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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촬영 준비-스태핑과 캐스팅

(안부귀영화) 타협과 관철의 줄다리기

by 초별


종로의 휑한 사무실에 앉았다. 사무실이 있다니. 우리 팀이 사용할 방이 있다니. 단편을 찍을 때 사무실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나 예산 문제로 결국 포기했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그러나 감개무량에 빠져 있을 수없다. 불안하니 계속 시나리오를 물고 뜯고 너덜너덜하게 만들 고민을 해야 했다. 시나리오 고민을 하는 동안 하나 둘 스태프들이 출근을 시작했다. 피디님이 제작부를 모집하고, 조감독님이 연출부를 구하면서 사무실에 점점 인원이 채워졌다. 사실 연출부는 내 지인들로 꾸렸다. 내편이 되어줄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글은 아마 영화 연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고 계실 테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저예산 영화를 찍을 때는 특히 스태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헤드급 스태프들이 제일 중요하고, 그리고 연출제작부가 또 중요하다(사실… 안 중요한 게 없다 흑흑 그렇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말한 것임).


헤드급 스태프들이 중요한 이유는… 좋은 헤드들은 자기 분야에 책임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이유라 두말하면 입 아프지만… 그럼에도 말했다. 왜냐면 놀랍게도, 자기 분야에 책임을 가지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그냥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심지어 성격까지 나쁜 경우도 있다. 일도 못 하면서 괜한 자존심을 부리는 경우도 있고, (도대체 뭣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기싸움을 하려 하기도 하고, 연출을(신인이라고) 쥐락펴락 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나와 함께 작업하기로 한 헤드 스태프들 중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나중에라도 알게 된다면? 촬영 일정이 망하든 말든, 올스탑 하고 난 이 영화 못 찍겠다. 니가 나가나 내가 나가나 보자 하고 존나성격파탄자미치광이 연출이 되어야 한다. 현장의 싸가지는 연출 나 하나로 족하다! 고 외쳐야만 하는 것이다… 고 말하고 싶지만 이것도 사실 자리 봐 가며 발 뻗어야 하는 게 영화판의 현실이고 신인 연출의 슬픔이다. 흑흑흑.


그런데 만약 헤드 스태프가 나보다 더 성격파탄자라서 나(연출)를 깔보고 자기 멋대로 하려 하는데… 실력이 좋다? 그러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내가 연출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에게는 휘둘려드리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할 것 같다. 나를 깔보든 말든 실력이 좋으면 뭐 어쩌겠나. 내가 깔려줘야지. 내 영화를 위해 내 간과 쓸개를 레드카펫 깔듯이, 어서옵쇼! 하면서 깔아야 하는 것이다. 참 연출은 얍삽해야 한다. 머리를 잘 굴리고, 사람도 잘 봐야 한다. 그렇게 연출이 얍삽이가 될 만큼, 이 판에선 실력이 왕이다. 성격 좋은 건 사실 필요 없다. 결과가 좋으면 성격이 거지 같아도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이 좋은데 성격까지 좋으면 베스트겠지. 그런 사람들이 있나…? 그런 사람들은 많은 확률로, 상업 현장에 있다. 그러나 상업 현장이라고 모두가 실력 있고 성격 좋은 것은 절대 아니다. 상업 현장의 유명 감독, 유명 헤드 스태프들의 소문들을 들어보면(소문이지만 실제 그들과 함께 일해본 당사자들의 말들도 많이 들어봄) 정말 실력이 좋은데 성격은 기가 찰 정도로 안 좋은 성격파탄자들이 많았다. 실력과 성격 얘기가 길어지고 있으니 정리를 다시 해 봤다.


1. 실력O 성격O

2. 실력O 성격X

3. 실력X 성격O

4. 실력X 성격X


저예산 현장이다 보니 1번 유형의 사람들은 찾기가 힘들다. 이들은 탑티어로 상업에서도 어서옵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출은 눈썰미를 탑재하고 계속 주변을 살펴야 한다. 왜냐면 아무리 1번 유형이 상업에 많다고 해도, 저예산 현장에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있느냐? 미래에 상업 현장에서 이름을 날릴, 가능성 있는 초보로서 꿈틀거리고 있다. 아직 (나처럼) 경험이 많지 않을 뿐. 그러니 이런 동료를 만약 찾았다면? 꽉 잡아야 한다. 아주 꽉. 절대 놓지 말고, 앞으로 계속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주변에 1번이 없다면? 그러면 전생에 내가 나쁘게 살아서 인복이 없는 것이므로 나를 탓하며 이제 2번을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2번도 없다? 그러면 이번엔 현생의 나도 탓하며 3번을 선택해야 한다.


그마저도 없으면 4번이냐? 아니다. 4번은 절대. 절대 안 된다. 4번 스태프와 일을 하느니, 내가 아는 착한 후배나 친구에게, 차라리 우리 엄마에게 부탁하는 게 낫다. 적어도 착한 후배나 친구, 엄마는 나를 힘들게 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고,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시킨 것만큼은 열심히 해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택해야 한다(이 사람들이 사실 3번 유형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비밀은 저예산 영화 현장에는 4번의 스태프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이들 유형은 절대 상업에서는 일을 안(못)한다. 그런데 저예산 현장은 돈이 충분히 없는데 스태프가 경력은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을 찾다 보니 유형 4번에게도 일거리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한다. 정말로… 4번은 안 된다. 이들의 이전 경력에 속지 말길. 내가 왜 이렇게 4번과 일하지 말기를 강조하느냐? 나도 그런 스태프와 일 한 적이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안 알랴줌 으헤헤


이미 <안부귀영화>를 쭉 읽어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정말 착하게 잘 살았다. 엇, 잘못 말했구나. (현생의) 나 말고 전생의 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인복이 좋았다. 어려운, 한편으론 불가능한 도전이 꽤 많았던 <된장이>는 인복 덕분에 찍을 수 있었던 영화다. 당신이 스태핑을 잘한 것 아니냐? 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절대 아니다. 내가 스태핑을 잘하려고 노력했던 부분들에서는 실패들이 좀 있었다. 애쓰고 애썼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잘 안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운이 좋아서, 피디님 덕분에, 조감독님 덕분에 잘 된 것들이 있었다. 역시… 전생의 내가 참으로 착했던 것이야(녀러분 우리 모두 착하게 삽시다. 그럼 다음 생의 나가 감사할거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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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편파적이고 제멋대로 해석한 영화제작 과정입니다. 혹시나 저를 아신다면 (제발) 모른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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