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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에게 건네는 말

베냐민을 떠나보내며-

by 조성실

'간기가 성한 아이' [간기肝氣:(한의학)간의 정기] (네이버 국어사전)


출산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자연 진통이 시작됐다. 규칙적으로 간격이 오고 내진 결과 아이 나올 길이 3센치 이상 열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이는 좀체 내려오지 못했다. 열시간 넘는 진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끝에 응급 술에 들어갔다. 짥은 간격으로 강하게 조여오는 진통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 호흡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의료진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나와 보호자에게 간호사 한 분이 어떤 마취를 받을 것인지 묻고 동의서를 받았다. 나는 당연히 하반신 마취를 선택했는데, 회복 속도도 빠를 뿐더러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과 소리를 만끽하고 싶기 때문에서였다. 그러나 집도의 선생님의 등장은 모든 걸 경색시켰다. 아이를 기다리던 설렘과 기대는 순식간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오직 건강하게 아이를 만날 수 있기만을 빌었다.

"이 와중에 하반신 마취를 하겠다는게 말이 돼요? 당장 환자 수술실로 이동시키면서 마스크 씌우세요! 응급이에요, 응급. 정신 차리세요!"

차가운 수술실의 기운과 천장의 강한 불빛 아래 그저 차갑고 불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전신마취 약물을 한두모금 들이마시자 모든 세상이 멈췄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난 순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4.26키로, 55cm의 신생아. 3.8~3.9키로 정도로 예상됐던 큰 아이는 초음파 오차를 벗어나 이미 생후 한달에 가까운 키와 몸무게를 선보였다. 주치의 선생님도 놀라고,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들도 거즘 다 이런 아이를 처음 봤다고들 하셨다. 면회 시간마다 다른 보호자와 면회객들이 우리 아이에 대해 한마디씩 나누는 소릴 들어야했다.(내가 보호자인 줄 모른채 나누는 대화들.) 퇴원을 도와주시던 간호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이 아이는 완모(완전 모유수유)는 어려울 것 같다며 개의치 말고(=반드시 모유를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혼합(분유와 모유 병행)수유를 유지하라 첨언해주셨다.(해당 병원은 유니세프에서 '아이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선정된 모유수유권장 병원이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자연분만율이 높은 병원으로 선정한 곳이었다.)

제왕절개수술도 예정됐던 시간에서 이십여분 가량 더 지체되었다. 응급 수술인데다 아이가 예상보다도 너무 커서 힘든 수술이었노라 전해들었다. 수술이 제 시간에 마치질 않자 수술실 밖에 홀로 남겨졌던 남편의 마음은 초조함을 넘어 온갖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한다. 기도하며 기다리던 그 시간을 남편은 전쟁의 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다행히도 신속한 의료진의 도움을 힘입어 아이도 나도 안전하게 수술을 마쳤다. 사람 하나 태어나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었구나 싶어 눈물이 쏟아졌다. 아. 내가 드디어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내 안에 꿈틀되던 그 무엇이 바로 이 아이였구나. 이 완전한 사람이 내 몸 안에 있었다니.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며 누워있었다. 이틀간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아이를 면회했고, 제왕절개 산모였던 나는 셋째날엔가에 아이를 처음으로 안아보았는데, 그 때 그 순간의 경이로움이란! 이렇게 거칠고 험난한 세상 한가운데 덩그라니 누워있는 아이.아이가 나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한다는 사실이 두렵고 무거웠다. 나처럼 미숙한 엄마에게 내맡겨진 이 아이의 인생에 현기증이 나고, 그럼에도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나를 사로잡았다. 엄마로서의 첫 걸음이 그렇게 시작됐다.

