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태진 Sep 18. 2021

조폭의 1인자는 늘 불안하지 않을까?

요즘 저는 한국사회에서 특히 젊은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이전보다 극심해지고 날카로워진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런 느낌은 저 혼자 받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더 정확히 얘기해서 남녀 간에 그런 극심한 충돌과 대립을 촉발한 직접적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피해의식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권위주의"라는 표현을 떠올립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손해를 보는 이유가 성별이 다른 상대방 때문인데 그로 인한 경제적 손해도 손해이지만 경제적 능력에 의해 보장되는 권위가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여성의 사회진출을 남성이 가지고 있던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는 것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기존의 권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사회적으로 정된 경제적 보수와 그 보수에 걸맞은(?) 사회적 지위라는 좀 서글픈 증거일 것입니다. 거꾸로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제껏 여성에게 억압적이고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치사하고 속이 뒤집히는 일들을 감내한 중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놈의 경제력 때문이니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면 내 손으로 내 생계와 그를 넘어 이른바 화려한 싱글로 살기 위해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글의 맥락을 조금 벗어나는 느낌을 드리겠지만 저는 요즘 특히 이른바 "권위"에 대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때 제가 생각하는 권위라는 개념에는 거의 늘 "불안"이라는, 서로 조합이 잘 맞지 않아 보이는 정서적 개념이 뒤따르곤 합니다. 이 표현이 좀 엉뚱해서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이 계실 텐데 이해를 돕기 위해 거칠게나마 예를 들자면 맨 꼭대기에 있는 조폭 두목이나 왕조 시대의 임금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표현처럼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지만 그 권위는 누가 언제 빼앗을지 몰라서 늘 초조하고 불안한 권위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나 사극을 좋아하시는 분은 이런 경우를 티브이로 보셨을 텐데 조폭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최고 형님을 극진히 모시던 소위 넘버 투가 큰 형님 모르게 세를 규합해서 지금껏 모시던 형님을 권좌에서 끌어내거나 죽여버리는 장면과 반정(反正)이라는 쿠데타를 통해 절대 권위를 행사하던 기존의 왕을 몰아내고 자기들한테 이득이 되는 왕을 옹립하는 장면 등을 상상해 보면 그 어떤 비판이나 다른 의견도 하용하지 않는 절대 권위, 꽤 오래전에 원로 탤런트인 이순재 씨가 등장한 광고 문구를 인용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권위가 왜 그토록 불안을 야기하고 그 결과로 점점 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피해망상에 가깝게 의심하면서 병적인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절대적" 권위를 지키려 하는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만약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절대적 권위를 강제로 빼앗기면 다행히 목숨은 건지더라도 그 후 그의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비참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이미 "폐위"된 사실이 만천하에 퍼져 다시는 실추된 권위를 되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자녀에 대한 엄마의 불안감, 그 이유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