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귀영화2) 모든 것은 운이다
사전제작 프로그램은 6월쯤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12월까지 약 7개월간 시나리오를 개발해서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목표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나처럼 이미 초고를 가지고 있지만 좀 더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템에 대한 러프한 시놉, 트릿은 있지만 시나리오는 없는 사람도 있고 각자마다 상황이 다 달랐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두 자기가 하려는 아이템을 정하기 위해 시놉부터 쓰기 시작하고, 그다음 단계로 트릿, 그 후에 완전히 아이템이 확정되면 시나리오 단계로 넘어간다.
막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의 나는 시나리오까지 있는데 시놉 쓰는 게 무슨 대수냐 빨리빨리 써버리고 시나리오 수정을 많이 해야겠다며 오만에 차 있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시놉을 다시 정리해 보는데 이놈의 시놉이 안 써지는 게 아닌가! 왜냐면 엉터리로 썼던 초고(시나리오)의 구멍들이 뻥뻥!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놉을 수정하고 또 하고, 설정을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고 하면서 구멍을 메꾸기 위한 삽질을 시작했다. 아이템이 없었던 친구들이 단계를 밟아가며 차근차근 시놉을 써낼 때, 아이템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고, 이 이야기로 무조건 간다! 고 다짐했던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못 쓰고 계속 삽질만 해댔다. 오죽했으면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야, 너는 어째 화장실만 다녀오면 캐릭터 설정이 다 바뀌어 있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구멍이 너무 많아요… 이 구멍을 채우려다 보니 삽질만 하고 있네요…
삽질에 대한 명언이 하나 있다. 이 명언은 정규 때부터 들어왔던 것으로 내가 방 벽에 거대한 액자로 달아 놓고, 엉덩이에 대왕만한 문신으로 박아놓으며(응?)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긴 명언이다. 바로 “이 산이 아닌가벼~”가 그것이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꽁지교수님은 늘 말하셨다.
시나리오 쓰기란 산을 오르내리는 것과 같다. 내가 정복해야 할 산은 이 산이다! 하고 정상까지 힘들여 올라갔는데 꼭대기에서 보니 이 산이 아니다. 그러면 “이 산이 아닌가벼~” 하고 허허 웃으며 내려와 밑에서부터 다시 다음 산을 올라야 한다. 그런데 또 아니다? 그럼 또다시 “이 산이 아닌가벼~”하고 내려오면 된다. 그렇게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시나리오 쓰기의 방법이라고 하셨다.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산을 딱 하나 오르려 하는 것. 올라야 할 완벽한 산을 결정하려 하는 것이다. 게으른 우리는 고개를 쑥 빼고 산 밑에서 꼭대기를 쳐다보려 노력한다. 잘못된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괜한 헛수고를 하기 싫기 때문에. 그러나 아무리 꼭대기를 쳐다봐봤자,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무작정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산을 오르다가 “아 왠지~ 아닌 것 같은데”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도 도중에 내려오는 것은 금지다. 꼭대기까지 가봐야, 다음에 오를 산이 제대로 보인다. 교수님은 덧붙이셨다. ”실패도 습관이야. 자꾸 실패하는 습관만 들이면 계속 실패만 하게 돼. 그러니 성공도 가끔씩 해줘야 돼. “
이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항구에 정착된 배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이 얘기 역시 내가 가훈(?)으로 여기며 항상 머리에 이고 다니기 때문에(?), 이 타이밍에 다시 한번 얘기해야겠다. 시나리오 쓰기란 갑판에 구멍이 숭숭 난 채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를 출발시키는 것과 같다. 구멍이 너무 많게 느껴져 배를 출발시키지 못하고 계속 항구에 정차시켜 놓은 채 구멍만 막아대고 있으면 배는 영원히 출발할 수 없다. 구멍은 계속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일단 출발시켜 놓고, 어떤 구멍으로 물이 들어오는지 보면서 구멍을 열심히 막아줘야 한다. 이쪽저쪽 막아가면서 배가 마침내 어느 항구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건 무조건 성공이다. 구멍이 여전히 뚫려있을지라도. 그리고 만약 배가 항해도중 침몰했다 할지라도, 구멍을 막느라 항구에 정착한 채 출발조차 하지 않았던 배보다는 더 멀리 나왔으니 그것 역시 성공이다. 이 역시 사전제작과정 때 열정적인 수업과 멘토링을 해주신 작가님이자 선생님이 해주신 너무 소중한 말씀이었다(혹시 위 내용이 제 멋대로 한 해석이라면 죄송합니다 쌤들. 연락 주세요. 공이공-메롱메롱-전화노노)
