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6 가끔은 주저 앉아 울고만 싶어진다
내 한계를 너무도 잘 아는 내가
내 한계에 인이 나도록 부딪히고 넘어져 온 내가.
누군가의 하늘이고 전부가 돼줘야 한다는게 부담스럽고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엄마로 가는 길」 그 길목에서. 그래서 가끔은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어진다. 하염없이.
허지웅의 엄마에 대한 단상이 내 마음을 울린다.
엄마 생각을 하면 조금은 슬퍼진다고,
엄마 무릎에 안겨 울고 싶어진다고,
그런데 그럴 수 없다고.
그녀가 너무나 작아졌노라고.
밤톨만하다고들 하지만.
아이도 온전한 한 명의 사람인지라..
서로의 마음이 격렬히 부딪힐 때,
상호 감정의 화학작용이 일어날 때.
저도 나도 상처를 받는다.
여전히 머뭇거린다. 그리고 후회한다.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수려하게 논리적으로 설명도 할 것 같은데. 막상 실전이 되면 어찌 훈육하고 보듬어야할지 혼란스럽고 막막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경계가 어딘지 늘 허둥지둥 하고 만다.
내 실수를, 불완전함을, 그렇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부딪혀 온 시간들을 이 아이들은 알 수 있을까.
부모로서의 무게가 느껴질 때 마다
얼마나 엄마에게 전화가 걸고 싶어지는지.
미주알 고주알 다 털어놓고싶은데.
별 일 아니라고, 다 지나간다고.
그 한마디를 들 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결국엔 에둘러 다른 얘기만 하다 끊거나
기껏해야 투닥거리고 마는 일상.
대양 같던 어린 시절의 엄마는 어디로 가 버린걸까. 나 때문에 걱정하는 엄마까지 걱정해야 해서 짜증스러웠던 시간들. 서운했던 날들. 목말랐던 순간들.
어젯밤 정후를 혼내면서.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엄마가 더 어렵다는걸.
엄마가 삼켜야하는 말들의 무게가,
마음으로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내것보다 훨씬 더 무거운 거란 사실이 새삼스럽다.
정후로 인해 크게 작게 마음 졸이면서도,
어른인 척, 별 일 아닌 척
되려 아이까지 다독여줘야 하는 내 처지가
나만의 것이 아님을 곱씹으면서.
여전히 엄마가 그립다.
천진난만하게 모든 것 다 털어놓고
맘 편히 안겨 울 수 있던 어린 내가 그립다.
그래서 전화를 걸면
결국엔 꼭 싸우고 만다.
아니면 삼키든지.
참 이상한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