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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Feb 23. 2019

이랬던 네가, 어느새 졸업-

20170227 다시 읽는 육아일기

#1)

수면등을 켜고 겨우 책을 읽는데, 양 옆의 두 아들이 점점 내 쪽으로 제 몸뚱아리를 들이민다. 한쪽에선 팔 다리가 번갈아 날아오고, 한쪽에선 꿈틀 꿈틀 긴 잠 못자는 젖먹이가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부럽게도 J는 거즘 혼자 잔다. 물론 두 침대가 붙어있지만 늘 한 침대에 우리 셋이 자고, 나머지 침대에 J가 있다. 아빠와 제법 잘 자던 정후도 준후 백일 이후론 줄곧 내 옆에서 함께 잔다. 두 아이를 겨우 재웠단 언니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빠랑 나눠 하나씩 재우면 될텐데 왜 엄마만 홀로 아이를 재워야 하는건지 싶었지만... 막상 아이가 둘이 되니 그 이유를 알아도 너무 잘 알겠다. 젖먹이는 밤중에 깨는 일이 많아 옆에 재우는게 편하고, 그걸 본 큰 아이가 다시 엄마 옆을 사수하고자 애쓰므로. 자연스럽게 양 옆에 두 아이를 끼고 자게 된다.


중학교 때 였나보다. 학원 마치고 돌아오니 침대 하나가 내 방에 놓여있었다. 아빠의 선물이라했다. 사달라고도 안했는데 웬 선물?하며 놀라긴 했지만, 좋았다. 그 뒤로는 웬만하면 쭈욱 내 방에서 잤다. 어른이 되고나서야 아빠가 뜬금없이 침대를 사주었던 이유를 알게됐고 순진해도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고 철없던 내가 쑥쓰러웠다. 그리고 부모님께 미안했다. 그 침대를 결혼하기 좀 전까지 십년 넘게 썼다. 이십대 초중반의 나는 그 침대를 무척이나 애정했다. 귀가하면 씻고 꼭 그 침대에 누웠다. 침대의 두면은 어쩌다보니 책으로 빼곡히 둘러있었다. 그렇다고 다독하는 편도 아닌데, 괜한 욕심으로 읽고 싶은 책을 사두었다가 구미가 당기는 날 꺼내읽었다. 거기에 올려놓은 책은 언제가 되었든 결국엔 읽게 됐다. 그래서인지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꼭 머리맡에 두었다. 잠이 안 올 때, 자다 깨 다시 잠들기 힘들 때, 눈은 떴지만 일어나기 싫고 여유도 있은 아침이면. 거기에 웅크리고 누워 책장을 넘겼다. 읽은 책보다 읽다 한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지만 쨌든 꽤 낭만적인 쉼터였다.


간만에 그 생각이 났다. 나를 포위한 녀석들의 기세가 너무 등등해 누운 자세를 바꾸다 못해 모로 눕고, 하다 못해 결국 애들 발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참 오랜만에 옛날 그 침대를 떠올린다.


음악 대신 코고는 소리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단 사실을 새삼 상기하면서....



#2)

출산과 육아를 책으로 배웠던 내가... 어쩌다 우연히 박정희 할머니의 기사를 읽고 꽂혀 그 분의 책을 다 찾아 읽고. 뜻이 맞는 선배들과 함께 인천까지 할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었다. (1950년대에 육아일기를 남기신 할머니, 제작년엔가 소천하셨다. 한참 뒤에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는..) 그 때 할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세탁기도 청소기도 없던 시절, 그 많은 식구며 직원들(남편분께서 의사셔서 의원에 일하는 사람이 많았음) 밥하고 집안일하고 아이 돌보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고. 그래서 한밤중에야 겨우 일어나 일기를 쓰고 그림을 남겼는데. 그러다 남편분께 틀키는 날에는 쿠사리를 들으셨다고. 내일 어떻게 버티려고 또 잠을 안자느냐고. 그래도 끝끝내 쓰고 또 그렸다고. 출간 못한 글들도 아주 많이 쌓여 있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열정이다. 그 분에 비할 바 전혀 못돼지만, 가끔 J 몰래 책 읽거나 글을 쓰다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른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



