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2 악착같이 육아일기
#1)
교회 주일학교 설교 때 설교자가 말했다.
"여러분 집에 있는 엄마 아빠 중에 밤에 잠 안 자는 사람은 없죠? 사람은 잠을 자야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졸거나 주무시지도 않고 여러분을 지켜주세요."
그러자 큰 아이가 답했다.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는 밤에 잠 안자고 일해요."
당황한 설교자가 답했다. "아. 그렇구나. 그래도 이틀 삼일 계속해서 잠을 안 자는 엄마 아빠는 없어요. 그렇죠?"
#2)
지난 이주간 비리 유치원 사태로 업무가 폭주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잘 지내 주었다. 특히 포도 두 알 뉴스를 함께 봤던 큰 아이는, 일하러 가는 내게 늘 '포도 유치원' 일 때문에 가는 거냐 물었다. 오늘 아침에 아들이 내게 던진 질문. "엄마. 근데 포도 유치원 어른이 계속 그러게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엄마정치를 하는거야. 그렇지 못 하게. 많은 아이들이 행복한 유치원 다닐 수 있게 하려고." 그랬더니 한참 있다 또 내게 물었다.
"엄마. 근데. 그 포도 유치원 나쁜 어른이 다른데 가서 또 속이고 유치원 하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잖아."
여섯살 아이의 질문. 어른들이 힘있는 변화로 답을 주어야겠지.
#3)
지난 일요일 심한 후두염이 와서 일요일 오전 예배 직후 나만 병원에 다녀왔다. 어린이 방에서 점심을 먹던 아이들에게 가서 귀엣말을 했다. 끄덕끄덕. 급히 신발 신으러 나가는 내 뒤에 대고 아이가 외쳤다.
"엄마!" "그래도 밥은 먹고 가."
밥은 먹고 다니냐.
내가 저를 돌봤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세월 나를 돌봐온 것은 저였다. 이젠 대놓고 나를 챙겨주는 아이. 이 사랑 받는 기분. 그 누가 나를 이토록 간절히 원했던가. 그 누가 이토록 간절히 나를 필요로 했던가. 그 어디서 내가 이토록 대체 불가한 존재로 인정 받았던가.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데 엄마 얼굴이 떠오르는 아이러니.
고마워 정후!
#4)
아파트 단지 옆 길. 은행나무로 가득찬 가로수 길. 거북이를 사달라고 몇년 째 졸라대는 아이들 뒤에 태우고 운전하며 지나는데, 가을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경탄이 절로 나온다. 아 이번 가을. 참말 아깝게도 지나간다. 생각하는데. 뒷 자석에 앉아 있던 만 두돌 넘은 작은 아이가 한 편의 하이쿠를 쏟아냈다.
"하나님. 고맙다! 나무가 예뻐서!"
#5)
간만에 방문한 대형마트. 벽면에 크게 걸린 홍보 플래카드. 거기에 그려진 토마토를 보며 작은 애가 흥분했다.
"토마토다. 토마토! 엉아야. 토마토. 저기."
정후가 사뭇 진지하게 동생을 가르친다.
"준후야. 있잖아. 저건 토마토가 아니라, 방울 토마토야."
거기까진 좋았는데..
"저게 왜 방울 토마토인 줄 알아? 형아가 알려줄게. 저걸 먹잖아. 그러면 삼킬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나서 방울 토마토야."
아. 그러구나. 강하게 수긍하는 둘째를 보고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 형아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둘쨰. 너의 경외심을 지켜줄게. 허허.
#6)
며칠 전 둘째 아이가 자다 흐느꼈다. 그리고 나를 더듬으며 외쳤다.
"엄마! 멍머니가(멍멍이) 우누를 물었어. 우누 코를 깨물었어. 으앙." 그러더니 다시 잠들었다.
그 다음 날이었던가. 큰 아이가 아침에 깨 바람의 속도로 내게 달려왔다.
"엄마! 진짜 좋은 꿈! 뭔지 알아? 마음껏 메뚜기 잡았어. 막 잡고 싶은대로 다 잡혔는데. 원래는 다칠까봐 세게 못 잡아서 자주 놓치잖아. 근데. 막 이번에는 다 잡히는거야. 진짜 많이 잡았어. 그리고 다시 놔 줬는데. 진짜 좋았어. 근데. 꿈이었나봐! 그래도 너무 좋아!"
