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1
아름다운 하루였다.
눈과 나무, 그리고 아이들.
찍히는 모든 것이 그림인 하루였다.
잠든 준후를 안고 있느라 간만에 사진사 노릇을 했다. 사진첩을 정리하자니 눈밭을 아우른 우리의 온기가 떠오른다.
가끔은 이 아이들의 유년이 부럽다.
나 역시 많이 뛰어 놀고 많이 즐거웠겠지만.
그래도 왜인지 이 녀석들의 꽉찬 추억 그 멈출 수 없는 소란스러움을 담아주고 싶다. 오래된 사진 옆에 엄마가 적어둔 기록들. 보고 또 보며 추억을 곱씹고 또 완성해가왔듯이(내가). 후후형제 역시 이 시간의 아름다움들을 어떻게든 더듬을 수 있길 바라며...
지난 주엔 결혼식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여행을 다녀왔다. 급하게 결정해 준비 없이 간 여행이었지만 네가족이 함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무엇보다 고택에서의 이틀은 추운 날씨와 적잖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근사했다.
첫째날 안동 하회마을 단칸초가집에서 민박을 했는데. 후가 긴 이동이 힘들었는지 도착하다마자 (충격에 가까울) 그 작은 방에 들어서서도 "우와. 진짜 좋다."라고 외쳤다.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 못한 우리가(집이 마음에 든다는 줄 알고) "호텔보다 좋지?"라고 물으니. 급 표정이 사라지면서. "아니. 당연히 호텔이 더 좋지."라고 답했다. 다음날 새벽녘 다섯시를 알리는 옆집 수탉울음소리와 참새소리에 잠에 깬 우리, 마을 한바퀴 아침산보를 나갔다. 고즈넉한 마을 정경에 취해있는 내게 정후는, "그래도 나는 풀로 된 집에선 못 살것 같"다고 했다. 돌아와 친구들에겐, 한옥은 좋긴 한데 무척 좁다고 전하더군. 다음 날 이동한 구담정사는 그래도 넓고 근사했다. 돌아오는 길 물으니 좋았다고. 그 이유는 "얼음을 깰 수 있어서..."(마당 대야가 꽁꽁 얼어 있었는데 늘상 차에 싣고 다니는 자기 호미로 그 얼음을 다 깨고 놀았다) 결국 정후에게 한옥은 (엄마가 멋있다고는 하지만) 춥고 불편한 곳이었나보다. 다만, 마당이 있어 마음껏 얼음도 깨고 놀 수 있는 곳 정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 몇평의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만족시키는 건 넓고 화려한 무엇이 아닌 즐겁게 뛰놀수 있는 여유란 사실과 함께.
둘째날 저녁이었다. 칠흙같이 깜깜한 밤 달빛 별빛에만 의존해야 하는 한옥의 어둔 밤. 정후가 갑자기 엎드려 심각하게 (속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혹시 무슨 기도인지 물어도 되느냐고 조심스레 건네니. "나 기도하고 자. 하나님과 강아지에게 도둑 안들어오게 지켜달라고."(강아지에게도 기도를 보낸 우리 정후ㅋㅋ) 문단속이 허술한 한옥구조가 불안했나보다. 그 얘길 전해들은 J가 '우리 정후가 두려울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감사해한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더 이상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내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내가 해야 할 말은. "축하해 정후. 우리 정후가 벌써 커서 주님과 비밀 공간이 생겼구나. 기도부탁 있을 때 엄마에게도 꼭 나눠줘. 함께 기도할게."
얼마 전이었다. 정후가 엎드려 혼잣말로 중얼중얼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OO이모 면접 잘 마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OO이모 아기 낳아서 몸이 안 좋은데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OO이모 취직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고 바로 잔다.
그간 정후의 기도를 일일이 묻진 않아왔기에 아이가 어떤 자세와 내용으로 기도하는지 잘 몰랐었다. 카봇이나 터닝메카드 사달라는 수준의 기도를 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우연히 목격하는 아이의 기도는 누군가를 위한 중보의 기도, 감사의 기도, 두려울 때 주의 날개 아래 피하는 기도다.
오늘도 준후 음남수종을 잘 관찰해야 한다고 돌이 지나도 낳지 않으면 수술해야할지도 모른다니 오던 카시트에서 나름 자리를 고쳐앉아 남몰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교회 이모 삼촌 공동육아 선생님들 덕에 정후가 배운다. 자란다. 삶으로 보고 도전한다. 감사히 묵묵히, 맡겨진 길을 충성되게 가야지.
안동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정후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고 싶다. 우리 집이 제일 좋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외쳤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
편히 쉴 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집 없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빚진 마음으로 주님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나부터. 너희도.
올해부턴 생일 선물 대신 비용을 모아 생일 맞은 친구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로 했다. 어디에 기부할지는 생일자 가정이 결정한다. 어제 예배를 마치며 올 해 자기 생일에 어떤 사람을 위해 선물을 보낼 지 생각해보라고 선생님 이모가 광고했다. 오늘 우연히 새우스파게티를 먹다가 칵테일 새우를 좋아하는 정후에게 얼마 전 봤던 기사 내용을 나눴다. 칵테일 새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노동을 착취 당하는지. 감사히 먹고 기회가 될 때 기꺼이 도와야한다고. 진지해진 정후가 갑자기 어제 얘기를 끄집어낸다. "엄마. 나. 그 친구한테 선물 줄래. 내 생일 선물. 새우까는 친구들한테." 그러자 했다.
진짜 집에 가는 그 날까지.
진정한 기도로 삶을 드리는 인생들 돼보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