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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1 악착같이 육아일기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 일기

by 조성실

새벽부터 경비 아저씨께 전화를 받았다.


재개발을 앞둔 30년차 아파트 단지, 우리는 늘 주차난에 허덕인다.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최소한의 주차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아 곤욕을 치루기 십상이고 이중 삼중 주차는 기본이어서 차 범퍼가 긁혀 있거나 다른 차를 밀다 실수로 다른 차를 긁기도 쉬운 곳. 당연히 경비 아저씨에게 주차 민원도 많이 들어올 터. 어제는 분명 안전한 곳에 주차했는데 웬일로 아침부터 전화를 하셨지 싶어 부재중을 확인하고 급히 콜백을 드렸다. 오늘 재활용 수거차량이 들어오는 날이어서 차 들어올 공간이 필요한데 그 자리에 주차한 차주가 연락을 안 받았던 모양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근처에 있던 내 차라도 옮겨주면 안되냐 부탁하셨고 출근하려던 남편이 곧장 나가 차를 옮겼다.


아침 먹던 중 멈추고 채비해 나가던 남편이 말했다.

"근데 아저씨가 또 바뀌셨더라. 너무 자주 바뀌는것 같아." 그의 혼잣말에 내가 답했다. "노동처우가 말도 안되게 열악해서겠지. 우리 아빠 연배 분들이신데 만 하루를 일하고 격일로 쉬시잖아."


일전에 계셨던 경비 아저씨는 유독 큰 아이를 예뻐하셨다. 스스럼 없이 인사하는 모습을 귀여워하시면서 누군가 쓸 만한 물건을 버리면 따로 빼두었다 선물로 주시기도 하고. (그 덕에 자전거, 스케이트, 장난감 총 같은 것들을 챙긴 정후. 장난감 총은 지난 기자회견 이후 처분했지만.) 쉬는 날 주변에 바둑이나 장기를 두러 오실 때면 일부러 정후 간식을 사다 주시기도 했다. 젤리나 과자 같은 것들. 그 아저씨도 몇 달 안 돼 그만두셨다.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아저씨들 번호가 여럿. 전화번호부를 정리하다 이젠 얼굴조차 흐릿해진 아저씨들 이름을 지우는데 괜히 울적해진다.


경비실 앞엔 A조 B조 당번 아저씨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전화번호부를 저장할 땐 꼭 이름을 함께 적는다. 그리고 굳이 이름을 넣어 호칭한다. 어떤 분들은 이름을 어찌 알았느냐고 물으며 놀라신다.(그러다 동시에 "아! 앞에 적혀 있지요." 하고 머쓱해하시거나) 이름을 부르니 생소하다고 하시기도 한다. 여튼 아쉬운 건 그 인연이란게 스치듯 가볍게 오가고 만다는 사실이다.


작년도 여름 쯤이었던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연대발언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당일 하종강 교수님께서 강사로 오셨는데, 강의를 듣는 내내 앞서 내뱉은 내 연대발언이 부끄러워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지금보다도 더 노동에 대한 철학과 관점 자체가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 날 강의를 듣고 돌아와 문득 궁금해진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노동자들의 일상"에 관해서였다. 학내 청소 노동자들에 대한 자보나 기사를 보지 못했던 것도 아닌데 이제서야 그런 질문을 하게 된 나 자신이 새삼스러웠다. 그 전까지의 나는 특정 문제가 불거질 때면, '그 조직'이 안고 있는 조직적인 문제, '그 단체'가 해결에 주력하는 특정 사안 정도로 개별화하기 바빴다. 대한항공 사건이 터지면, 항공사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는 아닌지 되묻지 못하고 그저 미디어와 여론이 흘러가는대로 딱 그 정도까지만 생각해 왔던 것.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또 한 명의 뉴스 소비자로 소비될 뿐이었다.


