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 짜투리 시간을 퀼팅해내는 예술성이 필요하다
분주한 아침. 아이들이 만화 한 편을 보는 동안 급히 문자나 텔레그램을 훑어본다. 그 와중에 급히 화장실도 들리고, 볼 일을 보면서 잠시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도 확인한다. 모든 걸 급히 급히 처리해야만 한다. 만화 한편 다 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10분 정도니까. 당연히 답장이나 댓글은 불가능하다. 간혹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 볼 일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만 두돌이 채 못 된 둘째는 화장실 앞으로 달려와 문을 열거나 안아달라고 조른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그 곳에 엄마가 있고, 그 품에 내가 안기고 싶고.
매 순간 모든 것을 급히 급히 처리하다보면 책 한 권을 진득하게 다 읽었던 적이 언제였나 싶어지고. 시종일관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글자를 읽어도 머리에 잘 남지 않는다. 논점과 흐름은 기억해도 구체적인 단어나 법령 같은 건 기억이 안 난다. 아이들이 커가면 잃어버린 기억력과 집중력도 차차 돌아오겠지만, 어쨌든 요즘은 수시로 메모하고 복기하는게 최선이라 여기며 산다. 언젠가 누군가의 글에서, 온종일 산만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서인지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면 최대한 정신을 집중할 거리를 찾는다던 문구를 보고 격하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아침도 그 산만함의 정수에서, 또 다른 지인의 글을 보았다. 여성 사상가나 철학가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여성에게 허락된 통시간이 적기 때문이라고. 더구나 돌봄과 살림을 도맡아야 하는 이들의 경우, 분절된 시간 속에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절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일 수밖에 없다고. 그의 직관에 또 한 번 물개 박수를 보냈다. 맞다. 맞다. 정말 그렇다.
나 역시 작년 한 해는 미래의 수명을 끌어다 쓰는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나와 비슷한 심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10시부터 4시까지 공동육아에 가 있지만 그 마저도 주 5일로 정착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주 1회씩 시작한 품앗이 공동육아가 자리잡으면서, 횟수가 점차 늘어 요즘은 주 5회 6시간씩 운영되고 있다. 그 중 주 1~2회는 보호자인 내가 풀타임 교사로 참여하고 주 1회 정도는 십여분의 식사를(반찬 두세개와 국)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집안일을 차치하더라도 품앗이 공동육아에 투입해야 하는 시간도 적지 않은 편이다. 내게 허락된 주 3~4일 정도의 6시간(아이들과 딱 10시에 인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사실 만 6시간이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은 주로 회의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일에 할애했다. 일반적으로 점심 식사 시간이란게 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여러 업무를 소화하려면 점심을 먹는 시간 마저 아까워진다. 그러다보니 보통 커피를 마시거나 라면을 먹거나 아니면 국에 밥을 말아서 컴퓨터 앞에서 밥을 먹거나 그럴 때가 잦았다. 아니면 아예 굶거나. 그렇게 해도 드라이 맡기고 찾고, 장보고 쓰레기 버리고, 은행에 가고 계좌이체도 하고, 아이들이 늘어놓은 장난감을 대충 치우고(돌아와 밟거나 넘어질까봐), 요리를 하지 못하더라도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지는 못 해도 세제 넣어 돌려라도 놓고, 끓여 놓은 음식이 상하지 않게 그릇마다 담아 냉장고에 넣고, 아이들 옷이나 물건, 기저귀 등 필수품을 구매하고, 업무 또는 생활에 필요한 전화, 문자, 이메일을 확인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 널고 개고 넣고, 계절옷을 바꾸고, 작아진 옷을 정리해 버리고, 어떤 날엔 반품이나 환불을 위해 택배를 부치고, 등등. 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을 미루거나 못 하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배우자가 최선을 다해 함께 해도 그 역시 출퇴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끝나면 다시 육아로 출근하다보니 체력적 한계에 도달한다. 제 아무리 의지가 있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외부에서 시간을 수혈해주지 않고는 지속되기 어렵다.
