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배운 삶
호주의 숲에서 보낸 한달
레인보우게더링 이야기
가슴의 노래 (Heart song)
어디선가 외침이 울려 퍼졌다.
“푸드 서클—! 나우!”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이곳저곳에서 메아리처럼 되받아쳤다.
“푸드 서클—!” “푸드 서클~!”
숲이 그 소리를 부드럽게 흡수했다가 다시 내보내는 듯했다.
자신만의 쉘터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오솔길로 걸어 나왔다. 맨발로, 혹은 낡은 샌들을 끌며. 누군가는 기타를 내려놓고, 누군가는 책을 덮고, 누군가는 막 잠에서 깨어난 얼굴로. 각자의 밥그릇과 수저를 챙긴 채,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몸이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모여들었다.
어젯밤 커다란 모닥불이 타오르던 그 자리에는 이미 사람들이 둥글게 손을 맞잡고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We are circling, circling together…
낮은 목소리 하나가 공기를 흔들자, 다른 목소리들이 그 위에 하나씩 얹혔다.
We are singing, singing our heart song…
그 순간, 노래는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울리는 것’이 되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수록 원은 점점 커졌고, 노랫소리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작은 속삭임으로 시작된 멜로디는 어느새 숲을 가득 채우는 파동이 되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조용히 서서, 눈치껏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를 익혀 따라 불렀다. 낯설었지만 어렵지 않았다. 단순한 음과 짧은 문장이 계속 되풀이되었고, 그 반복 속에 몸이 천천히 녹아들었다.
마주 선 친구들은 눈을 감고 있었다. 두 손을 가슴에 얹거나, 하늘을 향해 펼친 채. 기도하는 듯했고, 누군가를 찬양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계속 같은 문장을 부르다 보니, 어느 순간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소리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으로 울리는 노래였다.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이상하게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그 안에는 오히려 깊은 고요가 있었다.
그 원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낯설지 않은 감각을 경험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노래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한 곡이 끝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시작했다. 손등에 키스를 하며 파도타기를 하기도 하고, 깔깔 웃으며 장난스럽게 화음을 얹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언제 끝나는 거지?’ 생각이 스칠 즈음, 노래가 갑자기 멈췄다.
숲이 숨을 고르는 듯 조용해졌다.
그 고요 속에서 누군가가 길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옴————”
이내 원 전체가 그 진동을 따라붙었다.
“옴————”
요가 수업에서 자주 들었던 만트라였지만, 내 입으로 길게 내어본 적은 없던 익숙하지만 낯선 소리였다. 어색한 마음에 작은 목소리로 따라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옴은 달랐다.
땅이 울릴 정도로 깊고 낮은 진동이 공기를 흔들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자, 숲 전체가 함께 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양쪽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따뜻한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아무 말 없이 나는 손을 조금 더 꽉 쥐었다. 그러자 맞잡은 손이 더 단단히 응답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아주 길게, 깊게 옴을 이어갔다.
그 순간, 온몸에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하게 전기가 흐르는 느낌.
나는 내 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려, 길고 낮게 옴을 내보냈다.
내 안에서 섬세한 진동이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것 같았다.
점점 옴의 소리는 작아졌고, 숲은 다시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뜨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눈이 맑아진 것 같았고,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린 것처럼 깊은숨이 쉬어졌다.
내 앞에 펼쳐진 숲과 사람들, 하늘과 공기가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원 안에서,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이 원 안에서는 마음껏 소리치고, 마음껏 노래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하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허락해 주는 공간처럼 이전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서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 안전함은 조용하지만 강했다.
나를 움츠리게 만들던 오래된 눈치와 긴장을 조금씩 풀어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지 않았다.
눈치를 보며 입 모양만 흉내 내던 사람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있는 힘껏 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더 크게, 더 길게,
가슴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매직 모자 (Magic Hat)
식사가 모두 끝나갈 즈음, 누군가 중앙으로 모자를 하나 들고 나왔다.
낡고 빛바랜, 그러나 묘하게 빛나 보이던 그 모자.
“매직 햇—!”매직 햇"
누군가가 마녀 모자를 들고 원을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웃음과 환호가 터졌다.
이곳에는 가격표도, 계산대도, 청구서도 없었다.
하지만 따뜻한 밥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지어졌고,
쌀과 채소는 어딘가에서 계속 도착했다.
그 모든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매직햇이었다.
모자는 원 안을 천천히 돌았다.
누군가는 지폐를 접어 넣었고, 누군가는 동전을 떨어뜨렸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누군가는 키스 세례를 마구 퍼붓기도 하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기도 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매직 햇을 들고 있던 형제는 모자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얼마가 들어왔는지 확인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얼마를 냈는지, 얼마가 들어있는지 중요하지 않은 공간.
이곳에서는 ‘의무’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자를 바라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나한테 얼마가 있지?
얼마를 넣어야 하나?’
계산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첫날, 나는 원 바깥에 서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마침 갖고 있던 현금이 없어서,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의 마음만 전했다.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였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매직 햇이 원을 돌기 시작하면
내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모자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돈을 넣지 못하는 내 손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계속 공짜 밥만 얻어먹고 있는 건가.’
그 생각이 죄책감처럼 가슴에 얹혔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판단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같이 왔던 친구 차에 두고 온 지갑을 가지러 혼자 숲을 빠져나왔다.
사실은 지갑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 숲에서 길을 잃다
어두운 밤길에 친구의 등을 쫓아 종종거리며 걸어왔던 그 숲길은, 혼자가 되어 마주하니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넓고, 광활했다. 쭉쭉 뻗은 나무들은 하늘을 가릴 만큼 높이 솟아 있었고, 울퉁불퉁한 모래길은 사람이 오랫동안 다니지 않은 듯 거칠게 파여 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어, 숲은 더없이 거칠고 투박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만 같았던 넓은 공터의 주차장은 아무리 걸어가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발길조차 남아 있지 않은 숲길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으니 두려움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전에 아침을 먹고 움직였는데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뜨겁게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숨을 조였다. 물 한 통도 없이 빈손으로 걸어 나온 숲길. 돌아가지도, 더 나아가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으니 목이 타들어 갈 것처럼 갈증이 밀려왔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계속 걸어야 한다는 생각과, 더는 못 가겠다는 몸의 신호가 서로 부딪혔다. 결국 나는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똑같이 생긴 나무들 사이에서 방향감각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느 쪽이 내가 걸어온 길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없이 이어진 줄기들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영화 속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사막에 조난된 사람이 마지막까지 버티기 위해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까지 입에 대던 장면.
