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쓸 것인가.
첫 아이를 가지고 만 삼년여가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쓰고 읽었다. 젖 먹이고, 밥 먹이고, 밥알을 닦아주고, 씻기고, 재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잡다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고르고 구매하고, 등등의 기본적인 돌봄/살림 이외의 시간에는 어떻게든 쓰고 읽으려고 발버둥 쳐 왔다. (이 마저도 둘째가 태어나고 정치하는엄마 활동을 본격화하면서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쓰기의 시작은 퇴사였다.
급작스런 퇴사와 함께 생긴 시간을 두려워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이 권했다. 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해보면 좋겠다고. 임신해서 매일 같이 한 일은 아침에 가방을 챙겨 나가 통독팀 멤버들과 함께 기도하고 통독하고 그리고 도서관으로 옮겨 책을 읽고, 떠오르는 소회나 일상의 에피소드 들을 가능한 놓치지 않고 적는 일 등이었다.
나는 기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란 명제를 증명하는 심정이었다.
정치하는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단연 적지 못하는 일이다. 물론, 이전보다 어쩌면 더 많은 글을 적고 더 많은 주제들에 관해 공적 발언을 하게 되었지만. 솔직한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를 할 짬을 확보하지 못한다. 일전에도 여유가 있어 적었던 건 물론 아니었다. 아이를 젖먹이다 아가가 저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는 것 같은 낌새를 보이면 준비해 두었던 책을 꺼내 발가락에 끼어 읽는다거나, 아이를 재우고 한밤 중에 일어나 라이트를 켜고 적는다거나 그런 방식으로 연명해왔으니까. 어떤 때엔 적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키워드만 빼곡히 메모장에 적어둔다거나 그런 패턴 말이다.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그 땐 결과적으로나마 기록할 수 있었다. 소소한 장면들, 그러나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저장해 두고 싶었다. 모두가 잊더라도 심지어 내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질 때에라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며 일기장에서 꺼내 볼 수 있도록,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봄날을 꺼내보리라는 작정으로 말이다. 대단한 각오로 기록해왔지만, 그에 반해 기록물들의 실체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상, 그 자체였다. 일테면, 새벽녘 일찍 기상한 아이 손을 잡고 옥상에 올라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놀았던 일이나, 아이가 난생 처음 울지 않고 손톱 열개를 다 깎을 수 있을만큼 가만히 앉아 있어줬던 날들이라거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안으며, "엄마, 예뻐. 엄마, 좋아."를 처음 연발하던 아이의 모습, 그 순간의 아이 표정, 내 감회, 등등에 관하여. 아이가 내뱉은 몇 마디 말 이면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붙잡고 싶었다. 엄마여서 행복했던 기억, 엄마여서 괴로웠던 기억, 엄마이기에 맞닥뜨린 문제들, 엄마가 아니어도 고민했을 주제들. 이 모든 것들이 소중했다. 어찌되었든 이 모든 것들을 입체적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며칠 전 여섯살 큰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호랑이."
아빠랑 할머니랑, 이모 삼촌이랑, 자기나 동생은 여튼 초식 동물에 가까웠는데, 나만 호랑이로 묘사한다.
며칠 뒤에도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호랑이." 다른 가족이며 지인들의 표상은 그 날 컨디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유독 나만큼은 어제나 오늘이나 호랑이다.
어떤 날엔 내가 말했다. "나만 맨날 호랑이네."
그러자 아이가 내게 제 몸을 기대며 배시시 웃었다. "엄마, 엄마는 호랑이 싫어? 엄마는 호랑이지만,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호랑이야. 나는 동물 중에 호랑이가 제일 좋더라."
그리고는 나를 달래는 아이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어제는 아이들을 등원시키는데 큰 아이가 둘째에게 말했다. "뚜뚜야. 오늘은 엄마가 제일 늦게 오는 날이야. " 다른 아이들은 4시에 하원하는데, 회의나 토론회 등이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더 늦게 하원하게 된다. 점점 그런 날이 잦아지고 있다. 처음엔 많이 울고, 왜 엄마만 일하러 가냐고 따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다른 친구들 엄마보다 제일 빨리 와."라고 당부해대던 큰 아이였는데. 어제는 나름 의젓하게 동생을 가르친다. "뚜뚜야. 오늘은 엄마가 제일 늦게 오는 날이야." 그러자 이제 막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모(그럼 이모랑 있어야 하는거지?)? 우누? 형아?(준후랑 형아 둘다) 엄마 안아주고 뽀뽀(엄마 안아주고 뽀뽀하고 가 줘)" 그게 뭐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에게 맥락을 설명해 주지 않아도, 엄마가 늦게 온다는 말 한마디로도 이제 낮잠 자고 일어나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게 될 건지 예상하는 아이가 고맙고 대견했다. 정말 우습지만, 아주 순간적으로 미안한 마음 같은게 들었다. 꼭 내가 엄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가 아이를 직접 돌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라든지 하는 죄책 같은 건 아니었고,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런 날 아빠랑 손쉽게 출퇴근을 조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과, 어찌되었든 내가 제 1 양육자였고 여전히 제 1 양육자이기에, 나와 더 많은 시간을 원하는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복잡한 감정. 아주 짧은 순간적이었지만 그런 감정을 느꼈다. 물론 그 마저도 아이들 챙겨 나가고 헤어진다 인사하고 하는 새에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지만.....
제작년과 변함 없이 요즘도 아이들에 관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에 관해, 그리고 엄마와 조성실 개인이란 정체성의 경계에서 끊임 없이 고민하는 나 자신에 관해 적고 싶은 욕구가 충천한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내 정신과 에너지가 정치하는 엄마 활동에 많이 할애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여 내 개인의 서사가 나와는 다른 처지에 있는 엄마들에게 불편한 이야기가 되진 않을지 조심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단체 내에서 내 존재감이란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공동대표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만큼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될 때가 많았다. 우리 아이들은 보육 기관에 가가는 대신 품앗이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교사 1인당 아동 수가 적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그만큼의 기회비용도 존재한다. 전자에 대해 적다 자칫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내기 힘든 부모들에게 상대적 박탈감 비슷한 걸 주진 않을지 조심스럽기도 하고, 남편과의 일상적인 다툼과 때때로 찾아드는 격한 화목감과 만족에 대해 얘기하다가 자칫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한정된 글이 될까 두렵기도 했다. 내 얄팍한 문제의식 때문에 단체의 활동이나 회원간의 동지애 같은데 일말이라도 균열을 줄까 뭐 이런 저런 고민들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사적인 내 고민과 고백들이야말로 엄마정치를 시작하게 된 가장 확실한 계기였고, 또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그런만큼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 더 솔직하게 쓰고 말할 필요가 있다고. 물론 이렇게 마음을 먹고도 이전만큼 열심히 쓸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악착같이 육아일기를 쓰고 싶다는 사실.
대외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전업모의 시간, 그 치열함과 생생함을 기록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육년의 공백기를 딛고 일어선 또 한 명의 주목할만한 엄마로서의 서사가 아니라, 평범하고 보편적인 그리고 누구보다 치열한 엄마 조성실로서의 서사로서 세월을 증명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리하여 엄마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꿔가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타인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격려하고 위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내 진짜 마음이 소리친다.
그러므로 다시, 악착같이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