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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Nov 23. 2017

나를 증명하고 싶어질 때

끊임없는 선 긋기로 유지되는 자존, 그 얄팍함에 대하여

 영유아(6세 미만의 취학전 아동)의 보호 및 교육에 관하여 규정한 법률인 영유아보육법은 1991년 최초 제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2차례의 개정을 거쳐왔다.('보육의 공공성 강화, 수요자 중심의 효율적 보육 서비스 제공, 보육 현장에 기초한 양적 확충 및 질적 향상의 균형, 보육참여문화 형성 및 확대'를 목표로 2004년 영유아보육법이 전면 개정되었지만, 그 목표는 2017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한 숙제이자 간절한 소망으로 남아있다.) 영유아보육법의 목표는 다음과 같고,  

영유아(영幼兒)의 심신을 보호하고 건전하게 교육하여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함과 아울러 보호자의 경제적·사회적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가정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단연 보건복지부의 보육 정책 목표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보육은 영유아의 심신을 보호하고 교육하여 건전한 발달과 잠재적 능력의 신장을 돕는데 제 1차적 목표를 둡니다. 아울러 보호자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가정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고 국가의 성장발달과 경쟁력 제고를 돕는데 부차적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3대 우선 과제' 중 하나인 저출산 대책의 주요 골자이며, 식상할 정도로 언론과 정치권에서 오르내리는 단어다. 실체는 본 적 없지만 너무 많이 들어서 벌써 지루해져 버린 수준이랄까. 여튼 그렇다. 모다들 일가정 양립을 바란다고들 하고 가늠하기도 어려운 국가 재정을 쏟아 붓고 있다는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 성과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미스테리 중에 미스테리다.

  

 아 맞다. 그래도 일 가정 양립을 향한 우리 사회의 염원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적어도 "전업주부인데요."라고 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만큼은 말이다. 국가가 내게 부여한 사회적 지위, 취업모와 전업모란 몹시도 기계적인 구분에 맞춰 나를 커밍아웃 해야 할 때마다 나는, '아, 우리 사회가 일-가정 양립을 이 시대 엄마의 표준으로 삼고 있구나.' 깨닫고, 그럴 때 내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통해 엄마(보호자)로서 (월급 통장을 통해 급여를 받는 형식의)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나의 현실과 전업주부를 향한 편견을 체감한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의 컨센서스를 이뤄왔다고 생각한다. 엄마도 일을 해야 한다고.

딱 거기까지.  


 이 투박하고도 거친 명제와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각자의 편견에 쉽게 편승하고, 본래적 취지와는 무관하게 제 멋대로 변주를 일삼는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을 양산한다.


 엄마 개인을 무한히 소진하고도 또 다른 엄마(주로 친정 어머니나 시어머니)의 저임금(또는 무임금) 노동에 기대어 위태롭게 유지되는 취업모(워킹맘이라고들 지칭하지만, 정말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이다. 취업모를, 그것도 상근 취업모를 워킹맘이라고 지칭하면 나머지 엄마들은 working 하지 못하는 엄마란 뜻인가?)들의 고충은 '그래도 그만 두지 않고 일도 가정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배부른 소리'가 되고,


 전문직 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취업모는 "그렇게 일해봐야 별로 남는 것도 없는데 그 어린 애를 하루종일 남의 손에 맡기며 일하는" 불쌍한(생계형 취업모) 엄마가 되거나 매정한(별반 대단하지도 않은 직업을 포기하지 못 해 아이를 고생시키는) 엄마 취급을 받는다. 노동이 개인에게 주는 가치적 의미는 직군과 회사의 네임벨류에 맞춰 평가절하된다.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안쓰고 독야청청 할수 있다면 좋으련만.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고 자존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별도의 대외적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엄마들의 상황은 어떨까. 별반 다르지 않거나 때론 더 가혹하다. 돌아갈 직장이 불확실한 전업주부들은, 남편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하고 애나 보는 속편한 신세가 되거나(살림이나 하고 애나 본다고? 남편 벌어다 주는 돈으로? 이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쉽게 나오는 말이 "그럼 내가 집에서 애볼테니 네가 나가 돈벌어오라고. 나만큼 벌어올 수 있음 그렇게 하자고. 나도 너처럼 애들 어린이집 보내놓고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그야말로 속편한' 소리다.) 경쟁에서 낙오된 실패자 인식된다. 변변찮은 직장에 다녔으니 쉽게 일을 그만뒀겠거니, 그러니 여자 팔자에 가장 좋은 직업은 교사나 공무원이라느니 그런 류의 생각들. 커피숍에 앉아 쓸데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몰려다니며 치맛바람이나 일으키는 부류로.