‘저렇게까지 해야 살 수 있는 걸까.’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났다가, 곧 웃음이 멈췄다.
지금의 나는 그 장면을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목은 타들어 가고,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여기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처음으로 아주 현실적인 두려움이 밀려왔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레인보우 게더링 사이트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첫날 숲길에서 찾았던 레인보우 게더링으로 가는 작은 흔적들을 찾기 위해 주변을 아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는 친구의 등을 따라가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
나무에 묶여 있던 색 바랜 천 조각,
땅에 반쯤 묻혀 있던 작은 돌무더기,
누군가 나뭇가지를 꺾어 방향을 표시해 둔 흔적들.
그땐 그저 스쳐 지나갔던 표식들이
지금은 간절한 생명의 실처럼 느껴졌다.
나는 발밑을 천천히 살폈다.
모래 위에 아주 희미하게 눌린 자국 하나.
자연이 만든 것인지, 사람이 남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가능성 하나에 기대어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뎠다.
숲은 여전히 거대했지만 나는 더 이상 전체를 상대하려 하지 않으려고 했다.
단 하나의 표식. 단 한 걸음.
조금 전까지 나를 짓누르던 두려움이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가벼워졌다.
미친 듯이 두근거리던 심장도 서서히 고요해지고,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방울도 식어갔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어디선가 향신료 냄새와 나무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흘러왔다.
' 아, 살았다.'
그때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했다.
두려울수록 흥분하지 말 것.
'침착하고, 고요할 것.'
살아남는 법은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것임을 그날 처음 배웠다.
레인보우 밖
주차장 근처 입구에는 또 다른 레인보우 형제자매들이 모여 지내고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 작은 타프가 걸려 있었고, 누군가는 기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채소를 다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풍기는 연기 냄새에 안도하며 나는 그 냄새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 숲 속에서 한참을 헤매며 혹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풍경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평화롭고 따뜻한 일상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거렁뱅이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탈수로 쓰러질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따뜻한 미소로 차 한 잔을 건네는 그들의 모습은 빛을 두른 존재처럼 보였다.
그 순간 문득 스쳤다.
‘신이 이런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 걸까.’
자연스럽게 나는 그들의 옆에 앉아 차를 홀짝 거리며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채소를 다듬고 있던 친구의 손 아래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이거, 길에서 죽은 동물들 가죽으로 만든 거야.”
차에 치여 도로 위에 버려진 사체를 그들이 직접 수습하고,
가죽을 벗겨 말리고, 손질해서 만든 카펫이라고 했다.
잠시 말이 멎었다.
누군가의 죽음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불편하기보다
고요하게 다가왔다.
그들은 소비하지 않았다.
대신 끝까지 책임졌다.
이미 죽어버린 생명을 쓰레기로 남기지 않고
다른 형태로 품어 안은 것뿐이라고.
그 카펫은 물건이라기보다 하나의 순환처럼 느껴졌다.
반나절 동안 길을 헤매며 같은 숲을 몇 번이나 맴돌았는지 모른다.
겨우 안락한 공간 안으로 들어오자 온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살아남으려 애쓰느라 붙들고 있던 의식이
이제는 놓여도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흙바닥 위에 놓인 따뜻한 동물 가죽 카펫 위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도로 위에 버려졌던 생명이 이제는 나를 감싸고 있었다.
차갑게 식어 있었을 몸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다시 온기가 되었다.
나는 그 위에 누워 숨을 고르다 천천히, 아주 깊게 잠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을 때 주변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처음 보는 형제자매들이 모닥불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낮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 만난 친구가 건네준 따뜻한 차,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채 수프 한 그릇을
나는 남김없이 비웠다.
속이 데워지자 세상이 다시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이제 지갑을 가지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흙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날 주차해 두었던 그 자리.
분명 이 근처였는데. 어둠 속을 몇 번이나 둘러보아도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친구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심장이 다시 한번 작게 내려앉았다.
'친구가 말없이 떠버린 건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실망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하루 종일 숲 속을 헤매다 겨우 찾아간 그곳에서 지갑도 가져오지 못한 채 돌아섰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몸은 다시 무거워졌다.
허탈한 마음으로 나는 잠시 서 있었다. 이제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어둠은 조금 더 짙어지고,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레인보우 게더링 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졌다.
숲에서 길을 잃는 것보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곳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레인보우 게더링 사이트 밖에서 지내고 있던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 내게는 돈 한 푼도, 가방도, 휴대폰도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었다.
문득, 하와이 구치소에 혼자 있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는 원망,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함.
차가운 바닥에 덩그러니 앉아 하염없이 울던 시간.
휴대폰 없이 모든 것이 차단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
수시로 바뀌는 감정들을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그 안에서 내가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상상이었다.
이 절망적인 현실을 하나의 영화라고 상상했다.
어딘가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고,
보이지 않는 감독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지금 이 장면은 클로즈업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눈물을 흘리던 내가
조금은 다른 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친구가 사라진 레인보우 게더링의 숲에서도
나는 같은 질문을 했다.
이 또한 내가 창조한 장면은 아닐까.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어 떠난 여정이라면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도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고.
게더링 안과 밖은 닮은 듯 달랐고, 숲의 길들은 비슷한 듯 모두 달랐다.
하루 사이 양쪽에서 수많은 길 위를 걸으며 내 마음은 조금 더 확장된 것 같았다.
