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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23. 2016

<중경삼림>

영화에세이

유통기한이 다 됐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더 잔인할 뿐. 당신은 신선한 것을 찾기 위해 나를 떠났다. 상한 걸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당신의 말에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유통기한은 본래 여기까지였다. 나는 신선한 것에서 상한 것이 되었다. 상한 것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또 다른 유통기한이 시작되겠지. 그래 봤자 맨 앞열에 진열된 우유와 맨 뒷열에 진열된 우유의 유통기한은 고작 며칠 차이. 나는 또 마음이 상할 것이다. 이젠 사람을 만날 때 유통기한부터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유통기한은 몇 년일까, 아니면 고작 몇 달일까. 어떻게 고작 숫자 따위가 세상의 모든 것에 한계를 정해놓으려 할까. 우린 고작 숫자 따위를 넘지 못한다.


그와 헤어진 지 36시간째, 내 집에 네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함께 여행 가서 찍은 사진들, 너와 함께 보려고 샀던 블루레이, 10번의 시도 끝에 뽑기에 성공한 인형 이 모든 게 그대로 있는데 너만 없다. 그와 헤어진 지 50시간째, 슬리퍼도 칫솔도 모두 두 개씩 짝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헤어진 지 82시간째, 나는 네가 돌아올까봐 저녁을 늘 집에서 먹는다. 네가 잔소리한 것들도 모두 바꿔놓았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당신의 변심이다. 그와 헤어진 지 99시간째, 차마 몇 년 간의 추억을 내 손으로 정리하지 못한다. 당신과 헤어진 지 504시간째 마침내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유효기간도, 하루 24시간의 유효기간도 빠르게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금세 잊혀지고 없어진다. 많은 것들이 내 삶에 들렸다가 빠르게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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