 이 일반화의 과정에서 개개인이 부딪히는 실제적인 고충과 현실적인 제약은 손쉽게 지워진다. 오직 "그래. 엄마도 일을 해야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는 부질없이 투박하고 때론 폭력적인 명제만이 남는다. 그 선언적 구호와 거지 같은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수 많은 엄마들이, 그래도 맘충은 되지 않으려고 수도 없이 자기검열을 해나가야 한다니.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어찌나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던지.

 이러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의 바탕엔 '된장녀가 맘충이 되었다'는 식의 여성혐오와 보육 정책 실패에 대한 귀책 사유를 애먼 엄마들에게로 돌리는 잘못된 정치 메커니즘이 자리한다. 무상 보육과 맞춤형 논란만 하더라도, 그 시행착오와 실패의 초점이 정치권과 정책 당국 그리고 이를 용인하고 기획한 전문가 그룹에 있어야 함에도, 언론과 정치권은 '불필요하게(=집에서 놀면서 제 몸 편하자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모들로 인한 예상낭비', '취업모와의 차별적 대우에 대한 전업모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주목하고 끊임없이 이슈를 재생산했다.

 

 단언컨대 문제의 핵심은, 엄마들이 아니라, 수 없이 반복돼 온 정책 실패다.

 그간 확대돼 온 보육 지출이 보육서비스의 품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고, 그 지원금에 대한 관리감독 기제 역시 부실한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안이며, 정책 실패로 인한 예산 낭비의 책임은 보육 당사자인 아이와 엄마들이 아니라, 조직화 되어 있는 기관들 눈치 보느라 힘 있게 보육 공공성을 구현해오지 못한 정치인과 당국에게 찾아야 한다. 무상보육을 누가 구상했나? 학계와 당사자들의 요구 이전에, 심지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권에서 급조해 낸 복지아젠다 아니었던가. 무상보육이란 말도 선정적이다. 2016년만 기준으로 보더라도 무상보육에 집행된 지원금은 8조 3천 640억 가량이었다. 무상보육이란 이름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이제 애 키우기 참 편해졌다고들 하지만 그건 이름이 주는 환시에 불과하다. 국민들이 낸 세금 8조 3천 640억 가량이 투입되고도, 여전히 부모들은 아동 1명당 한달 17만원 이상의 교육·보육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2017년 육아정책연구소가 진행한 '영유아 교육·보육비용의 변화 추이와 지출 실태' 보고서의 0~5세 영유아 1인당 월 평균 교육·보육비용에 관한 분석 결과임. 비용 지출이 없다고 응답한 26.0%를 제외하고 월 평균 지출을 잡으면 22만 8천원 수준이고, 5세 아동 그룹에서 한달 50만원 이상을 지출한다는 비율은 15% 이상이었다. 누군가는 이 통계를 보고 '엄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교육열에 앞세워 과도한 비용을 쓰는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 명시하자면, 해당 조사에서는 '교육·보육비용'의정의를 '정부가 부담하는 보육료를 제외하고, 아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학원 등에 보내면서 쓴 지출'로 규정했고, 세부항목은 현장학습비, 행사비, 차량운행비, 급간식비, 특성화비, 교재교구비, 특별활동비 등을 포함한다. 지난 대선 때 큰 논란이 됐던 단설유치원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엄마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유치원이 단설유치원 그 다음이 병설 유치원이라고들 하는데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주거 밀집지역 공립유치원 중에는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르는 곳이 적잖다. 서울에서 유치원 공급이 가장 부족한 광진구 중곡동은 지난해 공사립유치원 수용률이 13.7%에 그쳤다. 2016학년도 교육통계 연보에 따르면 전국 평균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4.2%이며, 2013년 자료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유치원 비율이 공립 68.6%, 사립 31.4%인 것과 거의 정반대 수치에 해당한다.(인용:http://weekly.donga.com/3/all/11/1072676/1))이고, 당첨되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사립유치원에 가야한다. 월 평균 사립 유치원비가 국가 지원금을 제외하고 최소 이삼십만원에서 백만원 이상에까지 이른다. 그런 현실을 감안해 보면, 월 평균 영유아 교육·보육 지출이17만원 수준이라면 오히려 이 통계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게 아닐까 의아할 정도다.) 결국 공짜도 아닌 무상보육을 제공하면서 제대로 관리 감독할 기제는 마련하지 못하고, 그 마저도 OECD 평균에 맞지 않다며 삭감하려 든다. OECD 가입국 엄마들은 영아들을 엄마가 집에서 돌본다면서. 그럴 것이다. 왜냐면 그 나라는 우선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시간이 짧고, 노동유연성이 높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율 및 복지도 좋으니까. 무상보육에 쏟아붓는 수치만 보면 우리가 많이 쓰고 있는지 몰라도 가족지출 전반을 기준으로 하면 1/2, 1/3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데, 그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무상보육이 준비 없이 됐고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저출산 효과도 크게 보지 못했으니 손보자면서 예산은 깎고 이용할 수 있는 엄마들은 줄이고.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엄마들은 여전히 아이를 낳고 일터에서 쫓겨난다. 스스로 그만두는 것처럼 보여 정부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수 많은 엄마들이, 믿고 아이 맡길 곳도 없고 육아휴직과 출산휴가조차 법대로 쓸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스스로 일터를 떠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러면서 일-가정 양립 아젠다를 주문처럼 앞세워, 실패한 정책을 만들었던 이들을 다시 불러놓고 회의를 한다. 회의비, 연구용역비로 나가는 모든 비용도 물론 저출산 예산의 일부이고.