이쪽으로 가도 되고, 저쪽으로 가도 되고,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
나를 이곳으로 이끈 친구가 아무 말 없이 떠났다 해도
여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도와주려는 정령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바람이 스치는 방향, 발끝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
낮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나까지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돌은 더 이상 굴러다니는 장애물이 아니라 내가 딛고 설 자리를 내어주는 존재처럼 느껴졌고,
나뭇가지는 길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아니라 잠시 멈춰 숨을 고르게 하는 손짓처럼 보였다.
숲은 무심하지 않았다.
내가 두려움에 잠길 때는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올라
고개를 들게 만들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햇빛 한 줄기가 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다시 방향을 잡게 했다.
나는 처음으로 자연이 배경이 아니라 함께 걷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는 정령들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괜찮아, 계속 걸어.”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다.
하늘을 읽는 사람들
흙바닥 위에서 밤새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를 들으며,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몸을 부대끼고 또 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숲 속을 헤매며 흘린 땀 냄새가 혹여 불쾌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지만, 양옆에 누운 친구들의 엉킨 머리칼과 몸에서 나는 냄새는 이상하게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평소 냄새에 예민한 내가, 불쾌하다고 여겼을 법한 냄새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날 밤,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들었던 온기만이 가슴 깊이 남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친구들은 며칠 안에 비바람이 몰아칠 거라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숲 주변에 쓰러진 나무를 모으러 떠났고, 각자의 쉘터를 정비하느라 바빴다.
나는 홀로 천막 아래 앉아 잠에서 깨어난 몸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 저 친구들은 비를 어떻게 예측하는 걸까?'
문득, 레인보우 게더링 안에서 나무 위에 대충 걸쳐두었던 침낭이 떠올랐다.
아무 준비 없이 숲 속에서 지낼 나를 위해 챙겨 온 침낭을 주던 그의 마음을 떠올리니 다시
게더링 안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나무를 끌고 돌아온 한 친구가 내 옆에 털썩 앉았다.
나는 물었다.
“하늘이 이렇게 맑은데, 정말 비가 와?”
그는 웃으며 하늘이 아니라 숲을 보라고 했다.
“어젯밤 바람결이 달랐어. 나뭇잎이 뒤집히는 방향이 바뀌었고, 새들이 낮게 날았어.”
또 다른 친구는 땅을 가리켰다.
“흙냄새가 달라. 마른 흙냄새가 아니라, 곧 물을 머금을 준비를 하는 냄새야.”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맑고 고요한 아침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들에게 하늘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었다.
바람의 결, 나뭇잎의 떨림, 새들의 높이, 흙의 숨결.
모든 것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 다가오는 듯했다.
그들은 하늘을 읽는다기보다, 자연 전체의 속삭임을 듣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껴졌다..
하늘은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아래에도, 숨결 사이에도, 서로를 안고 잠든 체온 속에도 하늘이 있다는 것을.
주파수
내가 게더링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함께 있던 친구들도 오늘 밤은 그곳에서 보내고 싶다며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상황이 조금 낯설고 두려웠다.
사실 전날 하루 종일 길을 헤매어 나는 길을 안내할 자신이 없었다.
숲은 넓었고 모든 길은 비슷해 보였다.
어디로 꺾어야 했는지, 어느 나무를 지나쳤는지 기억은 희미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걸어갔다. 나는 앞에서 방향을 정하는 척했지만 실은 그들의 발걸음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누가 길을 안내하고 있는 걸까.
나는 숲을 잘 몰랐고 어제는 하루 종일 헤매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길을 잃을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뭇가지가 꺾인 자국을 보고 방향을 짐작했고,
누군가는 바람이 부는 쪽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요하게 걸었다.
마치 각자가 다른 감각으로 같은 목적지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때 알았다. 길은 한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나눠 갖는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앞’에 있었지만 혼자 이끌고 있지는 않았다.
숲은 여전히 비슷한 얼굴로 펼쳐졌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더 이상 헤매는 소리가 아니었다.
서로의 리듬이 맞춰지며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어쩌면 하늘을 읽는 사람들은 하늘만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들의 마음도 읽고 있었는지도.
문명 속에서 자라 자연이 낯설었던 나의 두려움이 서서히 믿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숲은 여전히 거대했고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 사실이 더 이상 나를 위축시키지 않았다.
나는 한 발 한 발 나의 발걸음에 귀를 기울였고, 침묵에 몸을 맡겼다.
마치 오래 맞지 않던 악기가 서서히 제 음을 찾아가듯, 나는 조금씩 자연의 주파수에 튜닝되고 있는 듯했다.
나 혼자서는 들리지 않던 숲의 리듬이 그들과 함께 걸을 때는 또렷하게 느껴졌다.
자연에서 오랜 시간 지낸 친구들의 에너지는 앞에서 끌고 가는 힘이 아니라
옆에서 잔잔히 맞춰주는 진동 같았다.
그들은 나를 가르치지 않았고 설명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호흡과 걸음 사이에서 나는 어느새 같은 박자로 걷고 있었다.
두려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이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경계는 감각이 되었고, 불안은 깨어 있음이 되었으며,
고립은 연결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숲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숲의 에너지와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통과의례 1.
맨발 예찬론자이자 숲의 숙련자인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밤에 걸을 때 무섭지 않아?
나는 갑자기 뱀이 나올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르는 듯했다.
“무섭지.”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가볍지 않았다.
“근데 무서운 채로 걷는 거야.”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먼저 길을 걷게 두면 상상이 뱀을 만들어.
근데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 숲이 나를 먼저 알아.”
“인사?”
그는 발끝으로 땅을 한 번 눌러 보이며 말했다.
“나는 계속 말해.
지나갈게.
널 해치지 않을게.
같이 이 밤을 쓰자.
고마워. 사랑해.”
그는 숲을 거닐 때마다 모든 존재들에게 연민과 사랑을 전하려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입 밖으로 내어 말하면 몸이 먼저 믿는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고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알 듯 말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그리고 깜깜한 숲을 걸을 때마다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사랑해.'
다행히도 숲에서 지내는 동안 뱀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다.
