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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사적 공간, 너의 거절을 응원해!

20170112 벌써 1년

by 조성실

쓰고 싶다.

강렬하게 쓰고 싶다.

쓰고 읽고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내가,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시간을 버텨가자니...길어지는 건 잔소리 뿐인듯.

언젠가 써내려가리라 담아둔 흔적들이 메모장을 빼곡히 채운다. 쓰기위해 허락된 시간보다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이 더 컸기 때문이라 자위하면서, 글로 완성되지 못한 키워드들을 훑어내린다. 더 생생할 때, 기억에 더욱 선명할 때 액자에 담듯 담아내고 싶지만서도, 언젠간 그런 날 오겠지 하며 다 쓰지도 못할 이야기의 단서들을 오늘도 욕심내 주워담는 나. 그게 바로 나다.

오늘은 더욱이 '써 내려가고 싶은 날'이었다. 그런 날이 있다. 앉기만 하면 일필휘지 머릿 속에 떠다니는 생각이 하나의 글로 엮어져 나올 것만 같은 날. 주제는 「내 아이의 사적 공간」, 주제문장은 "너의 거절을 응원해."

그런데 쓰지 못했다. 온종일 문자 하나, 전화 한 통 맘 편히 다 읽어내려가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났다. 와중에 쓰려던 시상들은 허공으로 다 흩어져 버리고 그럼에도 무언가 쓰고 잠들어야겠단 마음에 밀려 세 남자 숨소리를 듣고 있는 이 밤.

어디서부터 써내려가려했지 되짚어본다. 오늘 하루를 더듬어본다. 아. 그래.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오만과 편견.

지난 주 전북 여행 때 군산에 갔었다. 진짜 해군들이 사용했던 배 내부를 박물관처럼 만들어놓았는데, 군인들이 사용했던 오래된 침대를 보며 정후가 말했다.

"불편하겠다."

그 얘길 듣고 내가 답했다.

"정후야. 군대에선 불평을 할 수 없어."

요즘 정후의 불평에 심기가 불편했던 내가, '불편'이란 단어를 '불평'으로 오역한 것이다. 뒤따라오던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꽤나 어리둥절해하던 정후의 표정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게 틀림없다. 그렇게 무섭다. Frame이란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아이를 잘 알고 있다는 오만, 내 아이는 이러이러하다는 편견 때문에 그간 놓쳐온게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본다. 연애에서도 육아에서도 '오만과 편견'을 늘 조심해야 한다. 아이는 늘 내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자라가므로.

정후가 친구와 싸우고 단단히 톨아진 순간. 다른 방에서 젖물려 둘째를 재우던 내가 안되겠다 싶어 정후를 찾아갔다. 정후가 나를 피한다. 투정이겠거니 싶어 따라가니 또 다른 방으로, 그 방에 가니 다시 아까 전 방으로. 그러면서 하는 말.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내 귀를 의심했다. 이제껏 내 품의 위로를 그렇게도 원하던 네가 아니었던가. 나름의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혼자 있을 수 있게 시간을 주었다. 조금 뒤 정후가 하는 말이 "엄마가 (자신을 위로해주지 않고, 도리어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좀 더 양보하지 그랬느냐"며 자신을) 혼내거나 (더 양보하라고) 뭐라 할까봐 피했다"고. 서운한 내가 답했다. "후야. 엄마는 너를 혼내는 사람이 아니야. 널 위로하고 편들어주려고 간건데. 담부턴 오해하지 말아줘. 엄마도 서운하거든."

그리고 오늘, 정후와 유독 투닥거린 날. 작심한듯 정후가 내게 묻고 말한다. "엄마 왜 화났어? 지금 화나 보여."

정후의 감정섞인 단어에 단단히 빈정이 상한 내가 정후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내놓자 예상치도 못한 정후의 진짜 속마음들이 줄줄이 캐나온다.

"정후가 빈둥빈둥이라거나, 엄마짓(엄마탓이란 뜻인듯)이란 표현을 해서 엄마도 기분이 안 좋아. 정후가 그런 단어를 쓸 때 엄마는 정후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그러자 정후가 내어깨를 토닥이며 답했다.

"그치만 난 엄마를 사랑하잖아. 여전히..."

