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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는 건 사랑

20170207 내 안에 도깨비 있다

by 조성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간 선녀가 진정 대단타고. 사슴은 그녀의 능력치를 익히 알아보고는, 아이 셋을 낳기 전까지 절대로 선녀옷을 내비취지 말라 경고했었지.. 거꾸로 말해 그녀는 두 아이까지는 능숙히 커버할 수 있는 여자였을게다 하면서.

아이가 둘이 돼 넘치도록 감사한데, 이루말할 수 없이 정신이 없다. 내가 이리도 멀티가 안되던 사람이었나 싶게 자괴감이 든다. 준후가 태어나고 한달 즈음이었나. J가 내게 물었다. "준후 약 먹였어? 아니 주유했어? 아니아니. 수유했냐고 물으려고 한건데..." 나는 어느날인가 아이를 젖 먹이면서 깜짝 놀라 외쳤다. "어머나! 준후 어디 갔지?" 방금도 아이 둘 재우다 깜빡 잠든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후를 찾았다. 정후는 내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도 정신이 없는 요즘이다.

니 혼자 두 아이 어케 돌보겠느냐 걱정하는 친정 가족들에게 남들 다 하는 일이라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나는 늘 어설프고 자주 수선스럽기만 한, 힘에 부치는 엄마다.

늘 애틋하고 애정하는 큰 아이를 자꾸만 다그치게 되고, 순해도 순해도 참 순한 둘째의 조그만 요구해도 금세 예민해지니.. 돌아서면 미안함만 남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쩔땐 아이의 투정을 반사시키며 너의 탓으로 돌리고만다. 이건 내 몫도 내 책임도 아니다. 이건 너의 것이다 하면서. 아이에게 남탓 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라며 돌아서는 내 뒤엔, 너무나도 여실히 "내 탓은 아님"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아뿔싸. 이럴수가.

살림도 누군가를 돌보는 일도 사실은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재능은 더더욱 없는 내가... 이 삶의 자리를 건너며 부던히도 오르고 내린다. 육아 만 3년차 둘째를 맞이하며, 이쯤되면 스파링 할만하다 능력치를 자신했는데....역시나 오산이었다. 그래도 아이와의 교감만은 자신(?)있었던 것 같은데..... 두 아이의 주파수를 동시에 맞추려니 자꾸만 혼선을 빚는다. 띠디딧띠디딕띠디딕 퐉! 아몰라! 나도 몰라! 짜증팍! 내 안에 억눌린 화가 ㅋㅋㅋ 이리도 많았던가. 내가 이렇게나 다혈질적인 사람이었나 싶게 기승전이 없이 용암처럼 화가 치솟아 오르는 순간들. 그 와중에도 잘 커주는 아이들에게 고맙고 넉넉히 기다려주'려'는 J에게 고마운 요즘.

명절내내 TV에선 깨비깨비도깨비님이 온종일 아니 말그대로 왼종일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보다못한 정후가 "엄마 왜 하루 종일 도깨비만 티비에 나와?"라고 묻기까지. 중간중간 같이 시청하던 정후가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천국에 관한 질문을 시작한다. 그러다 창밖을 지그시 응시한다. 얼마 뒤 툭 내뱉는 말.
"엄마. 혹시 나보다 먼저 천국가면.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꼭 서 있어. 절대로 몇발작이라도 움직이면 안돼......내가 못찾으면 안되니까.... 그러면 내가 엄마 찾아가서 맴매 일곱대 할거니까."
원투쓰리..백미러를 살핀다. 역시나 J가 감동을 추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울린다 싶으면 예외가 없다. 찡해진 코 끝을 추켜올리는 J.

어제 밤엔 간만에 정후와 폭풍 수다를 나눴다. 어느새 대화 벗으로 서 있는 아이.
"후야. 내일 아빠 출근하니까 아쉽다. 계속 같이 있어서 좋았는데.."
"엄마 속상해하지마. 조금만 기다리면 저녁되고 그럼 아빠 오잖아. 나는 아침보다 저녁이 좋더라. 아침엔 아빠랑 쪼끔밖에 못 노는데(시간에 쫓기는데) 저녁엔 마음껏 놀 수 있으니까."