 그런데도 그 모든 책임이 '엄마들의 욕망', '엄마들의 이기심', '엄마들의 어떠함' 등으로 치환돼 엄마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부메랑으로 날려와 꽂히는 걸 보면 부아가 나고 속이 상한다.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것 외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되받아치다가도, 어느 순간엔 시무룩하게 주저앉는다. 심지어 변변 찮은 직업조차 없는 전업주부 아니었던가.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뒤흔든다.


 정치하는 엄마들 대표를 맡게 되고 가장 많이 받아 온 질문이

"전업주부시라면서요. 어떤 계기로 대표까지 하게 되셨나요?"였고, 그 다음 질문이 "그 전에는 어떤 직장에 다니셨나요."였다. 마음은 마음을 쉽게 알아본다. 같은 질문을 건네더라도 어떤 이는 내 진심을 마주하고 싶어 내게 질문하고, 어떤 이는 장하나 의원(전 국회의원)과 이고은 기자(전 주요 일간지 기자)가 대표인건 알겠는데, 변변찮은 사회 경력도 없어 봬는 전업주부가 어떻게 대표를 하게 되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 질문 뒤엔 으레 "보통 전업주부와는 다르시네요"란 말이 뒤따른다. 그 사실이 불쾌하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탄생과 동시에 끊임없이 좌표값을 찍어준다. 그리고 요구한다. 너를 증명해 보이라고. 통계적 자료의 가치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과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백분위에서 좌표를 찍어준다. 머리는 얼마, 키는 얼마, 몸무게는 얼마, 그래서 몇분위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초음파 오차만 고려해도 몇주차는 넘나들텐데, 너도 나도 다들 그러니 부모가 되면 그 숫자 별 거 아닌 줄 알면서도 괜시레 마음을 졸이게 된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일면 타당한 반응이기도 했다. 힘겹게 살아 온 지난 경험으로 반추해보건대, 우리 사회에서 좌표값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나았으면 좋겠고, 조금이라도 더 앞섰으면 좋겠고. 그리하여 이 헬조선에서 그나마 잘 살아남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인지상정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을테니.


 나 역시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 온 사람이라서, 처음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 나의 달라진 처지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백분위에서 내가 어느 쯤에 속하는지 셈하고, 쉼 없이 성적으로 성취로 또 그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오는데 익숙했던터라, 나를 증명해 줄 소속이 없고, 나를 드러 낼 사회적 지표가 없다는게 어색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선을 그었다. 그래도 나는 달라. 보통의 전업주부는 아니야. 나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고, 내가 스스로 그만두고 나왔지. 더 좋은 회사에 갈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을 뿐이야. 그래도 내 남편은 가부장적이지는 않아. 그리고 나는 커피에 앉아 수다를 떨고 드라마를 보는 대신 책을 읽고 시사를 논해. 내 아이는 달라. 왜냐하면......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끊임없는 선긋기로 유지되는 내 자존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에 대해. 두고 두고 그 가벼움과 찌질함에 대해 곱씹었다. 그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준게 대표가 된 이후 받았던 반복되는 질문이었다.


"전업주부이시라면서요?
이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보통의 전업주부와는 다르시네요.
그냥 워킹맘이시네요."


 보통의 전업주부와 다르다고?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보통의 전업주부는 어떤가요? 묻고 싶었다. 그리고 물었다.


