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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Dec 23. 2016

<플립>

영화에세이

누군가 나를 좋아했었다. 그땐 너무 어려서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리 대단한 것인줄 몰랐다. 나를 좋아하는 그 애에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애는 한참을 엎드려서 울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그 애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게 마음이 좀 쓰였지만, 잠깐 뿐이었다. 그런데 그 애는 평소처럼 나를 대하는 게 어려워보였다. 여전히 아픈 듯 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 적이 없다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대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었다. 그 애에게 유독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애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 애는 나보다 감정에 더 진실되고 성숙했다.

   

어른들의 조언이, 너라는 경험이 진정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매번 식물을 키울 때마다, 얼마 못가 다 시들곤 했다. 남들은 방울토마토며, 고추며, 깻잎이며 잘만 키우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문득 이성을 좋아해보지 못해서 네 감정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처럼 예쁜 마음이 부족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을 가꾸지 못한 것도 그런 마음이 부족해서였다. 너는 무지개처럼 오색찬란했고, 다만 내가 너를 담을 그릇이 부족했다. 너로 인해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마음은 결과를 떠나서 그 자체 만으로도 큰 경험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화분에 꽃을 심고, 예쁜 마음으로 너를 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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