#3)

자다 깬 정후가 큰 짜증을 쏟아냈다. 보듬어야할지 훈육해야할지 기도하며 고민한다. 이번 한 주 우리 모두 힘에 부쳤다. 어머님이 큰 수술을 하신데다 회복이 늦어 우리 둘 다 날카로웠고 정후가 장염에 걸려 열이 나고 크게 토했다. J와 내가 두번이나 크게 싸웠고, 한 번은 둘 다 육성으로 큰소리를 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후가 불안해했다. 아프니 짜증냈고 그걸 다 받아주지 못한 나를 보고 더욱 불안해했다. 본능적으로 원인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참 도약기에 접어들어 이리 저리 반항(?)할 거리를 찾던 녀석이었다.


아빠와 한바탕 한 녀석이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당장 와 옷을 입히라고. 순간 아이에게서 초조함을 보았다. "후야. 엄마가 혹시 짜증내는 정후를 안 받아주고 덜 사랑할까봐 걱정돼?" 후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고개를 끄덕인다. 후에게 다가선다.

"후가 혹 실수로 사람을 죽여도 다치게해도 사실 엄마 아빠는 언제나 정후편이야... 다만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정후가 바르게 크도록 도와줘야 하니까.. 혼내기도 하고 싫은 소리도 하는거야. 후를 사랑하고 걱정하니까."


녀석이 아기처럼 안긴다. 아침엔 준후처럼 안아달라더니 하는 말이 "준후를 향한 질투가 날로날로 커졌습니다." 제 속내를 은근 내비취고는, 엄마가 알아주기를 더 표현해주기를 더 뜨겁게 보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진심을 담아 더 뜨겁게 안는다. 기분 좋아진 정후가 간만에 조잘조잘 제 속얘기를 건네온다. 아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던 이유,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 그리고 기습질문.

"엄마. 엄마는 누구를 가장 첫번째로 사랑해? 나랑 준후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해?"

"음.... 누구냐면. 아빠.그 다음이 정후, 준후 (정후 표정이 안 좋다.) 실망했어?"

"음. 엄마 나는 있잖아. 아빠가 첫번째!('그래. 복수하려는거냐, 이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고 ㅋㅋㅋ' 하고 있는데 한다는 말이) 그리고 엄마도 첫번째. 그리고 준후는 두번째야. 아니 다시. 엄마 아빠 준후가 첫번째, 그리고 내가 두 번째야. 내 마음이 그냥 그래."

"사실은 엄마도 그래. 아빠 정후 준후 다 첫번째!"

"그럼 두번째는 누군데?"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사실. 아빠 옆에서 잔거(엊그제 밤 자다 깨 나를 거절한 일)는 엄마가 싫어서는 아니었어. 그냥 엄마 옆에선 자주 자니까 그 날은 아빠 옆에서 자고 싶었던거야. 근데... 혹시 서운해?"

"서운하다기보단 걱정했어." 그리고선 정후 앞에서의 부부싸움, 정후 마음을 몰라줬던 구체적인 상황. 며칠간 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장면들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 "괜찮아. 그것도 괜찮아. 사실은 그것도. 지금은 괜찮아." 서서히 마음이 녹는 아이.


"듣다 졸리면 언제든 자도 돼. 편하게 자. 그냥 엄마 혼자 얘기하는거니까." 하는데도

"아니야. 나 듣고 있어. 그리고 또?"