때마침 생각이 많던 내가 정후에게 물었다.
"후야. 근데 엄마는 집에 있지만 회사에 다니는 엄마들도 있다고 했잖아.(취업을 위해 기도부탁을 해 온 이모에게 "이모. 엄마 되고 싶다 했잖아. 근데 왜 회사에 가야돼?"라고 물어봤던 정후. 그 때 설명을 해주었다. 각 가정이 가장 행복할 것 같은 방법을 찾아가는거라고. 답은 다 다를 수 있다고) 만약 엄마가 아빠처럼 회사에 가면 어떨 것 같" "싫어!"
"아?"를 미처 붙이기도 전에 싫다는 정후. 갑자기 마음 속 우물을 퍼올리기 시작한다.
"나는 엄마가 집에 나랑 같이 있는게 좋아. 공동육아 끝나면 엄마가 데리러 오고 같이 하루 종일 놀고. 사실은 준후 애기 때 엄마가 못 데리러 오고 다른 이모랑 공동육아 가고 집에 온 것도 속상했어. (흐느끼기 시작) 사실은 우리 엄마가 늦게 오는 것도 속상하고 싫어. 흑흑. 근데 엄마 준후가 네살 되면 난 몇살 되지? 그 때 준후도 나처럼 공동육아 가고 나는 학교 가지?"(아니. 여덟살되고 준후 다섯살 되면.) "맞아. 나도 여덟살 되면 다른 누나형들처럼 학교 갈거야. 그리고 준후도 공동육아 가면......"
잠시 머뭇거리던 정후가 꽤 기특한 생각을 해낸다.
"어라! 그 땐 엄마가 외롭고 심심하겠네?!"
그러더니 나름의 방책을 내놓는다.
"그럼 엄마. 나 학교가고 준후 공동육아 가면 그 땐 엄마 회사 갔다가 아빠처럼 저녁에 만나자. 왜냐면 엄마도 너무 쓸쓸할 것 같아.(쓸쓸? 용례를 알고 쓰는건가? 내 귀를 의심해봄) 그리고 저녁에 다 같이 놀자."

아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가 되었다니 세월이 새삼스러운 밤이었다. 때마침 나에 대해 내 근미래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때였기에 더욱.

과거에 매여 살고 싶지 않은데.... 솔직히 말해 아직까진 지난 기대와 시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구나 싶어 '실'무룩 해질 때가 있다.

인생은 좌표의 평행이동이 아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의 미래도 쉬이 예측할 수 없는게 삶이고,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지고 넘어진 줄 알았던 사람이 저 앞서 가는 일도 부지기수.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반복적으로 속고 또 속는다. 죽도록 노력해 겨우 평범해질 수 있는 사회, 도중에 실족하면 되돌이킬 기회를 깡그리 잃어버릴 것만 사회. 무엇보다 남들 가는 길로 남들이 알아주는 길로 가지 않으면 추락사 하고 말거라 수도없이 겁박하는 거짓 성공신화에. 지나도 지나도 너무 철지난 저울, 그 고장난 저울 위에 서서 춤을 춘다 때론 처연하게 때론 화려하게. 공부 잘하면 출세하고 돈 잘 벌거란 성공신화를 따라 동심도 열정도 모두 담보잡혀온 사회의 구태의연한 외침에 이제 등돌릴 법도 한데.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내 좌표 주변에 자리했던 수많은 이들이 어느 순간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분면에 서 있다 느낄 때, 말글씩이나 배워 댓글밖에 못써먹고 있단 핀잔에 맞서서. 의연하게 그저 내 길에 잘 서 있다 싶다가도 불현듯, 자칫하다 문득 지난 날에 매여 쭈그리가 되는 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답은 분명해진다. 이길로 올 수 밖에 없었구나. 이 길로 참 잘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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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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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생각이 많은 내게 J가 시편 119편을 인용한다. 고난의 시간이 있어야 사울이 되지 않는 거라고. 내가 답했다.
"고난은 아니었다. 오히려 훗날 무슨 일을 하게 되든지. 이 때의 시간들을 꺼내먹으며 그렇게. 버텨내라고. 주신 선물인 것 같다."고 그래서 아쉽다고. 그래도 쉽지만은 않다고.

