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9월호 기고 글] 더 많은 정치하는 엄마가 필요한 이유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학대 및 안전사고 관련한 글이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에 실렸습니다. 본래 요청하신 분량을 훌쩍 넘어서 작성한 관계로 최소한만 지면에 실렸는데요.아쉬운 마음에 수정 전 전문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민들레 9월호 구매 가능하니, 서로를 세우고 돌보는 교육잡지 민들레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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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어린이집 학대 및 차량 사고로 두 명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끔찍한 달이었다. 7월 17일에는 동두천시 소재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서 7시간 가까이 폭염에 방치됐던 4세 여아가 사망했고, 다음 날인 7월 18일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소재 어린이집 내에서 남자 아이 한명이 이어 사망했다. 낮잠 시간에 발생한 보육 교사의 학대로 이불 속에 갇혀 숨진 아이는 이제 막 11개월이었다.
연이은 두 건의 사망 사고는 국민적 공분으로 이어졌고, 이후 어린이집 학대 및 사건·사고 소식이 연일 집중 보도 되었다.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 통학차량 안전사고 및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발표했지만 근본적 대책과 해결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책의 핵심인 ‘잠자는 아이 확인법’은 국회와 관계부처의 무관심 속에 8월 국회에서 처리조차 되지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 소형 녹음기 판매가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이스 레코더’로 분류되는 품목 판매량이 G마켓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14% 늘었고, 위메프 역시 최근 한 달 기준 전년 대비 18.22% 증가했다고 한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 ‘유치원’ 또는 ‘어린이집’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녹음기’란 키워드가 노출되고 몇몇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유치원 녹음기’ 코너가 등장했을 정도다. 국회도, 관계부처도, 어린이집도 하다못해 부모도 책임져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안전. 이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어린이집 녹음기(또는 유치원 녹음기)’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보육 현장에 대한 불신이 ‘유치원 녹음기’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형국이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는,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 등의 아동학대이고, 다음은, 화상, 이물질 삽입, 식중독, 통학버스에 의한 사고 등 안전사고이다. 어린이집 사고 소식은 더 이상 낯설고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신체적·정서적 폭력, 방임 등의 학대와, 자신이 속한 어린이집 차량에 치여, 또는 차량 내에 갇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새롭지 않다니. 그 자체만으로 처참하다. 낯설지 않아 더욱 소름 끼치는 뉴스들. 낯설지 않지만 매 번 충격적인 소식들이, 곧 누군가의 아이이자, 내 아이의 친구이자, 어쩌면 나의 아이의 이야기일지 모른다니. 섬뜩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난 5년간 어린이집 사고로 사망한 46명의 아이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5년간 46명의 아동이 어린이집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매해 평균 8~9명의 아이들이 어린이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여러 손상을 입고 각종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 심지어 이들의 이야기는 큰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정부는 어린이집·유치원 사고에 대대적 관심과 분노가 쏟아질 때마다 ‘종합적’, ‘근본적’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은 뾰족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2015년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사건이 촉발시킨 어린이집 아동학대 논란은 CCTV 설치 의무화로 종식되었다. 2013년 충북 청주 통학버스 사망 사고 이후엔 ‘어린이집 통학 차량 안전강화 종합 대책’이 발표됐고, 통학 차량에 승하차를 도울 보호자를 동승시키고 안전띠 착용 확인을 의무화하는 일명 ‘세림이법’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끔찍한 일들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사의 부주의함? 도덕성의 부재? 처벌 수위가 낮아서? 모두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이 거기에 멈춰서는 곤란하다. 어린이집 사고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안전 의식과 아동 인권의 부재, 개인의 자질 논란에서만 찾아선 위험하단 뜻이다. 정부의 대책은 왜 서류로만 존재할 뿐 우리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대책이 현장에 잘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애초 대책이 잘못 수립된 것은 아닌지,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 자체가 틀렸던 것은 아닌지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결국엔, 최소한의 위험 요소조차 걸러내지 못하는 대한민국 보육 체계의 허술함, 그 자체에 대해 묻게 된다. 자연스레 질문이 확장된다.