아이 키우는게 뭐 그리 대수냐 하지만, 그것 참 대수더라. 일전처럼 대가족이나 마을 구성원이 대체 돌봄을 수시로 지원해줄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주거지와 일터가 가깝지도 않고. 아동 인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감각 역시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전제 된 사회에서 아이 키우는 일은 그 자체로 벼슬이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벼슬.
아빠가 출근하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까지, 그리고 4시에 하원시켜 아빠가 돌아오기까지 그리고 아빠가 돌아 온 이후에도 아이들과 노상 함께 있기에 그 시간 동안엔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거나 아이들이 흘려 놓은 밥알과 과자가루, 과일 국물 같은 걸 닦거나 아이들과 책을 읽고 놀고 그림 그리고 대화 할 시간이 더 필요해진다. 그 와중에 심연의 집중력을 갖는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스레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비로소 일말의 고요함을 맛볼 수 있다. 그 시각엔 이미 나도 지칠 대로 지쳐서 몸도 마음도 쉬고 싶지만, 내일 아침에도 해가 다시 뜰 것이고, 급속 충전을 마친 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기상해 우리를 흔들어 깨울 것이기에 웬만한 작업은 아이들이 잠든 시간 동안 해두어야만 한다. 일테면 빨래를 개서 넣는 일이나 요리 같은 생활에 관련된 일에서부터, 토론문을 쓰거나 칼럼을 쓰는 등의 작업들.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 만화 보는 동안 내게 주어진 그 10분이 몹시도 오롯하고 달콤했다. 모든걸 급하게 처리해야 만 하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내 정신력이 흐트려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 사이에 읽은 지인의 페이스북이 앞서 말한 ‘통시간’에 관한 얘기였다.
만화는 짧게 끝났다. 아쉬워 하는 아이를 의식해 애써 감췄지만 사실 아이만큼이나 나 역시 아쉬웠다. “아. 만화 한 편은 왜 이리 짧은 걸까.”하면서. 그래도 정해둔 규칙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만화가 마치자 아이들이 다시 왕성한 기운으로 뛰쳐 나왔다. 도망치는 둘째를 잡아 밥을 마저 먹이고 세수시키고 과일 먹이고 응가를 씻기고 기저귀를 입히고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고 신발을 신겨 나오기까지. 그 와중에 큰 아이 옷을 골라주고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달래 등원 준비를 해서 나오기까지 내 정신은 이미 다시 산만해졌다. 카시트에 아이들을 태워 등원하고 준비한 식사거리와 아이들을 선생님께 인계하고 지각이 예고 된 회의 장소로 가는데 아침에 급히 읽었던 친구의 글귀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나에겐, 흩어진 시간들을 짜깁기해 최상의 효율로 엮어 낼 퀼팅 능력이 필요하다. 시간을 퀼팅하는 숙련도. 조각 조각 주어진 시간들을 이어 붙여 또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성이 필요한거로구나 싶었다. 예술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나는 미완의 과제 앞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남편보다는 내가 더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둘 다 같은 상황이라고 단언할 수 없겠지만 남편의 상황이라고 그닥 다르진 않다. 남편은 하루 종일 최선의 효율을 위해 수도 없이 자신의 동선과 할 일을 재배치하고 시뮬레이션 돌린다 했다. 그가 느끼는 긴박감과 피로감 역시 상당하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 줄 수 있는 여유도 사라진다. 몇 달 전이었다. 아이들을 뒷자리 카시트에 태우고 이동 중이었다. 큰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에 대한 얘기를 계속했다. 친구들과 만화에 대해 나눈 얘기, 새롭게 나온 캐릭터, 자기가 사고 싶은 장난감, 친구가 새로 산 캐릭터 스티커 등등의 얘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 와중에도 할 일이 가득차 있었다. 게다가 남편과의 대화도 이어지던 중이었다. 아이 말도 대꾸해줘야하고, 내 머릿 속엔 내 나름의 할 일들이 돌아가고, 틈틈이 남편과도 대화하려니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기계적인 반응을 하게 되었나보다. 내 딴에는 관심을 보인다고
“그랬구나. 그래서 OO이가 이렇게 저렇게 했다는거지? 재밌었겠네.”
