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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설탕 Apr 24. 2018

몸을 보다

몸에 갇힌 사람들을 읽고..

식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내려다보며 나는 주저한다. 

‘이 밥 어느 정도 먹어야 되나? 조금 덜을까? 먹지 말까?’ 

하얀 밥은 아무 말이 없는데, 밥 앞에서 나는 매일 시끄럽다. 아침 공복에 잰 몸무게, 낮에 먹은 라떼와 쿠키의 칼로리를 떠올려보고, 내 얼굴의 부피감도 점검해본다. 내 밥은 두 숟갈 덜어서 먹고 8살 딸아이가 먹다 남긴 밥을 버리기가 아깝다는 이유로 더 먹었다. 나는 하루 세 번 이상 식탁 앞에서 자기검열을 하고 거울을 보며 참회록을 쓴다.   

지난 가을 이후 몸무게가 꾸준히 올랐다. 덩달아 내 몸 덩어리에 대한 불안함도 상승추세다.  볼에 살이 붙어서 얼굴 크기가 커지는 느낌이 들었고, 허벅지도 더 두꺼워진 것 같았다. 뱃살도 늘어졌다. 그래서 올해도 단식을 하려고 했다. 5년 전부터 일 년에 한번 씩 단식을 했다. 스스로 몸을 돌보기 위해서는 단식만큼 좋은 게 없었다. 10일 정도 단식을 하고 나면 살도 적당히 빠지고 속도 편해졌다. 내 몸을 위해 장엄한 결단을 내리고 식구들에게 음식을 거부한다고 선포할 땐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올해는 내 몸을 챙기는 방법이 단식 말고는 다른 것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단식을 하면서 몸을 비우고, 끝나고 나서 음식을 탐하고, 다시 조금씩 불어나는 몸을 보며 절제하지 못한 나를 탓하고.. 그렇게 또 일 년이 가면 다시 단식을 하고.. 몸과 먹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수잔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을 읽었다.   


“그녀의 폭식을 까다로운 감정을 수습하는 방법이라고 보는데 그치지 않고, 감정적 보호막이 전혀 없는 몸을 아늑하게 감싸는 방법이라고 이해했다. 거짓된 자기는 지속적인 생기를 느낄 수 없다. -수잔 오바크, 『몸에 갇힌 사람들』, 김명남, 창비, 142쪽”  


이 구절이 계속 맴돌았다. 감정적 보호막이 없는 몸을 음식이 아늑하게 감싸준 다는 것. 공허할 때 먹는 들기름 넣은 고추장 비빔밥, 국물 떡볶이, 생크림 케잌, 알싸한 맥주. 슬프거나 피곤할 때 먹는 초코 다이제스트, 눈을감자, 소세지빵, 카레덮밥, 달고 쓴 소주. 기쁠 때, 가슴 벅찰 때, 남들이 칭찬해줄 때도 난 음식을 찾았고 먹을 때 마다 갈등 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몸의 소리 같았고 마음의 소리 같았으며, 내 몫으로 놓여진 음식은 내가 처리해야 할 몫으로 여겨 입으로 음식을 착실하게 넣었다. 음식은 내 몸을 이불처럼 감싸 주기도 했고, 가시처럼 무차별하게 찌르기도 했다. 음식과 몸 사이에 감정이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었다.  

몸은 물리적인 존재다. 만질 수 있고 만져질 수 있다. 감정은 그 몸 안에서 일어나며 수시로 바뀐다. 만질 수 없고 만져질 수도 없으며, 노란색 이었다 금세 빨간색으로 변한다. 내 몸 안에는 엄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노동자로서, 소비자로서 기대와 욕망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내 몸은 뼈와 살로 이루어졌다. 수시로 변하는 감정이 깃들여 사는 우직한 장소 몸. 

그동안 나는 사회적 역할과 감정이 뭉쳐진 몸과 물리적인 몸의 도피처를 음식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용기내서 나의 슬픔, 공허, 우울, 기쁨과 같은 두루뭉술한 느낌을 더 들여다본다. 맛집 검색 보다 내 감정에 대한 사색에 시간을 내본다. 나는 왜 슬픈지, 무엇 때문에 슬픈지, 왜 기쁜지, 나를 마주해본다. 몸과 감정 그리고 음식을 그자체로 인정하는 연습을 한다. 예전보다 싱크대 앞에 서서 허겁지겁 먹는 횟수가 줄었고, 아이가 남긴 빵조각을 먹어치우지 않고 반찬통에 담아 놓는다. 식탁에 앉아 천천히 김밥을 먹으며 단무지, 오이, 당근의 조화로움을 느낀다. 조금 과하게 먹고 난 다음 부은 얼굴을 보면서 웃어본다. 음식을 음식으로 대하고 내 몸은 내가 평온하게 깃드는 장소로 나답게 가꾸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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