우리의 보육 현장은 왜 위험 교사를 걸러내지 못하는가? 학대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현장에 있는 어른 중 누구 하나 앞장 서 사고를 막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관리 매뉴얼은 왜 지켜지지 않고 있나? 아동학대 예방교육은 무용지물인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의 꼬리를 이어가다보면 종국엔 ”보육 생태계의 체질적 개선 없이 제대로 된 예방은 불가능하다“는 자명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우리 보육 현장의 핵심적 병폐는 무엇인가?
먼저는 보육 현장의 폐쇄성이다. 등하원 시 보육실까지 개방 운영하는 곳이 많아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아이를 인계하도록 하는 어린이집이 적지 않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통학 차량의 문 앞에서 아이를 인계한 그 순간부터, 아이가 다시 양육자의 손으로 돌아오기까지, 아이는 전적으로 보육 기관에 위탁된다. 안전도 인권도 행복도 모두 함께. ‘그 시간동안의 아이’에 관한 정보는 오로지 보육교사의 진술에 의존한다. 어린이집의 경우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긴 하지만, 학대 입증을 위한 사후적 장치로 활용될 뿐 어린이집의 개방성을 담보해주진 못 한다. 미설치 및 위법 운영할 시 처벌도 미미하다.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학대 및 안전사고는 결정적 증거로조차 활용되지 못한다. CCTV의 예방적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 역시 현재 진행 중이다.
부모의 참여와 소통을 증진하기 위한 운영위원회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운영 실태에 대한 파악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일례로, 2018년 4월 26일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관내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설치 현황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자치구에서 ‘해당 정보 부존재’ 또는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비공개사항 제 7호에 따라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로 인한 비공개’ 통보를 받았다. 어린이집 운영위원회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모든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어린이집 운영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시행령 상으로는 의무 설치하라고 규정했지만, 관내 어린이집에서 운영위원회를 설치했는지 여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는 부재하단 뜻이다.
보육 현장의 폐쇄성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이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 교사다. 동료 교사가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때론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해주지 않는다면, 원내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기미를 파악할 방책이란게 거의 없다. 아동학대 및 안전사고의 징후를 사전에(또는 진행 중에) 포착하고 긴급 대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체도 보육 교사다. 그러나 2016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어린이집 내 아동학대 신고자 유형’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 교사의 내부고발 비중은 전체 신고자 중 8% 수준에 머무른다. 부모가 34%로 가장 많은 신고자 유형에 속하고, 다음이 21% 수준인 사회 복지 관련 종사자, 경찰이 15% 수준이었다. 학대를 목격할 가능성이 가장 큰 교사 그룹이 학대를 감지하면서도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부 고발 후 이어질 심각한 불이익 때문이다. 불안정한 고용체계와 채용 방식은 막강한 지역·중앙 연합회 조직과 맞물려 교사들의 내부 고발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현장 교사들에게 양심적이고 자정적인 역할을 해내라 요구한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찍히는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업계에서 되출되거나 따돌림 받는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학대를 감지한 교사들은 조용히 원을 옮긴다. 교사들은 말한다. 업계를 떠나겠단 결심 없인 함구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여, 가족 중심 경영 역시 폐쇄성을 강화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실제로 7월 발생한 강서구 영아 사망 사건의 학대 교사와 원장은 자매 지간이었다고 한다. 작년 말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어린이집 원장이 만 2세 미만의 여러 아이에게 투약 불가한 시럽 형태의 감기약을 상습적으로 먹여 온 것으로 밝혀짐)의 경우에도 원장과 그 딸인 보육교사가 학대에 가담했다. 무려 9번째 아이까지 피해를 당하는 동안 적절한 조치와 신고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로, 어린이집 사고 방지를 위한 핵심적 과제는 어떻게 ‘열린 어린이집’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처벌 강화도 CCTV 설치도, 디지털 기술과 기계적 방식의 도입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강력한 예방은, 보육 현장의 폐쇄성을 극복하는데 있단 뜻이다.. 