나는 이 이야기를 (장난이 아니고) 매일 되새긴다. 왜냐면 나는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언제나 꼼수만 부리고 싶어 하는 게으른 닝겐이다. 산에 오르기 전 목을 길~게 빼고 이 산이 맞나 확인하고 싶어 하고, 출발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구멍을 메꾸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말들이 나에게 특히 명언이 된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이 산이 맞는지도 모르는데 땀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배가 침몰할지도 모르는데 일단 배를 출발시키고, 갑판의 구멍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 또한 정말 힘든 일이다. 힘든 일은 참 힘들다. 그래서 너무나 하기가 싫다(지금도 잘 안 하고 있다). 그러나 사전제작을 했던 7개월을 돌이켜 보니 그 힘든 걸 (처음으로) 조금 해봤던 것 같다. 어떻게 그 힘든 걸 하는지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시놉을 쓰면서, 트릿을 쓰면서 주인공의 배경과 직업, 상태를 수십 번씩 바꿨다. 주인공이 도둑놈이면 어떻게 이야기가 풀릴지, 주인공이 선생님이면, 우울증 환자면, 관계 속 피해자면, 소심한 남자면, 킬러면 등등 온갖 설정들을 다 넣어보며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악당도 마찬가지였다. 악당이 동사무소 직원이라면? 조폭이라면? 마을회관 이장이라면? 같은 킬러라면? 올라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그 모든 것들을 다 대입시켜 보고, 바꿔보고를 반복했다. 뭐 하나만 바꿔도 사건의 방향이, 이야기의 결이, 영화의 톤이, 장르가 다 휙휙 바뀌었다. 시놉을 쓰고, 트릿을 쓰고 다시 시놉, 다시 트릿… 그렇게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써보고 있다 보니 나는 왜 딱 하나를 정하지 못하지? 의아하면서 현타가 오기도 하고, 주변 동기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엿보면서 (내 눈에는) 다들 딱딱 쉽게 결정을 내리고 글을 쓰는 것처럼 보여서 질투가 나기도 하고… 그렇게 15개 버전의 트릿을 썼다. 제일 마지막 버전은 거의 뭐 지브리, 픽사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주인공 타잔 소년이 동물들과 대화가 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고 클라이막스에서 제주도 조랑말을 타고 등장해 동물 친구들과 나쁜 놈들을 무찌르고 뭐 어쩌고 저쩌고 말도 안 돼서 기가 차고 어이없어 웃음도 안 나오는 그런 버전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몇 달을 산을 오르내리자 해답이 찾아졌느냐? 그럴 리가. 어느 포인트에 나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이제 첫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완전히 꽉 막힌 채 너덜너덜 해졌다. (트릿 단계에서) 올라볼 만한 산은 다 오른 것 같은데, 등산을 꽤나 했으니 이제 진짜 내가 올라야 할 산이 어딘지 아는 상태로 시나리오 초고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초고는커녕 여전히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면 안 되는 타이밍이었다. 데드라인은 째깍째깍 다가오고, 나 빼고 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 같고…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고? 그건 상관없어. 넌 몰라도 니 손가락은 알 거야.’ 하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데 정말 한 글자도 써지질 않았다. 1분 1초가 죽음 같았다. 머릿속은 “빨리. 써야 해. 쓰자니까?” 하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부산에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도망을 갔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부모님 댁에 가면 그동안 정신없이, 스트레스받으며 살아왔던 세상에서 한 걸음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부모님은 언제나 투닥투닥거리면서 잘 지내고 계시고, 내가 뭘 하든 별로 신경을 안 쓰신다(ㅋㅋㅋ). 바쁘다고 하면 “방해 안 할 테니 그럼 일 해”라고 하시고, 같이 놀자고 하면 “신난다!” 하면서 같이 놀아 주신다. 같이 놀면서 나는 투덜댄다. “나 바쁜데 엄마 아빠 때문에 놀고 있는 거니까 책임지세요(뭘?)” 그러면 부모님은 언제나 대책 없이 쿨하게 대답하신다. “그래! 까짓 거! 책임진다!(뭘 어떻게?)”
