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9
#1)
"엄마. 내가 크게 잘 못 안했는데도 엄마가 나한테 화낼 때도 있었지? 그래도 괜찮아. 엄마도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랬지? 그래도 나는 엄마 사랑해."
뜨끔한 돌발고백을 끝으로 정후는 깊이 잠들었다. 아이들이 다 잠들고도 한참동안 그 여운을 곱씹다 잤다. 삼일 전 일이다. 요즘 정후가 부쩍 커서 놀라우리만치 자기 생각을 언어화한다. 그 뿐 아니라 자기 눈에 비친 엄마를 뱉어내는데 이 어린 아이가 구술해내는 내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때론 날카롭게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엄마를 조명해내는 정후가 낯설면서도, 사춘기가 되면 얼마나 더 여실히 나를 지적할까 싶어 긴장된다.
오늘밤도 아이들이 잠들었다. 오늘 엄마 영업이 끝났다. 퇴근. 지난 이틀 연달아 꼭 쓰고 자야지 다짐했는데 눈꺼풀을 이기지 못했다. 오늘도 무거운 잠을 이기며 몇 자 적어내려간다.
지금도 나는
좌준후 우정후로 포위됐다.
이젠 준후마저 빙글빙글 돌아 자다 깨보면 두 아이가 바짝 내 잠자리를 조르고 있다. 피할 곳 없는 나는 결국 모로 누워자기 일쑤. 피곤이 천근만근이면서도 자식 보면서 새 힘을 얻을 수 있단게 참 미스테리다.
아빠랑 잘 자던 정후도 준후가 뒤집기 시작하자 엄마 옆자리를 놓치지 않고 더욱이 사수한다. 자다 깨서라도 지근거리로 와 다시 잠드는 녀석. 오늘은 팔베개를 해주는데 갑자기 위로 쓱 올라가더니 "엄마. 목을 대니까 더 편하지?" 묻는다. 왜냐니 머리를 대면 엄마 팔이 너무 아플까봐 목을 댄다고. 정후는 어느게 편하냐니 머리를 받쳐주는게 더 편하다고. 토닥여 다시 머리를 베주었다. 곤히 잘잔다.
아이가 자란다.
부모의 세월을 먹고 아이가 자란다.
자란다는게 이렇게나 희망적이고 힘이 있는 줄 이제껏 잘 몰랐다.
준후마저 빙글빙글. 양 옆에서 발차기가 날라오고, 어느 순간 사라진 정후를 더듬다 보면 머리맡이나 발치에 가로로 누워 자고 있다. 테트리스 한 장면 마냥 용케도 잘 맞춰 누워잔다. 양 옆 아들들이 날 밀어붙일 때면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판게아 융기가 떠오른다. 양 대륙에 밀려 결국 융기해 올라선 산맥처럼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모로 누워 자고 마는 나를 보면서. 그 와중에도 이젠 제법 뒤집고 움직이는 준후 덕에 한 숨 돌리는 나를 보면서(뒤집지고 못할 땐 혹시라도 자다 깔릴까봐 어찌나 조심했던지 자도 잔 것 같지가 않다는)
아이가 스스로 앉고 걷고 뛰고 말하며 자라간다는게 참말 감사하다.
스스로 단추를 잠그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추론하고 기억하고 의견을 제시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자랄 수 있단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큰 희망을 줄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사람이든 집단이든 여물고 자라야한다.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건 더 자라갈수 있다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자라나는 사람이 되고싶다.
#2)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가
"너 참 피곤한 애야. 실삼 떨지 말고-"
실삼을 표준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새삼스럽다' 정도가 적혀있다. 뭔가 실삼의 그 어감을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여튼. 실삼. 그 말을 들으면 그렇게 기분에 상했다. 지금에서야 깨닫건데, 내 예민함을 부정당하고 무시받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 몹시 까다로운 사람으로 거절받는 것 같아 불쾌했던거다.
나를 좀 알게 된 사람들은 다들 나를 보고 엄청나게 많은 안테나가 있다고들 한다. 그 놈의 안테나가 좀 꺼지거나 고장나도 좋으련만 날이 들수록 더 생생히 살아서 나를 볶아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어떤 땐.
내 어떠함을 여전히 조금은 부정하고 싶은 내가. 내 아이에게서 나와 꼭 닮은 모습을 본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동아리 선배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아이에게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아이를 참아주기가 가장 힘들다고. 자기를 긍정하고 수용할 때야 비로소 제 자식도 잘 보듬게 되는 법인가보다."고. 연애도 안하던 그 시절, 그 말이 왜 그리 마음에 콕 박혔었는지. 근데 그 말을 수년이 지난 이제야 꺼내 삼킨다. 잘 알겠다.
정후의 어떠함 때문에 고민하는 내게 누군가 건네는 조언.
"예민해도 괜찮아."
그리고 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클 수 있을거란 희망. 그걸 심어주었다. 어두웠던 마음이 기대로 변한다. 예민함이 자신을 삼키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 할 수 있는 아이로, 필요할 때 센스를 마음껏 발휘하며 보듬을 줄 아는 따듯한 아이로,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의를 이룰 수 있는 사려깊은 아이로. 자랄 수 있기를 바라며.
나와는 다르게 클 수 있단 희망.
예민해도 괜찮아!
#3)
아이에게도 자기 굴이 필요하다.
정후가 울면서 나를 찾는다. A가 크게 화를 내 무서웠다고. A는 단단히 뿔이 났다. 숨바꼭질 도중 옷장 안에 숨은 정후가 뛰쳐나오려다 A와 부딪혔다. 정후의 사과에도 A가 소리 지르며 발을 굴렀다한다. 나에게도 화를 내며 곧 들이받을 것 같던 A를 달래다 혼자있을 시간을 주었다.
"혼자 있으려고 했는데 말하니까 더 화나잖아!"라길래...
정후도 자기 굴에 가서 생각을 정리하듯이 A도 그러지 싶었다. 대신 생각을 정리한 후 세가지를 해달라 부탁했다. 십여분 뒤 A가 나타났다. 생각해보니 사실 정후에게 아까부터 서운한게 있었다고. (몇 시간 전에) 집짓기 놀이를 하는데 정후만 혼자 해버려서 속상했다고. 그래서 정후 문에 부딪혔을 때 사과를 받았는데도 화가 안 풀렸던거라고. 내 손 잡고 가 정후와 뜨거운 화해를 나눈다.
"아까 사실 나도 서운했었어. 그래서 용서못했어. 다음엔 나도 안 그럴게. 정후도 나 챙겨줘."
"미안. 나도 몰랐어. 나도 잘 할게. 다음엔 화내지 마-"그리곤 더 뜨겁게 어울려 논다. 물론 숙제 세개도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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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마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오직 큰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릴지브란, 예언자 중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