행사 중심의 열린 어린이집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의 맥락을 공유하고 일상적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등하원시 보육실을 개방해야 한다. 원아들이 등하원 할 때마다 부모가 어린이집 보육실까지 들어올 수 있다면, 제각기 조금씩 다른 영유아들의 등하원 시간대를 고려할 때 보육 시간 중 상당 시간이 수시로 부모에게 개방되는 격이다. 매일 어린이집을 오가며 보육 현장과 맥락을 공유하는 일은 아동학대 예방 효과 뿐 아니라 부모 교사간 소통과 협력의 계기 마련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다음으로 아동학대 발생 시 내부 고발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역시 시급하다. 내부고발이 가능한 온라인 사이트 구축과 재취업 대책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고자의 신원을 철저히 보호하는 일이다. 현실에선 조사 과정상에 신원이 노출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어떤 교사가 신고했는지 공공연히 알려지기 일쑤다. 교사들 뿐 아니라 부모의 처지도 비슷하다. 문제제기를 하거나 시정을 요구하는 교사·부모의 경우 까다로운 일부로 분류돼 프로불편러 취급을 받거나 당사자 그룹에서조차 고립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만일 지금과 달리 교사-부모 그룹이 조직화되어 있다면 어떨까? 동료 교사의 문제 행동을 발견했을 때 터 놓고 상담 할 수 있는 교사 지원 조직이 있다면, 내부 고발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함께 맞서고 대응해 줄 조직화된 동료들이 있다면? 나아가, 아동 학대를 신고해도 고용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다른 어떤 대책보다 아동학대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교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재취업의 문이 막히고 문제 교사로 분류되는 일이라 한다. 유형별·지역별·전국 단위로 층층이 조직화된 연합회에서 블랙리스트로 거론되면 해당 지역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관련 일을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선 웬만한 양심이 있어도 학대 상황을 신고하거나 제지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앞선 내부 고발 교사들의 피해 사례를 고스란히 알고 있는 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연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서비스 공단 내 보육직렬 편입’ 공약은 그 자체로 고무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구축과 일자리 확충‘을 100대 국정 과제 중 17번으로 채택하고, 전국 17개 시·도에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한 후 국공립 시설 직영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후보 당시 설립 목표였던 공단은, 진흥원으로 현재는 사회서비스원으로 규모와 위상이 축소되었다. 서비스원 설립 근거가 되는 특별법안은 위원회 계류 중인 상태다. 사회서비스원에 보육 직렬이 편입될 경우 이점은 운영구조 및 인력 운영 개선으로 인한 공공성 제고 효과다. 구체적으로는 원장과 교직원간 갑·을 관계가 개선되고 인사권에 대한 공정성이 담보 돼 공정한 채용과 평등한 임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보육 노조가 조직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대가 현실이 될 경우, 어린이집 사고의 예방 효과 역시 덩달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교사 뿐 아니라 부모들의 조직화 역시 절실하다. 현재의 운영위원회는 본연의 제 기능조차 다해내지 못하고 있다. 원 단위의 운영위가 구성 된다해도 지역·전국 차원의 운영위(또는 학부모회) 연대체 조직이 부재한 상태에선 힘을 갖기 어렵다. 거수기 역할에 그치거나 그 마저도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 곳이 많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소수의 부모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보다도 전체 학부모를 아우를 수 있는 학부모회 조직이 효과적일 수 있다.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학부모회 개최를 의무화하고 신속히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도록 하는 등의 구체적인 지침 또한 마련돼야 한다. 덧붙여 전국·지역별 운영위(또는 학부모회) 연대체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아동인권적 관점에서 교육·지원·운영 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심각한 수준의 교사 대 아동 비율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
현행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은 교사 1인당 아동수를 0세의 경우 3명, 만 1세 5명, 만 2세 7명, 만 3세 15명, 만 4세 이상 20명을 원칙으로 규정한다. 시행규칙 만으로도 엄청난 숫자다. 뒤집고 기고 걷는 젖먹이 아이 3명을 한 교사가 하루 종일 보육한다. 이제 막 걷고 뛰는 돌쟁이 아이 5명을, 두돌쟁이 7명을, 유아의 경우 15명에서 20명을 교사한 명이 하루 종일 돌본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함께 놀고, 가르치고, 청소하고, 아이들별로 옷과 짐이 섞이지 않게 관리하고, 등하원을 체크하고, 학부모와 소통하고, 아동별 일지를 작성 하는 일까지 모두 교사 한 명에게 주어진 몫이다. 연례 행사나 평가 인증이 겹치는 시기에는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더욱 늘어난다. 개중에는 스쿨버스 등하원까지 도맡는 교사들도 있다.