하며 귀를 기울이는 아이. 그러다 내가 고백이 섞인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제가 아무리 정후를 사랑해도 부족하고 연약해서 때론 실수합니다. 혹시라도 엄마 아빠에게 서운하고 상처받은 거 있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으로 채워주세요. 제가 정후에게 빛이요, 위로요, 사랑되신 하나님을 잘 보여주는 부모가 되게 해주세요. 제게 더 넉넉한 사랑을 주세요." 쌔근쌔근 기도 소리를 들으며 아기가 다시 잔다. 준후는 아까부터 벌써 숙면중이었다.

잘자요 우리 똥강아지들 모두.



#4)

어느 날 돌아보면 아이가 성큼 저 만치 달아나있다. 이제껏 익숙했던 대화의 방식, 암묵적인 룰을 모두 제끼고. 그간 아이를 담아내며 별 부족함 못 느꼈던 그릇듯이 별안간 비좁게만 느껴진다. 아이가 답답해하며 도전해온다. 부모를 뒤흔든다. 다시 기싸움이 시작된다. 새롭게 관계를 조정한다. 평화가 찾아온다.


짧은 육아의 시간을 돌아보면 늘 그랬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성장해왔다.


어느새 벌써 아이에게도 제 주관과 세계가 하나씩 견고해진다.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빨아들이던 시간을 지나, 때에 따라 정보를 취사선택하기도 하고 부모와 다른 의견을 당당히 내밀기도 한다. 지위를 내세워 무조건 부모 입장만을 밀어붙일 것인지 한단계 도약한 아이의 성장을 받아들이고 부모로서의 내 역할과 태도를 조율해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렸다.


순종적으로 부모 뜻에 잘 따라오던 정후가 제법 반항하고 반대 의견을 피력도 하고 고집도 부리니 당황스럽다. 솔직히 말해 힘으로 나이로 몰아붙이면 쉽겠다. 그런데 굳이 들어주고 고민하고 상황에 맞게 어떤 땐 단호하게, 어떤 땐 넉넉히 받아주려니 쉽지가 않다.


지친 하루가 지나고 정후가 잠든 저녁. J와 함께 후의 근황에 대해 나눈다. 아이가 한 단계 컸단 걸 인정해줘야하는구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 더 확보해줘야하는구나


참말이지 답안지가 하나면 참 좋겠는데, 육아가 그야말로 여정이란 사실이 버겁다. 그래서 또 설레고 신도 나지만. 아이와 함께 나도 계속적으로 버전업 해야만하기에.


다시 새 옷 지어입힐 때가 되었구나. 몸이 크면 새 옷을 사주듯이, 마음이 크고 생각이 컸으니 그에 걸맞는 새 옷을 지어입힐 때가 된거구나. 나 역시 숨을 고른다.



#5)

내가 거쳐온 길, 내가 답습한 실수를 떠올리며 내 아이만큼은 같은 과오를 범치 않길 바란다. 속성으로 가르쳐 그 과정만큼은 패스시키고 싶어지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닌체 하지만 마음의 본질을 더듬어보면 그렇다. 그래서 조급해진다. 결국 내가 져줄 수 없는데도, 오롯이 저에게 주어진 몫인데도. 뭐라도 거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자꾸만 사로잡힌다. 꼭 학습이 아니더라도 주제는 다양하다. 관계를 맺는 방식, 삶의 태도, 생활 습관 등등. 내 족보, 오답노트를 잘 전수해서 나보다는 나은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만들겠다는 과신을 버리고. 내 부질없는 욕망을 인정하고. 제 갈 길 가게 두어야겠다. 다만 내가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진정 그 삶에 울림이 있다면 굳이 붙잡지 않아도 따라올 걸음일테지. 내 십년 뒤도 모를 인생, 나와는 전혀 다른 세대와 시대를 살아갈 이 아이에게 마치 대단한 성공의 비법을 전수하는냥 꼰대가 되는 일만큼 우스은 일도 또 없을테지. 딱 최소한의 것만. 딱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6)

몇달 째 장바구니에 담아만 놓고 벼르던 책을 샀다. 빌려볼까 몇 번을 고민하다 결국엔 샀다.


