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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악착같이) 육아일기

20170331 엄마 정치를 만나기 전

by 조성실

20180512

하루 종일 마음이 너무 슬펐다. 추적추적 비도 오고. 아침부터 둘째를 심하게 혼냈다. 비 때문은 아니다. 물론 이유가 있었지만 순간 내 감정응 통제하지 못 하고 육년여의 원기옥을 모아 이제껏 중 가장 맹렬한 에너지와 분노로 소리를 지르고 아이 엉덩이를 때렸다. 그리고도 분이 안 가셔 씩씩거리다 훌쩍이는 나에 대한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 아이들 때문에 살아간다 싶을 때가 다반사지만 그러다가도 부모인 내 어깨에 얹어진 부담과 제약들에 무겁고 답답해질 때면. 내 마음은 갈 바를 알지 못 라고 그저 주저 앉아 울고만다.


하나님. 제 연약한 성정에도 불구하고

저희 아이들이 저마다의 삶에 주어진 빛과 위로와 사랑을 놓치지 않고 자라게 도와주시옵소서.


가끔은 불현듯

아이들에게 용서받지 못할까 두렵다.


부모를 용서하고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은 내가 엄마가 된 이후였다. 그것도 엄마가 된 지 한참 더 지나서.


성취에 대한 욕구와 지향이 폭발적인 내가 임신과 육아를 갈망하고 많은 이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일을 그만 두었던 건. 아마도 기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거란 기대. 부모가 되고 얼마 안 돼 기대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만큼 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운 내 자신을 보면서. 그리고 인정했다. 내가 받은 사랑과 돌봄이 최선이었음을. 나의 엄마와 아빠의 최선이었단 걸, 그렇게 감사함과 미안함이 찾아 들었다. 물론 여전히 부모님과 부딪히고 돌아 서 후회한다. 그러나 이전의 상태와는 다르다.

나 역시 제 아무리 발버둥친대도 결국 언젠간 자녀의 용서를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으리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


며칠 전 지인의 페북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고 마음에 새겼다. 꼭 이 글의 수신인이 나로 지목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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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릴 때에는 부모를 사랑한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부모를 판단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부모를 용서한다."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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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바라기는. 조금 더 용서 받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20170331 일기

아침부터 화가 난다.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바싹 말라서 살짝만 스쳐도 불길이 점화될 것만 같아 아슬하다.


다행히 아이가 컨디션이 좋다.

내가 별 것 아닌데도 한숨 쉬고 짜증을 내도 웃어 넘기고 만다.

밤새 또 내 젖만 물고 열두번도 더 깨던(아픈후유증+빈혈) 둘째 아가가 잠시 잔다. 물론 얼마 못 가 깨겠지만. 이 글을 끝내기도 전에. 베란다 자기 놀이 공간에서 끊임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후가 1인 다역을 하고 논다.


그래도 네가 건강해서 다행이구나 한다.


내가 지칠 때 내 꺼진 컨디션을 받아 줄 수 있는 메이트가 있단 건 축복이다. 한 사람이면 춥겠거니와 둘이면 따듯하고 삼겹줄을 끊어지지 않는다고.


제작년 바지를 꺼내 입었다.

정후가 물었다. 팬티냐고. 푸하하하하. 아이 보기에 쫄바지처럼 붙었단 의미인가보다.


어제는 길가를 지나다보니 김태희 커피 광고차가 서 있었다. 정후가 눈짓으로 가리켜 알았다. 정후가 뭐야 묻는것 같아 광고하는 차라고 알려줬다.

정후야 저 누나 예뻐?

그러자 정후가 서슴치 않고 답했다.

엄마가 더 예뻐.

넌 둘도 없는 효자구나.

사랑하는 나의 뮤즈. 앞으로의 내 역할은 매일 한 걸음씩 뒤로 더 물러나 주는 것. 그러나 변함 없이 근처에 머무르면서.

옆에 선 이모들이 웅성거리자 정후가 쑥쓰러운듯 고개를 약 15도 내 쪽으로 기울인 채 먼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몇 발작 걷다. 내가 말했다.


후야. 엄마보다 더 예쁜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하는거야.


며칠 전 아침. 아이들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진 두 개의 태양이 아침부터 부글부글. 내 딴엔 며칠동안 참았는데 계속 짜증내는 부군. 요즘 J는 거절도 화도 짜증도 내는 입체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더 자주 싸우고 더 자주 푼다. 여튼. 오전 내내 나도 일절 연락 하지 않았다. 쳇. 맛 좀 보라지. 그러고 있는데 오후에 그가 유튜브를 공유해왔다. 벤이 부릅니다. 늦은 후회.

그리고 미안합니다. 다섯글자 메세지.


정후랑 같이 들었다.

듣기 전에 정후에게


정후야. 아빠가 엄마한테 뭘보냈어.

뭐라고? 사랑한다고?

