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쉽게 상처 받는다

20160807

by 조성실


부모도 쉽게 상처 받는다-

정후와 J가 집에 가 있는 동안, 예기치 못하게 부녀 빅뱅을 일으켰다. 왜 이렇게 서로가 끈적해야만 하는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끈적거릴 수 밖에 없는걸까.

시작은 정말 작은 거였는데,
별 거 아닌 말에 내가 상처받고
상처받아 내 뱉은 말에 아빠가 상처받아
언성이 높아졌다.

치고 빠지기 기술로 무장해 눈치껏 살아온 딸로서.
그렇게까지 짜증스럽게 바득바득 대놓고 아빠속을 긁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수술한 지 하루밖에 안돼 몹시 지쳐있기도 했고,
두번이나 쓰러질 뻔 한 직후라 심신이 소진돼있어서였겠거니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보는 나.
여튼 나도 울고 아빠도 화가 나서 병원 슬리퍼 신은채로 뛰쳐? 나가시고.. 중재하던 엄마도 우셨다.

엄마가 그럴리 없다 했지만, 아빠는 엄마도 이제껏 보지 못한 삐침파워를 발산하시며 두어시간 전화까지 끄고 잠수를 타셨다.

나 역시 속이 편치 않았다.

내 안에는 늘 내가 상처받은 정당한 이유, 내가 화 내도 되는 근거가 가득했다.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늘 상처를 받아 온 입장이였지, 상처를 주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설혹 상처를 주었더라도 그건 부모님의 미숙함 때문이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성장 과제라고 여겨왔는데..

아니었다. 어쩌면 대단한 오만이었다.
엄마가 조곤히 아빠 입장을 대변해주시며 나를 달래셨다. 늘 동지로 뭉쳐온 우리지만, 내 편에서의 아빠를 더 먼저 바라봐 준 엄마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따듯하게, 나를 어루만지면서. 그럼에도 분명하게 '부모도 상처를 받는다'고, 너 역시 우리에게 많은 순간 상처를 주어왔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부정했지만, 사실상 맞는 말이었다. 가족을 대하는 아빠의 태도, 어투를 지적했지만.. 3인칭 목격자인 엄마 입장에서 구성된 상황재연을 듣고보니, 나만 상처 받은게 아니었다. 아빠며 나며 할 것 없이 너무나도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찔렀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너무 쑥쓰러워 말았다. 시간 되면 돌아오시겠거니 애기도 아닌데 싶었지만.. 두시간 가까이 전화가 꺼 있자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중 아빠가 마음이 정리되셨는지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셨다.

병실에 누워 흐느꼈다.

고스란히 마음이 전해져왔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네가 알아주지 못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최선을 다하고 있노라고.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네게 화가 나야하는데.. 여전히 애잔하고 마음이 아픈 걸 보니 우리는 운명인가보노라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너로 이내 눈물을 흘려야 할 지 모르겠노라고. 결혼하겠다 했을 때 대견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서운해 잠 못 이룬 날들에 대해. 눈물 지은 순간들에 대해. 그럼에도 여전히 네 최선의 행복을 바라고 지원하고자 여기에 있노라고.

정후는 내게 오고, 아빠는 수술 후 누워있는 내가 불쌍하고 걱정돼 정후를 말리고 그러다 정후는 울고, 나는 그런 상황이 짜증스럽고. 못말리는 삼각관계의 반복.

아빠도 나도 제 자식 뒷통수만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외로운게 부모의 사랑이다. 지금은 정후가 나를 보고 있는 것도 같지만, 얼마 못 가 손에 달듯 말듯 안달날 거리로 달려가고 말게다. 그것이 순리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날 우연히, 양가 어른들 중 누구 한 분 돌아가시는 상황이 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슬픔, 상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배우자의 위로가 부모님의 공백을 채워줄 수 없겠지. 남겨진 한 분의 슬픔을 자녀된 우리 역시 채워줄 수 없겠지, 싶어 마음이 씁쓸했다. 할머니가 꽤 오래 홀로 살아오셨는데.. 할머니이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럽게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엄마만한 나이에 홀로되셔 이십여년을 혼자 자고 먹고 그럴게 지내오셨는데.. 그 세월이 쉽지 않았으리라.

아이를 키우며 이전보다 조금씩이나마 부모님 입장을 알 것 같은데..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딸. 엄마로선 매일 진보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딸로선 그저 그렇게 제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하는 나. 나는 나야. 이게 나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전적으로 받아줘. 나는 상처 받고 있어.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이렇게 맴도는 나. 정후에겐 부모로서의 내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면서도. 부모님 입장에선 서보려고 하지 않았던 나.

