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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연기를 잘 한다는 것

(안부귀영화2) 프리프로덕션-캐스팅

by 초별


“시나리오는 촬영 직전까지도, 심지어 촬영하는 그 순간에도 수정되고 고쳐질 수 있다. 그러니 끝까지, 악착같이 시나리오를 붙잡아야 한다”

너무나 많이 들은 이야기다. 그래서 나도 계속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자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졌다.


된장이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정말 순수한 이야기였다(슬프다. 과거형이라니). 여러 버전에 그것들이 뒤섞여 있다. 몽글몽글하고 귀엽고 감동적이고 코믹하고 사랑스런 그런 씬들, 시퀀스들이 참 많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건 찍고 싶었는데… 하는 그런 씬들도 많다. 그런데 동시에 너무 상투적이고, 투박하고, 하나도 웃기지 않고, 갑작스럽고, 말이 안 되고, 플랫하고, 반감까지 드는… 그런 시퀀스, 씬들도 많다. 그것들을 조합하면서 다시 잘 봉합했어야 했는데 객관성 부족과 내공 부족으로, 그 과정에 실패했다.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으나, 역량이 부족했다. 감독으로서 참… 마음 아픈 얘기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건, 한심한 감독이 뻥뻥 뚫어 놓은 구멍들을 메꿔주는 구원자가 영화에는 있다는 것이다. 왜냐? 영화는 혼자만의 예술이 아니니까! 오 땡스 갓 지쟈스 크라이스트 옴마니밤베홈 부처님도 감사 앗살라마이쿰 알라님도 캄사. 인간들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 또 인간에게 구원받는 이 아이러니란. 그 구원자들이 누구냐고? 바로 배우들이다.


된장이는 영화 제목이 된장이지만, 주인공은 제니라는 여자다. 제니는 세상의 다양한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제니가 너무 어려운 캐릭터였다. 나도 상처 없이 자란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가족들이 사랑으로 상처를 금방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런 가족을 상처받은 주인공에게 주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글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다 그런 글들이다.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따스함, 사랑, 가족을 주는 이야기. 어쨌든 그래서 나는 제니 캐릭터를 구상하고, 영화 속에서 구현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너무 피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았다. 대사도 행동도 너무 착하기만 했다. 어떤 버전의 시나리오에선 제니라는 사람의 사연을 구구절절,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몽타주로 다 설명한 적도 있었고, 어떤 버전에서는 자꾸 과거 회상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제니를 설명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설명하기보다 행동하면 되는데, 그냥 보여주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왜냐면 나도 이 사람을 잘 모르니까. 그래서 자꾸 수정하는 과정에서 제니 캐릭터에 구멍이 많이 생겼다.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최종 촬영고가 나왔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들이 있게 됐다. 그러나 더 이상 고민을 하고 수정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캐스팅을 진행해야 했다.


처음 제니 역 캐스팅을 고민하면서 많은 배우들을 계속 살펴봤다. 연기력은 이미 검증된 좋은 배우들이 많았고,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도 확실했다. 아역 배우 캐스팅이 어렵지, 주인공은 의외로 빠르게 결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2022년, 당시는 코로나 이후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를 시작하고 밀물이 들어오듯 했던 시기가 있는데 그때 투자됐고 준비되어졌던 영화들 촬영의 거의 막바지 시기였다. 그래서 내가 촬영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스태프도 배우들도 다들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그다음 해에 동기가 영화를 찍었는데, 그때는 투자가 멈춘 썰물 시기여서 놀고 있는 스태프도, 배우들도 꽤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배우들을 찾아봤고 드디어 괜찮을 것 같다!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래서 컨택을 해봤으나 일정이 빠듯해 우리가 일주일 정도 촬영 일정을 미루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이미지가 너무 좋았었고, 연기도 너무 잘하는 배우라서 만나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러나 촬영 일정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그런데 웃긴 것이 나중엔 촬영 일정이 밀리게 된다). 결국 그 배우는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배우를 찾기 시작했다. 프리를 할 때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는데 주인공 배역이 계속 안 정해지니 마음이 초조했다. 누구에게도, 된장이 때처럼 어떤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조감독님이 우연히 K배우 프로필을 건네주었다. 마침 매니지먼트에서 와서 받았다면서 스케줄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배우 활동을 했어서 연기한 것들을 찾아보는데 느낌이 좋았다. 바로 만나보기로 했다.


사무실 미팅룸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히 난다. 왜냐면 사람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뻔한 말인데 그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매력의 아우라‘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매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힘‘이다. 그런데 이 배우가 방으로 들어오자 공기가 달라졌다. 공기까지 잡아 끌려진 것일까? 이 사람은 상대방이 누구든 그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끌어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같았다. 만약 배우 지망생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꼭 기억하면 좋겠다. 아직 무명이라 할지라도, 오디션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병헌이고 전지현이다…고 생각하길. 자신이 헐리우드 대 스타라고 생각하고 정말 자신 있게, 당당하게 존재하면서 나만의 아우라를 풍기면 좋겠다. 내 오디션 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그런 태도로 한다면 누구든 반해버리니까. 그렇게 나 역시 K 배우에게 반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프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생각도 깊고 마음도 여리고 착한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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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편파적이고 제멋대로 해석한 영화제작 과정입니다. 혹시나 저를 아신다면 (제발) 모른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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