그리곤 혼자 자리를 뜬다. 마음이 불편한 내가 정후를 부른다. 달려온 정후가 막상 별 할말없는 나를 보더니 소리쳤다. "혼자 생각하고 오려고 했는데 왜 불렀어?" 단순히 삐져서 자리를 피했다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정후도 자기를 지키고 표현하기 위해 자기만의 사적 공간으로, 자기 굴로 잠시 몸과 마음을 피한 것이었다. 일이분뒤 정후가 다시 나타나 말했다.

"엄마. (나는 혼자서) 따로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져. 이제 준비됐어. 얘기해줄게."

그러더니 대단히 자세히 자기 심경과 생각들을 문장으로 구술해냈다. 그제서야 새삼 다시 알았다. 아이가 감당해내고 있는 자기 몫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컸다는걸. 나만 아이를 받아주고 있는게 아니라 이 아이도 나를 함께 받아주고 지고 가고 있었단 사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한 아이의 관점과 구술을 마주하며, 더 냉철하게 분석당할 훗날이 문득 두려워졌다. 다섯살 이 꼬마 아이가 생각보다 건강하게 엄마를 파악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안방과 베란다 자기 굴을 오가길 너댓번.

"난 엄마가 다 내짓(탓)이라고 해서(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속상했어. 엄마는 그랬구나? 나도 그건 미안해. 이제 우리 화해한거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사과의 키스를 입술과 볼에 건네오는 아이. 정후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건넸다.

"정후야 마지막으로 한가지 말하고 싶어. 어제 엄마가 말한거 있잖아. 서운했다고 다음엔 엄마 피하지 말아달라고 한거. 그거 취소하고 싶어. 다음에도 정후가 혼자 있고 싶으면 거절해도 돼. 혹 엄마가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절해도 돼. 엄마는 네 거절을 응원해. (속 좁은 엄마지만 비록. 언젠간 더 넉넉한 엄마가 될거야)"

정후가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걸어온다. "엄마 이제 준후 자니까 이리와봐. 내가 보여줄게 있었어 아까부터."

아이가 자란다. 쉼없이, 바지런히, 건강하게.

부모는 버틴다. "왜 그래 자꾸? 우리 요즘 좋았잖아? 이제 좀 적응하나 싶었는데 왜 자꾸 균형을 깨는거야? 왜 안하던 행동을 하는거야? 이 균형을 찾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건 나빠. 난 관성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 이대로 우리 좋았잖아. 안 그래?"하면서. 그러나 성장은 반드시 관성을 거스르게 되어있다. 연어처럼 세차게 자라는 아이와 함께 부모도 자라야한다. 아이를 앞서가진 못해도 뒤쳐지진 않는 속도로 발맞춰.

아이들과 4박5일 전라도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 할아버지 집에서 묵던 날, 가장 먼저 일어난 정후가 나를 깨우지 않고 친구 할아버지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다. 단추를 스스로 잠그기 시작한다. 그 누구의 도움도 거절하고 끝까지 채웠다. "할아버지. 나 단추 혼자서 다 채웠어요." 방문 너머로 후의 말소리가 들린다. 기분이 묘했다. 아이에게도 제 나름의 시공간이 있구나 싶었다. 이제 다섯살 더 이상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정후의 세계가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대화, 생각, 기분 등등이 정후에게 있다. 최초의 결정적 시기 3년을 지나온 정후. 어쩌면 내게 남겨진 몫은 점점 더 발을 빼고 입을 다물며, 안전망으로 버팀목으로 그렇게 보듬어 주는 것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후가 종이를 가져와 배 접는 법을 묻는다. 제 스스로 하겠다며 구두 지시만 바란다. 그러길 서너번. 이젠 눈을 감고 있으란다. 모를 때만 물어보겠다고. 그러더니 마지막엔 방에 들어가 몰래 접는다. 제 힘으로 다 접어 짜잔 놀래켜주겠다며. 중간에 헷갈릴 때만 가지고 나와 멀리서 묻고 가겠단다. 결국엔 제 원하는대로 해냈다. 그래서 오늘 우리집에 종이배가 열장도 더 넘게 생겼다.

내 앞엔 천상천하 유아독존, 내 힘으로! 내 스스로! 자주!(自主: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함)를 가열차게 외치는, 짓궂은 5세 남아가 건장하게 서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내 아이가 5세란 사실.