처음으로 두려움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두려움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점점 맨발 숙련자가 되어갔다. 울퉁 불퉁한 길을 걸을 때면 뒤뚱뒤뚱 걸었던 내 모습도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통증 없이 자갈밭을 걸으며 신발 없이 숲에서 제법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깜깜한 숲은 좀처럼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발바닥 밑으로 뱀이 스쳐 나올까 봐 두렵기도 했지만,
거친 나뭇가지에 찔리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동물의 배설물을 밟을까 봐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러웠다.
어둠은 보이지 않는 위험을 키웠고,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상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나는 발을 내딛기 전에 이미 넘어졌고, 이미 더러워져 있었다.
문명인으로 살면서 밤에도 빛과 함께 생활하며
나는 점점 어둠을 잊고 있었다.
가로등, 간판 불빛, 휴대폰 화면.
밤은 더 이상 밤이 아니었다.
항상 어딘가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내 시야를 대신 책임져 주었다.
그 사이에서 내 감각은 서서히 마비되어 갔다.
어두운 곳에 서면 눈보다 먼저 불안이 앞섰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다고 단정해 버렸다.
하지만 숲의 밤은 달랐다. 빛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어둠을 무서워한 게 아니라 빛 없이 존재하는 법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숲은 나에게 다시 배우라고 했다.
눈 대신 귀를 열고, 귀 대신 피부를 열고, 피부 대신 마음을 열라고.
처음에는 불편했고 두려웠지만, 어둠 속에 오래 서 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바람의 방향, 발밑 흙의 온도,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어둠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빛에 가려져 있던 감각이 돌아오는 자리였다.
모두의 심장
하늘을 읽는 친구들의 말처럼 며칠 동안 거친 폭풍우가 이어졌다.
비는 쏟아붓듯 내렸고, 바람은 방향을 바꿔가며 숲을 뒤흔들었다.
텐트 안으로 물이 차오르고, 주워 모은 나무로 얼기설기 세운 움막들은
천을 덮어두었음에도 하나둘 힘없이 주저앉았다.
젖은 침낭과 흙탕물이 된 바닥, 무너진 지붕 아래에서 잠시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자신의 공간이 망가진 것을 먼저 걱정하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과 마음은 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거대한 모닥불.
첫날, 누군가가 그 불 가까이에 젖은 신발을 벗어 두고 말리고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운동화에서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는 그저 축축함을 털어내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여긴 신발 말리는 곳이 아니야.”말은 부드러웠지만 분명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가 덧붙였다.
“이 불은 우리 모두의 기도야.”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이 불이 단순한 열원이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신전이었고, 의식의 중심이었으며, 말없이 서로를 확인하고 지지하고 마음을 데워주는 자리였다.
낮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노래하고, 춤추고,
기도하고, 울고, 웃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회복하는 공간이 되었다.
밤이 되면 불은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처럼 타올랐다.
불꽃은 위로 솟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 불을 따라 올라갔다.
별빛과 불빛이 한 화면 안에 겹쳐지는 순간,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원 안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불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고 누구 한 사람의 책임도 아니었다.
모두의 것이었고, 그래서 모두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폭풍 속에서도 텐트가 무너지고 짐이 젖어도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 불로 달려갔다.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젖지 않은 장작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몸으로 바람을 막고, 꺼져가는 불씨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초조함보다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들은 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불이 만들어온 시간과
그 불이 완성한 원과 그 안에서 이어진 관계를 지키고 있었다.
폭풍은 거셌지만 불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신전은 돌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한 방향으로 모여
지속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 불은 단지 타고 있는 장작더미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심장이었다.
폭풍 속으로
며칠째 비가 내린 뒤 숲의 온도는 눈에 보이지 않게 계속 떨어지고 있고
사람들의 에너지도 점점 떨어지는 듯했다.
젖은 공기는 옷 속으로 스며들었고, 몸은 마르지 않은 채로 천천히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장작은 축축했고, 신발은 늘 젖어 있었고, 피부는 항상 공기와 비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었다.
친구들과 최대한 몸을 밀착한 채 천막 안에 피워놓은 작은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천막을 두드렸고 바람이 천을 밀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와 팔을 붙인 채 작은 불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있었다.
젖은 옷에서는 아직 습기가 올라왔지만 불 가까이에 놓인 손끝만은 서서히 감각을 되찾았다.
누군가가 건네준 따뜻한 짜이 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홀짝였다.
옆에 있던 말괄량이 삐삐처럼 생긴 친구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코를 찡긋했다.
그리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따뜻한 이불속에서 팝콘 먹으면서 영화 보고 뒹굴거리고 싶다.”
순간 천막 안의 공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말랑해졌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번지기 시작했다.
젖은 흙냄새와 연기 사이로,
분명히 다른 결의 향이 스며들었다.
“뭐야… 빵 냄새 아니야?”
누군가 코를 킁킁거렸다.
모닥불 한쪽에서 누군가 밀가루 반죽을 손바닥으로 둥글게 눌러
얇게 펴고 있었다.
비에 젖은 손이었지만 동작은 익숙했다.
반죽은 불 가까이에서 천천히 부풀어 오르며 갈색 점을 만들었다.
타닥타닥 작은 소리가 났다.
" 짜파티"
누군가가 이름을 불렀다.
불 위에서 바로 구워낸 납작한 빵을
손으로 찢어 나누기 시작했다.
막 구워낸 밀가루의 단순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순식간에 작은 파티가 되었다.
누군가는 반죽을 더 만들었고, 누군가는 불을 조심스럽게 조절했고,
누군가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기타를 연주하고 젬베를 치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불과 팝콘을 그리워하던 우리가 지금은 맨손으로 빵을 찢어 먹으며 웃고 있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렸지만 천막 안은 따뜻한 김으로 가득 찼다.
나는 생각했다.
따뜻한 이불속에서의 행복은 완성된 장면이지만,
여기서의 행복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는 장면이라는 걸.