이 책을 서문만 읽고 자자 했는데 결국 또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다.


정후가 혹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하는 내게 상담자인 지인이 건네온 조언.

"정후가 성실을 닮았지만, 성실이 겪어 온 과정과 정후가 보고 자라는 환경은 다르니까. 다르게 자랄 수 있을거야 두려워하지마. 그리고 성실도 충분히 잘 자랐어."라고.


부모 자식 관계는 문화와 나이와 종교를 막론하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 밤에 미국 만화가와 일본 작가의 글을 읽고 격하게 공감하고 심하게 위로받는 나를 보면 더욱이.


우리 아이들도

나와는 다른 세대를 살아갈 것이고

무엇보다 이들이 갖게 될 부모에 대한 이미지와 고민 역시 내 것과는 다른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부모가 되지 않겠다 선택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글들이 우리 함께한 시간의 흔적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의 날들을 소환하는 하나의 그림이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작은 소망과 위로가 되기릉,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에게든.



#7)

정후 얘기 이어 준후의 이야기.


오늘도 준후는 트롤처럼 밝고 사랑스러웠다.(정후의 요청으로 오늘 네가족은 영화 '트롤'을 보러 cgv에 다녀왔다:)) 누구에게든 곧잘 안겨있다가도 엄마만 보면 울먹이거나 칭얼대는 요즘의 준후. 그러다 안아주면 뛸듯이 기뻐하며 버둥댄다. 무에든 딛고 서려한다. 밥고 참 잘 먹는다. 오늘은 아빠 면도기에 달린 바리깡으로 온가족이 준후 이발을 해주었다. 유아 손톱깎기로만 시도하다 바리깡을 들었더니.... 결과는 참혹했다. 보다 못한 아빠의 만류로 나머지는 그나마 참사를 면했다. 한쪽만 망했다.형아를 보면 좋아죽는다. 자는 형아를 흔들어 깨운다. 아까도 자다깬 형아 보고 무척 좋아하다 짜증내는 형아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심각한 순간에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혼자 크게 웃어버릴 뻔 했다.


무엇보다 자주 안겨았는데 저녁이 되면 나도 모르게

"아이고 준후야. 오랜만이네!"하게 된다. 물고 빨고 오매불망 큰 아이에게만 빠져있던 지난 육아와 달리, 아이도 둘인데다 그만큼 집안일도 늘어나니 늘 정신이 없다. 분명 "응"이라 답해놓고 왜 다시 안된다 하느냐는 정후의 원성이 자자한 요즘. 그런 엄마와 형 따라다니느라 우리 쭌이 고생이 많다.


준후가 벌써 8개월에 접어든다. 언제 시간이 이리도 빨리 갔나 싶어서. 준후가 너무 빨리 커버려서 아쉽다. 물론 매일 매일엔 하루가 빨리 가길 기다리는 아이러니.


형아들 간식 나눠주면 고개를 빼꼼 내고 저도 달라 손을 내민다.(물론 궁금해 그냥 잡아당기고 그냥 구경하는 것이겠지만)


불현듯 오늘, 돌 되기 전까지 더 많이 부비고 눈 마주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은근 사각지대(?)에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적당하게 잘 크고 있단 생각이 들지만......ㅎㅎㅎㅎㅎㅎ 둘째가 큰애만큼 못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마음이 무겁지 않은건. 어쩔 수 없이 적당하게 돌보게 되기 때문인듯.


과유불급이라고. ㅎㅎㅎㅎㅎ


사랑해요 준후.


정후가 준후 때문에 힘들다면서도 그래도 준후가 와서 힘든 것보다 좋은게 훨씬 많았다 한다.


정후만큼 열심과 성심으로 동생을 웃겨주는 형아도 드물거다.


나는 좀 외로울지 모르겠지만(흑흑)

아이들이 동성 형제라 더더 좋단 생각이 드는 요즘.


이젠 진짜 자야지! 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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