그 당시 어린이 전문 한의원에서 한의사로 근무하던 친구가, 태어난 아이의 사진을 보고선 (축하와 함께) 주치의로서의 소견을 보내왔다. "전형적으로 간기가 성한 아이일 것 같아." 소견과 함께 간기가 성한 아이를 키울 때 도움이 될만한 정보와 조언을 듬뿍 보내 주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 친구가 해 주었던 말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에 나가 떨어질 때마다, 온갖 창의적인 사고를 마주할 때마다, 미리 숙지해두었던 주의사항을 마음에 새기며 아이와 상황을 대하려고 노력했다.(참고 : <간기가 성한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반항장애> 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553687) 그런 내 양육 방식과 훈육 태도를 보고선, 비판과 조언(때론 간섭과 참견까지)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아이에게 자율을 너무 많이 준다, 일일이 맞대응해주기 때문에 아이가 어른을 어려워할 줄 모른다, 혼나는게 무서운 줄 몰라 조심성이 없다, 등등) 그런 주위의 시선에 맞닥들이면 일관성 있게 아이를 대하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통제불능 상태에 도달하는 아이를 볼 때, 사람들은 흔히 부모의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이 아이에게도 쉽게 할 수 있는 일과, 하기 어렵거나 못 하는 일이 있는 법이고, 우리는 이 아이가 어려워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치열한' 양육자였음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순간 아이에게 일어나는 현상만을 지켜보면서, 우리를 판단했다. 그 시선을 개의치 않는게 힘들었다. 때론 내 자식이 잘 하는 일을 구태여 언급하거나(혹은 보여주거나), 또 내가 충분히 괜찮은 엄마이자 좋은 교사임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어떤 날은 나조차도 나에게 실망해 쭈그리가 되고, 또 어떤 날은 아이들이 버거 혼자만의 동굴로 줄행랑을 쳤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계가 단 하루만 아니, 십분만이라도 멈춰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의 연속이었다. 또 어떤 날은 이런 모든 일상이 아름답고 소중해서 모든 순간을 저장해두었다가 언제든 꺼내 만지고 싶어 열심히 적었다. 그렇게 삼년 여가 지난 어느날. 나와 그 친구, 나의 큰 아이 이렇게 셋이 꽤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있을 일이 있었다. 헤어지면서 그 친구가 내게 건넸던 지지와 격려, 위로의 말들을 잊지 못한다.

"성실아. 진료실에서 정후랑 비슷한 기질의 아이들을 많이 봐. 오늘 정후를 만나니, 지난 삼년간의 네 노력과 수고가 느껴져서 눈물이 핑돈다. 진료실에 오는 부모님들 다수가 좋은 분들이거든. 좋은 부모이고. 그렇지만 어떤 경우엔 잘 몰라서, 어떤 경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이 아이들의 혈기왕성함과 예민함에 적절하게 대응해 주지 못하고 그러다 어려움을 겪더라. 많은 어른들이 힘드니까 힘이나 권위로 억누르려고 하는데 그럴수로 이 아이들은 더 튕겨나가고 반항하거든. 그걸 도와주기 위해 부모가 많이 인내해야 하더라고. 그 시간을 잘 지내면 이 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매력과 힘을 보게 되더라고. 정말 애썼다. 네가 자랑스러워."

어느새 큰 아이가 다섯살이 되고, 둘째가 십오개월을 넘어섰다. 이젠 제법 자란 큰 아이. 때론 내 친구가 되어주고 또 동반자가 되어 준다. 그래서 한 숨 돌리는가 싶었더니, 이번엔 둘째다. 둘째의 위험한 시절이 지나고 있다.


어제 또 다시 구급차를 탔다. 이번엔 준후(둘째, 15개월)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이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부모에게 맡겨진 책무가 아틀라스의 형벌처럼 느껴진다. 프로메테우스의 형제, 제우스의 미움을 사 평생동안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은 인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부모로서의 책임감, 의무감, 죄책감을 생각해보면 아틀라스 증후군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구나 싶어진다.([아틀라스 중후군(두산 백과 참조):그리스 신화 속의 아틀라스(Atlas)처럼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있는 듯 심한 중압감을 느끼는 증상을 일컫는 말로,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팀 켄토퍼(Tim Cantopher)가 슈퍼대디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지나친 불안감, 침울한 피로에 시달리는 남성들의 증상에 붙인 명칭. 유래와 정의상으로는, 아빠들의 증후군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빚에 쫓기듯 아이들에 대한 부담으로 쫓기는 이 마음은 비단 아빠들만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자라는 동안 엄마와 아내로 잘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적당히 공부하란 가르침을 받아본 적 없고, 나의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어른들에게서(또 사회로부토) 나는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하라고, 도전하라고, 최선을 다하라고 그리고 성공해야 한다고 배웠다. 물론 사회는 우리에게 가장의 지위를 쉽게(?) 부여해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육아와 살림 전반에 대한 책임을 공평히 나눠주지도 않는다. 보육의 공공성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가장으로 살고 싶어도 엄마가 되는 순간 일을 그만두거나 차선의 일자리를 선택해야 하는 나라다. 다시 말해, 우리 현실 속의 수많은 엄마들이, 슈퍼우먼이자 슈퍼맘이 돼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오죽하면 '슈퍼우먼 방지법'이 대선 공약(참고: 심상정 상임대표, 제1호 공약법안 「슈퍼우먼 방지법」 대표발의 http://blog.naver.com/713sim/221027148343심상정)으로 나올 정도일까.) 외부 경제 활동을 안하면 안 하는대로 돈도 안 벌고 남편 월급이나 받아 쓰는 주제에 애들 어린이집 보내 놓고 커피나 마시는 류의 사람으로 눈총 받고, 직장에 다니면 다니는 대로 아이 소중한 줄 모르고 아이가 아파도 냉정하게 제 일터로 향하는 여자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저러나 안하무인 제 자식밖에 모르고 공공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맘충으로 분류되는 순간도 적지 않다. 각 가정의 형편과 철학과 상관없이. 그 와중에도 애들은 부던히 자란다. 짧게 자고 오래 뛰어 논다. 쉼없이 소란스럽고 시시 때때로 요구한다. 제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부족하다. 콩쥐의 깨진 밑독처럼. 그 와중에 아이가 사고라도 당하면. 묻는다. 아이가 다치는 순간 엄마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내게도 늘 할 말이 있다. 나의 최선이었고, 누구였대도 막을 수 없는 사고였노라고. 가장 무서운 건 그렇게 답하는 순간에까지 떠오르는 말풍선들. "그래도 더 잘 할 수는 없었을까. 내가 좀 더 아이에게 집중했다면 아이가 다치지 않았을까." 그렇게 아틀라스가 된다.