고소한 냄새는 잠시 우리를 문명으로 데려갔다가
다시 숲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순간, 폭풍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통과의례 2
며칠 동안 미친 듯이 쏟아지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
하늘은 놀랄 만큼 맑았고 숲은 씻긴 얼굴처럼 빛났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젖은 옷을 널고, 무너진 천막을 다시 세우고, 햇볕을 쫓아 침낭을 펼쳤다.
분주함 속에는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살았다.”
그런 표정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하지만 강은 달랐다.
며칠간 쓸려 내려온 흙과 잔해로 물빛은 탁하게 변해 있었다.
발목을 담그면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식수 배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끓이지 못한 물이 돌았고, 급한 마음이 조심성을 앞질렀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다.
복통을 호소하고, 열이 오르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혹시’가 ‘아마’가 되었고 ‘아마’는 ‘맞다’가 되었다.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햇빛 아래 널린 빨래들 사이로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공동체는 또 다른 시험 앞에 서 있었다.
불을 지키던 손들이 이제는 물을 끓이고, 아픈 사람의 등을 받치고, 쉼터를 분리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맑아졌지만 우리는 다시 배워야 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또 얼마나 빠르게 책임으로 변하는지.
그리고 결국 나도 쓰러졌다.
처음엔 단순한 복통이라고 생각했다.
곧 괜찮아지겠지, 하고 넘겼지만
몸은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배가 뒤틀리듯 아팠고 설사와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몸 안의 모든 것이 나를 떠나겠다는 듯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마다 누군가가 등을 받쳐 주었고,
누군가가 물을 끓여 가져다주었고,
누군가는 내 이마에 젖은 천을 얹어주었다.
나는 거의 걷지 못했고 말도 길게 하지 못했다.
그저 누워서 몸이 비워지는 시간을 통과했다.
꼬박 나흘.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밤과 낮이 희미하게 섞였다.
신기하게도 고통 속에서도 나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 늘 곁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이 조용해졌다.
배의 경련이 멎고 열이 내리고 숨이 깊어졌다.
마치 몸 안에 쌓여 있던 오래된 찌꺼기까지
모두 씻겨 내려간 것처럼 이상할 만큼 개운했다.
힘은 빠졌지만 맑았다.
나는 생각했다.
폭풍도, 불도, 전염병도
어쩌면 바깥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는 걸.
몸은 숲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맞게
나를 다시 조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나를 돌봐준 손들 덕분에 나는 단지 회복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이 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쓰러진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함께 산다’는 말의 무게를 몸으로 배웠다.
첫날 만난 나이가 지긋한 레인보우 형제는 아침 식사 시간에도 그릇을 들지 않았다.
“안 드세요?”
내가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패스팅 중이야.”
단식.
그는 레인보우 게더링에 오면 항상 일주일을 굶는다고 했다.
몸을 비우는 것으로 이곳의 시간을 시작하는 자신만의 의식이라고.
그리고 나에게도 조용히 권했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배고픔을 참을 자신도 없었고, 이미 생존에 급급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도 않은데 굳이 더 비울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폭풍과 전염병을 지나며 나는 자연스럽게 먹지 않게 되었다.
아프면 먹지 않는 것.
그곳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태도였다.
누구도 억지로 죽을 권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먹어야 힘을 내지.”
같은 말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쉬어.”
“물만 마셔.”
“몸이 알아서 할 거야.”
그 말들이 조용히 오갔다.
처음엔 불안했다.
먹지 않으면 더 약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다.
“동물은 아프면 먹지 않아.
몸이 스스로 고치도록 두는 거지.”
그 말을 들었을 때 이해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내려왔다.
숲에서는 아픔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억지로 채우지 않고 조금 비워 두는 것.
배고픔은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고 굶는 시간은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다.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이 단식은 처벌이 아니라 정화에 가까웠다는 걸.
아픈 몸을 통과하며 나는 또 한 번
나를 비우는 의식을 지나고 있었다.
숲은 먹는 법뿐 아니라 먹지 않는 법도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또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조용히 나를 바꾸고 있었다.
똥구덩이
전염병이 한 차례 지나가자 숲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함께 불을 지키고, 비를 맞고, 짜파티를 나누던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아침마다 웃음이 먼저 번지던 자리, 기타 소리가 흐르던 나무 아래,
강가에서 빨래를 털고 수영하던 풍경은 그대로인데 공기의 온도와 공간의 에너지가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떠난 자리만큼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왔다.
낯선 텐트가 세워지고, 처음 온 사람들은 불가에 조심스레 앉았다.
규칙을 모른다는 눈빛, 조금은 들뜨고 상기된 표정.
공동체는 줄어들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숨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도 함께 따라왔다.
비로 무너진 똥구덩이는 깊이가 얕아졌고, 덮어둔 흙은 씻겨 내려가 있었다.
그 위로 사용이 이어졌다.
처음 온 이들에게는 이곳의 방식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다.
볼일을 본 뒤 흙을 제대로 덮지 않거나, 삽을 제자리에 두지 않거나,
휴지와 물티슈, 생리대 같은 것들을 숲에 남겨두는 일들이 생겼다.
누구도 일부러 어지르려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처음엔 작은 흔적이었다.
하지만 숲은 작은 방심을 오래 감춰주지 않았다.
덮이지 않은 구덩이 위로 파리가 몰려들었고,
냄새가 바람을 타고 번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파리는 음식 주변을 맴돌고,
설거지통 위에 내려앉고, 얼굴 가까이까지 날아들었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이 몸으로 이해되었다.
위생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식수도 안전하지 않았다.
벌레에 심하게 물려 밤새 긁는 사람들이 생겼고,
팔다리가 퉁퉁 부어 오른 이들도 있었다.
숲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더 이상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빗물에 씻겨 나온 휴지 조각이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는 걸 보았을 때 나는 묘하게 부끄러웠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자유롭게 모였지만 자유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았다.
규칙은 통제가 아니라 배려였고, 삽 한 번 더 뜨는 일은 공동체를 지키는 행위였다.
