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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Nov 13. 2016

<피아니스트>

영화에세이

윤동주 시인이나 허준 선생은 전쟁통에도 시를 쓰고 동의보감을 썼다. 종이와 펜은 어디서나 품고 다니며 자신의 생각을 옮겨적기에 요란스럽지 않지만, 음악은 다르다. 음악가는 적군들에게 악기를 빼앗기거나 악기를 팔 수밖에 없을 정도로 궁핍해지거나 혹은 악기를 붙들고 있어도 작은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전쟁은 가족을 빼앗아 가고, 삶을 빼앗아 가고, 악기를 빼앗아 감으로써 음악가의 영혼을 빼앗아 갔다. 예술가는 대게 예술을 하는 행위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절감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크게 작용할수록 삶의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할 수 없는 삶이야말로 전쟁이 음악가에게 선사한 잔인한 역사이다.


사회에서 인정받던 예술가도 전쟁터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예술밖에 없는 예술가는 유능한 인간에서 가장 무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이런 상황 속에 인간답지 못한 삶을 연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명예롭게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그것이 불가피하다면 거기서 며칠을 더 사느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절망 속에서 오직 죽음을 끝으로만 보는 시각이고, 끝을 다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명예롭게 죽으려고 할 때 치졸하게 도망친다. 전쟁이 앗아간 영혼을 되찾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아, 음악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음악가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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