자주 다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누군가 내게 물었다. 아이들이 기관(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등)에 가지 않고 엄마가 데리고 있어서 더 다치는 건 아니냐고. 일전에 아이가 폐렴에 걸려 입원했을 때는 누군가 내게, 엄마가 그렇게 활동적이니 아이가 언젠가 아프지 않을까 싶었다고도 했다. 큰 아이가 크게 팔이 부러져 다친 순간에도 "대체 아이를 어떻게 돌봤길래 그렇게 큰 사고를 당했냐"고 에둘러 묻는 이들도 있었다. 위로를 받으면서도 상대가 나의 과실이나 부주의함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단 걸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위로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내게 한 번 더 묻게 된다. 정말로 최선이었느냐고. 더 잘 할 수 없었단 결론이 확실한 때에조차,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형벌.

어제는 같은 공간에 여러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있었고, 직전까지 아이는 내가 건네는 밥을 잘 받아 먹고 있었다. 너무 졸렸는지 기분이 너무 좋았는지 발을 헛딛다 다른 어른이 앉아 있던 의자 손잡이에 얼굴을 세게 부딪힌 둘째. 아이의 울음이 심상치 않았다. 울음에도 류가 있어서, 이젠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정말로 심각한 울음인지, 진짜지만 급하지는 않은 울음인지, 관심을 요청하는 울음인지, 짜증이 가득찬 울음인지. 웬만한 아픔엔 크게 울지 않는 아이가 숨을 못 쉬고 울어제끼며 엄청난 토를 하는 걸 보면서, 울음이 쉬 멎지 않고 그 강도가 엄청난 걸 보면서, 의학적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 판단했다. 광대뼈 부근에 피가 나고 부딪혀 들어간 자국이 쉬이 올라오지 않는다. 응급실에 도착해 ct를 찍고 안구검사를 받았다. 여섯시간 만에 다행히 골절이나 안구 손상은 없단 진단을 받고 퇴원했다. 조금만 빗나갔어도 안구가 심하게 손상되거나 안와골절이 올 뻔 했다고. 아이 주변에 수많은 어른들이 앉아 있었고, 코 앞에 다른 어른도 있었고, 나 역시 지근거리에서 밥을 먹이다 우유를 마시고 싶단 아이 요청에 잠시 고개 돌려 우유잔을 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쉽게 일어나지 않는 사고. 아이들이 다쳤던 거의 대부분의 순간이 그랬다. 별명이 비글인 나의 아이들. 몹시도 활동적이고 모험적인, 새로움과 위험을 즐거워하는, 도전하고 부딪히길 좋아하는 이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다치는건 어쩌면 자연스럽다. 아이들의 기질과 경향성을 고려할 때, 아이들이 더 자주 다치는건 통계적으로도 합리적인 사고가 아닐까. 몇년간 공동육아를 해오면서 내가 돌보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크게 다친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안전과 규율 담당을 맡게 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내 아이들은 내가 보호자로 있던 순간에 여러 번 크고 작은 사고를 당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큰 아이는 일찍부터 용감했다. 형들도 쉽게 하지 못하던 어린이 줄타기나 체험용 레저에 어릴 적부터 입문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용감함을 칭찬받았다. 아이들의 상황판단력을 고려해 그 말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그만큼 모험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는 거고, 그건 결국 다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맥락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이들은 일어난 현상을 보고 쉽게 조언한다. 그런 말들에 휘둘리지 않는 건 내게 주어진 몫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때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질문에 흔들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붙들면 된다. 내가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엄마란 사실을. 치열한 양육자란 현실을. 주목해야 할 건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나와 아이들의 하루 하루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아이의 사건 사고가 혹 내 실수였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는 건, 결국 부모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밖에 없고, 제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아이를 완전하게 지켜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건사고와 철렁함 없이 아이를 키운 부모는 유사 이래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고통과 상처는 이미 부모에게 충분한 형벌이며, 제 아무리 노력한대도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는없다는 인간 본연의 한계는 부모를 아틀라스의 형벌로부터 자유케 해주는 썩지 않은 동아줄이다.