결국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구덩이를 더 깊이 팠고, 사용법을 다시 나누었고,
숲에 남기지 말아야 할 것들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공식적인 레인보우 화장실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 어떤 가림막도 없고, 내가 볼일을 보는 순간 다른 사람과 그 장면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늘 아무도 없는 깊은 숲 속으로 가서 조용히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게더링에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내가 눈을 피할 수 있는 곳도 점점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공식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똥구덩이가 놀랍게도, 냄새 하나 없이 깔끔했다.
정리된 모습, 흙과 나무, 물과 삽이 제자리에 놓인 모습이 무심한 듯 질서 정연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공동체의 규칙과 배려는 눈에 띄지 않아도 존재하며,
누군가의 작은 행동 하나가 전체의 경험을 바꾼다는 것을.
이곳에서는 볼일을 보는 일조차 단순히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성한 불을 존중하는 마음과 똥구덩이를 끝까지 덮는 책임은 같은 선 위에 있다는 것을.
동체는 이상적인 말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태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내가 먹는 것부터, 내가 싸는 것까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먹는 것이 내 몸을 만들고, 그 몸에서 나오는 것이 숲과 공동체에 흔적을 남긴다.
한순간의 선택, 한 번의 행동이 내 주변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이제는 더 이상 추상적이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더 신중해졌다.
먹는 것, 씻는 것, 쓰는 것, 버리는 것까지 모두 내 의식 속에서 한 줄기로 이어진다는 느낌.
자연 속에서의 몸은 단순히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몸과 행동이 숲과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경험,
그 책임감이 동시에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무지개 전사
며칠째 이어진 폭풍우가 잠잠해진 어느 날, 레인보우 게더링 근처 숲에 호주 원주민 한 명이 나타났다.
레인보우 게더링에서는 매일 여기저기서 워크숍이 열린다. 누군가가 “00 커넥션!”을 외치면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배우거나 체험한다. 나는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몰라, 게더링에 온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워크숍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강에 수영하러 가는 길에, 작은 원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모습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걸음을 멈추고 나도 사람들 사이에 껴 앉아 귀를 기울였다.
그는 긴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헝겊 조각으로 몸을 가린 채 얼굴과 온몸에는 전사처럼 재를 바른 모습이었다.
표정은 험하고 날카로웠지만, 반짝이고 깊은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집중하고 고요하게 만들었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자, 숲의 바람과 폭풍으로 젖은 흙냄새까지 잠시 멈춘 듯, 모든 것이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게더링을 따라다니며 문화를 지키고 전하려는 구심점 역할을 해온 형제, 자매들은 그의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굳이 과장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존경을 조용히 표하고 있었다. 그들의 경청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태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처럼 보였다.
레인보우 게더링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수평적이고 동등하다.
누군가 더 위에 서 있지 않고, 누군가 더 아래에 앉지 않는다.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둥글게 원을 만든다.
원 안에서는 누구나 발언권을 갖는다. 차례를 기다려 손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동의하거나 우려를 표현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다수의 의견으로 정리되기도 하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때면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오랜 시간 이 문화를 몸으로 살아온 형제자매, 어른들의 의견을 묻곤 했다.
그 순간들이 나는 인상 깊었다.
겉으로는 모두가 평등하지만, 누군가는 오랜 시간 이 공동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해 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에너지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앞에 나서서 지시하지도 않고, 큰 소리로 주장하지도 않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중심이 형성되는 자리. 불을 지고, 피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똥구덩이를 정비하고, 아픈 이를 돌보는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하면서도 그것을 공로로 내세우지 않는 태도. 항상 그들이 그곳에 제일 먼저, 마지막까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삶이 이미 그들의 습관이자 호흡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호주 원주민이 말없이 전하는 에너지와, 이곳에서 오랜 시간 헌신해 온 형제자매들의 에너지는 어딘가 닮아 있었다.
권위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으로 서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말이나 제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명 속에서 만났던 ‘리더’들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조직 안에서 만났던 리더들은 대부분 앞에 서 있었다.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제시하고, 속도를 재촉했다.
성과를 요구하고, 책임을 나누기보다 결과를 관리했다.
리더는 눈에 띄어야 했고, 말이 많아야 했으며, 때로는 강해야 했다.
그들의 권위는 직함과 자리에서 나왔다.
회의실의 긴 테이블 끝, 단상 위, 혹은 가장 먼저 발언권을 쥔 자리에서.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본 중심의 모습은 달랐다.
레인보우 안에서는 가장 오래 헌신한 형제자매들이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 자리는 권력을 상징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정을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의 말을 끊지도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듣고, 가장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더하는 사람들이었다.
문명 속 리더가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중심은 ‘지탱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문명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손에 흙이 묻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오래된 형제자매일수록 설거지통 옆에 서 있고, 불을 지피고, 똥구덩이를 점검했다.
문명에서는 리더가 눈에 띄지만, 이곳에서는 헌신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묘했다.
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아니라, 태도로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
명령으로 질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범으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방식.
나는 그 차이를 천천히 곱씹었다.
문명에서는 누가 더 위에 있는지가 중요했지만, 이곳에서는 누가 더 많이 비워냈는지가 중요해 보였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진짜 중심은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몸을 내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영혼의 눈 맞춤
레인보우 게더링에서 여기저기서 매일같이 열리는 워크숍의 즐거움에 조금씩 빠져가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부엌 쪽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왔고, 강가에서는 요가 매트를 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그날 태양의 에너지를 듬뿍 머금은 바위 위에 누워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며칠간 이어졌던 비로 축축해졌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마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 게이징 커넥션!”
바로 조금 전까지 내 옆 바위에 누워 함께 햇빛을 쬐고 있던 그 형제의 목소리였다.
‘응? 조금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워크숍을?’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는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을 감고 태양에 몸을 맡기고 베짱이처럼 누워있었는데,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준비된 안내문도, 정해진 일정도 없이.
레인보우에서는 시간도 장소도 딱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해가 저 위에서 두 시 방향일 때 모여요.”
대략 이런 식이었다.
장소 역시 “저쪽 티피 옆 큰 나무 아래” 같은 식으로 전해졌다.
