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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태진 Sep 26. 2021

권위주의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5)

부모로부터 왜냐하면 이라는 설명을 제대로 듣 못하고 자란 아아들이 학교 들어가면 영어나 수학 같이 이해보다는 암기식 학습이 중요한 과목 외에 도덕이나 사회 역사 과목 같이 어째서 그것아 옳을까, 어째서 그런 이 과거 발생했을까 그리고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같은 질문이 생기 되는 과목들도 같이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테면 조선왕조의 말기인 대한제국 시대에 일어난 사건으로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도피한 "아관파천"이라던가 배가 너무 고픈 군사들에게 밀린 봉급으로 모래가 섞인 쌀을 주어서 벌어진 "임오군란"이라던가 쓸데없이 발생하는 선거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명 하에 자행된 70년대 "체육관 선거" 등에 대해 맥락, 즉 무슨 이유로 그런 황당한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사실상 무조건 시험 대비용으로 외우기만강요당하는 상황과 함께 아이가 그 내용을 접하고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짐작하거나 생각해 낸 주관적인 다른 판단과 추론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 분위 속에서 정신적인 획일주의 그리고 권위주의라는 독버섯 은연중에 아이의 마음속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다수와 다른 또는 이미 지배적인 위를 갖춘 기존의 사상이나 주의(ideology)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다른 생각을 밝히면 다수의  눈 밖에 나서 사회적 조롱이나 비난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될 것이라는 두려도 은연중에 같이 커져 갈 것입니다.


앞 글에서 카리스마적 권위에 대해 언급했는데 기억하시겠지만 이 권위는 타인의 두려움을 바탕으로 유지되는데 카리스마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장본인도 그 권위가 실추될까 봐 좀처럼 두려움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런데 카리스마적 권위를 가졌다고 믿는 당사자는 왜 그런 권위를 "소유"하려고 했을까요? 조금 문맥을 벗어나지만 제가 요즘 읽고 있는 독일의 에리히 프롬 재단이 펴낸 <에리히 프롬과 대성>이란 책에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일종의  보완적 "반동 형성" 에 기반한 성격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를 카리스마적 권위 적용해 보자면 어릴 때부터 부모를 시작으로 거의 언제나 이유를 납득하기 힘든 권위에 눌려 산 사람은 그런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없어서 그들을 두려워 하지만 남이 들여다볼 수 없는 마음속 한 구석에는 독버섯처럼 그들에 대해 점점 커져 가는 적대감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언어로 적대감을 표현하지 않아도 그에게 권위를 행사하며 명령과 규칙을 사실상 강요하는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표정, 말투 그리고 제어하기 힘든 몸짓 등으로 자신의 적대감이 드러날까 봐 그는 그 권위를 자신에게 행사하는 사람들 앞에서 쉽사리 긴장을 감추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 그 그들과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이를테면 하루의 긴장이 좀 풀리고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하는 밤 시간에 대나 요에 몸을 뉘이면 원치 않게 낮에 그들 앞에서 보인 자신의 모습들(적인 모습을 포함해)이 떠오르고 스스로가 생각해도 "비굴하다", "역겹다", "한심하다", "바보 같대" 등의 판단이 들면 좀처럼 잠도 오지 않고 자신에 대해 적 않은 화가 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연거푸 일어난다면 그에게 권위를 행사하며 마치 그를 로봇처럼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화가 점점 더 커지는 것과 비례해서 그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하기는커녕 주눅 든 목소리와 표정으로 처신한 자기 자신이 못마땅한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를 죽여 리고 싶을 정도로 자기혐오에  빠질 위험이 점 더 커질 것입니다.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정조차 하기 힘들어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언어나 물리력을 사용한 폭력으로 권위를 자신에게 행사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잃어버리거나 무너진 "자존감", 즉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때론 수와 잘못도 원치 않게 저지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부정적인 경험들을 바탕으로 천천히, 때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서 "개인화"되고 이와 함께 "사회화"되어야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문득 자기도 모르게 그런 인간적인 존재감을 느끼게 되면 불쾌감과 함께  때론 심한 불안감이 엄습해서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자존감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


그런 사 인간적인 한계와 약점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러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책감을 힘들고 때론 고통스럽더라도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런 인간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자존감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그런 평범 자존감으로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힘든 며느리 생활을 한 아낙네가 모진 시어머니처럼 된다"는 옛 말처럼 자기도 알게 모르게 폭력적인 권위를 행사한 사들에게서 배운 폭력적이고 카리스마적인 권위로 무너진 또는 상실한 자존감을 마술적인 방법으로 복원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설사 그가 타인들이 두려워하는 카리스마적 권위를 "소유"했다고 믿더라도  그에 대한 대가는 적지 않아서 거의 언제 "내가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인간적인 실수(?)를 누군가 발견하고 그 때문에 내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거의 언제나  노심초사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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