 마음 대 마음으로 다가오고 싶어 건네는 질문엔 신이 나 답했지만, 너를 증명해보란 요구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대꾸를 하기도 전에 불같이 화가 났다.


나는 전업주부이기 이전에 조성실이고,
아이를 낳기 전의 나와 낳은 이후의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대학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으면 성장했지 더 퇴보한 사람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때론 자존심이 상해서, 어떤 날은 화가 나서.


 그런 내 모습을 보는데, 짠하고 한켠으론 구차하더라.

 그래. 어쩌면 이런 감정이야말로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아랑곳 않고 내가 선택한 길에 자부심을 느끼려 애썼지만, 중간 중간 속절없이 무너졌단 사실도 인정한다. 보통의 전업주부는 아니라고 남몰래 선긋기 해오던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 비참했단 고백엔 과장이 없다.

 아무도 시키지 않을 때, 누구도 묻지 않을 때, 그래도 나는 남들과는 다른 전업주부라고 생각해 왔던 오만과 편견이, 타인의 질문으로 내 가슴에 꽂혀 상처가 되었다.


다르긴 뭐가 달라. 전혀 다르지 않아.
전업 주부면 그냥 전업주부지, 다른 전업주부가 어딨어?
그리고 뭐. 전업주부가 뭐 어때서?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를 원한다며,
아이들이 국가의 경쟁력이고 미래라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며.
아이의 행복과 엄마의 일이 공존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각자가 힘겹게 내린 최선의 결정.
때론 어쩔 수 없이 내쫓긴 그 궁지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동지다.


 또 다른 내가 답했다.

 조금 더 인지도 높은 학교를 나왔더라도, 좀 더 이름 있는 회사를 다녔더라도, 남편이 남의 남편보다 돈을 좀 더 번대도, 그 모든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사회에서 우리는 전업주부로 분류되고, 그래서 너는 보통의 전업주부와 어떻게 다른지 묻는다. 증명해보이라 한다. 그리고 움찔 움찔 나의 몸이 답한다. 그 구차함과 찌질함에 압도 돼 며칠을 힘들었다.


 그러던 중에 대안학교 준비 TF를 가졌다. 저녁 8시에 모여 새벽 1시 가까이 이어진 회의.(현재 8가정이 품앗이 공동육아 팀을 이뤄 아이들(총 13명)을 기관에 보내지 않고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보육한다. 주 1회씩 모여 엄마 회의 및 스터디를 진행하고 엄마들 각자 재능에 맞게 수업도 개발한다. 주된 시간은 아이들과 논다. 가능한 자연에 나가 오래 많이 자연스럽게 노는 것과 상호 관계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배우고, 조화와 개성을 찾아가도록 돕는게 주된 목표다. 학습에 대한 동기를 잃지 않으면 필요한 수준의 결과는 따라오리라 믿는다. 그 팀 중 일부가 대안학교 준비모임을 시작했다. TF를 꾸려 격주로 회의를 갖고, 월1회 부모 회의를 갖고 있다.) 이번 주 주요 이슈는 "왜 대안학교를 시작하고 싶은가"였다. 늘 나왔던 이야기, 던질 때마다 새롭고 심오한 대답이 나오는 질문. 공교육 안에서도 좋은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고, 교사 1인당 학생수도 줄고, 괜찮은 대안학교도 많은데, 우리는 왜 굳이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가.


 내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끊임없이 선 긋지 않고도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거든요. "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고, 저 사람과는 다르다고 선 긋지 않고도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을 자신과의 열위로 인식하지 않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으면 싶었다. 기존의 대안학교 특히 기독 대안학교는 많은 경우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결국 좋은 대학에 가고, 가진 재능을 잘 발견함으로써 일류가 돼 타인을 돕는 리더가 되라고 가르친다.


 내 자식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거꾸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게 대안교육을 시도해보고 싶은 진짜 이유다.


