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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개봉 후 악평에 대처하는 법

(안부귀영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마라

by 초별


불행인지 다행인지, 네이버 영화 정보나 왓챠피디아 같은 검색 사이트에 내 영화에 대한 정보는 동기들 영화에 비하면 제일 늦게야(거의 개봉 직전에야) 올라왔다. 보통은 영화가 영화제에 초청되면 개봉을 안 했어도 정보가 바로 올라오기에 그런 슬픈(?) 이유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동기들 영화에 쓰여진 평들을 읽으면, 내 영화도 아닌데 동기들의 마음에 빙의되어 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기 때문이다.


동기들 영화의 시나리오 변천사를 봐 왔고, 얼마나 다들 고생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리고 성격 또한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악평이 적혀 있으면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걱정도 들고, 호평이 적혀 있는 것을 읽으면 또 아 정말 뿌듯하고 기쁘겠다 싶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 영화는 과연 어떤 평들이 올라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욕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좋아하는 사람도 조금은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드디어 내 영화도 왓챠와 검색엔진 사이트들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라온 영광의(?) 첫 댓글!

별 한 개 반에, "이 영화 코멘트 쓰려고 1년 반을 기다렸다 이런 된장! -2024 KAFA 졸업영화제 관람"이라는 Junhyuk Lee님의 글이었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당연히 속상했다. 첫 댓글이 혹평의 댓글이라니! 그런데 또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니 죄송스럽기도 했다. (개봉 1년 반 전인) 졸업영화제 때 처음 이 영화가 소수의 관객들에게 상영됐는데, 그때 영화를 보고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래서 이 댓글을 달려고 얼마나 이를 갈아왔으면, 이렇게 1년 반이나 지나고 드디어 왓챠에 영화가 올라왔을 때 잊지 않고 글까지 쓰신 것일까. 진짜 단단히 마음먹고 기다리셨나 보다 싶었다. 그래서 이 댓글은 캡처를 해놨다. 내가 받은 첫 리액션이었고, 첫 댓글이었으니. 또 미래에 어떤 기회가 생긴다면 꼭 잊지 않고 사과의 말씀을 드리려고. 그 기회가 드디어 지금 온 것 같다.

준혁님, 영화가 마음에 안 드신데 있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이 사과는 비꼼도 뒤틀림도 없는 진짜 사과다. 혹시나 오해하지 말아 주시길. 지금까지 내 글을 읽어오신 분들은 이미 느끼셨겠지만, 나는 꽤나 마음이 단단한 편이다. 누가 나를 욕하거나 안 좋은 말을 해도 별로 타격이 없다. 그래서 동기들, 선배나 교수님들이 검색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쓴 리뷰를 보지 말라고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는데 그 말이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검색을 해봤다. 또 뭐 올라온 거 있나. 며칠 뒤 두 번째 글이 올라왔다. 별점 빵점에, "진짜로 원하던 게 이거야?" 아이디가 '0점사격'이셨다.


사격수라 그런가, 아주 심장에 빵! 하고 총알을 맞은 느낌이었다. 황금사과 원했던 거 아니야? 왜 구리똥이 됐어?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두근거림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색을 해 봤다. 무언가 새로운 리뷰가 달린 것 같으면 마음이 쿵쾅쿵쾅 했다. 호평이면 휴- 다행이다 싶었지만 혹평이면 계속 벌렁벌렁 거렸다. 결국 며칠 만에, 왓챠피디아를 지워버렸다. 검색도 더 이상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몰래몰래(누구 몰래인지 모르겠지만) 검색을 했고, 상처받고, 속상하고, 잊으려 애쓰기를 반복했다.




2025년 7월 2일, 개봉을 했다. 요즘에는 나조차도 극장을 거의 안 가는데 누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나 걱정이 됐다. 그러나 다행이었던 것이 올 7월은 미친 듯이 더웠다. 극장으로 피신 오시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이날 개봉하는 영화들을 살펴보니 아니 이럴 수가. 쥬라기 월드가 2일에 개봉이잖아! 쥬라기 월드의 시작인 쥬라기 공원은 나의 롤모델이자 (나 혼자 맘속) 스승으로 여긴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인데 그 시리즈에서 파생된 영화와 같은 날 개봉이라니! 됐다! 나는 스필버그와의 경쟁에서 기꺼이 지리라!라고 아주 기쁜 합리화를 했다(물론 이 쥬라기월드 영화는 스필버그가 감독도 아니고 전혀 연관이 없었으나 그런 것 따위 몰라 그냥 끼워 맞출래). 게다가 며칠 전 오랜만에 재미있게 봤던 F1도 극장에 걸려 있었다. 그래. 영화란 이런 거지 하면서 극장을 나왔었기에 나는 속으로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F1도 엄청 재밌고 쥬라기 월드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 극장에 많이 오세요! 오시는 길에 무더위에 머리가 돌아서(?) 우리 영화도 봐주시면 더 좋습니다! 이런 멋진 영화들과 함께 우리 영화가 걸려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기분이 묘했다. 열심히 만들어도 극장 개봉조차 한없이 기다려야 하고 계속 밀리는 수많은 좋은 영화들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요즘의 극장 상황이다. 그런데 나는 운 좋게 개봉까지 하는구나 싶어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배우분들과 함께 몇 번의 무대인사를 갔고, 한국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비토크 같은 자리도 있어서 모더레이터 분의 능숙한 진행과 함께 주연 배우님, 관객분들과 1시간가량 영화 이야기도 나누었다. 배우님의 팬분들이 감사하게도 자리를 채워주셨고, 포스터를 본뜬 쿠키까지 만들어주셨다(아까워서 못 먹고 가보로 보존하기 위해 냉장고에서 썩어가고(응?) 있음). 촬영을 한 지 2년 넘게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몇 달 전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시간이었기에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 영화는 2주 정도 상영관들에 걸려 있었고, 2주쯤 지나자 수도권을 제외한 상영관들에서는 거의 내려졌다. 이후로는 수도권의 아트 영화관들에 군데군데 상영들이 있었고, 개봉한 지 약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아듀 시사회를 가졌는데 무지막지한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이런 비를 뚫고 오실 분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짜 티켓의 힘인지) 생각보다 많이 와주셔서 또 감사했다. 엄마랑 온 초등학생 친구들도 있었는데 귀여운 친구들이 영화 재미있게 봤다고 말해주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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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편파적이고 제멋대로 해석한 영화제작 과정입니다. 혹시나 저를 아신다면 (제발) 모른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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