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귀영화2) 스크립터가 하는 일_촬영
촬영 직전 중요한 스크립터의 할 일 중 하나가 장비 반출하는 날 렌탈 업체에 가는 것이다. 촬영팀이 촬영 장비를 업체로부터 빼내는 날이 있는데 그때 감독님이 볼 모니터(인치, 몇 대가 필요한지), 픽스(스크립터의 기록용 장비), 테라덱(와이어리스를 위한 장비) 등등 무엇을 빼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필요한 것들을 요청했다가, 촬영 장비 빼는 날 장비 업체를 방문해 모니터룸 장비들을 확인하고, 빼내오는 것을 해야 한다(혼자 가는 게 아니라 연출팀과 함께 가는 거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나도 뭔가 전문적으로 잘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 으흐흐 그러나 나는 사실 하나도 잘 모른다(한 번 밖에 스크립터를 안 해봐서 다 까먹었다).
나는 S오빠(조감독님2), 연출부 막내와 장비를 빼러 갔다. 사실 내가 장비를 잘 몰라서 S오빠가 같이 가서 장비들을 봐주셨다. 이전에 P 스크립터 스승님께 모니터룸 장비 설명도 열심히 들었던 걸 상기하며 긴장한 채 하나씩 체크를 했다. 촬영팀과 픽스를 연결해서 촬영 테스트를 해보기도 하고, 고속 촬영도 해보았다(촬영팀이 귀찮아할 수 있지만 집요하게 해야 한다). 업체에서 내준 장비라도 업체는 몰랐지만 성능이 안 좋거나 뭔가 안 좋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이런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이 테스트는 엄청(곱하기 100) 중요한데 그 이유는 촬영날 어떤 이유로든 모니터룸의 모니터가 안 나오면 진짜 좇돼는 것이 바로 스크립터기 때문이다. 이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촬영은 곧 들어가는데... 옆에는 감독님, 뒤에는 피디님들, 배우들, (어떤 날은 심지어)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와서 의자들을 주르르륵 펴고 (작은 극장처럼) 모니터를 보기 위해 앉아 있는데... 모니터가 안 나온다? 그렇게 되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스크립터는 (조금 오버하자면) 사표를 써야 할 수도 있다. 그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드리기 위해 당시 찍었던 사진을 첨부한다.
나도 그런 얘기를 들었지만 사실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촬영 중 픽스가 자꾸 에러가 나는 일이 발생하고 진땀 빼며 촬영을 마쳤다가 휴차 때 장비 업체에(화내면서) 문제의 픽스를 보내고, 새로운 픽스를 받고 하는 과정들을 거치며 잘 작동되는(이왕이면 최신형) 장비를 애초에 가져오는 것이 스크립터가 편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촬영팀이나 업체에서 보기엔 예민보스 성깔 더러운 스크립터처럼 보여도 좋으니 깐깐하게, 하나하나 체크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모니터가 안 나올 때 수많은 눈동자들에게 "장비 업체가 잘못한 거예요!" 하고 변명하는 찌질이 스크립터가 될 순 없으니까.
첫 촬영은 대전 세트장 촬영이었다(대전 시설 베리굳~~). 세트 촬영의 가장 큰 장점은 모니터룸을 매번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스크립터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모니터룸의 위치를 잘 잡는 것인데 나 따위 초보는 그런 걸 알지 못하니 조감독님이 항상 모니터룸 위치를 알려주셨다(감샤감샤). 모니터룸 위치가 잡히면 스크립터는 모니터 세팅을 해야 하고, 그 옆으로 현장편집 기사님의 편집 장비가 붙는다. 그 옆으로는 (CG가 많은 영화일 경우) 큐테이크 팀이 장비 세팅을 하고, 맨 끝에는 사운드 기사님의 장비들이 위치한다. 그렇게 모니터룸이 만들어진다(꼭 일렬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모니터룸에 세팅되는 것들이 이 정도라는 거다).
우리는 투캠(A캠, B캠)을 많이 가서 모니터가 늘 두대였다. 픽스도 두대고. 이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사진을 하나 보여드리는 게 빠를 것 같아 당시 찍은 사진을 또 가져왔다.
이렇게 모니터룸 세팅을 연출부 막내와 함께 한다. 위의 사진은 세트장에서 세팅한 거라 뒤에 그린이 쳐져 있다(그린 뒤편에 우주선 세트등이 있었음). 모니터룸은 보통 촬영이 벌어지고 있는(카메라가 있고, 배우들이 있는) 그 장소에서 약간은 떨어진 곳에 위치시킨다. 가까이 설치했다간 카메라 앵글에 걸려 매번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면 모니터룸 스태프들이 엄청 귀찮아한다). 여튼 모니터룸 세팅을 하고, 연출팀 막내가 테라덱(무선 연결 장비)을 설치하거나 모니터 라인을 바닥에 깔아 놨다가 나중에 촬영팀 카메라에 연결하면 화면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세팅을 하고 나서 내가 한 일은 감독님 커피를 타 오는 거였다. 아니 요즘 시대에 아직도 커피 타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 하고 놀라실 수도 있지만 사실 이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음ㅋㅋㅋ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 오시면 항상 커피(카누 2개)를 타러 가셔서 사람들이 감독님 어딨냐고 물을 때 커피 타고 있다고 대답을 하게 되다 보니 그냥 감독님 일을 줄여야겠다 싶어 내가 타다 놓기 시작했다. 감독님은 (늘 그렇듯)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고맙다는 말을 매번(!) 하셨다. 그러고 나서 하는 일은 감독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날의 변동사항, 촬영 분량, 외국어 대사, 연결을 위한 의상, 분장, 소품 같은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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