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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Oct 03. 2016

<건축학개론>

영화에세이

사실 수업은 하나도 안들렸다. 네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고, 네가 뒤돌아보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네가 내 뒷자리에 앉은 날에는 괜히 낡은 머리끈이 신경쓰였고, 뒷자리로 프린트물을 넘기는 게 뭐라고 손까지 떨었다. 네가 다른 이성이랑 있는 걸 보면 그 날은 기분이 엉망이 됐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너때문에 마음이 들쑥날쑥했다. 후줄근하게 입고서 잠깐 집 앞에 나왔을 때는 이상하게 꼭 너와 마주쳤고, 일부러 신경써서 간 날에는 네가 오지 않았다. 한 번 용기내려면 수백번 고민하고 망설였으며, 매번 돌아서고 나서 후회했다. 머릿 속에선 이미 너와 사귀고 헤어진 적이 수두룩했지만, 현실은 떨려서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부족해보였고, 너는 내게 너무 커보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떠올랐다. 그때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았는데, 어느새 네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바래져 있었다. 사실 생각하면 창피한 기억 뿐인데, 그때처럼 때묻지 않았던 시절도 없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렸고, 꽃이 피면 기뻐했다. 화장하는 법이 서툴어 감정에서도, 사랑에서도 늘 민낯이었다. 넘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밤마다 종이에 네 이름을 가득 채웠다. 삐뚤빼뚤 써내려가던 마음 그것이 내 사랑의 첫번째 기록이었다. 처음 만났던 사랑, 일생에 한 번 뿐인 사랑, 깨끗하고 순수했던 그 이름 바로 첫사랑. 미련했던 만큼 나는 너를 많이도 좋아했다. 잘보이려 할수록 실수만 연발하던 나는 서툴었고 사랑에 미숙했다. 사소한 것에도 괜한 설렘과, 괜한 오해와, 괜한 착각으로 밤잠 설치던 그 때 나를 바라보는 별들은 수줍고 우주는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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