아이가 홀로서기 시작했다. 숱한 시행착오를 지나는 엄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간 충분히 넉넉한 엄마가 될거라 믿고 기대하며. 오늘 한 걸음 나도 내딛는다.

4일간 친정 부모님과 함께 여행했다. 결국 넷째날 아빠와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빠엄마와 나, 나와 정후를 보며 깨달았다. 카톡 프로필을 바꾼다. "더 넉넉히 사랑해야지"에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로. 이건 정말이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상대의 언어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더 넉넉하지 못해서가 아니였다. 내 부모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방법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런 결론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옳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겸허하게, 주께서 빚으신 이 아이의 결을 따라 섬세하게. 보듬어야지. 함께가야지.

지난 방문 때였던가? 친정아빠가 내게 말씀하셨다. 혹여 훗날 아빠 엄마가 먼저 죽더라도 지난 날 불효를 생각하며 울지 말라고. 엄마 아빠는 너를 키우며 충분히 행복했다고. 돌아보니 아빠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하면 죄송함에 눈물과 아쉬움 뿐이라고. 그러니 훗날 너 혼자 남아 우리를 추억할 때가 되거든 오늘 나눈 대화를 기억하며 너만큼은 웃으라셨다.

오늘 잠든 정후를 안고 들어오는데 몇달 전 아빠가 하셨던 그 말씀이 생각난다.

사랑은 내리사랑인 법이라고.

넉넉히 받았으니

넉넉히 흘려줘야겠다.

그 것 밖에는 받은 것에 보답할 길이 없다.

더 넉넉하게

주파수를 잘 맞춰서-

고유한 선율과 결을 따라 그렇게.

어느 날 정후가 자다 깨 나를 더듬어 찾았다. 무서운 꿈을 꿨노라고. 일어나 하는 말이 "엄마 나 무서운 꿈 꿨어. 사자가 엄마를 깎는 꿈. 그래서 내가 칼로 사자 목젖을 찔러서 엄마를 구했어. 준후는 무슨 꿈 꿨을까?"

어떤 날은 또 아침에 좀체 못 일어나 비실대는 나를 보고 아이를 낳았는데도 왜 여적 못 일어나는 거냐며 타박한다.(임신 땐 그렇다고 쳐도! 싶은건가)

그러던 어느 날은 한껏 기분 좋아 한다는 말이 "엄마랑 하루 종일 같이 노는 꿈을 꿔서 좋았다"한다.

혼자 먹고 혼자 화장실에 가고 혼자 씻고 혼자 자니. 한껏 커버린 것 같은 이 아이도 여적 아기다. 물론 제 길 찾아가는 아이다. 조금씩 독립의 첫 술을 떠가는 아이. 여전히 엄마 품이 필요한 아이.

그래. 나한테도 여적 엄마가 필요하듯이.

영원히 엄마에게 기대

영원히 엄마일 수 있는 삶에 감사한 하루.

우리 준후도 많이 컸는데. 이젠 되집기도, 궁둥짝 들어 겁나 미미하게 앞으로 기기도, 360도 제자리 돌기도 가능한데.

형아의 일춘기 이야기로 준후 얘긴 다음 기회에.

드라마 시그널마냥, 타임캡슐 마냥 오늘 이 밤 이 글 쓰며 수십년 뒤 이 글 읽어내려갈 장성한 아들들 얼굴을 떠올려본다.

먼 훗날의 독자가 벌써 그립다.

다 커버려 뜨겁게 안기 어색한 날이 오더라도

이 글로나마 너희를 뜨겁게 보듬을 수 있길 바라며.

잘자, 후후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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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공동육아 방학을 맞아 야심차게(?) 도전한 기차여행. 아빠없이 두 아이와 함께 (육아 동지들과 함께) 정후 남원 할머니집과 이겸이 전주 할머니집을 들러왔다. 서울역서 Ktx타고 내려가 5일을 꽉채워 남원, 서천, 김제, 군산, 전주, 익산을 찍고 itx(새마을호)를 타고 용산역으로 돌아온 길고 긴 4박 5일. 어쩌다보니 이겸 정후의 각 할머니 할아버지 네분과 엄마와 아이들 총 12명이 스타렉스 한대를 꽉채워 이틀을 다녔다. 잊지 못할 시간이될테지. 뜨겁게 받은 만큼 뜨겁게 흘려보내는 인생이 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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