몰라. 아까 아침에 티격대서 사과하려고 보냈나? 같이 들어볼래?


그리고 오후에 두세번 더 연락이 왔다. 퇴근한다 전화오니 정후가 스피커폰에 대고 외친다.


아빠. 왜 자꾸 엄마한테 메세지 보내? 참. 그만 좀 보내~


요즘 우리 집에서 그야말로 마가(?) 낀 자리는 식탁. 정후 맞은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자꾸 화를 내게 된다. 다섯살의 삐딱함은 네 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지난 한 주 아빠랑 정후가 자주 삐그덕삐그덕. 그 날도 꼭두새벽부터 둘이 시끄럽다.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내가 일어나면 둘째가 깬다. 그럼 문제가 더 복잡해 짐) 듣자보니 괘씸해서 내가 나가 제압했다.


정후야 너 정말 반성해야해. 진짜 잘못한거야.

뭘 잘못 했는지 설명하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 몇 초 뒤 정후가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엄마. 그럼 나 어디서 반성하고 있어야 해?


나도 놀랐다. 아이가 다 알고 있었고 생각보다 잘 수용해서.


식탁에서 생각해보고 정리되면 아빠한테 사과드려. 그리고 다시는 안하는거야. 알겠지?


정후가 식탁으로 가 생각하더니 아빠 뒤에 가 백허그하며 용서를 빌었다. 죄송해요 나쁘게 말해서.


용서에 대해 생각한다. 용서를 구하는 것도 용기다. 용기와 패기 넘치는 아들을 둬 감사하다. 가끔 균형이 안 맞아 벅찰 때도 있지만 감사함에 비할 바 아니다.


정후랑 나랑 준후랑 놀고 있었다. 난민보호팔찌를 내게 건네달라 했는데 보란듯이 베란다쪽으로 던져버린 정후. 체. 내가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 잊었다. 한참 후, 급히 베란다로 나간 정후가 팔찌를 들어 공손히 내게 돌려주면서 하는말이.

"엄마.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아이도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보다 많이 스스로 결정한다.


몇번이나 사 달라던 시계를 결국 얻었다.

후가 하루에도 몇번씩 시계를 꺼내본다. 물론 며칠 안 가 싫증 나겠지만.. 자랑하지 못하게 하니 은근 슬쩍 차고 나간다. 자꾸 시계를 꺼내본다. 제지하다 어느 선까지 아이를 제지하는게 맞을까 싶어 고민했다. 여튼 아이에게 자랑하면 안 된다니 그런건 아니란다. 그래도 나는 내심 자랑하고 싶어서겠지 했다. 그런데 정후가 귀가길에 내게 말했다.


엄마. 나 자랑하려던거 진짜 아니야.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내가 실수로 밟았던 적 있는데

그것 때문에 갑자기 부서지지 않았는지

계속 불안해서.

그래서 계속 확인하고 싶었다고.


아이는 요즘 계속해서 날짜 요일 나이 시간을 묻는다. 글자 숫자도 묻는다. 모든 걸 부모에게 의지해 읽고 알던 정후가 중재자 없이도 세상을 스스로 읽어나갈 채비를 해 간다.


암흑과도 같은 세계에서 나는 정후에게

나침반이고

시계였다.


아빠 언제 오시려나? 지금 몇시쯤 됐을까 내가 혼잣말을 하니.

엄마 잠깐만. 내가 내 시계로 봐줄게 하며 부리나케 달려가 제시계를 가져왔다. 자랑스럽게 버튼을 눌러 시계를 켠다. 노래와 함께 시간이뜬다. 물론 시간은 맞지 않았다. 아빠가 오고있나봐. 그래도 행복해하는 정후.


J와 전화로 장난반 농담반 투닥이는데 정후가 내게 충고했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면 용서해줘. (뜸 들이지 말고) 바로. 그래야 하는거야.


준후가 약먹다 크게 사래 걸려 잠시 숨막혀하더니 두번이나 토했다. 거꾸로 들어 막 등 두드리는데 정후가 자꾸 말을 시킨다.

잠깐만 조용히 좀 해 봐. 엄마 지금 진짜 놀랐어 하니.

정후. 어조 변화도 없이.


엄마. 침착해.


가끔은 아이를 의지하게 된다.


혼자 잘 놀길래 그 노래와 역할놀이 들으며 구석에서 급속충전하는데(급히 휘갈기면서)


사실 혼자 논게 아니라 날 기다린거였다며 옆에 와 기다리고 있다. 노래 한 곡 끝날 때까지만 기회를 줬다.


그래서 이제 그만 써야 한다.

젖 먹던 둘 째가 일년만에 이렇게 컸다. 아장아장. 민들레 홀씨 찾아 모험을 떠난다. 바지란히 자라는 아이들. 그 동안 엄마인 나는 얼마큼 자라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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