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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Dec 16. 2016

<계춘할망>

영화에세이

바다가 하늘을 품는다는 당신의 말처럼, 당신은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었다. 특별히 예쁘고 착한 짓을 하지 않아도 그저 나라는 존재를 믿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다. 거친 세상살이에 지쳐갈 때면 언제나 내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고, 그런 당신 앞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철부지 손주가 되고 싶었다. 어린애처럼 당신의 포근한 품에 꼭 안겨 투정부리고, 당신의 무릎에 누워 세상 근심을 모두 잊은 채 잠들고 싶었다. 당신은 냉장고를 뒤져 온갖 음식을 꺼내오고도 내게 더 좋은걸 주지 못해 아쉬워했고, 안 받으려는 용돈을 기어코 꼭 쥐어줘야 맘 편해 하셨다. 언제나 내게 과분하고, 조건 없는 내리사랑. 맑고 빛나는 마음을 가진 당신 곁에 있으면 세상이 내게 준 어둠도 순수한 빛으로 변했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서 함께했으면 좋겠는데, 야속한 세월은 당신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수많은 시련을 겪으며 고생한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고작 나라는 게 나는 이유없이 죄송하기만 하다. 힘든 건 당신의 몫, 어렸던 나는 그저 당신의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다. 성장한 뒤에는, 당신이 나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시간에도 나는 당신에게 연락 한 번 하는 게 어려웠다. 나 살기 바빠서 소중한 걸 잊은 채, 당신이 내 마음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에 반해 당신이 나를 쓸쓸히 기다리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당신이 내게 바랬던 것은 그저 아무탈 없이 자라길 바랬던 티 없는 마음 하나 뿐이었다. 너무 소탈하기만 한 당신의 소망에 나는 뒤늦게 당신의 삶, 당신의 주름살, 당신의 지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한 적이 없어도 전혀 섭섭해하지 않았던 나의 할머니, 이제는 내가 영원한 당신의 편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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