아이가 사고를 당하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통제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인간은 위험천만한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발걸음을 내딛으며 성장하기 때문에, (확실하고도 분명한 위험 요소는 단연 차단하겠지만) 위험한 사회를 향해 발을 내딛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사고를 막기 위해 아이를 지나치게 과보호하는 건 아이의 물리적 안전을 위해 전인적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심한 골절을 입었다면, 보호자는 이후에 이 아이에게 어떤 가르침을 줘야할까. 미끄럼틀은 위험하니 오르지 말라고 해야할까, 미끄럼틀이 보이는 곳은 피해다녀야할까. 다섯살이나 된 아이를 매 번 졸졸 따라다니며 추락에 대비해야 할까. 이 모든건 건강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대안들이다. 나에겐 아이를 과보호 하지 않고 다시 사회로 내보낼 용기가 필요하고, 아이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러나 또 다시 오를 준비를 해가야 한다. 제어돼야 할 것은 아이의 호기심과 적극성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아이를 내 품안에 가두려는 나의 두려움이다. 아이는 부모의 용기에 힘입고 저 스스로의 준비를 발딛고 자라간다. 점차 위험을 조절하는 법을 깨닫고, 순발력과 대응력을 익혀갈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가끔은 괴롭다. 부모인 내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지가, 아이를 지켜보는 관찰자와 격려자로서의 역할 그 정도 뿐이라서. 늘 마음 졸이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건 부모인 내 몫이라서. 그래서 괴롭다.


4.26키로에 육박하던 거대한 신생아조차 얼마나 작고 가녀렸는지 모른다. 4.26이란 숫자에 놀란 이들(신생아만 주로 보는 의료진들 눈에는, 신생아에 둘려쌓여있던 신생아실에서는 단연 우리 아이가 엄청난 거대아로 보였었지만)도 막상 아이를 직접 보고나선, 그래봤자 1키로인데(신생아 평균 몸무게가 3.3 정도이니) 그 차이를 왜 이렇게 거대하게 상상했는지 모르겠다며 머쓱하게 웃기도 했다. 역시 신생아는 신생아라면서. 제 힘으로 설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이 여린 생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속이 아닌 저 자신의 오롯한 인생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만나게 되는 많은 유혹의 순간마다 나는 흔들릴 지도 모르겠다. 저 자신으로서의 아이보다도, 내 아이란 정체성을 더 굳게 붙들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의 소유라도 되는 것처럼. 나의 일부였던 과거를 근거 삼아. 아이에 대한 무한한 연대 책임에 짓눌려, 내 인생이 따로 있고 저의 인생이 따로 있다는 그 분명한 명제를 쉽게 잊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붙들고 싶은건, '따로 또 같이'로서의 운명 공동체다. 우리가 같이 있지만 별개의 존재란 사실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싶다. 요즘의 우리들의 일상은 샴쌈둥이마냥 연결돼 있어서, 아이의 가벼운 감기가 나의 수면을 좌우하고, 아이의 작은 변화가 나의 일상과 스케쥴에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오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만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내 날개 아래 머물 날은 분명히 유한하다. 영원할 것만 같은 이 내 몸의 구속상태도 머지 않아 그리워하게 될게 분명하다. 나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기다리겠지만, 아이들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저의 세계로 걸어갈테니까. 내 삶의 반경 안에 완전히 속해 있는 현재의 아이들은 머잖아 자신의 시공간으로 완전히 귀속될 것이다. 고로, 부모가 된다는 건 내 심장 아래 작은 심장 하나를 거두는 일이 아니라, 두 개의 심장을 갖는 일이다. 내 심장 하나도 소화하기 힘든 인생에서, 나와는 다른 크기와 속도를 가진 타인의 심장을 껴안고 책임지는 일이기에, 결국 부모에게 주어진 여정에서 가장 어렵고 또 중요한 과제는, 아틀란스의 형벌에서 애써 벗어나는 일이려니.... 아이에게 있어 완전한 보호자,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허상을 과감히 내려 놓고, 그저 관찰자로, 격려자로 아이가 제 삶의 길을 잘 찾아가도록 지켜보는 일 그것 뿐이려니.


