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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May 13. 2018

엄마, 정치, 그리고 2016 촛불혁명

정권 교체를 넘어 일상을 바꾸는 촛불혁명, 기대할 수 있을까?

*본 토론문은

2018. 05. 18-19 양일간 국회의원회관 제 2소의실/세미나실 1실 에서 진행될

"촛불항쟁 1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촛불항쟁과 사회운동의 전망> 세션 7. 인권의 정치와 광장의 민주주의" 토론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학술 심포지움 시간표

 들어가며  

2016년 11월이었다.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사직터널을 지나는데 구석구석 배치된 타격대와 경찰 버스들이 보였다. 경복궁 너머까지 오자 사뭇 심각해진 큰 아이, 한국 나이로 네 살 된 아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속삭였다. “엄마. 도대체 이 깜깜한 밤에 왜 이렇게 경찰아저씨들이 많이 있는걸까?" 좀 더 지나자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도대체 어떤 도둑이길래!”촛불 집회에 직접 다녀 온 이후부터 아이는, 목욕탕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수시로 외쳤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아이와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LED 촛불 놀이와 구호는, 한동안 그야말로 유행이 되었다.       


촛불과 엄마 정치의 상관관계

비폭력 평화 항쟁으로 정권 교체 과업을 완성해 낸 지난 촛불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 역사적 의미와 위력이 대단하다. 독일의 유서 깊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대한민국의 1000만 ‘촛불 시민’모두에게 2017년 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수상 이유는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전 세계 시민들에게 각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촛불의 평화적 상징 중 하나는 단연 촛불과 유모차의 조합이었다. “유모차 탄 아이도...”, “유모차를 끌고 나온...”등으로 시작되는 뉴스가 주요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었다. 실제로 수 많은 아이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촛불을 들었다. ‘촛불과 유모차’는 이번 집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파동 당시 ‘촛불 유모차와 함께하는 촛불 가족’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유모차 부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고, 이들 중 일부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도로교통법위반 혐의’ 등으로 무더기 소환 통보되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려 43명이 구속 기소되었고, 165명이 불구속 기소, 1050명에게 벌금이 부과됐다) 유모차 부대의 출연과 함께 ‘아동 학대냐, 모성 실천이냐’의 공방이 이어지는 듯 했지만, 검·경찰의 강경 대응으로 결국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던) 참여 민주주의의 상징 역시 차츰 우리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5년 뒤 세월호 참사 당시, 유모차 부대는 다시 한 번 거리로 나왔다.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촛불과 유모차의 조합은 명실상부 ‘평화 시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시위 현장에서의 ‘유모차’는 엄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시각적 매개가 될 뿐 아니라, 엄마들에게 부여된 돌봄의 책무와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아이를 안고 업고 유모차에 태워 시위 및 기자회견 현장에 나오는 이들은 그 외의 모든 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 한다. 아이들은 동원 된 것이 아니다. 동원이란 단어를 써야 한다면 되려 엄마들이 아이들의 삶에 동원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공동의 양육자가, 지역사회가, 국가가 함께 나눠져야 할 돌봄과 양육의 책임이 엄마들에게 전적으로 전가되고 있고, 아이와 엄마가 된 나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엄마들의 노력이 자연스레 정치 참여로 이어졌을 뿐이다. 불안한 정세 속에 엄마들의 절실함은 더욱 빛났다. 엄마들이 촛불 들고 유모차를 끌 수 밖에 없던 이유다. 이례 없는 저출생 현상이 국가적 최우선 과제인 요즈음의 대한민국 역시 10년 전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격한 성별임금격차와 초장시간 노동이 관행화된 열악한 노동 현장은 엄마들의 경력단절과 독박육아로 이어진다. 육아는 다른 돌봄 노동보다도 그 특성이 훨씬 더 까다롭다. 대체 돌봄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대다수의 엄마들이 주양육자 역할을 도맡는다. 취업모들의 경우에도 근무 시간 이외의 주양육은 단연 엄마들의 몫이다. 그러한 점에서 늘 최소 두 사람의 몫을 챙겨 다녀야 하는 이들이 이동제약에 따른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발적으로 정치 참여의 장을 찾는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적 공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담보하는 장치가 된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는, 이데올로기와 담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엄마들의 정치적 발화는 매일 부딪히고 경험하는, 자신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내 아이의 먹거리,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같은 소시민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주제가 추상적이고 대의적인 정치적 담론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설명해낸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정치에 참여하는 엄마들에게 쏟아진 비난(이를테면, ‘그 위험한 현장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모진 모성’, ‘아이들이라도 동원해 여론몰이 하려는 가짜 엄마’등과 같은 아동학대/가짜모성 등의 프레임)은, 돌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갖추지 못한 이들이 보여 준 무지의 소치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촛불은 부정적으로 전락해버린 유모차 부대란 표상을 평화 집회의 상징으로 부각시키고 재조명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양육자들과 함께 광장에 나올 수 있었던 현상 자체가 천만 시민이 보여준 대단한 위력이었다.   촛불에서 시작된 엄마 정치의 가능성은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이들의 만남과 운동은, 직전 촛불에서 경험한 정치 효능감, 엄마들의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해 줄 디지털 기술(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운동을 가능하게 함), 확장된 페미니즘 논의와 82년생 김지영들의 정치 참여란 바탕 위에서 가능했다.       