라고 답했는데, 아이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피식 돌리며 혼잣말을 하는게 아닌가.
“치. 엄마는 내 말 안 듣고 있었구먼.”
정곡을 찔려 멈칫했다. 아이에게 내 머릿속을 스캔 당한 것 같아서 쑥스럽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참으로 영민하다. 듣는 시늉만 하는 걸 어찌나 예리하게 알아 채는지. 1미리의 진정성을 직감하고 재단해 내는 아이들. 내 아이 뿐 아니라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다.
며칠 전엔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 아이 옷 입히고 설거지하고, 등원할 거리 챙기면서 무척 정신이 없는 짬이었는데 큰 아이가 가까이 와서 조잘 조잘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하게도 그 날 역시 “어~” “응~” “그랬구나~”하며 대충 대답을 했다. 내 머릿속에 기억나는 단어는 서너개 뿐이었다.
‘놀이터’, ‘공원’, ‘좋았어’.
신나게 조잘대던 아이가 제 옷을 챙겨 입었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공동육아에 가고 나는 회의를 하러 갔다. 회의 마치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이들 사진이 와 있다. 몇 장 넘기다 발견한 한 장의 사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사진 속 아이가 튀어 나와 내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아. 여기였구나'
사진 속에서 아이가 해맑게 놀고 있었다. 나와는 한 번도 함께 가보지 않았던, 어느 곳에 위치해있는지조차 모르는 새로운 놀이터에서. 그제서야 아침에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 어제 이 놀이터에 다녀왔던 거구나.'
'처음 가 본 이 곳이 좋았던 거로구나.'
'엄마인 나랑도 꼭 같이 가고 싶단 말을 하고 싶었던거였구나.'
난지천공원. 그 안에 자리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의 사진. 그 장면을 보노라니 곧 다시 만날 아이가 새삼 그립게 느껴진다. 괜히 핸드폰 화면을 어루 만진다. 제법 많이 커버린 녀석은, 이전처럼 오래 안겨 있지도 않는다. 잠시 안겨 있는 듯 싶다가 "엄마, 이제 됐지?"하며 금방 다시 달아나 버리는 아이.
이제, 아이의 시간은 스스로 흐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시간이 힘차게 흘러간다.
정신 없이 분주한 내 시간과는 다르게 아이의 시계는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여유롭다.
그 사실에 안심이 된다.
얼마 전 짬을 내 서점에 들렀다.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아기 엄마가 내게 말했다. "어머! 아기 엄마세요? 학생인 줄 알았어요. 나는 언제쯤 저렇게 다닐까." 불과 일년 전만 해도 나 역시 아기띠 없이는 다니지 못했었지. 달리 할 말이 없어 "하루 하루가 참 더디게 흐르는데, 막상 지나고보니 금방 흐른 것 같아요. 그게 참 이상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였던 말이 "결국 이 힘든 시절마저 그리워하게 될 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버리면... 내 다리를 붙잡고 서로 비행기 태워달라 다투는 일도 없겠지. 오래지 않아, 나를 지치게 했던 아이들의 에너지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를 다독였다.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매일을 마지막처럼 살자 하니 아이들과 보내는 순간들이 아깝고 또 아쉽기도 했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이고 사랑일거라 믿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문득씩 흔들리는 나를 발견한다.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지만, 막상 '전업모'를 대하는 세상의 편견을 직면하려니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게 아니다. 사회적 이력이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해 저평가 받을 때면, 어떻게든 내 자신을 증명해지고 싶어 안달하는 내가 튀어 나온다. 쭈그리가 되고 열등감에 작아지는 내가 낯설지만 그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일부.
