘씩 사람들이 다시 불 앞으로 모여들었다.
어젯밤의 열광과는 다른, 잔잔한 원이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하품을 했다.
누군가는 웃으며 옆 사람의 어깨를 토닥였고
누군가는 서로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침은 누가 시작한다고 선언하지 않아도 저절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 원의 바깥과 안, 그 사이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담요를 대충 몸에 두르고 나온 사람들은 불가에 다가와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는 담요를 벗고, 밤새 타오르다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재를 손에 쥐었다.
하얗게 식은 겉면 아래에는 아직 미세한 열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 재를 천천히 얼굴에, 팔에, 가슴에 발랐다.
누군가는 이마에 선을 그었고, 누군가는 두 손으로 재를 문질러 온몸을 덮었다.
재가 피부 위에 닿을 때마다 어젯밤의 불이 다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낯설고 기이해 보였지만, 곧 그 행위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건 장식도, 분장도 아니었다. 밤을 통과한 몸이 불의 흔적을 받아들이는 의식 같았다.
나도 밤새 이곳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게 품어준 지구에게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용히 옷을 벗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부끄러움보다는 맑은 감각이 먼저 올라왔다.
나는 두 손으로 아직 따뜻한 재를 집어 들었다.
어젯밤 타오르던 불의 흔적.
그 재를 천천히 팔에 바르고, 가슴에 얹고,
이마에 살짝 눌러 찍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레인보우 게더링에서의 첫날밤을 무사히 지나온 몸,
땅 위에서 아무것도 깔지 않고 잠들 수 있었던 몸,
두려움 대신 안도를 선택한 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듯이.
재가 피부에 닿자 어제의 불과 오늘의 공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대지 위에 서 있는 나, 그 위를 덮고 있던 밤, 그리고 나를 품어주던 땅.
그 모든 것에 조용히 감사하며 나만의 작은 의식을 치렀다.
그건 거창한 기도가 아니라, 그저 마음을 낮추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지구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어제 밤, 나는 이방인처럼 가장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의 공기 속에서, 재를 바른 피부 위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나였지만, 더 이상 바깥에 서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누군가 내 옆에 앉아 미소를 건넸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은 분명했다.
어젯밤 함께 불을 나눈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인사였다.
나는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그를 안았다.
깊고 긴 포옹.
도시에서는 짧고 가벼운 인사로 끝났을 거리감이
이곳에서는 온몸으로 전해졌다.
가슴이 닿고, 숨이 섞이고, 심장이 잠시 같은 박자로 뛰는 시간.
이름도, 국적도, 직업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어젯밤 같은 불 앞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묶어주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강으로 수영하러 가자고 외쳤다.
몇 명이 웃으며 일어났다.
담요를 털어내고, 맨발로 흙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나섰다.
숲길은 밤과 달리 부드럽게 느껴졌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와 바닥에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발밑의 흙은 차갑지 않았고, 나뭇가지에 스치는 팔도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가는 길마다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다가왔고,
누군가는 웃으며 이마를 맞댔다.
나는 그때마다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안았다.
짧지 않은 포옹.
서두르지 않는 인사.
그들의 피부에서는 연기 냄새와 흙 냄새, 아침 공기가 함께 났다.
그 냄새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여기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아침, 나는 깨달았다.
속한다는 건 허락받는 일이 아니라
서서히 녹아드는 일이라는 걸.
강물 소리가 가까워졌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숲의 숨결과 섞였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야가 열렸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 튀기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나는 잠시 강가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몸이 움찔했지만, 곧 웃음이 나왔다.
어제 밤, 나는 땅과 키스를 했고
오늘 아침, 나는 물에 안겼다.
이방인이었던 나는 이제 자연의 한 요소처럼
그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정화의 의식
강물은 차가웠지만 날카롭지 않았다. 피부를 베어내는 차가움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기억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온도였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물 위에 떠 있었다.
그 순간, 전혀 다른 차가움이 스며들었다.
'하와이의 구치소 바닥.'
맨몸으로 서 있던 형광등 아래의 공간.
콘크리트의 냉기가 발바닥에서부터 척추까지 타고 오르던 감각.
금속 문이 닫히는 소리.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던 순간.
그때의 나체는 자연 속의 투명함이 아니라
권력 앞에 노출된 취약함이었다.
몸은 같았지만 의미는 정반대였다.