지도도, 스케줄표도, 알림도 없었다.
워크숍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나누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열 수 있었다.
완벽한 커리큘럼도, 준비된 자료도 필요 없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면 어딘가 어색해지는 곳이었다.
어설퍼도 괜찮고, 중간에 멈춰도 괜찮고, 몇 명만 모여도 괜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이 공짜라는 사실이었다.
돈이 오가지 않았다.
요가, 뜨개질, 마사지, 그림, 타로, 태극권, 레이키, 명상…
누군가는 노래를 가르쳤고, 누군가는 채식 요리를 나눴고, 누군가는 별자리를 설명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배우고,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공간.
지식도 기술도 재능도 소유가 아니라 '순환'이었다.
나는 그 형제가 사람들 사이에 서서 자연스럽게 원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문명에서는 배움이 상품이 되고, 시간은 돈이 되고, 전문성은 가격표를 달고 움직이는데,
이곳에서는 그저 “나누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충분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 전까지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햇빛을 즐기던 한 사람이
순식간에 사람들의 눈을 마주 보게 하는 자리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그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편하게 앉아서 서로를 바라보세요.”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싸움 같은 건가?’
그런데 그는 곧 덧붙였다.
“눈을 깜박여도 괜찮아요.”
어릴 적, 눈을 감거나 깜박이면 지는 놀이와는 다른 것 같았다.
“종을 칠 때까지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세요.
종이 울리면 옆으로 한 자리씩 옮기면 됩니다.”
나는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약간의 의심을 품고 내 앞에 앉은 형제를 바라보았다.
게더링에서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형제였다.
그를 이렇게 정면으로, 말없이 바라본 적은 없었다.
괜히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색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너무도 진지했다.
마치 거룩한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맞이하듯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이를 꽉 물고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나도 형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눈동자의 색이 보였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갈색의 결, 미세하게 흔들리는 동공의 움직임.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밝게 웃고 장난을 치던 형제였는데,
그의 눈 안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오래된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말로 들은 적 없는 그의 과거가 어렴풋이 그림자처럼 스며 나오는 듯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대의 감정이 파동처럼 전해졌다.
그리고 우리 주변으로 얇은 장막 하나가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다.
상대의 눈을 통해 그 사람의 영혼을 만난다고 생각하세요.”
조금 어색한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졌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둘씩 짝을 지어 마주 앉았다.
나는 처음 보는 한 자매와 눈을 맞추게 되었다.
처음 몇 초는 몹시 어색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고,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상하게도 얼굴의 표정이 아니라 눈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 그리고 내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오갔다.
슬픔인지, 피로인지, 기쁨인지 모를 감정의 파동이 잔잔하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몇 분이 지나고 종을 울리듯 손뼉 소리가 나자, 우리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조용히 웃었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나눈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눈을 마주 본다는 건 단순한 시선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를 판단 없이 그대로 두는 연습이라는 것을.
숲의 소리도, 사람들의 숨소리도, 멀리서 들리던 기타 소리도 희미해지고
그 순간 이 우주에 오롯이 나와 그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 한마디 없이, 우리는 서로의 깊은 곳을 잠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느샌가 그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빛 때문인가 싶었지만, 곧 그 안쪽에서 차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숨이 조금 깊어졌다.
말은 없었지만, 그 변화는 분명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 역시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
슬픔인지, 연민인지, 기쁨인지, 그 어떤 단어로도 정확히 붙잡히지 않는 감정.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두근거림이 아니라, 안쪽에서 은은하게 달아오르는 온기 같은 것.
눈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눈에서 번져 나오는 감정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고,
내 안의 오래된 무언가도 함께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서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때, 맑은 종소리가 숲을 가르며 울렸다.
아무도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고, 눈물이 고이는 것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가슴에 가만히 몸을 기댔다.
그도 나를 단단하게 안아주었다.
서로의 심장 박동이 맞닿았다.
따뜻했고, 안정적이었다.
눈물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부끄럽지 않았고, 숨길 필요도 없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상대의 눈을 통해 영혼을 만나는 경험을 한 것 같았다.
말이 아닌 존재로, 설명이 아닌 감각으로,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깊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숲에서 배웠다.
손님에서 구성원으로
떠났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순간, 시간이 아주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숲에서 길을 잃고, 전염병이 돌고, 며칠째 사경을 헤매다 겨우 살아났던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나는 어느새 이곳의 리듬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다.
아침이면 자연스럽게 물을 길으러 가고, 누가 아프면 옆에 앉아 등을 쓸어주고,
회의가 열리면 조용히 원 안에 앉아 내 생각을 말할 줄도 알게 되었고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워크숍을 열고 도움을 주고받고 순환하며 지내는 법을 통해 이 공동체 안에서 ‘손님’이 아니라 ‘구성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비가 오면 어쩌지, 길을 잃으면 어쩌지,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끊임없이 불안이 따라다녔다.
그와 함께 도착했던 첫날의 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의 확신을 빌려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가 떠났고, 그 사이 나는 아팠고, 회복했고,
구덩이를 덮고, 함께 밥을 짓고, 워크숍에 참여하고,
누군가의 눈을 마주 보며 울기도 했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그와 함께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그날보다
조금 더 씩씩해졌고,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나타난 그를 바라보며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감정이 스쳤다.
나는 여전히 그를 좋아했고 반가웠지만,
이제는 그의 존재에 기대 서 있지 않았다.
숲이 나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는 걸 그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조용히 깨닫고 있었다.
그의 앞에 마주 서서 그를 바라보자 그동안 있었던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숲에서 길을 잃었던 이야기, 아파서 거의 쓰러졌던 밤들,
혼자서도 하루를 살아내며 조금씩 단단해진 시간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어도 그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나를 안아주었다.
