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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영화제가 불러주지 않는 영화

안부귀영화- 혼자만 뚜들겨 맞는 경기

by 초별


후반 마무리를 다 하고, 완성본까지 뽑아내자 2023년이 끝났다. 영화가 완성 됐다는 말은 무엇인가. 이제 이 상품이 온갖 세계+국내 영화제를 돌아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 출품해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초청이 되고, 그러면 숙박, 심지어 비행기표까지(영화제마다 다르긴 하지만) 지원받아가며 세계 여행을 하고, 그러면서 국내 영화제에도 초대되어 국내 여행도 다니고 “룰루 랄라 이것이 바로 천국이여~” 가 바로 많은 영화감독들의 꿈이다. 몇 년에 걸쳐 고생하며 영화를 찍는데, 그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기 전에 영화제에서 먼저 인정받는다니.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이 상품이 훌륭하다는 이야기고, 그러면 나중에 관객들에게 마케팅할 때도 잘 팔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나 역시 어려서 영화감독을 꿈꿀 때부터, 그래서 온갖 영화감독 자서전을 줄줄이 읽을 때부터 영화제 세계여행을 꿈꿨다. 안 그래도 나는 여행 자체를 사랑하는데, 영화제 여행이라니… 그것은 나의 진정한 인생 목표여! 후후후. 그러나... 목표란 원래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 그런데 하물며 '인생' 목표라니? 그러면 더욱더 이루어지지 않는 법.


사실 후반 작업을 하던 2023년, 동기들 영화 중에는 부산영화제에 초청이 된 영화도 있었다. 아직 후반 작업 중이었음에도 초청이 된 것이다! 이 초청 결정을 알게 된 순간이 기억난다. 아마 모든 창작자들은 이런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할 텐데 이 경험은 참 묘한 기분을 준다. 초청 발표가 나오고, 동기의 영화가 초청됐다는 소식을 듣자 잘됐다! 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성공의 순간이 바로 나의 불행의 순간이라는 이 아이러닉 함이란(비록 그런 논리로 이야기될 수 없다고 해도, 비논리적으로 이렇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나 장편 과정에 선정되고, 모든 작업을 같은 시기에 한 동기의 작품이기에 너무 축하하고 좋은 일이지만 내 영화가 초청되지 못한 아쉬움은 동시에 그만큼 크게 느껴졌다. 10월 부산 영화제에서 동기의 작품이 빠르게 관객들과 만나고, GV를 하고, 상영되는 모습을 보면서는 정말, 정말(두 번 말해야 함) 부러웠다. 나도 나와 함께 어렵게 영화를 만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영화제 초청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도 강렬하게 들었다. 후반 작업을 아직 하고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 어딘가라도 하나라도 초청이 되겠지… 하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런 거라며 애써 핑계를 찾아보고 위로했다.


이전 글에서는 이 이야기가 황금 똥인 줄 알았는데 구리 똥이니 뭐니, 나는 사기꾼이니 뭐니 하면서 부끄러움이 한가득임을 표현했음에도, 어떻게 영화제에 초청되고 싶다고 바랄 수가 있지? 의문이 드실 수도 있겠다. 참 인간이란 간사하고 다면적인 존재라 또 재밌는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가 아쉬움이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게다가 이 세상에는 너무 좋은, 완성도 있는 다른 영화들도 많고 그 영화들이 당연히 영화제에 초청돼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좋게 봐주지 않을까? 누군가는 (나조차도 몰랐던) 이 이야기의 매력을 발견하고, 초청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원래 그런 건가 보다. 내가 이놈의 미운 자식을 왜 낳았지 싶다가도, 그래도 이놈 자식이 어디 가서 사랑받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모두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는 그런 마음인 것이다(부모도 아닌데 부모 마음 빙의 중).




여튼 그렇게 2024년은 해외, 국내 배급사가 정해지고, 영화제 출품을 해보는 기간이었다. 내가 할 것은 딱히 없었기에 나는 알바를 열심히 하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동기 영화들이 영화제에 하나 둘 초청되는 소식들을 들었다. 그런데 이거 참 그 어디에서도 나에게는 희소식이 오지 않았다. 제출이 잘 된 건 맞을까? 영화제에 출품을 아예 안 한 거 아닐까? 하고 괜히 배급사 의심을 (속으로) 해보기도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내 탓하고 싶지 않을 때는 이렇게 남 탓을 하면 편하다). 한 달, 두 달, 세 달. 동기들의 영화는 계속 영화제들에 초청되는데... 나중에는 그 소식을 의식적으로 안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우연찮게라도 알게 되면 그때마다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나 빼고 다 초청되더라.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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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편파적이고 제멋대로 해석한 영화제작 과정입니다. 혹시나 저를 아신다면 (제발) 모른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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