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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Dec 21. 2020

결혼 1주년 기념일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특별하지 않은 날은 없다.

늘어지게 자고 싶은 주말 아침. 하지만 아이는 주말과 상관없이 일곱 시에 기상한다. 옹알옹알 소리를 내며 한참을 혼자 잘 놀더니 자기 좀 봐달라고 옹알 소리가 점점 커진다. 겨우 눈을 뜨고 바라보니 범퍼 밖을 넘어 우리가 자고 있는 곳으로 기어 오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한참을 지켜보며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한 아침. 랜선 대림절 미사를 유튜브로 들으며 나의 친구 구환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1년 전 전주 전동성당에서 결혼식 하던 날이 떠올랐다.

결혼식을 할까 말까 엄청 고민을 하다 이왕 할 거면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하자고 마음먹고 12월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준비했었다. 미친 스케줄 속에서도 참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 의도 움이 매 순간 느껴지며 식장에 걸어 들어가는 순간 그 울컥함이 올라와서 결혼식 내내 울었던 나의 결혼식. 그리고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하게 기도했던 나의 혼인 성사. 언제나 그랬듯, 나는 당신께 맡기겠다고 기도했다. 당신이 원하는 길로 나를 인도해달라고.

그날 혼인 미사 때 성가대가 불러주던 노래도 마침 같은 노래였다.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엄마의 기도로 자란 나는 기도에서 오는 힘을 느낀다. 어젯밤 넷플릭스에서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크리스마스와 참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깊고 깊은 사랑과 자비에 대해.

그리고 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느껴진다. 이 모든 게 그분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내가 엄마로 살아가면서 더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시게 하려는 그분의 계획.

결혼식이 끝나고 한 달 동안 발리에서 신혼여행에서 신나게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 우한발 코로나가 터져서 공항은 난리가 났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우리의 삶이 이토록 달라질지 누가 알았을까.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여행은 꿈을 꾸기 힘들어졌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일상도 힘들어졌다. 크고 작은 꿈과 계획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살고 있는 세상도 바뀌었고 내 안의 세상도 완전히 변화했다. 온전히 나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왔던 내가 이제 ‘우리’의 행복이 가장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함께 행복한 순간을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그게 다시 나의 행복이 되니까.

1년 전 많이 웃고 살자고 약속했던 결혼식날. 좀처럼 웃을 일 없는 힘든 시기에 가만히 집에서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많다는 게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나른한 주말 오후, 욕조 물에 뜨거운 물을 받고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세 식구가 반신욕을 하고 나와서 다 같이 다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다. 특별할 게 없지만 특별한 주말이다. 빵빵하게 재 충전하고 남은 12월 잘 마무리하고 잘 놀아야지.

다 죽어가던 초록이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꽃 하나가 폈다. 한별이는 드디어 한발짝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베란다에 두어 냉해를 입고 다 죽아버린 초록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준 초록이, 이 추운 겨울을 버티고 하얀 작은 꽃이 수줍게 피었다.


꽃말을 찾아보니 ‘당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남편, 안 버릴게. ^^;;



결혼 기념일에 피어난 꽃이 엄청난 메세지를 
씨앗에 품고 찾아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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