왜 갑자기 아무 말 없이 떠났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왜 그가 떠난 자리를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있었는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이 있었지만 우리는 한참 동안 침묵한 채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귀를 대니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 박동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말 대신 전하는 신호처럼.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통해
그동안 각자 건너온 시간들을 조용히 확인하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지금 이 순간이 이미 대답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면서.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떠나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영혼의 씻김굿
한국에서 동생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르자,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날짜도, 요일도, 정확한 시간도 모른 채 살아가던 숲의 시간 속에서 지내다 보니 달력이라는 감각이 희미해져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을 지나고 나서 떠나야지, 마음속으로 조용히 정해두었었다.
누구에게 말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엔 손톱처럼 얇던 달이 조금씩 살을 붙이고, 둥글어지기까지의 시간을
눈으로 세어가며 마음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숲에서는 날짜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이 며칠이야?” 대신
“오늘 달이 많이 찼네.”
그게 이곳의 달력이었다.
나는 작은 수첩에 달의 모양을 그리듯 기록했다.
초승달. 반달.
점점 둥글어지는 밤들.
그 사이사이에는
내가 배운 것들, 눈을 마주했던 순간들,
아팠던 날들, 웃었던 얼굴들이 함께 적혀 내려갔다.
달이 차오를수록 떠남도 또렷해졌다.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올라왔다.
정말 떠날 수 있을까.
아니, 떠나는 것이 맞을까.
그럼에도 달은 망설임 없이 자라났다.
구름에 가려져도 다음 날이면 조금 더 차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둥근 보름달이 숲 위에 떠오르는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드디어, 둥근 보름달이 숲 위에 떠오르는 날이 다가왔다.
그날 밤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달빛은 환했지만 내 마음은 차분했고,
거대한 심장이던 모닥불은 그 어느 때보다 하늘 높이 치솟았다.
불꽃은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어둠을 밀어 올렸다.
환히 비추는 보름달 아래,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 옆에서
나는 마치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처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한참을 춤추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피부에 닿았지만 이상하게도 부끄러움은 없었다.
몸은 숨기려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숨결 같았다.
불빛이 피부 위를 스치고, 달빛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누가 본다 해도 상관없었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그저 움직이고 싶었다.
발바닥이 흙을 느끼고, 팔이 하늘을 가르며,
심장이 박자처럼 뛰는 대로 몸을 맡겼다.
점점 더 격정적으로 북소리는 커지고
젬베 소리는 빨라졌다.
둥, 둥, 둥—
심장과 북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하나로 섞였다.
나의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
들이쉬고, 내쉬고, 또 들이쉬며
가슴이 크게 열렸다 닫혔다.
눈물과 땀이 뒤범벅이 되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엇 때문에 흘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슬픔은 아니었고,
기쁨만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꽉 차서 몸이 흘려보내는 물 같았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치고, 허리가 꺾이고,
발은 흙을 세게 밟았다.
흙먼지가 일었고 불꽃은 더 크게 튀어 올랐다.
누군가는 함께 소리쳤고, 누군가는 손뼉을 쳤고,
누군가는 그저 눈을 감고 흔들렸다.
누군가는 동물처럼 포효하며 으르렁거렸다.
나도 처음엔 숨을 삼켰다.
내 안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하지만 북은 멈추지 않았고, 심장은 더 크게 뛰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 차올랐다.
참고 있던 무언가가 더는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한 것처럼.
그리고 결국, 나도 소리를 냈다.
말이 아닌, 문장이 아닌, 의미 없는 울음 같은 소리.
낮고 거칠게, 그러다 점점 더 크게.
목이 갈라질 것처럼 소리치며
가슴을 열어젖혔다.
그 소리는 슬픔이기도 했고, 분노이기도 했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외침이기도 했다.
동물처럼, 아주 원초적인 존재처럼.
체면도, 역할도, 이름도 없는
그저 숨 쉬는 생명으로서.
눈물과 땀이 뒤섞인 얼굴로 나는 포효했다.
그 순간, 두려움이 떨어져 나갔다.
누군가에게 보일 나,
잘해야 할 나,
괜찮은 척해야 할 나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는 나.
북소리 위에 내 울음이 얹히고,
다른 이의 소리와 뒤엉켜
하나의 거대한 파도처럼 숲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 안에도 야생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알을 깨고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존재처럼,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나비처럼,
나는 훨훨, 숨이 찰 때까지, 불꽃과 달빛 사이를 오가며 춤을 추었다.
달빛은 차갑게 어깨를 감싸고, 불빛은 붉게 피부를 물들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다.
그저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기쁨과 환희가 몸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은 따라오지 못했고, 몸이 먼저 알았다.
이 순간이 완전하다는 것.
더 보태지 않아도, 덜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돌고, 또 돌고 돌아 수많은 길을 헤매고,
아프고, 묻고, 잃고, 다시 찾으며
나는 결국 지금 여기에 서 있었다.
누군가가 되어야 해서가 아니라, 어딘가에 도착해야 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숲은 나에게 속도를 늦추는 법을 가르쳤고,
타인의 눈을 마주 보는 법을 가르쳤고,
떠남과 머묾이 모두 흐름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밤,
나는 더 이상 길을 찾지 않았다.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돌고 돌아
결국,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었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이 이토록 강렬하게
잘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단순히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숨 쉬고 싶어졌다.
하루를 흘려보내는 삶이 아니라 하루를 온전히 맞이하는 삶.
그 밤, 북소리에 맞춰 뛰던 심장은 단지 흥분해서 빨라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
이 감각을 잊지 마.
숲에서 느꼈던 그 선명함—
흙을 밟는 발바닥의 감각,
차가운 공기,
타오르는 불꽃,
눈을 마주하던 침묵—
그 모든 것이
‘살아 있음’의 농도를 짙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농도는도망이 아니라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더 깊이 사랑하고 싶고, 더 솔직하게 말하고 싶고,
더 많이 웃고 울고 싶어졌다.
잘 산다는 게 성공하거나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숨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몸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움도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잃을까 봐 무서웠다면, 이제는 이 감각을 놓칠까 봐 아쉬웠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삶을 향한 결심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저 시간을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며 나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 열망은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불꽃처럼 격렬하지는 않았지만 속에서 오래 타는 숯불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