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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Dec 14. 2020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겨울 날의 광합성

집콕하며 겨울을 잘 견디는 법


남편에게 테라스에 두었던 화초를 옮겨달라고 부탁했는데 제때 옮겨 주지 않아서 결국 냉해를 입고 시금치 데친 듯 다 시들어버렸고 집에서 산후조리할 때 큰 위로가 되었던 초록이들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잔뜩 안고  봄이 오면 다시 새 잎이 올라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죽은 잎사귀들을 결국 다 잘라버렸다. 초록이들 볼 때마다 울상이었는데 남편은 어제 하루 종일, 주말을 베란다 청소와 정리에 반납하고 나의 1평짜리 작업실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이마 빡이 타 들어갈 정도로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서 이 겨울, 일광욕하기 좋을 듯하다. 오늘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자는 동안 아침 산책을 하고 왔다. 따뜻한 집에 들어와서 커피 한잔 마시는데 감사함이 차오른다.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추운 새벽 공기,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을 보면서 뭔가 위안을 얻는 겨울 아침. 귀하고 귀한 겨울 햇살.

문득 히말라야 트레킹 할 때, 가장 높은 곳을 올랐던 그날이 떠올랐다. 5000미터가 넘는 정상을 가던 날, 전 날 산사태 때문에 몇 명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행여나 산사태 올까 봐 해가 뜨기 전에 산행을 시작했다. 새벽 세시 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내 머리 위에 달린 작은 랜턴 하나만 믿고 걸었다. 몇 도 인지는 모르겠지만 등산화 안에 핫팩을 넣은 발가락도 시릴 정도로 추운 추위였다. 그날 나는 해가 뜨기를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해가 저 멀리서 올라와서 어둠이 걷히던 순간. 너무나도 감사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잠깐 산책을 하는 동안 진안에도 약간의 눈빨이 약간 날렸다. 그때 그 시간, 밖에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기쁨. 추운 겨울 이불 밖을 박차고 나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이렇게 잠깐이라도 혼자 걷는 게 나를 살리는구나 싶다. 그래도 이 겨울 틈틈이 걷고, 틈틈이 햇빛 듬뿍 마시며 잘 보내봐야지. 봄이 오면 한별이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겠구나. 같이 산책하는 그 날의 기쁨을 미리 상상해본다. 엄마도 아이도 이 겨울 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광합성을 하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광합성의 빛이, 전자파를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전자파의 빛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나는 얼굴에 주근깨가 생겨도 기미가 생겨도 햇빛을 온몸으로 흡수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별이도 가끔은 그 햇빛 때문에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는거 같기도 하다. 햇님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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