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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Sep 11. 2020

시 절 인 연

모든 인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시 절 인 연

감기 몸살인 줄 알았는데 마음의 몸살이 걸렸더랬다. 날씨가 추워져서 몸이 아픈줄 알았는데 영혼이 시려서 마음에 병이 와버렸다. 만사가 귀찮고 짜증이 나고 무거운 마음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감기 핑계삼아 숨어있었는데 어제 저녁 친구의 마음에 안부를 묻는 전화에 목구멍에 걸려있던게 툭 하고 튀어나왔다. 꾸역 꾸역 삼켰던 감정들이 구역질을 하듯 토해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감정을 배출하라고 노트에 휘갈기면서도 사람 마음이란게 참. 내 마음의 언어를 왜곡하고 굴절하는 사람 때문에 힘들다가도 내 마음을 언어를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때문에 힘이 생긴다.

어쩌면 힘을 들이는 관계와 힘을 들이지 않는 관계 사이에는 존재의 여부가 있는거 같다. 존재 자체를 인정하느냐, 아니면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의 역할로 바라보느냐. 내가 나 일수 있도록 자유를 허용하는 관계, 내가 사라지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며 조종하고 억압하는 관계. 그 사이에는 미묘한 힘들이 움직인다. 그 힘을 많이 들일수록 관계는 힘이 들어간다. 건강하지 않은 관계이다.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스럽다. 결국 자연스럽지 않는 것은 생태계를 교란시키거나 파괴한다. 인간이 욕심으로 인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본성이 사라지면 본질을 보는 눈도 잃어버리고 우리 자신도 잃어간다. 창조하는 자는 생명력으로 삶이 피어나지만 파괴하는 자는 자기 파괴로 부터 주변사람과 존재들까지 어둠으로 잠식시켜버린다. 그래서 관계를 신중하게 맺어야 된다는게 어른들이 하는 말씀인지도- 함부로 맺는 관계 때문에, 섣부른 관계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던가. 특히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갑자기 호감을 표현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이제는 겁이 난다. 달콤한 말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 그 달콤함안에 독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독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가까워졌더나 그 독을 먹었거나. 독을 빼는데는 그만큼고통이 뒤따르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참 어리석다.

며칠을 누워있는 동안 남편은 아무말 없이 집안일과 아이를 돌봤다. ‘괜찮냐’는 말한마디 없는게 내심 서운하다가도 아무말 없는게 고맙기도 하다가 이게 또 고마운 일인가 심술이나기도 했다가. 혼자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왔다 갔다 이리저리 널뛰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언제나 참 평온하다. 하지만 마음이 어때라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게 참 어려운 사람. 서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인간이 같이 산다는게 가끔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투덕 투덕 거려도 우리는 한자리에 다시 앉아 얼굴을 마주보며 밥을 먹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부의 인연은 정말 대단하고 대단한 일인 것 같다.

바람이 차가워지면 생각나는 향이 있다. 나에게는 영혼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향이다. 오늘은 집 안가득 짜이향이 퍼지도록 생강과 계피를 잔뜩 넣어 한참동안 끓인 깊은 맛이 나는 짜이를 홀짝거리면서 천천히 음미하며 고요함 속에서 옴마니반메흠을 들었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순수했던 사람들의 미소도 떠오르고 나에게 마음을 베풀었던 수많은 사람들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히말라야를 한달동안 걸으면서 했던 그 기도가 떠올랐다.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던 나를,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나를,
이렇게 한곳에 머무르게 하고 다시 중심을 잡게 해주려고
나와 당신이 연결되었구나. 그리고 오늘부터 새로운 기도를 시작했다. 당신을 만나게 해준 신께 감사드린다고-

수많은 당’신’을 통해 나는 ‘신’의 손길을 느낀다.
그렇게 아픔 속에서,시련 속에서, 고통 속에서, 고난 속에서
나는 당신을 깊게 느끼니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을. 그렇기에 나는 어둠이 아닌 빛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모든 인연에는 그렇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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