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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영화 촬영, 그 전쟁의 시작(2)

(안부귀영화2) 물고 뜯는 인간관계

by 초별

*경고: 이 글은 (특히나) 스크롤의 압박이 있습니다.


도박판, 공사판, 영화판.

영화판이 왜 ‘판’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척 해 본) 결과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온갖 미친 일들이 벌어지는 자리니까!


한 회차(하루 촬영 분량을 1회차라고 한다) 촬영이 끝나기 위해선 그 회차에 찍어야 할 분량(컷들)을 다 찍어야 한다. 폭풍이 휘몰아치듯 촬영을 하다가 그날의 목표 분량에 다 와가면 조감독은 외친다. “막컷입니다!” 그리고 연출팀에게 조용히 말한다. “슬바 해 / 빨바 하자” 슬바는 슬슬 바라시, 빨바는 빨리 바라시하라는 뜻이다. 바라시는 해체 작업을 한다는 뜻으로 영화판에서는 뒷정리 정도로 쓰인다(영화 현장에서 일본 용어들을 많이 쓴다는 건 이미 많이들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막 컷을 촬영하고 “OK입니다!”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때서야 모두가 한숨을 후~ 내쉰다. 그만큼 촬영 현장은 촬영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촬영 끝났다는 말이 들리는 그 순간까지 전쟁이다 전쟁.


촬영 시간은 제한적인데 찍어야 할 컷이 많다는 것. 이것은 그 어떤 훌륭한 감독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다. 세계를 (정말로) 휩쓴 봉감독님 정도면 한 회차에 원하는 분량을 정할 수 있다고 한다(그러나 아마 봉감독님이 이 글을 본다면 억울하실지도..?) 카더라지만 봉감독님은 한 회차에 10~20컷 못 되게 찍는다는 소문을 들었다…(기생충 현장에서 일을 한 스태프가 말해준 것이라 꽤 정확한 카더라다). 캬… 그렇게 촬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돈(제작비)에 따라, 감독의 인지도와 성공도에 따라 한 회차에 찍어야 하는 컷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 한 회차에 평균 28-30컷 정도를 찍었고 좀 빡센 날은 30컷 중후반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저예산 영화의 경우? 40컷을 넘기는 경우도 꽤나 있다(그 말은 정말 촬영 시~작!부터 끝! 까지 숨도 못 쉬고 컷을 딴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현장이 70컷을 찍었다면? 그건 절대 가면 안 되는 비인간적인 현장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 한 컷 한 컷 카메라 롤이 돌아가는 그 순간이 다 돈이고 시간(=돈)이니까. 그러나 매 테이크마다 각자 자기가 준비한 것에 있어 아쉬움이 발생한다. 테이크를 한 번 갔는데 감독이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수정을 요구할 때도 있고, 감독은 괜찮은데 배우가 자신의 연기가 만족스럽지 못해 다시 갈 때도 있다. 또 감독, 배우가 만족했는데 이번엔 촬영감독이 자신의 기술적인 부분에 아쉬움이 있을 때도 있고, 그 삼박자가 기적적으로 잘 됐는데 조명이, 미술이, 보조출연이, 사운드가, 아니면 저번 글의 예시처럼 스크립터의 연결 실수로 등등 모든 영역에서 다시 가야 할 이유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할 컷으로 오케이를 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모두가 만족하기 위해 계속 다시 테이크를 간다면(다시 찍는다면) 총괄 피디가 용가리처럼(?) 으아아아 하면서 화를 낼 것이다. 그렇게 계속 다시 찍다가는 정해진 시간 안에, 회차 안에, 날짜 안에 촬영을 다 못 끝내고, 그렇게 되면 추가 촬영이 필요하고,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스태프들에게 또 페이가 나가야 하고, 결국 모든 것은 추가 예산이 필요한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적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제일 머리 꼭대기에 있는 헤드급(각 부의 총책임자들: 촬영감독, 미술감독, CG, 사운드, 의상, 분장 등등 총책임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자기 팀에서 NG를 내지 않기 위해 밑에 사람(조감독)들에게 레이저 빔을 쏘아댄다. 그러면 각 팀의 조감독들이 그 레이저를 받으며 또 다른 광선을 쏘아댄다. 이번엔 팀원에게. 그렇게 자신의 조수들을 또 괴롭힌다. 그러면 연출팀의 경우 연출 세컨, 써드 등등 순서대로 이제 혼나면서 빠릿빠릿, 번개돌이처럼 움직이면서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두 눈 똑바로 뜨고 긴장한 채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뾰족뾰족, 여기저기 가시 돋은 먹이 사슬이 굴러가는 곳이 현장이다.


나는 회사 생활은 안 해봐서 잘 모르긴 하지만 이미 세상은 자본주의(돈)로 굴러가고 있으니 거의 모든 곳이 다 영화판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유독 이 판이 판이라고 불리는 것인가? 다른 예술 세계도 판이라고 불리나? 미술판? 발레판? 뮤지컬판? 가요판? 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글을 쓰고 있다 보니 나도 궁금함이 생긴다. 원래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서론이 길어지고 있구먼(이렇게나 생각의 흐름대로 쓰고 있다니!ㅋㅋㅋ) 이 질문에 대해서는 <‘영화판’이라는 용어에서 ‘판’의 어원과 유래에 관하여>라는 영화과 대학원생 모선생님의 논문을 참고하시길 바라며… (개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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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편파적이고 제멋대로 해석한 영화제작 과정입니다. 혹시나 저를 아신다면 (제발) 모른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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