경비 아저씨들에 대한 일도 딱 그랬다. 매일 만나는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처한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서 궁금한 적이 없었다. 어제도 오늘도 바빴고 내일도 바쁠 것이므로. 삶이란게 언제나 그렇듯 정신 없이 흐르고 타인의 노동을 돌아보기엔 내게 닥친 그 날 그 날의 과제만으로도 버거운 법이니까. 몇년을 아파트에 살아왔으면서도 이제서야 그 정도 수준의 질문을 시작하게 된 나를 보면서,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진보적 담론을 말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꿈꾼다는 나 역시 별다를 것 없이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 다다른다. 쩌면 더 큰 위선과 우월의식에 사로잡혀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맞다. 애써 눈 감고 살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공익적 실천은 전문가가 되어서야 이룰 수 있는 그 무엇, 혹은 기껏해야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조금 더 열악한 누군가, 혹은 완전히 이질적인 집단과 상황에 있는 난민과 고아들을 향한 것이라 착각하고는 최소한의 기부와 봉사, 그 정도의 관행적인 방식에 만족하고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늘 힘들고 버거웠지만. 아니다. 착각이란 표현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었고 또 안도했단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참여적이고 공익적인 사람인냥 내 정체성을 설정하면서도 사실상 어떤 기회비용도 내지 않는 상태. 가장 세련되게 나를 포장하는 상태. 그런 생각에 다다르면 마음이 부대낀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담론과 현장의 간극을 메어가는 삶, 실천해가는 삶만이 괴로움을 덜어주겠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다는 건 그런 삶이 아닐까 스스로를 격려한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살아가면 된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나면 된다고.


정치하는엄마가 된 이후에도 내 안에 자리한 위선과 허세를 늘 새롭게 발견하고 동시에 겸허해진다. 아.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과 일들이 있구나 하면서. 조금 더 예민하게 조금 더 사려깊게. 조금 더 냉철하게... 우리가 눈 감고 있는 것들, 귀 닫고 있는 것들을 향해 의지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책 <웅크린 말들>이 조명해내는 수 많은 주제들이 여전히 우리 도처에 존재한다. 생활 반경 안에서 웅크린 말들을 발견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이런 상황을 빗대 아는만큼 보인다고 일컫어도 될련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둘러 본 세상은 조금은 다르다. 아저씨들이 어떻게 화장실을 가시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휴가는 어떻게 가시는지. 알지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내게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엇들이 보인다. 그 사실이 한켠으론 괴롭다. 결국 나는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없는데.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데. 에너지와 관심을 더 폭넓게 나눠쓸 수 없는데 하면서. 나를 둘러싼 현실이 선명해질 수록 괴로움이 더해간다. 애써 모른 척 하고 싶고 굳이 알고 싶지 않고. 그러다가도 알아야겠고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 그 사이의 양가 감정.


엊그제 놀러 온 친구와 속닥속닥 대화를 나누던 정후. 무슨 얘기 끝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야?" 내가 되물었다. "정후가 생각할 땐 엄마가 뭐하는 사람 같아?" "음. 엄마는. 엄마 정치하는 사람." 내가 부연했다. "그리고 공동육아 선생님!" 아이와 엄마의 일에 대해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가상의 무기 장난감을 상상해 놀다가도 문득씩.


"엄마. 그래도 다음 번에도 무기 장난감 갖고 노는 거 좋은거는 아니라고 말해줘. 사람들한테."


이런 류의 격려를 건네오기도 하고. 오늘 아침엔 경비 아저씨에 대한 우리 부부의 대화를 보다가


"엄마. 나 좋은 생각이 생겼어. 친구들이랑 돈 모아서 공동육아방에 소파 사놓기로 했는대. 마음이 바꼈어. 오늘 가서 애들한테 물어봐야겠다. 돈 모아서 아저씨 여름에 덥지 않게 에어컨 사줄 수 있냐고. 그래서 살래!"


아주 가끔이지만 이렇게 정치할 일들을 (제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보기도 한다. 아이의 제안이 반가웠지만 한켠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더 이상은 할 수 없는데. 아. 한가지 일만 하려해도 엄청 노력과 시간이 드는데. 지금은 무리야. 그리고는 다시 아저씨를 만나 인사한다. 두돌이 못 된 둘째가 경비실 문을 두드린다. 엘레베이터를 지날 때마다 늘 그렇게 인사한다. 어느날부턴가 우리 아이들이 지나가면 아저씨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와 인사해주신다. 어차피 준후가 문을 두드릴테니까. 얼굴을 들이밀고 "하부지 안뇽세요"를 외치곤 수줍게 내 품에 얼굴을 묻을 테니까.


아이가 오늘 아침 말을 잊지 않고 친구들에게 전했는지 아직 모른다. 잊지 않고 또 다시 내게 말할 수 있을지 것도 확실치 않다. 만일 아이가 두세번 더 얘기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 내가 주민들을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있을지도 확답을 못하겠다. 내겐 좋은 명분도 있다. 소유자가 아니라 세입자일뿐이라고. 아파트 동대표로 출마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일을 벌려놨다고. 그 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 돌보는 것만도 급선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도 오늘의 생각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아이가 내뱉든 말들과 함께.

"오늘 가서 애들한테 물어봐야겠다. 돈 모아서 아저씨 여름에 덥지 않게 에어컨 사줄 수 있냐고. 그래서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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