물론,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학대와 안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기관이 사고 발생 기관 수 보다 훨씬 더 많다. 그 어떤 이유도 학대와 사고의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다만, 열악한 노동환경이 어린이집 사고의 충분 조건이 아니라손 치더라도, 필요조건의 일부는 아닐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교사 대 아동 비율이 감소할 경우, 어린이집 사고, 그 중에서도 안전 사고 발생 확률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그 어떤 기계를 도입하는 일보다도 더 확실한 예방책은 사람에게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더욱 촘촘히, 더욱 막중한 책임과 부담을 가지고 아이들을 돌볼 때 사고가 예방된다. 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동 개개인을 돌보는데 주어지는 성인 보호자의 시간이다. 아이 한 명이 선생님과 충분히 눈 마주칠 수 있고, 아이가 요청할 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의 인력 배치가 필수적이다.
올 학기 초쯤이었던가. 쌍둥이 자녀를 둔 지인이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 아이들 교실을 참관하는데 상대적으로 몸이 약한 아이가 선생님을 서너번 넘게 부르더란다. ”선생님, 우유 더 주세요.“ 한 번, 두 번, 세 번. 애태워 불러도 선생님은 답하지 못했다. 계속 해 불러도 응답이 없자 아이는 단념하고 돌아섰다. 선생님 주변엔 자신의 아이처럼 선생님을 부르는 열댓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오늘 날 우리의 보육 현장에선 하루에도 수십·수백번씩 선생님의 최선과 아이들의 단념이 교차한다. 대한민국 보육의 현실이다. 또 어떤 지인은 말했다. ”선생님, 저희 아이 좀 잘 봐주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서는 순간 이미 선생님에게 매달려 있는 아이의 수가 스무명 가까웠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내 아이를 안전히, 좀 더 섬세히 봐 달란 요구가 이기적인 건 아닌지 자문했다며 씁쓸해했다.