엄마가 되기 전까지 정확히 전업모가 되기 전까지는, 열등감이란 걸 알지 못했다. 나를 규정해주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자, 하다 못해 'OO 준비생'이란 잠재적 가능성 자체도 사라지자,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나의 상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외부적 환경과 소속에 기대지 않고 자존을 지키다가도 문득씩 "그래. 밥 값 하려면 둘째도 낳아야지."란 말, "야. 너도 아줌마되니까 어쩔 구 없구나. 잘 나갈 줄 알았는데."와 같은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 "전업주부세요? 아...그래도 보통 전업주부는 아니시네요."와 같은 말들을 들으면 마음이 시끄러웠다. 보통의 전업주부를 넘어 서 '유능한 개인'이고 싶은 나의 솔직한 마음과, '보통의 전업주부가 뭐가 어때서?' 하며 책상을 박차고 반대하고 싶은 전투적 마음이 격렬하게 부딪힌다.
소득도 없고 직업도 없는 사람. 통상 '무직/전업주부'로 분류되는 사람. 그러나 이들 삶에 부과되는 끝없는 노동. 사회도, 가족도, 심지어 나 자신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일들만 산적한데, 그 일을 수행하느라 온 시간이 빼앗기는데(쏟아야 하는데). 그렇게 파편화된 시간의 조각들을 주워 무어든 하려는 나의 노력이 가끔은 가상하고 가엽게 느껴진다. 이런 상태를 일컫어 자기연민이고 열등감이라 한다면, 부인할 말은 없겠다. 다만. 본래 개혁이란게, 비주류요 약자로 존재했던 숱한 사람들의 열등감에서 비롯해왔다고, 하다 못 해 그 열등감을 상상하고 추측해 본 이들의 새로운 상상력에서 비롯해왔다고 덧붙일수밖에. 고로, 오늘의 내 몸부림 역시 또 하나의 개혁적 몸짓이 되리란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본다.
아이들과 부대껴 온 숱한 시간이 전업모의 한가한 일상으로 퉁쳐질 때, 전업으로 돌보고 살림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엄마의 다른 이름을 워킹맘이라 통칭할 때, 그 언저리 어딘가에 어찌되었든 성공적으로 자리하고 싶은 내 안의 욕망과 좌절감을 동시에 발견할 때,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이 모든 에너지를 모아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도록 하는 일, 그것 뿐이 아닐련지.
6년간 수련된 산만함 속에서 여러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아이의 말을 자꾸 놓친다. 아이가 내게 더 건네지 못한 말은 없었을지, 궁금해진다.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난지천 공원에서 놀이기구 같은거 탔던데 엄청 재미있어 보이더라. 신이 난 아이가 재잘재잘 그 날의 풍경을 늘어놓는다. 기껏해야 이삼분. 다른 감각들을 멈추고 아이의 말에 집중해본다. 찰나의 시간, 나의 심상을 아이에게 맞춰본다. 아이가 내게 맞춰오듯이. 나의 마음과 시간이 아이에게 향할 때, 더 큰 위로를 받는 건 아이가 아닌 나다. 아이들 마음에 천국이 숨어 있으니까. 곤한 내 마음과 혼이 아이의 재잘거림 아래 잠시나마 쉼을 얻는다. 아이가 내게 약속을 받아낸다.
"엄마. 다음엔 꼭 같이 가자. 같이 가자. 다음에 또 가자."
새벽녘에 일을 하고 있노라면, 엄마의 부재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아이가 부스스 일어나 내게로 와 안긴다. 어떤 날엔 작업하는 내 품에 안겨 다시 잠에 들기도 하고, 어떤 날엔 내 손을 잡아끌고 다시 침실로 가자 조른다. "엄마. 누워. 같이 누워. 같이 자자."
품 안의 자식이라 했던가. 기껏해야 몇 년. 아이들은 붙잡고 싶어도 결국 제 길을 찾아 떠나는 법이다. 아이에게 양육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 짧은 기간동안, 우리에게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으련만. 아이의 말들, 그 재잘거림에 귀기울여 줄 여유가 우리에게 허락된다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