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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Dec 11. 2020

남편의 생일상

행복 레시피 | 다른 사람을 웃게 해 주면 내가 웃게 돼.



결혼 전에 두 번의 생일을 함께 맞이했지만 결혼 후 남편의 첫 생일날.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날, 참 신기하게도 남편의 음력 생일과 나의 양력 생일이 같은 날이었다. 우리는 음과 양이 만나는 날, 태양과 달이 만나는 날이라며 신기해했었다. 해를 품은 달처럼. 커다란 케이크와 꽃다발 그리고 와인을 사 왔는데 나는 다음부터는 먹을 사람 없으니 케이크 같은 건 사지 말라고 했고 꽃다발도 이렇게 큰 건 필요 없다고 했다. 집 간장과 마트에서 1년을 족히 먹을 미역을 사 왔는데 남편의 손맛 ( 그때는 남자 친구)을 믿지 못해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겠다고 일산 집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쓸데없이 현실적이 되었고 남편의 사기를 꺾어놓았다. 뭐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없었으니까. 두 번째 생일날에는 임신 기간이었는데 임신 초기라 기운이 많이 없어서 먹고 싶은 거 사주겠다고 하고 갈빗집에 갔는데 입덧 한번 없던 임산부가 그날은 갈비 맛이 역해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며 보냈다.


그리고 오늘 결혼 후 남편의 첫 생일. 어제저녁 엄마는 정서방 생일이라며 미역국 맛있게 끓여주라고 하셨다. 외할머니도 남편 생일상을 잘 차려줘야 잘 산다고 엄마한테도 시켰다면서. 나는 매일 생일날처럼 잘 차려준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요즘 아침상은 저녁에 끓여놓은 국만 데워서 남편 혼자 (정말) 대충 챙겨 먹고 나갔다. ( 그래서 요즘 얼굴을 보면 한 5년은 더 늙은 거 같다.) 내가 안 챙겨주면 본인이 잘 챙겨 먹을까 싶어서 아침 주방 파업했는데 정말 잘 챙겨 먹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매일 내가 똑같은 거 먹기 싫어서 부지런 떨 뿐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아무 문제없는 남편. 근데 그 모습이 내가 안쓰러워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 결국 이게 내 팔자.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 한테 생일 선물을 받아본 적도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해본 적도 없단다. 필요한 것을 사달라고
떼를 써본 적도 없고 필요한 것도 없었다는 아이. 그렇게 자란 아이는 지금도 단벌신사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아무 문제없는 미니멀리스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것도 입혀보고 저것도 입혀보고 상대가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게 신난 거 같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가정환경과 경험을 하고 자란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 배우자를 대하고 육아를 하면서 부딪히고 갈등이 생기고 다툼을 한다. 때로는 이렇게도 몰라주나 싶어서 너무나도 미우면서 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애잔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살면서 그렇게 노력하는 사이가 가족 말고 또 있을까. 그렇게 나의 밑바닥과 상대의 밑바닥을 마주하면서도 다시 함께 걸어가기 위해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이가 부부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굳이 스트레스받으면서 힘든 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없고 애를 쓰면서 맞춰가는 것보다는 혼자 지내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사는 게 더 편해졌다. 사람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사람을 점점 만나지 않으면서 감정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기능이 점점 퇴화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혼은 쉽지만 결혼 생활은 어렵다. 아이는 너무 이쁘지만 육아는 힘들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힘들었을 것이고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상담을 받고 있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보고 몰랐던 나를 발견하며 남편도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이 나는 힘든 시간을 겪고 이겨내는 힘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분명 이 시간도 지혜롭게 잘 이겨낼 거라고. 나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서연 씨는 잘 웃는 사람이에요. 많이 웃어요.

남편이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할 때 나는
“ 나 많이 웃게 해 줘”라고 대답했었다.

사실 많이 웃게 해 줄게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수도.


그런데 나는 알았다. 내가 남편을 웃게 해 줄 때도
내가 많이 웃는다는 것을.

엄마가 삼복더위에도 아빠의 생일상을 잘 차려줘서 아빠가 승승장구한 건지 아빠가 처복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남편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정성껏 아침 밥상을 차린 후 남편을 깨웠다.

그리고 한참 동안 우리는 말없이 안고 있었다.
한별이도 오늘은 아침 준비하는 동안

아빠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게

어찌나 고맙고 이쁘던지.

오랜만에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아침이다.

언제 깨질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평화협정해야지.


남편 저녁상은 뭘 해줄까나.


시장 보러 가야겠다.

생일 축하해.

남편말고 내편해 평생.


그리고 내가 오빠랑 같이 살아주는게

큰 선물이지 뭐. 그치? 하하.


우리 내 년에는

올해보다는 조금 더 사이좋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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