2018 대한민국, 남겨진 과제들

그렇다면, 촛불이 시작한 정치 개혁의 가능성은 희망적이기만 한 걸까? 그렇지 않다. 지난 촛불은 대한민국의 정권은 바꾸었을지언정, 우리의 일상까지 바꿔내진 못했다. 국민적 열망과 지지를 한데 업은 이번 정권에 맡겨진 책임이 막중한 이유다. 물론, 문재인 정권이 남북 정상 회담을 비롯한 굵직한 과제들을 순차적이고도 성공적으로 해나가고는 있지만, 집권 여당을 향한 지나친 팬덤 현상은 자칫 단일 정당 독점 구조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 민주주의에서는 상호 견제의 기능이 필수적이다. 모든 권력은 견제받지 않는 한 부패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중앙 정치 뿐 아니라 지방정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군소 정당들의 진입 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최초안(4인선거구를 35개까지 늘리는 안)을 수차례 분할 해 결국 기초의회 4인 선거구를 끝내 무산시키고 4인 선거구가 한 곳도 없는 획정안으로 의결시켰다. 소수정당과 시민단체들의 강력 규탄 및 저항에도 불구하고, 양당 의원들을 중심으로‘서울시 자치구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정수에 관한 조례안’은 쉽게 가결됐다. 이 뿐 아니다. 평화 시위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크게 일조한 여성들의 현실 역시 근본적인 변화의 기점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투 논쟁은 각계 각층에 도처한 구조적 성불평등 논란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선정적인 보도로 소비되는 추세다. 공고한 젠더 불평등은 펜스룰, 백래시 등의 양상과 함께 젠더 불화로 이어질 뿐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의 가능성을 찾아 보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두터운 지지 세력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6·13 지방선거에서 단 한명의 여성 광역 단체장 후보도 내지 못했다. 경선에 출마한 3명 모두 패배했고, 특정 후보 중심의 대세론이 없던 지역인 인천광역시에서조차 여성 후보자에 대한 전략공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역 정당을 중심으로 기형성된 남성 중심의 정치 권력 구조를 고려할 때 여성 후보자들의 제도권 정치 진입 및 성평등 정치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촛불 혁명과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여성 유권자들의 요구를 정치로 실현해 낼 수 있도록 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나가며촛불항쟁 1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촛불이 일궈낸 변화와 우리에게 남겨진 여전한 과제들을 돌아본다. 우리 사회는, 정권 교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일상을 바꾸는’ 촛불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87년 개헌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진일보 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타자화된 민주주의’그 한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도적 민주주의를 일궈낸 이들이 정작 자기 삶의 터전에선 일상적 민주주의를 체화해내지 못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룩한 세대가 가정에서 회사에서 민주주의를 이룩해내지 못하고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의 주체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 간극과 문제의식을 체화해 온 이들(청년·여성)은 대체로‘꼰대’와 같은 용어로 앞선 세대를 비판했을지언정 결과적으론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들이 일상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다시 (집단적으로) 촛불을 들었고, 이들의 방식과 문화가 범국민적 평화시위를 완성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이들을 시위의 현장으로 불러낸 가장 강력한 주제는 ‘일상’그 자체였다. 학생과 엄마들을 비롯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낸 주요 이슈는 단연 이대 입시 특혜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현실적이고도 일상적인 주제가, 내 일상과도 실제적으로 맞닿는 사건이, 뉴스의 소비자로 존재했던 숱한 이들을 정치적 주체로 불러 모았다. 이들의 출현은 퇴진 운동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존재, 더불어 이들의 문화와 언어는 평화적 시위를 견인해 내는 동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촛불 항쟁의 완성이야말로 이들의 삶에 일상적 변화와 찾아들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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