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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Oct 01. 2020

명절이 행복하게 기억 됐으면 좋겠어.

해피 추석!

얼마 전에 시 아버님이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다행히도 병원으로 빨리 이동해서 치료받고 금세 회복하셔서 추석 전에 퇴원하셨지만 출산 후 나를 위한 배려인지, 어머니 본인도 평생소원이었던 차례상을 안 차리고 싶으셨던 건지 결혼 후 첫 추석은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지나가는 중이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 전에 찾아뵀을 때 차례상 차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교회를 다닌다고 하셨다. 이건 며느리한테 안 물려주고 싶다고. 그런데 아버지 고집으로 한 평생 혼자 음식 준비를 하시면서 정 씨 고집에 질려버렸다면서도 정성껏 준비한 귀한 음식들을 차례상에 올리신다. 그리고 아버님이 절을 하실 때 혼자 방에 들어가셔서 예배를 하시는 모습이 참 흥미로웠다. 혼자 속으로 ‘어떻게 하기 싫은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실 수가 있지? ‘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던 친할머니 때문에 우리는 명절 때 차례를 지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가족들과 함께 먹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셨고 나는 엄마 옆에서 전 붙이고 이것저것 무언가 만드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했다. 그럴 때마다 시집가도 되겠다며 할머니도 작은 어머니도 칭찬을 하셨지만  반항심 가득했던 중학교 시절, 나는 왜 전 잘 부치는데 시집가야 되냐면서 버럭 성질을 냈었다. “ 나 시집 안가!”

살면서 전통적인 차례상 차리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다. (아 이놈의 호기심) 그래서 오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작년에는 결혼 전에 남편 집에 놀러 갔다가  몸도 성치 않은 일흔 넘으신 분이 혼자 음식 준비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두 팔 걷어 부치고 일을 했었다. 그냥 시어머니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여자로 너무 안 돼 보여서. 누가 시킨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한 일이기 때문에 즐겁게 일 했었다.

눈치가 빠른 덕에 남의 집 부엌에서 알아서 척척 일을 잘하니까 시어머니도 신이 나셨는지 음식 준비하는 내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셨다. 시 어머니한테 잘 보일 생각도 이쁨 받을 생각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즐거웠다.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맛있는 음식 준비해서 같이 먹는 것을 제일 행복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 시키지 않으면 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하지 않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반나절을 같이 보내고 나니 꽤나 피곤했는지 집에 오자마자 뻗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올해 추석은 점점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몸도 성치 않은데 작년처럼 하루 종일 전 붙이고 밥 상 차려야 되는 상황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어머니도 몸도 안 좋은데 또 어찌 모른 척 하지. 혼자 생각만 많아졌다. 그런데 시 아버님이 쓰러지셔서 모든 고민이 무색해졌다. 그냥 넘어가려다 어제 하루 종일 마음이 편하지도 않고 추석 명절에 맛있는 음식도 같이 나눠 먹고 싶어서 늦은 저녁에 장을 봐서 전을 붙이고 내 평생 처음 갈비도 사고 재고 비싼 갈치도 샀다. 내가 어머니 아버님한테 밥 상 차릴 일이 얼마나 많이 있겠냐 싶어서. 넉넉하게 전을 만들어서 작년에 아픈 어머니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셔서 보기만 해도 쓸쓸해 보이는 앞 집 형제들에게도 전했다. 계란 세 판을 나눈 윗 집에서는 탕국 한 솥이 내려왔고 앞 집에서는 비싼 사과가 돌아왔다. 그냥 집에 있는 거 조금 나눴을 뿐인데 따듯하고 환한 웃음도 함께 전해질 때의 이 기분이 참 좋다. 인간답게 사는 거 같아서.

넉넉하고 자비로운 마음이 흘러 흘러넘쳐서 미운 마음, 서운한 마음, 속상한 마음, 억울한 마음, 화나는 마음은 다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난 더 많이 웃고 싶고 즐겁고 싶고 설레고 싶다. 평생 우울하고 외롭게 보냈던 명절 연휴, 한별이에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 추석은 풍요니까! 앞으로 그렇게 만들고 싶고 그렇게 한별이에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 엄마가 명절에 많이 웃고 음식 하는 것을 즐거워했고 이웃과 가진 것을 나눴다는 것을 기억하렴. 그럼 더 많은 것이 너에게 돌아온단다. ‘

진짜 다들 해피 해피 추석!  

제 마음이 풍요롭고 넉넉하게, 온유하기를.

한별이 태어난 지 4개월 되는 날.
네 덕에 엄마는 조금 더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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