하와이에서의 나체는 존엄을 벗겨진 상태였고,
이곳 호주 강물 속의 나체는 존엄이 회복된 상태였다.
그날,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
바다 냄새조차 맡지 못한 채
섬의 햇빛은 나와 상관없는 풍경처럼 멀어져 갔다.
슬픔과 분노가 목 안에 걸려
삼켜지지도, 터져 나오지도 않던 시간.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증명해야 하는가.’
그 질문들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지금, 호주의 이 강물은 묻지 않았다.
증명도 요구하지 않았고,
비자도, 자격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주었다.
나는 천천히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어깨를 지나 목을 감싸고,
마침내 얼굴까지 잠겼다.
물속에서 귀를 담그니 세상의 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심장의 둔탁한 울림이 또렷해졌다.
그 박동은 하와이에서도, 한국에서도, 지금 이 호주에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하와이의 차가운 바닥은 나를 부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내가 무엇으로 서 있는지를 묻는 자리였다는 것을.
존엄은 누가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라
잃어본 뒤에야 스스로 붙잡는 것이라는 것을.
강물 위로 떠오르자 햇빛이 눈꺼풀을 붉게 물들였다.
하와이의 형광등 불빛은 차갑고 수직으로 내려꽂혔지만,
이곳의 햇빛은 부드럽게 번지며 피부를 감쌌다.
그 대비가 너무도 선명해서
가슴 깊은 곳이 흔들렸다.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하와이에 대한 원망만은 아니었다.
그 길이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닫힌 문이 방향을 틀어주었고,
거절이 다른 땅으로 나를 밀어냈다.
구치소의 차가운 콘크리트와
강가의 따뜻한 모래.
형광등 아래의 침묵과
숲속 새들의 울음.
멸시의 시선과 아무 판단도 없는 시선.
두 장면이 겹쳐지며 하나의 선이 되었다.
정화란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다시 씻어내는 과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두 손으로 물을 떠 천천히 머리 위로 흘려보냈다.
과거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과시켜
지금의 나로 흘려보내는 동작처럼.
하와이는 나를 거부한 땅이었지만
결국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땅이기도 했다.
호주는 나를 시험하지 않았고
그저 맞아주었다.
나는 강물 위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다.”
그리고 그 사실이 비로소 완전히 받아들여지는 순간,
차가웠던 기억은 더 이상 얼음이 아니라 녹아 흐르는 물이 되어
내 안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은 숨길 것도, 증명할 것도 없었다.
물결 위로 떠오르는 나의 팔과 어깨, 햇빛에 반사되는 물방울들.
그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시선이 평가가 되지 않고, 비교가 되지 않고, 욕망이나 판단이 되지 않는 공간.
그저 “존재”로 머무를 수 있는 자리.
강 위에는 푸른 티트리 잎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누군가가 새벽에 정화의 의미로 띄워두었다고 했다.
그 향이 은은하게 퍼져, 물속에서도 숲의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가, 다시 떠올랐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물과 공기 사이를 오가며 나라는 경계가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는 몸이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증거였다.
상처도, 주름도, 체형도 그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일 뿐.
누군가는 웃으며 물을 튀겼고, 누군가는 조용히 떠 있었고,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 햇빛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소유하지 않았고, 규정하지 않았고, 침범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숲이 나를 품고, 강이 나를 씻기고,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허락해주는 자리.
몸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마음은 저절로 확장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천국이 어딘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라는 것도.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흔들림 속에서
조용히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속에 가만히 떠 있으니 문득 엄마의 뱃속이 떠올랐다.
빛도 또렷한 형태도 없지만
완전히 안전했던 공간.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무 역할도 필요 없었던 자리.
태초의 편안함.
자궁.
물은 나를 밀어내지 않고 그저 받아주고 있었다.
심장 박동처럼 잔잔한 물결이 등과 배를 감싸 안았다.
나체라는 말조차 의미를 잃는 곳.
부끄러움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
몸이 대상이 되기 전의 감각.
그곳에서는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숨 쉬는 생명,
작은 맥박 하나.
강물 속에서 나는
어른이기 이전의 나,
사회 속 역할을 배우기 이전의 나,
부끄러움을 배워가기 전의 나를 잠시 다시 만난 것 같았다.
물속에서 귀를 잠시 담그니 바깥의 소리는 멀어지고 내 안쪽의 소리만 또렷해졌다.
둔탁하게 울리는 심장, 물속에서 울리는 숨결. 태초의 고요.
