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막스 베버의 주장에 따르면 두 가지 상이한 권위가 있는데 그건 카리스마적 권위와 합리적 권위입니다. 그런데 이 둘을 나누는 중요한 요소는 그 권위가 경외감이나 공포심 때문에 발생하고 유지되는가 여부입니다. 그리고 권위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권위를 지키려고 온갖 허장성세를 부리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은폐하는가 아닌가 여부도 중요한 척도입니다.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권위는 늘 긴장과 불안을 동반하는데 그 이유는 언제, 어떤 경우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의 평범한 인간적인 면모, 즉 그를 두려워하면서 추종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서 곧바로 두려움에 바탕을 둔 카리스마적 권위가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그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 합리적인 권위는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권위를 가진 사람은 남들과 같이 실수나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동시애 인간적인 욕구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경외심이나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합리적 권위를 가진 사람의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밝힐 때 공포나 두려움을 사용하지 않고 이유, 즉 "왜냐하면"이라는 설명과 근거를 제시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논거나 이유로 뒷받침된 그의 주장이나 견해를 타인들이 이해하고 그의 주장이나 견해를 지지하거나 반박함으로써 양측의 정신적 심리적 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입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면 저는 특히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부모에 의해 양육되면서 "왜냐하면" 이라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분들은 부모와 함께 버스를 탄 어린아이들이 자리에 앉으면 곧바로 차창으로 몸을 돌려 바깥을 신기한 눈으로 정신없이 바라보거나 부모, 특히 엄마에게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또는 "이건 왜 그래? 저건 왜 그래?" 하면서 질문세례를 하는 것을 목격하셨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새롭고 신기해서 아이는 "왜?" 또는 "어째서?"라는 궁금증 때문에 부모에게 연신 질문을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그런 질문, 때로는 어른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질문을 했을 때 부모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거나 무시할 때, 또는 "너는 바보처럼 왜 그런 쓸데도 없는 질문을 하니?" 하며 윽박지르듯 야단을 치거나 권위적인 말투로 대한다면,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반복된다면 아이는 신기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 안에 생긴 호기심이나 궁금증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 이를테면 영문도 잘 모른 채 자기 혐오감이나 두려움을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궁금증이 일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비아냥거리고 비난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함께 들려서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나?" 하며 익명의 권위로 불리는 다수 또는 대중의 주장이나 의견은 뭔지 알기 위해서 애쓸 수 있는데 이때 위험한 점은 설사 대중 또는 다수의 주장이나 의견에 그에 대한 이유가 있더라도 불안한 개인은 이유 떠위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즉 왜? 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대중 또는 다수가 뭐라고 주장하는지에만 시선아 고정되어서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쓰면 "답정너" 식으로 다수가 또는 대중이 무조건 옳다는 전제 하에 그들의 주장이나 의견을 맹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혼자서 살아가는 것아 아니러 가족, 학교, 작장 그리고 넓은 의미로 한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그것도 남편, 아내, 아버지 엄마, 학생, 선생님, 직장인 등의 사회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시작할 때 우란 사전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거나 처리해야 될 과제에 손이 익지 않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계적인 답변만 준다면 그 기계적인 설명을 들은 사람은 마치 로봇처럼 그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알에 대한 이해도가 좀처럼 높아지지 않을 수 있고 합리적이거나 납득할만한 설명 없이 어떤 지시나 명령을
받는다면 겉으로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그 지시나 명령에 따르긴 하지만 도저히 그 지시나 명령을 납득할 길이 없어 속으로 부아가 나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어떻게"라는 설명도 중요하지만 "왜냐하면" 이라는 설명이 보다 근본적이라는 제 의견을 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