전문가들은 2018년 우리가 대한민국 저출산 극복의 마지막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취임 당시 국정 3대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저출산을 꼽았다. 2017년 기준 대한민국 가임 여성 1명당 합계출산율은 1.05명 수준으로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 결과 작년 한 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수는 35.7만명의 그쳤다. 역대 최저치였다. 이는 곧 ’최악의 출샨율 시나리오‘에 따라 대한민국 인구 정점 시기가 기존에 예상했던 2031년에서 4년 더 앞당겨진 2027년이 됨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저출산 극복을 외치는 바야흐로 ’기-승-전-저출산‘의 시대다. 이런 때, 이미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이 아동인권도 행복도, 하다 못 해 최소한의 안전도 마음껏 보장받지 못하다니. 이보다 더 엄청난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을까. 태어난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가,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보다 정확히는 줄어든 인구로 인해 낮아질 국가경쟁력과 불안해질 기성 세대의 노후를 걱정하며 출산주도성장을 외쳐댄다는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얼마나 우스운지, 이런 현실을 곱씹다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어린이집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저출산 극복의 일환으로라도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반드시 축소해야 한다. 보육의 질은 일대일 눈맞춤에서 시작된다. 더 자주, 더 오래, 교사와 아이가 눈 마주칠 수 있을 때 아이들도 안전하고 행복해진다. 대통령 지시대로 ”어린이집 사고 방지를 위한 완전 해결책“을 진실로 마련하고자 한다면, 정부는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치를 설정하고 대통령 임기 내 달성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덧붙여, 유명무실한 어린이집 평가인증체계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한국보육진흥원이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도 기준 아동학대 발생으로 인증 취소된 어린이집 가운데 54.8%(42곳 중 23곳)가 95점 이상의 고득점 평가를 받은 우수어린이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올 7월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 두 곳 모두 90점 이상의 높은 평가인증 점수를 받아 논란이 되었다. 서면 업무 중심의 현 평가 인증 시스템은 교사의 업무를 비효율적으로 가중시키고 결과적으로 개별 아동-교사간 시간이 줄어드는 모순을 야기한다. 따라서 이중 삼중의 서면 위주 평가 방식을 벗어나, 현장 방문 및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의 평가인증 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관리·감독 없는 각종 의무화 정책의 허구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어린이집 사고가 국민적 관심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의무 규정이 신설되었다. CCTV도 운영위원회 설치도 의무화 되었고, 세림이법을 통해 통학 차량 운행 시 승하차를 도울 보호자 동승도, 안전띠 착용 확인도 의무화되었다. 그 외에도 각종 지침과 매뉴얼을 통해 의무 규정이 대폭 강화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는다.
어린이집 차량 사고를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대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세림이법의 경우, 의무 규정이 무색하게 홍보·계도·단속이 부실하단 지적을 많이 받는다. 어린이집 통학 버스에 대한 단속이란게 사실상 없는 상태다. 유치원알리미 사이트에는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매년 1회 이상 유치원의 공시대상정보가 공개된다. 공시항목으로는 ’유치원 규칙·시설 등 기본현황‘에서부터 ‘유치원 원비 및 예·결산 등 회계에 관한 사항’, ‘유치원의 급식·보건관리·환경위생 및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등이 해당된다. 아동학대 행위 등으로 발생한 시정명령 역시 포함된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공시 주체가 관련 부처나 지자체, 감사 기관 중 그 어느 곳도 아닌 유치원의 장(원장)이란 점이다. 개별 원에서 정보를 누락하거나 다르게 기입해도 알기 어렵다. 실제로 부실한 공시 항목을 누락하거나 축소 기재한 원도 적지 않다. 이 뿐 아니다. 2015년 9월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되었음에도 2017년 기준 CCTV 부실 운영으로 행정지도, 시정명령, 과태료 등을 받은 어린이집은 1470개에 달했다. 올 해 4월 24일 기준, CCTV가 단 1대도 설치되지 않은 어린이집만 전국에 365 개소수에 달했다. 앞서 언급한 운영위원회 의무 설치 역시 유명무실한 규정일 뿐이다.
정부는 올 7월 연달아 발생한 두 건의 사고 직후 ‘원장의 관리 책임 및 처벌을 강화’ 하고 ‘지방자치 단체의 지도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1회 사고발생 시 시설폐쇄) 적용 범위를 통학 차량 사망 사고 등 중대 안전사고까지 확대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이 역시 유명무실한 대책으로 전락할까 우려스럽다. 실제로, 2015년 1월 인천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에게 맞아 쓰러지는(거의 내동댕이 쳐 날아가는 수준의) 만 4세 아이의 CCTV 영상이 보도되었을 때,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동학대 발생 시 어린이집 운영정지, 폐쇄 및 보육교사 자격정지를 즉시 처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1회 학대행위라도 폐쇄가 가능하도록 하고, 학대 교사 및 해당 원장이 영구히 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거나 근무할 수 없도록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해 가을 도입된 영유아보호법 시행규칙은 ”아동에게 중대한 신체 또는 정신적 손해를 입힌 경우“에 한해 시설폐쇄 조치를 하도록 되어 있어 원안보다는 그 범위가 축소되었다. 이번 발표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기 쉽다.