그 감각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장소에 다시 돌아온 것처럼.
나는 눈을 감고 몸을 완전히 맡겼다.
그리고 알았다.
부끄러움은 나중에 배운 것이고,
안전함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토록 또렷하게 느껴진 순간은 처음이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감싸고, 숲의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고,
햇빛이 눈꺼풀 위에서 붉게 번지던 그 아침.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단순한 움직임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감사가 가슴 안쪽에서 천천히 차올랐다.
억지로 만든 감정이 아니라, 저 깊은 곳에서 스스로 올라오는 어떤 것.
그리고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물과 눈물이 섞여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모를 만큼.
슬퍼서가 아니었다.
기뻐서만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여기 살아 있음”에 대한
압도적인 자각.
내가 숨 쉬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고,
이 몸이 나를 담고 있고, 이 숲이 나를 안고 있고,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이 너무 벅차서.
눈물은 멈추려 하지 않았다.
나는 굳이 닦지 않았다.
그 순간의 나는 완전히 열려 있었고, 완전히 약했고, 그래서 완전히 강했다.
삶이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숨, 지금 이 체온, 지금 이 물결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한 것처럼.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속으로 말했다.
“고마워.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해줘서.”
물 위에 떠서 속삭이듯 말했지만,
그 말은 내 안에서 울림처럼 퍼져나갔다.
Thanks for giving me this life.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지구에게,
엄마에게,
이 숲에게,
내 몸에게,
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에게.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감사가 진짜였다는 것.
이 삶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이 삶이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있어서.
기쁨도 있었고, 방황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모든 길이 결국 나를 이 강가로 데려왔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 작은 박동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엔진이었고,
지금도 나를 살게 하는 리듬이었다.
“고마워.”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하게.
삶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이 한 번의 숨,
이 한 번의 박동,
이 한 번의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물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찾고 있지 않았다.
이미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함께 이곳에 왔던 친구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햇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실루엣은 물결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손짓은 재촉이 아니었다.
“괜찮아?” 하고 묻는 것도,
“이리 와!” 하고 끌어당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하자는 신호.
나는 눈가의 물기를 훔치고 천천히 그를 향해 헤엄쳤다.
물살이 부드럽게 몸을 밀어주었다.
가까워질수록 그의 웃음이 보였다.
말없이, 하지만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
우리는 물속에서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
차가운 물과 따뜻한 체온이 만나는 지점.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도 아무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손을 잠시 꼭 쥐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감사는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라는 걸.
내 안에서 넘쳐 흐른 그것이
이제는 연결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강가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물방울이 발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침 햇살이 우리 몸을 감싸 안았다.
나는 속으로 다시 한 번 말했다.
고마워.
이 삶을,
이 만남을,
이 순간을.
그는 오전 내내 자신만의 공간을 근사하게 창조하고 있었다.
강에서 돌아온 뒤, 다른 이들이 모닥불 주변에 모여 차를 끓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조용히 숲 가장자리로 향했다.
굵은 나뭇가지를 세워 구조를 만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방향을 살피고,
햇빛이 머무는 각도를 가늠하며 천과 로프를 엮어 작은 쉼터를 세웠다.
급하지도, 과시하지도 않았지만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그 공간이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움직임은 노동이라기보다 의식에 가까웠다.
땅을 고르고, 돌을 옮기고, 바닥에 잎을 깔아 부드러운 자리를 만드는 손길 하나하나에
집중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쉘터가 아니었다.
그의 경계이자, 그의 표현이자, 그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조용한 선언 같았다.
문득 깨달았다.
그가 마지막 매듭을 묶고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의 작은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아이 같은 미소가 번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모닥불에서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면,
그가 만든 작은 모닥불과 쉘터는 숨결처럼 가까운 온기를 품고 있었다.
큰 불은 공동체의 심장이었다.
북소리와 웃음, 노래와 환호가 뒤섞이며
집단의 에너지가 하늘로 치솟는 자리.
그곳에서는 나도 하나의 파동이 되어
거대한 흐름에 실려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작은 모닥불은 달랐다.
불꽃은 낮고 단단하게 타올랐고, 장작이 타는 소리는 속삭임처럼 잔잔했다.
큰 모닥불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에너지였다면, 이 작은 불은 심장 가까이에서 뛰는 맥박 같았다.
그는 오전 내내 자신의 봉고차를 오가며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리듬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옮겼다.
