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2
아이 마음 속에도 풍랑이 분다.
잔잔히 유유히 평화롭기만 한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해일이 몰려온다.
그러다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이 고요해진다.
가끔은 쓰나미처럼 주변을 다 삼켜버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몇 초 안돼 별 일 없는듯 제혼자 평온해지기도 하는....
깊은 바다. 깊은 호수. 마르지 않는 샘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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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에 접어들면서 부쩍 배가 많이 나오고, 치골 통증으로 인해 앉고 서는게 불편했던 나. 샤워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후가 매 번 놀라며 엄마 배가 수박보다 더 커지고 있다했다. 동생을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안한지. 전에 없던 대소변 실수를 보이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옷에 쉬를 싸는 그 순간에도 "엄마! 미안해. 쉬가 나와버렸어. 힘들게 하서 미안해."라고 해서 나를 울렸다. 내 몸도 힘들어 순간 짜증스럽게 대처한 내가. 진심을 다해 정후에게 사과했다.
"후야. 엄마가 정후 실수 너그럽게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 엄마도 별이가 너무 커져서 힘들어서 그랬어. 용서해줄 수 있어?"
그러자 후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 다음에는 더 예쁘게 부드럽게 말해줘. 알겠지이?"
나보다는 아빠의 심성을 더 닮은 정후가 자주 나를 더 꼬옥 안아준다. 관계보다는 늘 일 중심적인 내가... 순차적으로 해야 할 과업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하나씩 리스트를 지워나갈 때....순간 순간 옆을 보면 후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
"엄마 내가 갖다 놓은 거 본거지? 나 기다리고 있어."라면서. 물론 인상깊은 장면들이 뇌리에 남는거고, 또 많은 순간은 딱 네살 아들마냥 짜증도 내고 울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튀어나오는 그의 마음결에 나는 늘 한 발 늦게 반성한다. 잦은 반성과 자체 시뮬레이션 교육을 통해 예전엔 두세 걸음 늦게 사과하던 내가, 요즘은 한발 또는 반발만 늦는것 같아. 그래도 너무 자책치 않고 더 노력해보려고 한다는....
어느 날 정후가 잠결에 흐느꼈다. 엄마는 이제 목마도 못태워주고 안아주지도 못하고. 별이가 나와버릴 수도 있어서. 자기가 울었다고.
친구들에게 킥보드를 선물받고 목 빠지게 아빠를 기다리던 저녁. 정후가 먼저 "엄마는 별이 땜에 힘드니까 집에 있고 아빠랑만 둘이 킥보드 타고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기특도 하고 은근 서운도 했는데. 그 담날 아침 눈 뜨자마자 후가 안겨 흐느낀다. "사실은 어제 엄마랑 같이 가고 싶었."다고. 그치만 엄마가 힘드니까 참았는데 너무 너무 같이 가고 싶다고. 사실은 그렇다고.
가끔씩 아이의 어른스러움에 기대 더 많은 걸 바라게 될 때가 있다. 이 아이만큼은 좀 더 어린양 부릴 수 있게 종종 풀어주고,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위계와 질서가 익숙한 엄마이기에... 한 번 풀어주면 그간 수고해 온 모든 것들이 비틀거릴 것 같아 쉬이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혹여 훗날 정후가 이런 나를 힘들어하지 않을까, 돌아보니 엄마의 그런 모습이 힘들었다 하지 않을까 싶어 종종 미리 조심스럽기도 한 소심한 엄마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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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후는 나와 달리 감정/감성이 발달한 아이인 것 같다. 며칠 전 어떤 책을 읽다가 "진짜 재밌는 책이네(good)"라고 내가 혼잣말을 했는데(스토리가 좋다는 뜻이었음), 후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엄마. 이거 정말 슬픈 책이야....."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인공 여자 아이가 자기가 이끼던 새의 죽음을 친구들과 나누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내용을 마음으로 읽기보다, 동화 구성이 좋다, 스토리가 기발하다, 전개가 교육적이다. 이런 식으로만 평가하고 있었단 사실을 자각했기에.
이렇게 순간 순간 후를 통해 내 진짜 모습을 무심결에 마주한다. 서로가 서로를 잘 다듬고 빛나게 해주기를 바라며.. 내 부족함만큼 그래도 내게 있을 어떤 강점이 후에게도 좋은 교사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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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 어느 날 아침 설거지 하는 내 옆에 서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나 친구 몇명이지?"
"그러게~ 한번 세볼까."
친구들 사촌 및 친척, 이모 삼촌들, 할아버지 할머니, 목사님 사모님. 등등 수십명의 이름을 줄줄줄 꿰가며
우와 진짜 많다!
여러 사람들, 그것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상호작용하며 커갈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큰 자산이고 감사한 일이다. 요즘은 새로 오신 경비 아저씨와도 부쩍 친해져서(처음엔 낯설어 하더니 자주 자주 인사하면서 엄청 친해짐) 아이스크림도 얻어먹고. 엄마 쓰레기 버리러 간 사이 아저씨 선풍기도 얻어 쐬고 그런다.
돌아보면. 남는 건 사람 뿐이었다.
세월과 풍파를 지나며 (내 탓이든 남 탓이든 상황 탓이든) 결국 가까이 남는 사람도 몇 안 남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사람과 사랑 둘 만이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이시간이. 정말 값지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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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 하는 혼잣말 중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멘트 중 하나가
"별일 아니야. 괜찮아. 다시하면 돼."다.
놀라우리만치 J와 나의 접점에 있는 정후. 욕심도 많고 자기틀이 강했던 나는.....필시 유아빈혈(왕짜증+신경질)ㅋㅋㅋ이었을거란 ㅋㅋㅋ 놀림을 받을 정도로. 성질이 드센 구석이 있았다는데. 후에게도 종종 비슷한 모습을 본다. 다혈질적으로 폭발하는 지점. 스스로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북받치는 ㅋㅋㅋㅋ 짜증. 특히 무언가가 제 맘과 속도대로 안되거나 실패할 때. 받아들이지못하고 뒤로 막 넘어가는 그런;....
정후에게 "별일 아니라고. 다시하면 된다고. 괜찮다."고 말햐 줄 때마다.
사실 나는 어린 나에게 말을 걸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성실아. 괜찮아. 별 일 아니야. 다시 하면 되는 걸. 이건 울 일이 아니야. 이 한 번의 작은 실패는 네 인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아. 라고.
아홉살 때였나, 일곱살 때였나.... CT를 찍었던 기억이 난다. 몇달 째 만성 두통을 호소하던 나를 데리고 엄마가 병원에 갔다. 엄마 자전거 뒤에 매달려 병원을 가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엄마의 뒷모습이 느껴졌던 것 같다. 결과는 신경성 두통이었다. 그리고 이십년 가까이 만성 두통에 시달려 온 나였다. .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지난 일이년간 거의 두통약을 먹지 않았단 사실을 알고 놀랐다.
나는 왜 그리 긴장된 아이었나.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아세웠던가.
유리알 중의 유리알이었던 내가.
세상의 모든 주파수를 다 읽어내려는 듯 몸의 모든 안테나를 곤두세우며 살아온 내가.
어느새,
선택적으로 레이더를 열고 닫고.
스스로에게도 아이에게도
"괜찮아. 별일 아니야. 다시 하면 돼."라고 말 할 수 있게 됐다니.
참말 값진 발견이고 변화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존재 자체만으로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잘 하고 있어."라고 격려를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선배들처럼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야 참 좋겠다.
존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현재를 드러내는
그런 사람으로....!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