둘째 낳고 끙끙 앓는 내 뒷모습을 지키고 선 아빠. 그리고 엄마.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작은 신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모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닌데, 나는 왜 그리도 잔인할까. 돌아서 후회할게 뻔하면서 왜 그리도 변하지 못하는걸까.

정후가 아픈 날 참 잘 이해해준다. 정후마저 고열로 시달려 힘든 사흘이었다. J 나 정후 할 것 없이 녹초가 되었다. 고열로 펄펄 앓으면서도 엄마가 아프니 제 딴엔 제법 참고 있다. 어젯 밤 잠들기 전 정후가 말했다. "우리 누워서 얘기할까?" 그러더니 슬픈 눈망울로 말을 이었다. "그치만 엄마는 아파서 못하지? (집에서처럼 같은 침대에 누워 뒹굴면서) 슬프다. 엄마랑 같이 못 누우니까." 그래도 제법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 이불 귀퉁이를 맞춰가며 잠잘 채비를 하고 이를 닦고 쉬를 싸고 나온다. 나는 쉬고 아빠랑 교회에 가는 정후. 오늘부터 교회학교가 정식 개강한다니, 아빠가 선생님을 해야 한다며 울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택일하게 했다.(J 마저 몸살 나 누울까봐 초비상 긴장 상태인 우리집 ㅋㅋㅋ) 채비하며 나름 생각을 마쳤는지 병원을 나서며 외친다. "아빠 없이도 다른 선생님들이랑 잘 하고 올게요. 엄마 만들기도 해서 가져올게요(공과가 있다고 했더니 ㅋㅋ) 또 만나. 잘 쉬고 있어 엄마! 나 잘 갔다 올게!" 대견해 하는 날 보며 J가 덧붙인다. "별이가 힘들겠어. 늘 형아 따라 잡으려고 애쓰는 거 아닌지 몰라." 정후 뒷모습을 보며 부모님을 떠올린다. 물론 아무 일 없던듯이 우리는 자연스러워졌다. 할 말이 많았지만 뒤 이어 별말 하지 않았다. 잠수 탄 2시간 동안 혼자 이발하고 정후가 좋아하는 옥수수 사 들고 오신 아빠. 아빠가 문자에서 남긴 메세지가 자꾸 머리 속을 맴돈다. 부녀지간이지만 속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일들도 사실은 적지 않다고. 서로를 잘 알기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상처주지 않으려고. 나만 참아온게 아니라 엄마 아빠도 같이, 어쩌면 더 많이 참고 노력해 왔구나 싶어 미안하다. 어제 떠나면서도 못내 아쉬운 발걸음으로, 뜨겁게 안아주고 가신 두 분. 부모님 앞에서도 자식 앞에서도 늘 작아지는 것이 사랑. 너무 많이 받아서, 염치가 없어서- 여전히 모자라서, 더 많이 주지 못해서- 그렇게 외바라기로 미안해하고 사랑하면서. 끈적끈적하게.

이렇게 한 고비를 또 넘겼다.

부모도 쉽게 상처 받는다.
부모도 어쩌면 더 자주 상처 받는다.
네살배기 아들의 말 한마디에 어처구니없이 상처받듯이, 세월이 더 할수록, 자녀가 커갈수록, 부모 품을 벗어날수록- 오래된 고목의 진액처럼... 끈적끈적하게 더 끈적하게.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지속되겠지.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잔인하리만큼 아프게.

도저히 이해 안되는,
도저리 계산 안되는
그 사랑의 외길에
또 다시 들어섰다.

별이가 후와 똑 닮았다. 후는 4.26키로로 대단한 우량아였기에 물론 3.44키로인 별이와 다른 점도 많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며 매무새가 참 많이도 닮았다. 여전히 후가 너무 예뻐서 새로운 사랑이 들어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창문 너머로 볼 때만 해도, '너구나. 너였구나. 어. 그래. 안녕..'하는 느낌으로 어색하고 약간은 낯설었는데. 품에 안아 수유하고 맞대보니.

또 다시 빨려 들어간다.
역시 사랑은 머리로 하는게 아닌가보다.

더 많이 상처 받는 길로, 이미 들어 선 나. 또 한 번 들어 선 나.

감사합니다. 상처 받을 수 있어서.
죄송합니다. 자꾸만 상처드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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