 꼭 일류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네가 가진 재능 중 가장 탁월한 재능이 누군가의 재능을 앞서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럼에도 너는 너 자체로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하고,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고. 그러니 세상에 굴하지 말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와 어른들이 있는 곳, 그런 작은 사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소망. 가능한 많은 아이들에게. 그게 내 본심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대도 이 사회에 속한 이상 내 아이도 사회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을 안다. 때때로 나처럼 흔들리고 좌초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아이에게 나와 다른 준거집단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소망과 기대로 이 모임을 시작한다. 나 혼자 지키기 힘들어 버둥댔던 그 메세지를, 내가 잊고 내 아이가 잃어버릴 때, 그 때조차 이 아이를 둘러싼 친구와 어른들은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고, 적어도 한 명쯤은 이 아이에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어주겠지. 나 역시 내 아이에게 어쩌면 또 다른 아이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망 비슷한 감정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준비 모임을 진행한다. 너를 증명해보이라는 끊임 없는 요구 속에서, 칠게 물어오는 세상을 향해, 제 자신을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아이 뿐 아니라, 나 역시 자랄 것이다. 아이의 성장을 돕고 바라보면서 그 유산을 누리게 될 것이다. 지난 오년간 아이를 키워오며 체득한 진리다. 오랫동안 저항해 왔지만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나의 견고한 세계관과 편견이, 아이의 시간과 함께 전복되고 재구성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 그것이 대안학교 TF를 시작한 나의 동기이자 욕망이다.


 며칠 전 잠자기 전에 아이와 나눈 대화.

"정후야. 혹시 기도해줘야 하는데 엄마가 놓친 사람 있어? 생각나면 말해 줘."

"(고민하다가) 있어! 어, 근데 까먹었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생각나면 정후가 혼자 해도 되니까, 이젠 자자."

(자려고 누웠는데 다시 무릎 꿇더니) "엄마 생각났어. 그 아저씨. 총알 맞은 아저씨. 아빠가 그러는데 북한에서 어떤 군인 아저씨가 우리 나라로 넘어오는데 총알을 네발 맞았대."

"어. 맞아. 사십발 넘게 쐈다더라."

"사십발이나 맞았다고? 살았어?"

"응 사십발 중에 여러 발을 맞았어. 지금은 수술 받고 회복 중인데. 목숨이 위태롭대."

(함께 기도함)"하나님. 아저씨 몸이 잘 회복되게 해주시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도 지켜주세요. 아멘"

기도를 마치고 아이가 질문했다.

"그런데 있잖아. 그 아저씨는 어떻게 생겼어? 뚱뚱할까? 날씬할까? 키가 클까? 작을까?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가족들은 몇 명일까? 아기도 있을까?"


 아이의 질문을 받고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내 머릿 속에 존재하는 무명의 북한 군인은, 아이의 세계 안에서 누군가의 가족으로, 아빠처럼 눈코입이 있고 멋있는 한 명의 남자 어른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이 아이는 뉴스에서 만나는 한 사람의 인격을 입체적으로 그려가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그 이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가르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은 몹시 힘들었고 몹시 행복했다(여전히 그렇다). 내 평생 이렇게도 양가적인 경험은 처음이야, 하면서 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삼십년 동안 불려온 내 이름을 잃어버려 우울하다가도,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내 존재 자체를 고마워해주는 아이의 존재 덕분에 위로를 받는다.

내게 맡겨진 엄청난 책임과 부담감에 압도되었다가도,
예상치도 못한 순간 나를 견인하고 가르치는 선생을 만나 겸허해진다.


아이가 내게 말한다.

엄마. 증명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해.
엄마는 그 자체로 내 사랑이야.



이 아이에게 내가 답한다.

정후야, 준후야. 너희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돼.

너희는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해.

너희는 그 자체로 내 사랑이야.


 그 고백이 메아리가 되어 내게 되돌아온다.

아이로부터 시작된 고백이 내게로 그 고백 역시 또 나에게로.


 며칠 전 아침, 남편이 요즘의 내 어두운 기운을 감지하고 말을 건넸다.


여보.
자꾸 당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돼.
이미 충분해.
네가 송곳이라면 증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드러나는 법이야.
그리고 또 송곳이 아니면 어때.
전문가들이 세상을 바꿨다면 오늘 우리가 이런 현실을 살지 않았을거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고 잘 듣는거야.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들으라고 하시는 것 같아.
진짜 이야기를 말이야. 진짜들의 이야기를.

그것만 열심히 하면 돼.
그게 당신과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니까."


 그렇게 오늘도 평범한 전업주부 조성실은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며 현장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찾아 나선다. 손으로 만져지고 무릎이 탁 쳐지는 진짜들의 이야기. 그것이 곧 나의 이야기.

20170416 안산 분향소

누가 내게 어떤 질문을 물어오든지 관계 없이,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오늘의 고백들을 잊지 말아야지 되뇌인다.


보통의 엄마들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우리 사회를 바꾸리라 믿으면서. 뚜벅뚜벅.

진짜들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쳐야지. 잠잠히 있지 말아야지.


그런 기대와 열심으로 오늘을 살아낸다.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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