남들보다 조금은 이른 결혼과 출산. 어쩌면 마음 한켠엔 남들에게 없는 아이, 그리고 특별한 시간이 있었다 자부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마음을 어찌 흑백으로 가를 수 있을까. 필시 그런 마음이 전연 없지는 않았을게다. 이제 한국나이 서른둘. 하나 둘씩 결혼들을 하고 아이들도 낳는다. 바삐 제 길 가다 아이 맡기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퇴로를 완전히 차단한 과거의 시간을 다시 되짚어본다. 아이는 누구에게나 있는데 내게는 돌아갈 자리가 없는 것 같은 막막함. 단 한순간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 그럼에도 분명한건 희미하지만 분명한 불빛을 따라왔고, 그 길 끝에 예상치 못한 기쁨과 감동이 있었다는 것. 삶의 후회는 자리가 아니라 자세에서 비롯될 거라는 것. 각자에겐 자기만의 지도가 있다는 것. 대중의 박수와 격려릉 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 앞으로도 그 빛을 따라 갈거라는 것. 남는건 사람. 그리고 사랑.

다시 한 번 단단히 약속을 받아낸다.
"엄마! 혹시 먼저 천국에 가더라도 저얼대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서 있어. 내가 엄마 못 찾으면 안되니까..."

후에게 천국의 소망을 건넸다.
"후야. 있잖아. 이 세상이 끝나면 이 땅에 있던 모든 건 다 사라진대. 사실은 가족도 없대.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하나가 되는거야. A삼촌, B이모, 친구C 모두 다 이젠 가족이야. 제주도 여행때처럼. 밤이 되도 헤어지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이 있지. 근데 남는게 하나 있어. 영원히 남는거. 불타지 않는거. 그게 뭔지 알아?(뭔데?)

그건 바로 사랑. 뜨거운 사랑.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서로를 아주 뜨겁게 사랑하는 것.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뜨겁게 살아내면 천국에 가서도 정후와 엄마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거야. 어디서 있든지. 무얼하든지. 그래도!

정후 걱정안하게 엄마가 꼭. 그 자리에 있을게.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약속!"(참고:해당내용은c.s.루이스의 네가지 사랑에 수록된 걸 인용해 설명한 것임)

신앙의 언어를 빌리지 않아도, 마지막까지 남는 건 사랑이다.

이 종일반 가족 시대에
격렬하게 끈끈하게 몰두해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데 감사하고.

지불한 비용에 후회않고
뒤돌아 후회않게 이시간에 집중하고

내일 일을 염려않고 오늘의 내공을 쌓아서.
그렇게 원기옥을 모으는 하루.

매일은 백만피스 퍼즐의 조각과 같다. 무척이나 쌩뚱맞고 어쩌면 지루한 시간들 끝에 완성에 가까운 그림을 보게 될 날. 처절하지 않아도 평범이 가까울 수는 있을 우리가 가능한 날을 향해서. 주어진 자리에 주어진 시간에 충성.

글을 쓰다 보면 준후가 낑낑댄다 뭔 일인가 돌아보면 형아에게 살짝 깔려있다. 이제는 제법 소리를 낸다. 나도 사람이라고. 나 여기 있다고. 무거운 손 좀 제발 치우라고. 잠 좀 편히 자자고.

그렇게 세남자 숨소리가 리듬방아를 찧는다.
1호는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2호는 몸을 배배 꼬고
3호는 십자가 자세로
곤히도 잔다.

내 오늘은 여적 안 끝났는데 새로운 내일이 벌써 와있다.
하루는 왜 이리 짧은걸까. 아이가 둘이 되니 시간이 너댓배는 더 빨리 간다.

그젯밤 정후의 마지막 멘트가 들리는듯 하다.
"엄마. 오늘은 더 못 들을 것 같아. 귀가 아파서."
푸하하하하. 녀석이 한참을 얘기하고 내가 얘기를 막 쏟아내던 차였다. J 없이 애 둘만 데리고 기차여행떠난 친정에서의 셋째밤. 그 날 따라 정후가 더 친구 같아 내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려던 찰나. 아빠 몫까지 들어주느라 힘들었던건가. 푸핫. 한참 폭소하다 정후를 쓰다듬어 재웠다. 이제 그만 쓰고 자야한다.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후후들 눈 아프지 않게.

잘자요 모두들,
잘가요 2017년 2월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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