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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l 28. 2020

골든 타임

모유 수유 중단 후 얻은 것. (우울감과 몸무게)


출산하고 오니 올케가 이쁜 드레스를 선물해줬다. 기저귀나 아가 옷 선물이 많이 와서 잘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아가 선물보다 엄마 선물이 사실 더 감동이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세심하게 생각해준 그 마음 때문에.

올케는 언니 이쁜 엄마 되라는 메시지와 함께 직접 만든 팔찌를 이쁘게 포장해서 건넸다. 받자마자 입어봤는데 아가가 방 빼면 배도 쑥 들어갈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배는 나왔고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그래도 모유수유를 하니까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임신 기간 동안 12킬로가 증가했고 2주 후에 9킬로가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출산 후 두 달 정도 지나면 올케가 사준 이쁜 드레스를 입고 외출할 수 있겠다 싶었다. 모유 수유를 하는 내내 젖이 줄줄 흘러서 펑퍼진 수유복만 입고 있었던 탓인지 유난히도 이쁘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강했었다. 머리도 하고 싶고 이쁜 옷도 입고 싶고 (화장은 이제 덜 하고 싶어 졌다.)

그런데 두 달이 흐르는 동안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임신 중에 조산원 원장님은 내 가슴을 보고 모유 잘 나오겠다 하시길래 자신감 넘쳐서 완전 모유를 다짐했는데 황달이 심하고 몸무게가 줄어든 한별이에게 병원에서는 모유를 중단하고 분유 수유를 해야 된다고 하셨고 한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는 동안 나는 응급실에 누워있으면서 내 가슴은 점점 시들 시들해져 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둘다 퇴원을 하고 만났을 때 슬프게도 내 젖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아이가 빨아주지 않으니 말랐던 것이다. 아이가 빨아주지 않아도 세 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해서 젖양이 줄지 않게 했어야 했지만 진안에서 전주까지 일주일 내내 병원을 왔다 오가느라 나는 그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요즘 가만히 앉아 있을 때마다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후회와 자책감과 분노가 찾아온다. ‘
아, 그때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진안에 살지 않았더라면’ ‘내가 집에서 산후조리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게 지금 보다 더 나은 선택이 가능했을까.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까. 사실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자연주의 출산은 나에게 여자로서 엄청난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져다줬다. 출산 일주일은 그 행복감으로 몸이 피곤한지 아픈 줄도 몰랐다. 하지만 모유 수유 실패는 엄마로서 엄청난 자괴감과 자책감을 가져다줬다. 아이에게 소 젖이 아닌 내 젖을 물리지 못한 미안함과 모유수유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을 얻지 못한 게 가장 안타깝다. 모유수유를 중단하니 우울하게 다시 체중이 증가한다. 반갑지 않은 생리도 다시 시작하고 생리 때마다 거울 보면 우울했는데 이쁜 드레스를 입어도 이쁘지 않은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진짜 안 되겠다 싶다.

운동이라도 힘들게 하고 싶은데 아직 몸은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도 않고. 백일이라도 지나면 미루고 미뤘던 요가 강사 자격증이라도 따서 몸을 좀 만들어보려고 알아보니 시골 촌구석에서 배울 수 있는 데가 없네. 젠장- 이래서 다들 도시로 돌아가는 건가. 어떻게든 내 몸을 살려야 마음이 살 거 같다. 도시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다시 한번 골든 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내 년 이 맘때쯤에는 허리 라인이 살아 있어야 된다.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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