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인터뷰:보란'듣'이>를 시작하며-
아이를 낳고 나서 자연스럽게 도처에 스승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보다 작고 약해 보잘 것 없는 줄 알았던 것들조차 때때로 대단한 선생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그 상태의 아름다움에서, 그 어느 때보다 부던히 자라왔다. 나 자신을 향해 있던 시선이 우리의 세계로 확장되었고, 나의 미래에 집중돼있던 에너지가, 타인과의 연대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영감을 줄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곤 했는데, 잡지나 책, 방송을 통해 전해오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론 도전이 되고, 또 때론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저 사람처럼 독하지 못한데, 나는 저 사람처럼 성공하지 못했는데, 난 저 사람처럼 남다르거나 특별하지 못한데, 저렇게 일반적이지 않게 모험할 자신도 없는데. 그렇다면 저 사람들 같지 못한 나의 이야기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아이를 낳고 나자 그 생각이 더 커졌다. 이전까지 인터뷰란 으레 특별한 성취를 한 사람들의 특별한 비법에 관한 일이었으나, 평범한 일상이 주는 비범함에 눈뜨고 나서부턴 그런 흔해빠진 성공일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그 누구보다 이 동네 역사를 잘 아는 마을 슈퍼 아주머니의 이야기, 동네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 지나가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건네시는 할아버지,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페품을 줍고 동네 미화를 신경써주시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경력단절과 일가정양립, 재취업에 관해 고민할 때였다. 서점가를 꽉 채운 관련 도서에서는 내 현실이 감안된 해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육아에 대해 고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육아를 하는 나를 보며 친척언니가 건넨 말. "성실아. 나는 언제부턴가 그런 책은 안 믿어. 그 책 쓴 사람 중에 너처럼 회사까지 관두고 전업으로 육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공부하고 책 쓰는 동안 누군가 자기 애를 봐줬을거야. 그런 책의 조언은 안 믿기로 했어. 너도 명심해. 차라리 네 자신의 육감을 믿어." 라고.
맞다. 그래도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기다려지는 심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다 떠오른 두 사람. 삼십년 넘게 워킹맘으로 지내 온 친구의 어머니. 대기업 경리로 계시다 IMF 때 회사가 경영위기를 겪고 중소기업으로 옮겨 재무 회계 담당자로 여지껏 일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친구 엄마일 때는 들을 수 없던 인간 OOO으로서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그러다보니 또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우리 동네 세탁소 아주머니였다. 늦둥이 키우면서 일 가정 양립을 위해 프랜차이즈 세탁업을 하게되셨다던 분. 오가며 나눴던 개인사가 단초가 돼 인터뷰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는데, 여성 자영업자로서, 프랜차이즈 점주로서, 30대 아들과 10대 후반의 딸을 둔 두 자녀의 엄마로서, 한 자리에서 10년 넘게 세탁업을 해 온 임차인으로서의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그냥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법한 이 분들의 이야기야말로,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도가 될거란 생각에서였다. 두세 건의 인터뷰로는 쉽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면 결국 우리네 오프라인 현실을 반영해 줄 유효한 빅데이터가 되겠구니 싶었다. 그러다 오래 전 들었던 친정 아버지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정치하는 사람은 택시운전사 분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한다."
도농복합도시이자 중소도시인 내 고향에서 아빠는 이십여년간 지방자치의원으로 살아오셨다. 우리집 전화벨은 밤낮없이 울려댔다. 사무실로 집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아빠를 찾아왔다. 그에 못지 않게 아빠도 수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셨는데, 그 일련의 과정들을 목격하면서 확실히 깨닫게 된 한가지는 "모름지기 정치의 시작은,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어야 한다"는 명제였다.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시작되지 못한 정책들은 거즘 실패하거나 제 몫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 반면, 현장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정책은 진행 과정이 험난하고 지난할지언정 종국엔 정책수요자를 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낸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우리의 일상이 정치와, 또 정치가 일상과 동떨어져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빠가 다양한 분들을 만나 살아있는 여론을 듣기 위해 자주 '택시'로 이동하셨는데, 택시야말로 여론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인식하고 계셨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나누는 통화부터 무작위로 탑승한 이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는 곳이 택시 안이었기 때문이다.(지역 규모와 상황상) 그리고 또 다른 한 축이 학부모회 같은 그룹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엄마들의 모임에 가면 생애주기에 따른 첨예한 정책 필요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다. 살림하면서, 장을 보다가, 육아하면서, 아이들 교육과 연관해, 엄마들과 대화하다보면 지역 경제부터 일상 필요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는게 요점(물론 이 모든 일들이 성평등한 관점에서 재구성돼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생활 전반에 걸친 필요들을 다양하게 또 빈번하게 체감하는건 엄마들이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기반으로, 신축 다리를 어디 부근에 놓아야 좋을지, 로터리를 어떤 방식으로 바꿔야 효율적일지, 저출산 해결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셨다. (2002년 선거 때, 셋째 아이 보육료 전액 지원 공약을 내고 지키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째, 지금의 국가 보육 정책이 15년전 지방 소도시 지방의원의 개인 공약에서 크게 진보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아무런 보상이 없을 인터뷰. 기껏해야 무명한 페이스북 페이지나 내 브런치 정도에 실릴 글에 누가 선뜻 시간을 내줄까.
그래도 해야겠다. 방법을 만들고 설득해야한다.
열정이 나를 채근한다.
말할 기회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들보다도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유명인들의 성공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숱한 헌신을 기반으로, 고군분투의 노력에 힘입어 일궈진 것들이기에. 사원이 없이 사장이 없고, 시민이 없이 정치인이 없고, 청취자가 없이 진행자가 없고, 독자가 없이 작가가 없기에.
그러므로 일반 시민들에게 동네 어귀에서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할 자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이 분들 손에 쥐어진 인생의 혜안, 실패담, 성공담, 고민, 소망의 퍼즐들을 하나 하나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만날 때,
익명이었던 주민과 이웃이 서로에게,
지나가는 행인이 아닌
하나의 인생으로 다가온다면,
마을이 또 내 삶이, 우리가 달라지리라.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여론이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되리라.
그렇게 사심 가득한 인터뷰를 시작하려한다.
용기내 첫 인터뷰를
단골 카페 사장님께 부탁했다.
이름하여 <단골 있는 삶>.
이름 없는 내 인터뷰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조심스러웠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 기뻤다.
일러스트를 하는 친구가 인터뷰 답례로 드릴 삽화를 그려주겠다 했다.
그렇게 이 인터뷰가 기획됐다.
[고소한인터뷰:보란'듣'이]
"보"통사람들의 찬"란"한 일상, "듣"고 싶어지는 당신의 "이"야기를 찾아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과 함께 인트로를 마치려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