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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Oct 05. 2017

몸의 감각 : 목욕탕을 추억하다

20160618

가끔씩 몸의 감각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장면들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특히 촉각과 후각은 내게 그 순간의 정취를 오롯이 불러일으키며 심장을 간질이곤 한다.  
 
삼부자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근 십개월여만의 방문이 아닐까 싶다. 입덧 중에도 임신 중반에도 할아버지와 아빠 사이에서 나란히 손잡고 목욕탕을 다녔던 정후는. 이제 할아버지 집에 가면 의례히 목욕탕에 가는 날이라며 기뻐한다.  
 
나 혼자 여탕에 앉아있는데, 세 모녀가 눈에 띄었다. 엄마가 큰 딸에게 물을 뿌린다. "엄마! 쫌! 고만해. 내가 한다고!!" 그 순간 둘째 딸이 커피 우유 셋을 들고 들어온다. 엄마가 소리친다. "너 진짜! 커피 마시지 말랬지! 살찐다고!" "이거 커피 우윤데?" "그게 우유냐? 커피냐? 설탕커피지 그냥. 그래서 언제 살뺄래?" 그 광경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큰 딸이 내게 말을 건넨다. "제 아들도 엄마한테 그러겠죠.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근데 친정엄마 잔소리는 정말 끝이 없어요." 나도 맞받아쳤다. "죄송해요. 엄마랑 제 모습 보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아녜요. 어느 집이나 같잖아요~ 엄마 그만 좀 해 진짜. 친정 엄마 생각난대잖아~"ㅋㅋㅋㅋㅋ 그 집 따님 두 분은 나보다 연배가 높아 보였다. 소녀 시절이나 주부가 되서나 딸과 엄마의 관계는 여전히 진행중.ㅎㅎ 
 
반대켠엔 예닐곱살 돼보이는 여자아이가 인형, 장난감, 얼린 음료수를 바구니에 잔뜩 담아와 소꿉놀이를 한다. 빨간머리앤과 다이애나처럼 이벤트탕 둘레에 찻잔을 가득 차려놓고 재미지게 논다. 엄마는 이모라는 분과 정신없이 수다를 떤다.  
 
욕탕에 들어서는 순간 코를 가득 채우는 엄마 느낌. 목욕탕 특유의 냄새도 그렇고, 그 온도에 맞닿으면.... 엄마 등 뒤에 매달려 자전거 타고 목욕탕을 오고 갔던 고향길, 요플레 하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 속이 뻔하게 조르던 유년의 내 모습, 엄마 몰래 온 몸에 오일을 발랐다가 때 한번 못 밀고 집에 돌아가며 된통 혼났던 그 날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타지로 고등학교를 유학가서도, 집에 올 때마다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 대학을 서울로 오고나서도 몇 달에 한 번, 끽해야 일년에 서너번도 못 찾는 고향 방문 때마다 목욕을 하러갔다.  
 
결혼을 하고 서른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도..여전히 목욕탕 하면 엄마가 떠올라. 혼자 웃는다. 물론 같이 가면 싸운다. 별 것 아닌 사소한 것들로 투닥투닥. 그러면서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배가 잔뜩 부른 내가 뒤뚱뒤뚱 들어가고, 흰머리가 수북한 할머니들이 여기 저기에 홀로 앉아 때를 밀고 계신다. 이전 같았다면 그냥, 혼자 오셨네 힘드시겠군 했을 것을.. 요즘 디어마이프렌즈를 봐서인지.. 그 분들 한 분 한 분의 세월과 스토리가 있겠지 싶어서 사뭇 궁금하고 더욱 정감이 갔다. 물론 드라마와 달리 현실의 노년은 당장의 생활비가 급하고, 옷도 머리도 빠글빠글.  아니면 숱도 기운도 거의 없기 일쑤지만.. 
 
아들뿐이니 앞으로 목욕탕 편히 가 좋겠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런 면이 없지 않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같이 목욕탕 갈 딸이 그립지 않을련지.. 
 
더욱이 엄마와 같이 목욕탕에 갈 기회가 점점 줄어들수록 더욱이.. 
 
여튼 목욕탕 냄새와 온도에 취해 한껏 추억을 여행했다. 감각은 참말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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