창세기를 보면 야곱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열 두 아들 중 요셉이란 열 한번 째 아들을 가장 사랑했다. 그러나 열 명의 형들이 요셉을 시샘했고 결국 요셉은 이집트의 종으로 팔려간다. 형들은 요셉이 동물에게 찢겨죽은 것 같다며 피 묻은 요셉의 옷을 건네고 아버지를 속인다. 그렇게 십삼년의 세월 동안 야곱은 꾸준히 요셉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요셉에게 먼 길 심부름을 시켰던 자기 자신을 미치도록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중동 지방에 큰 기근이 왔다. 요셉의 형들은 이집트로 건너가 곡식을 구하는데 때마침 노예와 죄수 생활 끝에 총독이 된 요셉이 형들을 손님으로 맞이했다. 요셉은 자신의 형들을 알아봤지만 형들은 그가 요셉임을 몰랐다. 요셉은 가족들을 모른체 하며 호구조사를 시작한다. 자신의 친동생(12형제 중 유일한 동복 형제였던)과 아버지의 안위를 묻고선, 곡물을 얻으려거든 막내 동생(베냐민)을 데려오라고 명한다. 형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요셉처럼 베냐민마저 잃을 수는 없다며 완강히 막아선다, 목숨까지 내세우면서. 그러기를 또 한참, 결국 곱은 마음을 돌리게 되고, 형들의 손에 베냐민을 보낸다. 야곱의 심정을 들어보자.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세기 43장 13-14절)


결국 야곱은 베냐민을 하나님 손에 맡긴다.


이 고백을 통해

야곱은 "아이의 삶의 주인이 아버지인 내가 아니라 아이 곧 자신"이라고 고백하며 "이제껏 나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내 아이의 하나님이 되시리라."고 선포한다.


이 고백을 곱씹어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가 겪어 온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앞으로 닥칠 순간들에 비하면 어쩌면 작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커갈수록 그 유횩과 위험은 더 거세질게다. 지금은 물리적인 사고 위험만이 도사리지만, 향후엔 아이 인생 전반에 대한 경쟁적이고도 경제적인 불안과 열망이 나를 덮칠게 분명하다. 그러나 저러나 문제의 본질은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모로서의 우선은, 아틀라스의 형벌에서 벗어나 완전한 부모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를 과잉보호하지 않는 일이다. 그저 피할 바위요 그늘로 머무는 일이다. 그저 함께 하면서 지켜보면서, 때때로 아이를 격려하고 손을 잡아 주는 일. 그게 다일 지도 모르겠다.


포항 일대에서 5.5 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6시간 동안 여진이 26회 이어졌고, 경주 지진처럼 여진이 수개월 지속될 거란 전망도 이어진다.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과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핵발전소가 인접해 있는 경상지역을 떠올리며 엄청난 공포와 분노를 느꼈다. 핵보다 해! 원전보다 안전!)
그 여파로 내일로 예정됐던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나의 작은 아이들 뿐 아니라 수능이 미뤄져 혼란스럽고 힘들 고 3아이들 모두에게도 건네고 싶은 말.


너희의 인생과 발걸음을 응원해.

너희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할게.

위험과 도전 앞에 선 너희가 움츠려들지 않도록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

때론 휘청여도 흔들려도 결국엔 일어서기를,

우리들 역시 그런 너희의 피할 바위가 되고 그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딱 거기까지만.

더 앞서거나 더 과하게 너희를 흔들지 않기를.

너희들에게 주어진 너희들의 인생을 스스로 지켜가도록,

그럴 수 있도록 애쓸게.

내가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약속.


인생길에서 만나는 숱한 사건 사고에도,
낙오와 실패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일어서기를.
어설픈 성공과 우월에 도취되지 않기를,

그런 질서와 사회에 잠식되지 않기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각자의 길들을
굳세게 지켜가기를.
또 이뤄가기를 소망하며.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너희에게,

이미 충분히 향기로운 꽃들에게.

더욱이 활짝 필 너희에게 건네는 시 한 구절.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이정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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