그런 내가 이번에 집에 가서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밥을 먹어도, 아무것도 안 하며 소파에 앉아 있어도 멍- 하니 있었다. 부모님도 얘가 뭔가 이상하네 싶으셨는지 뭐 안 할 거면 운동이나 가자면서 집 주변 은행나무 길을 걷자고 나를 데려가셨다. 멍- 하니 걷고, 그 근처 카페에 가서 앉아 있는데 계속 정신이 멍- 했다. 글을 써야 하는데 못 쓰면서 시간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계속 사로잡혀서 이도 저도 못하면서 불안에 떨고만 있었다. “그럼 그냥 글 좀 써봐~”라고 하셔서 또 방에 앉아 있는데 여전히 멍- 하얗게 비어있는 한글 페이지를 보고 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쓰고 싶은 문장 아무거나라도 쓰자, 메모라도 하자, 일기라도 쓰자 싶었다. “미안해.”라는 말을 내 손가락이 쓰고 있었다. ’ 미안해 ‘를 계속 반복해서 썼다(진짜 미친 사람 같군). 울컥하면서 눈물이 펑펑 나왔다.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미안했다. 괜찮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는데, 내가 다 망친 것 같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며 이 이야기가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내 머릿속 주인공들은 정말 매력적인 사람들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가 실력이 없어서, 내가 못나서 이들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못 보여주는구나. 이게 내 한계구나 싶었다.
면접 때 면접관들에게,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나는 아무리 내가 못 하고 있어도 영화는 그만 안 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만두게 된다면 그건 ”나 스스로가 내 한계를 느꼈을 때“ 일거라고 말하곤 했다. 멋 부리려는 게 아니고 진심이었다. ’아, 나는 영화를 하면 안 되는구나. 내가 한계가 있구나.‘ 하는 걸 나 스스로 깨달으면 나는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한계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꼴찌라도 상관없었고, 계속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뒤처져 있건, 그런 건 상관없지~ 그냥 이 자리에서부터 앞으로 걸어가면 되니까!’ 하는 생각만 해오며 살았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한계가 느껴졌다. 내가 더 잘했으면 이 주인공들의 매력이, 이 이야기의 톤이, 이 이야기가, 더 완성도 있고 설득력 있게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 꽁꽁 쌓인 껍질을 벗겨내지 못하고 있구나.
방에서 엉엉 울었다. 나는 MBTI로 말하자면 대왕 T다. 정말 냉혈한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공감보다는 해결이 먼저인 사람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애정인 사람이다. 대학교 때 너무 힘들어 눈물이 찔끔 나온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찔끔- 하고는 쓱 옷에 닦아 버렸다. ‘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 정신 차려. 차라리 달리기나 해야지. 도파민을 뿜어서 속상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책 한 줄이라도 더 읽으라고!’ 하고 나를 윽박질렀다. 그런데 이때는 놀랍게도 엉엉 울었다. 이렇게 울다가는 눈이 부을 것 같고, 방에서 나오면 부모님이 눈치를 챌 것 같아서 울면 안 돼. 하고 마음먹었지만 자꾸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주말이라고 놀러 온 언니들까지 모두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 이번에 진짜 시나리오 못 쓸 것 같아서… 그냥 그만둘까 해요. “ 가족들 반응이 어떨까 약간 긴장한 채였다. 가족들은 늘 그렇듯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다. 와구와구(언제나 저녁상 자리는 전쟁터다. 누가 더 맛난걸 많이 자기 입에 넣느냐로 바쁘기 때문).
언니1: (와구와구) 아 그래?
언니2: (와구와구) 진짜 그만해?
엄마: (와구와구) 그만둔다고?
아빠: (와구와구) 오, 그만둬?
언니2: 와!!! 축하해!!!
언니1: 이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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