낡은 나무 상자, 작은 버너, 주전자, 직접 고른 듯한 천 조각과 쿠션,
그리고 오래 써서 손때가 묻은 머그컵 두 개.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가며 그는 공간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기억을 꺼내놓듯 배치하고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쉘터가 아니었다. 그의 영혼이 잠시 내려앉을 수 있는 둥지 같았다.
세상과 거리를 두되,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는 적당한 경계.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그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말 대신 눈으로 초대했다.
나는 조용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장작불 위에 올려진 작은 냄비에서 물이 천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기포가 올라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그는 오트밀을 를 넣고 나무 숟가락으로 저었다.
동그랗게, 천천히. 급할 이유가 없다는 듯.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다.
숲의 냄새와 섞여 묘하게 따뜻한 아침을 만들었다.
잠시 후 그는 그릇에 담아 내게 건넸다.
따뜻한 오트밀 죽.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쥐자
손바닥을 통해 온기가 스며들었다.
강물의 차가움과는 다른 종류의 열기.
사람이 만들어낸, 의도가 담긴 따뜻함.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단순한 맛이 혀 위에 퍼졌다.
달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깊이 안심이 되는 맛.
처음 먹어보는 맛이지만 오래동안 잊고 있었던 맛을 본거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불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문득
하와이에서의 기억과 겹쳐졌다.
그곳에서는 몸을 드러내야 했고,
존엄이 흔들렸고, 차가운 바닥 위에서 혼자였다.
지금 이곳에서는 몸은 자유롭고, 존엄은 조용히 제자리를 찾았고,
따뜻한 죽 한 그릇이 아무 말 없이 나를 존중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대비가 너무 선명해 가슴 깊은 곳이 다시 한 번 저릿했다.
정화란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순간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정성 들여 끓인 물, 나를 위해 내어준 한 그릇의 음식,
그리고 판단 없이 함께 앉아 있는 시간.
나는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불은 여전히 낮고 단단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 앞에서 내 안의 어떤 차가움도 조용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진짜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집에 온 것만 같았다.
그의 공간이 너무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빠의 “내 집에서 나가”라는 말 한마디에서 내 여정은 시작되었다.
집을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절박해졌고, 세상을 내 집처럼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며 떠돌았다.
그러나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의 따뜻한 환대로 맞이받으며 들은 한마디, “Welcome Home”이 내 마음을 스쳤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집 없이 떠돌면서도 늘 내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집을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 어디를 가든, 가장 필요한 것은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마음이 평화로워질 수 있는 ‘집’이었다.
덧,
여정을 따라 마음을 거닐다 보면, 잊고 있던 아름다운 순간들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다시 정리하다 보면, 글은 자꾸 길어지고 계획했던 목차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로 현실 세계에서 마주했던 사건들을 꺼내는 것이 두려운 마음 인지, 현실 세계와는 동 떨어져있던 이 시간에 조금 더 오래 머물며 그때의 에너지를 기억하고 회복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을 느낍니다.
제 인생에서 강렬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체험이자 경험이었던 레인보우 게더링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여정을 다시 불러오는 기억입니다. 나는 그 순간의 장면과 사람들, 느꼈던 감각과 에너지를 충분히 복기하며 마음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잊고 있던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고,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정리하다 보면 글도 자연스럽게 길어집니다.
이 글을 남기는 것은, 그때의 에너지를 회복하고, 삶 속에서 놓치고 지나쳤던 내 영혼의 집을 조금씩 찾아가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다음화에서는 레인보우 게더링에서 겪었던 신비롭고 아름다웠던 이야기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10년도 훌쩍 넘은, 흩어져 있던 추억들을 다시 꺼내 퍼즐 맞추듯 맞춰가다 보니,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도 그때의 색과 냄새, 마음의 떨림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 순간들을 다시 한번 충분히 느끼고 새기며,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들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잃어버린 생명력을 다시 회복시키는 시간, 그리고 내 안의 고요와 자유를 다시 만나는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현재는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려고 하면 자꾸 자기 검열을 하면서 깊어지고 무거워 지는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게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런 선택을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어떠한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 가치관이
삶을 구성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구조에 대한 저 스스로 이해가 먼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필터링 없이 써내려간 글들이 저를 조금이라도 해방하고 저를 보듬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다시 천천히 이 글들을 재 배치 하고 다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힘을 서서히 갖을 수 있을 때 까지는
조금 한발짝 떨어져서 저를 바라보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