뿐만 아니라, 관련 처벌 규정도 이번 정부 발표안 수준보다도 대폭 더 강화되어야 한다. 2015년 사고 당시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 추진’안에 따라 ‘아동학대가 상습적 또는 집단적으로 발생한 시설의 경우 어린이집 운영정지, 폐쇄 및 보육교사 자격정지를 즉시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원안 그대로의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사망을 포함한 중대한 아동학대 및 사고 발생 시 보육교사와 관리자인 원장 모두에 대한 영구적 자격 정지 및 유관시설 취업 제한도 검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대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안전 기준을 미준수하거나 아동학대가 발생했다면 엄격한 수준의 과태료 및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등의 실질적 규제안이 마련돼야 한다.
두 명의 꽃다운 아이들이 속절 없이 세상을 떠난 지 두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차량 사고와 관련해 쏟아진 유사법안만 10여건에 달했고, 국민들의 공포와 충격이 온오프라인을 무섭게 도배했다. 그러나, 그나마 사후 대책의 핵심으로 손꼽혔던 ‘잠자는 아이 확인법’은 여야 이견이 전혀 없는 비쟁점 법안이었음에도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결국 8월 처리도 무산되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울었고 통탄했지만, 냉혹하게도 여러 쟁점 법안과 이해관계에 밀려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이 또 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렇게 모두의 관심이 줄어들 때쯤, 어쩌면 그러기도 전에 또 다른 생명이 어처구니 없이 스러질까 두렵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은 그렇게 지속되고 또 반복되고 있다. 민심을 대변한다는 국회도, ‘다음 세대가 곧 우리의 미래요 경쟁력’이라며 아이를 낳으라고 더 많이 낳으라고 출산을 격려하는 사회도, 그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아이들의 안전을 행복을 엄마의 마음으로, 부모의 마음으로 지켜주지 못한다. 심지어 부모들조차 이 열악한 보육 체계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한다. 살아남기를, 그저 안전하기를 기도할 수 밖에.
뒷전으로 밀려난 ‘잠자는 아이 확인법’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내 아이의 안전을,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사람은 부모인 우리, 당사자인 우리 뿐이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사자 정치다. 한 아이가 인간다운 돌봄을 제공 받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일,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하고 아이와 교사가 제대로 눈맞춤고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보육 환경을 만들어 내는 일은 ‘엄마들의 정치’ 없이 불가하다.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비용 지불 없는 안전 강화의 허구를 폭로하고, ‘0-5세 보육 국가 완전 책임제’ 같은 국가 주도적 보육관의 위험성을 파헤치는 일. ”아이는 부모의 등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자라야 한다“고, ”보육 체계의 개편은 반드시 노동 정책과의 정합성을 고려해 설계 되어야 한다“고, ”‘부모는 온종일 나가 일 하고, 아이는 온종일 기관에 맡겨지는’ 그야말로 ‘탁아 패러다임’은 실패“했노라고, ”교사와 부모가 공동의 양육자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야말로 아동의 인권도 부모의 일-가정 양립도 가능한 사회“인 거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엄마인 나, 부모인 우리 뿐이다.
그래서 당사자 정치가 중요하다.
또 한 명의 어린 생명이 무고히 세상을 떠나기 전에.
더 많은 아이들이 사고의 피해자가 되기 전에.
지금 당장 우리 엄마들의 정치가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