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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l 31. 2020

여신들의 축제 | 찌찌 쇼 후기

#1. 찌찌를 지지하라. 

여자에게 가슴은 무엇일까?




남자들의 세상에서 여자들은 약한 존재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의 힘을 믿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여자들을 우리는 ‘여신’이라 부른다. 여자는 약하지만 여신은 강하고, 여신이 모이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나는 이 찌찌 쇼를 기획했다. 우리에게는 가슴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있지만 이 가슴이 사랑으로 세상을 품을 수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남자는 세상을 칼로 지배하지만 여자는 세상을 가슴으로 구한다. 세상의 그 훌륭한 남자들도 여자의 자궁에서 태어났고 여자의 가슴으로 자랐으니까- 




학교 다닐 때부터 여자들이랑 무리 지어서 어울려 다니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그 여자애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가장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로 창조하는 힘이 생겼다. 엄마가 되자마자 가장 힘들었던 젖몸살의 추억이 이렇게 멋진 일로 기억되는 일 하나를 벌렸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슴에 뭉친 응어리들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아이가 새근새근 잠을 자는 동안 나는 그날의 기억들을 다시 소환해본다.



출산 한지 일주일이 조금 넘어서 젖몸살이 왔다. 출산의 고통만 있을 줄 알았지 젖몸살의 고통은 그동안 알지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고 살다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은 출산의 진통만큼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젖이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열이 나고 아파서 조금만 만져도 반사적으로 화가 났다. 모유 수유가 끝나면 가슴을 도려내고 싶었다. 그동안 단 한반도 내 가슴의 존재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내 뱃속에서 나온 한 생명에게 젖가슴을 물리며 힘차게 빨아대는 그 힘찬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낄 때는 내 가슴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거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였던 내 큰 가슴이 한 생명을 살리고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니. 하지만 그 기쁨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황달이 심하게 왔고 황달 수치가 너무 높아서 중환자실에 일주일간 입원을 해야만 했고, 병원에서는 모유수유를 중단시켰다. 그 사이 나는 철분 주사의 부작용으로 인해 고열과 두통으로 응급실 신세까지 지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유 수유를 중단하게 되면서 완전 모유를 꿈꿨던 내 꿈은 산산조각 무너졌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으면 밥도 혼자 차려 먹기 힘들고, 답답한 마음을 풀 곳이 없다 보니 자꾸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남편을 향한 화는 점점 커져갔고 화를 내면 낼 수록 더 우울해졌다. 


‘아. 내가 원했던 결혼 생활이 이게 아닌데. 내가 원한 엄마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며 자제하라고 했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고 나보다는 괜찮은 인간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고 깊은 공감을 했다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같은 글을 읽고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들은 저마다 다 달랐다. 그 반응들이 재미있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댓글과 메시지에서 공감하고 위로를 얻기도 했고 가끔은 화가 나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출산 한지 3주가 조금 지났을 무렵, 나는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 우울감을 극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그래! 한판 신나게 놀자! 좀 더 화끈하게! 좀 더 은밀하게!’ 



나는 무리 지어서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목적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노는데 목적이 웬 말이냐 싶지만 어른이 되면 다들 노는 법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노는 게 단순히 앉아서 술 마시는 거나  잡담이나 수다 떠는 게 다인 줄 아는 어른들과 놀고 나면 이상하게 집에 돌아오면 허무하고 공허할 때가 많다. 차라리 사람들 만나지 말고 집에서 책이나 읽을 걸, 그림이나 그리고 놀 걸. 시간이 아깝고 돈도 아깝고.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 만나는 게 재미가 없어진다. 쉽게 피곤함을 느끼고 기가 빠져서 다음날은 꼬박 충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눈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런 만남이 목마르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영혼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출산 후 집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너무나도 고파있었다. 그런데 아무나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영혼이 편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싶었다. 여자로서 느끼는 이 고통을 함께 나누고 기쁨도 함께 나누며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곳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었다. 내 안의 분노의 에너지를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서 내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내 영혼을 살리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지금 당장 엄마로서 가장 필요한 에너지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일을 벌이기로 했다.


사실 내 힘으로 하기에는 이번 찌찌 쇼는 무리가 있었다. 한 달 동안 준비를 하면서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줌 미팅을 하면서 회의를 하고 의견을 주고받고 준비를 해나갔지만 처음에 같이 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같이 못하게 되면서 힘이 빠져갔다. 그냥 한번 놀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부담감은 커져가고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가 없어졌다. 자꾸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 이걸 왜 해야 되는 거지?’ ‘ 누굴 위해서 해야 되는 거지?

그 사이 박원순 시장의 안타까운 죽음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여자로 살면서 겪었던 더럽고 역겨웠던 기억들이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의 고통과 함께 오랫동안 묻어왔던 그 기억들이 불현듯 물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대한민국 수많은 여성들이 그 고통으로 함께 울부짖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았고 아파했고 슬퍼했고 힘들어했다. 


그때 나에게 한 친구는 여신은 제사장의 역할도 한다는 말을 했었다.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사람. 나만의 기도가 아닌 우리의 기도를,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그리고 나는 그날 출산한 후 처음으로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고 잠시 동안 앉아서 숨을 고른 후 만다라를 그리면서 기도를 했다. 내 힘이 아닌 당신의 힘으로 이끌게 해 달라고. 


그러자 든든한 여신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의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이. 그리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냐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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