#7)
정후 친구들이 놀러왔다. 저들끼리 속닥속닥.
딴 방에서 작업하며 우연히 들은 이야기.
"얘들아. OO이가 정후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잖아. 나 그 이유 안다."
"뭔데 뭔데?"
"그건 바로 바로. 정후가 잘생겼기 때문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그러구나.
#8)
어제 아침. 아이들이 강하게 등원을 거부했다. 엄마 정치든 병원이든, 그 어디든 엄마를 따라다니겠다며 강경히 나온다. 형아가 하는 말을 그 족족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둘쨰 아이.
모든 일정과 할 일을 미루고 두시간 동안 아이들과 빈둥거렸다.
거실에 이불을 엉크려 놓고, 다 같이 막 굴러다녔다.
아이들이 연달아 외쳤다.
"엄마. 너무 좋다. 엄마랑 이렇게 막 굴러다니니까 너무 좋다."
좀 있다 방에 들어가서 베개 싸움도 하고, 매트를 접어서 미끄럼틀도 탔다.
한시간 반 지나고 다시 물으니 공동육아에 가겠다고 했다. 데려다 주는 차안에서도 아이들이 들떠있었다.
"준후야. 우리 아침에 좋았잖아. 그치?"
"웅. 엄마랑 우누랑 엉아랑 놀았잖아. 좋다. 엄마 고맙다. 그치."
운전하는데 순간 또 주책맞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누군가의 말대로,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의 인간적인 행복을 위해 '엄마'란 내 정체성을 더 강하게 붙들어 온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도, 내가 더 간절히 아이들을 원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존재,
이들하고 그저 빈둥대는 시간,
그 시간을 확보할 최소한의 여유 없이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사실을 가장 두려워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86년생 조성실로서도, 엄마 조성실로서도 분열되지 않은 채 살아내고 싶어서. 그 길 위에서 정치하는 엄마가 되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여정. 아이와 내가, 나와 또 다른 정치하는엄마들이, 정치하는엄마들과 사회가,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 같은 어떤 아이와 내가 서로에게 연결되고, 나의 아이가 또 다른 어른과 연결되고, 아이들이 서로에게 연결되는 일. 그 연결망 위 어느 지점에 서 있을 수 있단 사실에, 자주 마음이 먹먹하고 감사한 시간들.
얼마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자기 소개를 해달란 질문에 내가 답했다. "86년생 조성실입니다."
방송을 마치고 자신을 몇년생 누구로 소개한 애청자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단체 공식 페이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 오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한 동생에게 메세지가 왔다.
"86년생 조성실.
마치 82년생 김지영의 비극은 소설일뿐이고
현실은 절대 비극으로 두지 않겠다는 비장한 신념을 담은듯한 뉘양스"가 인상적이었다고.
나의 고민이 누군가에게 가 닿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오늘의 기록 역시 누군가에게라도 가 닿아 찰나의 힘이 될 수 있기를.
#9)
한겨레에서 주최한 2018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이란 주제로 사례 발표를 했다. 몇달전 진행한 좌담회에서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가 어디서 오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내가 답했던 내용이 자료집 일부로 실려 있었다.
"격렬하게 아이를 사랑하는데
그만큼 '조성실'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롯한 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둘을 분열하지 않고 하나로 살아낼 순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다양한 감정이 오는 것 같아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순간에는 현재 구조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인 이 상태, 더군다나 혼자 싸우지 않고 같이
투쟁하거나 연대할 수 있는 벗들이 있다는 것에 뱃속부터 뜨거운 것 같은 느낌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데서 이 운동을 하게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워 공유한다.
#10) 엊그제 국정감사에서 등장한 랜턴이 핫이슈가 되었던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내 눈 앞에 등장한 랜턴남 모습에 도저히 인증샷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을 남겨둔다. 우리집에도 랜턴 있어요. #신스틸러랜턴남등장
주절 주절 주절.
간만의 육아일기. 중구난방 오늘의 일기, 이렇게 정신없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